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 경쟁] 러 북극항로 허가제 국제법 근거 취약, 서방 이탈 속 중국 영향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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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국가 교통로' 주장, 유엔해양법협약에 없는 개념 선사들 이의 없는 규정 준수에 러 통제 기정사실화 우려 중국 내빙선 늘수록 커지는 항로 운영 발언권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늘면서 러시아의 통항 허가제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30일 기준 북극항로 전 구간의 통과 운항은 104회로 이미 지난해 연간 기록을 넘어선 상태다. 러시아 항구에 기항하지 않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한 운항도 지난해 1회에서 올해 4회로 늘었다. 중국 선사 시레전드는 올해 처음으로 닝보와 영국 펠릭스토,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유럽 4개 항구를 연결하는 정기 운항에 나서 8항차를 편성했다. 이들 선박은 모두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의 통항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자국 수로라고 주장하는 북극항로는 법적 지위가 서로 다른 여러 해역을 지나기 때문에 항로 전체에 동일한 통항 규제를 적용할 법적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소련, 1985년 북극항로 4개 해협 내수로 편입
러시아의 북극항로 통항 규제를 둘러싼 쟁점은 연안국의 권한이 해역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국제법상 연안 수역은 내수와 영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등으로 나뉜다. 연안국은 내수에서 외국 선박의 진입을 제한할 수 있지만, 영해에서는 무해통항권을 보장해야 하며 EEZ에서는 항행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2년 7월 제정한 연방법 132-FZ를 통해 노바야제믈랴에서 베링해협 데즈뇨프곶까지 북부 연안의 바다를 북극항로 수역으로 지정하고, 내수와 영해, 접속수역, EEZ 전반에 상선법상 통항 허가제를 적용했다. 2020년 정부령으로 도입한 항행 규칙에 따라 선박의 내빙 등급과 운항 해역별 쇄빙선 지원 여부도 결정된다. 러시아 외무부는 북극항로를 '국가 교통로'로 규정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는 이에 해당하는 별도 법적 개념이 없다.
특히 북극항로의 주요 해협을 러시아 내수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소련은 1985년 빌키츠키·쇼칼스키·드미트리랍테프·산니코프해협 주변에 직선기선을 설정해 이들 해역을 내수에 포함했다. 직선기선은 굴곡이 심한 해안의 바깥쪽 지점을 연결해 영해의 기준을 정하는 선으로, 기선 안쪽 수역은 내수로 간주된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이 설정한 기선이 유엔해양법협약 제7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양국의 갈등은 1965년 미국 해안경비대 쇄빙선 노스윈드호가 빌키츠키해협 통과를 시도했다가 소련의 반발로 회항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협약 제8조도 러시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직선기선 설정으로 새롭게 내수에 편입된 해역이라도 기존에 무해통항권이 인정됐다면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통항 규제 권한을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주요 해협에서 국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해빙 면적 10년째 정체, 234조 근거는 당분간 유지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얼음으로 덮인 해역에 대한 연안국의 규제 권한을 인정한 협약 제234조가 러시아의 통항 관리에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제234조가 적용되려면 연중 대부분 기간 해빙과 혹독한 기후가 선박 운항에 위험을 초래해야 하며, 규제 역시 항행의 자유와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당초 캐나다의 요구로 협약에 포함된 조항이지만, 러시아도 북극항로 통제의 근거로 이를 활용해 왔다. 이로 인해 해빙이 줄어들수록 러시아가 제234조를 근거로 통항을 규제할 수 있는 범위도 좁아지는 구조다.
현재 북극항로 주변의 해빙은 아직 제234조의 적용 요건을 충족하는 수준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지난 9월 12일 북극 해빙 면적은 460만㎢로, 1979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공동 10번째로 작은 수준이었다. 반면 영국 기상청은 같은 달 해빙 면적이 2007년 이후 5번째로 넓었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해빙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최근 10여 년간 감소세가 둔화된 양상이다. 실제 로사톰은 지난해 로이터통신에 북극항로 운항 허용 기간을 7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북극항로가 여전히 계절적 해빙의 영향을 받는 만큼 제234조를 적용할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얼음 두께의 변화는 선박의 항로 선택을 바꿀 변수로 꼽힌다. NASA에 따르면 북극에서는 오래되고 두꺼운 얼음이 줄어드는 대신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얇은 얼음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들이 러시아 연안에서 더 멀리 떨어진 북쪽 항로를 이용할 가능성도 커졌다. 2020년 학술지 '북극과 북방(Arctic and North)'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선박들이 러시아 연안에서 200해리 이상 떨어진 공해를 이용하면 러시아가 통항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북극해의 얼음이 줄어들수록 선사들은 러시아의 허가를 받는 기존 항로 대신 규제를 받지 않는 북쪽 항로를 택할 여지가 생긴다.

