[딥바이오] “유럽 물가 자극한 미래 가스 공급 불안” 실제 공급 차질보다 큰 파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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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가스 공급 불안, 유럽 인플레이션 자극 에너지 충격, 희토류보다 광범위한 물가 영향 장기 조달 체계 구축과 불확실성 해소가 핵심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2년 10월 유로존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0.6%로 유로화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41.5% 급등하면서 전체 물가상승률을 4.44%포인트 끌어올렸다. 반면 생산 활동은 당초 우려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앞서 2022년 봄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될 경우 유럽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국제시장에서 조달한 액화천연가스(LNG)가 공급 감소분의 상당 부분을 메우면서 생산 차질을 완화한 덕분이다. 이처럼 생산 활동이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됐음에도 물가가 급등한 현상은 실제 가스 공급량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는 실제 가스 공급 부족보다 향후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인플레이션을 더욱 크게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공급 충격
천연가스 가격이 동일하게 상승하더라도 원인에 따라 경제적 파급효과는 달라진다. 혹한에 따른 난방 수요 증가나 가스관 고장으로 인한 공급 감소가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실제 공급량에 변화가 없더라도 향후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만으로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스 가격 상승의 경제적 영향을 파악하려면 수요 증가와 공급 차질을 구분하는 동시에 공급 충격이 현재의 물량 부족에서 비롯됐는지, 미래의 공급 불안에서 발생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런던비즈니스스쿨(LBS)과 코트다쥐르대학교 연구진은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서 가스 가격 상승 요인을 구분하기 위해 평년 대비 기온 편차와 가스 선물가격 변동을 분석 지표로 활용했다. 기온 편차로 난방 수요 변화를 파악하고 가스 공급 관련 사건 전후에 발생한 예상 밖의 선물가격 변동을 통해 공급 측면의 충격을 분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제외하고 가스 공급과 직접 관련된 사건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공급 충격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가스관 고장이나 공급 중단으로 현재 공급량이 감소하는 '실제 공급 차질(flow disruptions)'과 당장의 공급량에는 변화가 없지만 향후 공급 전망이 악화되는 '공급 안정성 관련 뉴스(security of supply news)'다. 전자는 현물가격과 익월물 가격의 일일 변동을, 후자는 만기가 긴 선물계약의 가격 변동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이러한 공급 충격이 가스 가격을 크게 움직이는 배경에는 수요의 낮은 가격 탄력성이 있다. 연구 결과 유로존과 미국 모두 가스 수요가 공급보다 가격 변화에 둔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스는 난방과 산업생산에 필수적인 만큼 가격이 오르더라도 단기간에 사용량이 크게 줄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급이 감소하거나 향후 부족 가능성이 커지면 소비량 변화에 비해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다. 실제로 2022년 유럽에서는 가스 소비량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음에도 가격이 급등했다.

다가올 겨울의 공급 불안이 인플레이션 주도
실제 공급 차질과 미래 공급 불안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두 충격으로 천연가스 실질가격이 각각 10% 상승했을 때, 실제 공급 차질은 단기적으로 산업생산을 감소시켰지만 소비자물가 상승 효과는 약 0.1%에 그쳤다. 반면 미래 공급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소식은 산업생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물가 수준을 초기 약 0.2%, 1년 후에는 약 0.5%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공급 감소보다 향후 공급에 대한 불안이 물가에 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미래 공급 부족에 대비한 선제적 비축 수요에서 비롯된다. 공급 불안이 커지면 기업과 거래업자들은 향후 필요한 가스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재고를 늘린다. 당장의 공급량이나 소비량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비축 수요가 증가하면서 현재 가격에 상승 압력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 같은 공급 불안의 영향은 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향후 가스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고 그 영향도 장기간 지속됐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를 LNG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국제 가스시장 전체의 수급 균형이 변화했다. 이는 국제시장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미래 공급 불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가스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확산되는 주요 경로는 제조업의 생산비용이다. 에너지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가격이 오르면 중간재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여러 생산 단계를 거쳐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공급 충격이 생산자물가지수(PPI)에 큰 영향을 미친 뒤 상품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들이 생산공정에서 에너지를 다른 자원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어 비용 상승의 파급효과가 컸다.
독일, 가스 공급 충격에 생산·투자 위축
유로존 전체의 생산 활동은 2022년 에너지 위기에도 예상보다 양호한 흐름을 유지했지만,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위기 이전 독일의 가스 수입 지출은 국민총지출(GNE)의 약 0.8%로 유로존 평균인 0.5%를 웃돌았다. 이에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거나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분해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관건은 가스 소비 감소가 에너지원 전환의 성과인지, 경기 위축에 따른 결과인지 구분하는 데 있었다. 기업이 다른 연료를 사용하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면 생산에 미치는 충격을 줄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생산 자체를 축소했다면 가스 사용량 감소는 오히려 경제적 피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 공급 차질과 미래 공급 불안을 결합해 독일과 유로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독일에서는 가스 소비뿐 아니라 국민총지출과 투자도 감소했으며, 산업생산 역시 기존 전망 경로를 지속적으로 밑돌았다. 유로존 전체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고 단기간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가계와 기업의 구매력이 약화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면서 경기 둔화가 장기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가스 공급 충격은 환경에도 상반된 영향을 미쳤다.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발전 부문에서 석탄과 석유 사용이 늘어나 단기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증가했다. 반면 미래 공급 불안으로 가스 가격이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배출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높은 가스 가격이 상대적으로 청정한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유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가격 하락 이후에도 이러한 변화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에너지와 희토류가 다른 이유
독일의 사례는 가스 공급 충격이 생산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지만 모든 원자재의 공급 차질이 같은 방식으로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의 폭과 지속 기간은 해당 자원의 산업적 중요성과 대체 가능성, 가격 변동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연구논문 88편을 분석해 공급 충격을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6가지 전달 경로와 7가지 증폭 요인을 제시했다. 분석 대상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2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생산성 충격(21건), 팬데믹 충격(17건)이 뒤를 이었다. 모든 유형에서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이 물가로 이어지는 공통점이 확인됐지만 인플레이션의 강도와 지속 기간은 여러 증폭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특히 생산방식을 바꾸기 어려운 산업에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 기대까지 불안정해지면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교 대상이 에너지와 희토류다. 두 자원 모두 산업생산에 필수적이지만 공급 차질의 파급 범위는 서로 다르다. 희토류는 대체 소재를 확보하기 어려워 공급이 끊기면 특정 산업의 생산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2021년 반도체 공급난이 핵심 부품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을 보여줬다면 지난해 4월 중국이 디스프로슘과 테르븀 등 7종의 중·희토류에 도입한 수출통제는 방위산업과 자동차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희토류는 소비자가 일상에서 가격 변화를 확인하는 품목이 아니어서 가계의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며 전체 소비자물가에 대한 파급효과도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 머문다.
반면 에너지는 가계의 주요 소비 품목인 동시에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필수적인 생산요소로 사용된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의 생산비용이 늘어날 뿐 아니라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와 향후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에너지 공급 충격은 생산비용과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다른 원자재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다.
표 1. 공급 충격의 8가지 유형별 전달 경로와 증폭 요인 및 인플레이션 영향
| 공급 충격 유형 | 대표 사례 | 주요 물가 전달 경로 | 주요 증폭 요인 | 인플레이션 영향 및 지속 기간 |
|---|---|---|---|---|
| 원자재 가격 충격(특히 에너지) | 2022년 유럽 천연가스 위기 | 생산비용, 산업 간 투입·산출 관계, 노동시장 | 낮은 대체 가능성, 임금 경직성, 높은 가격 가시성에 따른 물가 기대 변화 | 거의 모든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 물가 기대가 불안정해지면 장기화 |
| 핵심 생산요소 공급 차질 | 2021년 반도체 공급난, 2025년 희토류 수출통제 | 생산비용, 공급망, 기업의 가격 결정력 | 단기 대체 불가능, 낮은 재고 수준, 전환 비용 | 영향 범위는 제한적이지만 특정 산업의 생산 중단 등 심각한 피해 |
| 글로벌 공급망 교란 | 2020~2022년 운임 상승 및 배송 지연 | 생산비용, 공급망, 산업 간 연계 | 공급망 전반의 충격 확산, 재고 부족, 물가 기대 | 생산자물가를 거쳐 상품 가격에 광범위한 영향.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 |
| 생산성 충격 | 생산요소 효율의 급격한 저하 | 생산비용, 산업 간 연계 | 생산능력 제약, 시장 지배력,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통화정책 | 생산성 하락 폭과 지속 기간에 비례해 광범위한 영향 |
| 수입가격 충격 | 미국의 중국산 제품 관세 부과 | 생산비용, 공급망 재편, 기업의 가격 결정력 | 국내 대체재 부족, 국내 경쟁기업의 이윤율 상승 | 물가 영향은 중간 수준이며 수입기업과 국내기업 간 차이 발생 |
| 노동 공급 충격 | 팬데믹 기간 노동 참여 의향 감소 | 노동시장 | 숙련 인력의 전문성, 임금 경직성, 물가 기대 | 산업별로 영향이 집중되며 임금 상승을 통해 장기화 |
| 자연재해 |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 | 공급망, 생산비용 | 전문 공급업체 의존, 재고 부족, 사재기 | 초기에는 지역에 집중되지만 점차 확산. 가격 상승보다 물량 부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 |
| 팬데믹 | 코로나19 | 모든 전달 경로에 동시 영향 | 생산요소 이동 제약, 제한적인 유휴 생산능력, 물가 기대 |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 다만 예방적 저축이 충격을 완화할 가능성 |
미래 에너지 공급 안정성이 물가 안정의 관건
에너지 공급 충격이 산업 전반의 생산비용과 소비자의 물가 기대를 동시에 자극하는 만큼 통화정책에서 충격의 원인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은 일반적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단해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공급 차질의 경우 소비자물가 전가율이 낮고 영향도 빠르게 사라져 이러한 접근이 유효하다. 그러나 미래 공급 불안은 물가 전가율이 1년 후 약 5%까지 높아지는 등 상승 압력이 장기간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 10월 유로존의 근원물가상승률이 5.0%를 기록한 현상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단기적인 공급 차질과 미래 공급 불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구분해 통화정책 대응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요구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통화정책과 함께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는 대책도 필요하다. 단기적인 공급 부족분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수년간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과 시장 참여자들이 공급 부족에 대비해 가스를 미리 비축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응인 만큼 이를 억제하기보다 대체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저장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역시 향후 에너지 수급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출 책임이 있다.
이러한 과제는 2026년 호르무즈해협의 에너지 공급 차질로 다시 부각됐다. 유럽은 2022년 이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췄지만, 여전히 국제 에너지시장 변동에 취약한 상황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지난 5월 발표한 봄 경제전망에서 새로운 에너지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을 경제성장 둔화의 요인으로 지목했다. 결국 유럽이 에너지 공급 불안에 따른 경제적 피해와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upply Disruption Inflation: Why Natural Gas Weighs More Than Rare Earth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