외국 상선 허가 1,312건, 군함은 얼음 조항 예외
북극항로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는 법적 근거를 둘러싼 이견에도 상선 운항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노르웨이 환경단체 벨로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가 선박 975척에 발급한 북극항로 운항 허가는 총 1,312건에 달했다. 외국 국적 선박은 100척이었으며 이 가운데 약 3분의 1은 얼음이 있는 해역을 항해할 수 있는 내빙 등급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러시아가 해빙으로 인한 위험을 통항 규제의 근거로 내세우면서도 내빙 등급이 없는 선박에 운항을 허용한 것이다. 허가 신청 시 선사는 내빙 등급 정보와 극지 운항 증서를 제출해야 하며, 러시아 당국은 선박의 안전 요건에 따라 쇄빙선 지원을 의무화하거나 통항을 거부할 수 있다.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소 클링엔달은 외국 선사들이 별다른 이의 없이 이 절차를 따르면서 러시아의 관할권 주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듯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군함에는 상선과 같은 허가제를 적용할 수 없다. 러시아가 상선 규제의 근거로 삼는 제234조는 해양오염을 막기 위한 환경 조항인데, 유엔해양법협약 제236조가 군함과 정부의 비상업용 선박을 환경 조항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외무부도 북극항로 허가제를 정한 기존 법률이 군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상태다. 대신 러시아는 2022년 12월 연방법 510-FZ를 제정해 외국 군함의 내수 진입을 규제했다. 이 법에 따라 외국 군함은 진입 90일 전 허가를 신청해야 하며, 해당 수역에는 한 번에 1척만 머물 수 있다. 잠수함은 수면 위로 부상해 국기를 게양해야 하고 러시아 당국은 통항을 중단시킬 권한도 갖는다. 다만 적용 범위는 러시아가 설정한 직선기선 안쪽의 내수로 한정돼 영해와 EEZ까지 통제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북극항로를 거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미국 군함은 아직 없다. 클링엔달은 동맹국 함정도 이 해역을 통과하려면 러시아의 항행 지원에 의존해야 하므로 러시아의 관할권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짚었다.
中, 백서로는 자유 항행 지지·현장에선 러 규정 순응
북극항로의 최대 이용국인 중국은 러시아의 통항 규제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중국은 2018년 발표한 북극정책 백서에서 자국을 '근북극 국가'로 규정하고 '빙상 실크로드'를 통한 북극 개발 참여 의지를 밝혔다. 북극 연안국의 관할권을 존중하면서도 모든 국가가 유엔해양법협약과 국제법에 따라 북극항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극항로를 자국의 국가 교통로로 보는 러시아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언급은 없었으며, 통항 규제를 둘러싼 분쟁이 존재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는 중국도 실제 운항에서는 러시아의 허가제를 따르고 있다. 중국 선사 시레전드가 '중국-유럽 북극 특급' 노선에 투입한 선박 7척도 모두 로사톰의 통항 허가를 받았다. 양국의 북극항로 협력도 확대되는 추세다. 알렉세이 리하체프 로사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월 러시아 매체 엑스페르트에 지난해 중·러 항만 간 교역량이 540만 톤으로 북극항로 전체 물동량의 약 1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지난해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는 안보 분야 협력도 논의했다.
북극항로 통과 유조선 8척 전부 美 제재 대상
북극항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배경에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있다. 로사톰은 올해 북극항로 물동량이 1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지난해 물동량은 2024년 기록한 역대 최대치 3,790만 톤보다 더 감소했다. 물동량이 줄어든 가운데 북극항로의 러시아산 원유 운송은 중국행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 전 구간을 통과해 중국으로 향한 유조선 8척은 모두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다. 서방 제재로 이용국이 제한되면서 북극항로는 국제 교역로보다는 러시아산 원유를 중국에 수출하는 통로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서방 주요 해운사들이 제재와 운항 위험 등을 이유로 북극항로 이용을 기피하면서 중국의 입지는 오히려 커졌다. MSC와 머스크, CMA CGM, 하팍로이드는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에 서명했다. 제재를 피해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그림자 선단'에 유럽 기업 소유 선박도 다수 포함되면서 러시아 관련 선박과의 거래를 꺼리는 분위기도 짙어졌다. 서방 기업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러시아산 에너지를 사들이는 곳은 중국이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아크틱 LNG 2는 지난해 8월 첫 수출 이후 지난 6월까지 LNG 41척분을 모두 중국 광시성 베이하이로 보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크틱 LNG 2는 중국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해 판매 가격을 30~40%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중국 중심의 교역 구조가 유지된다면 북극항로 운영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중국 선사 시레전드가 운항을 확대하고 중국 조선업계가 내빙선 공급을 늘릴수록 러시아도 중국의 요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향후 북극항로 통제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한다면 러시아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항로 이용국인 중국이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rctic Maritime Strategy] Control of the Northern Sea Route: Russia, China and Freedom of Navigation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