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 경쟁] 북극항로 화물 83%가 석유·가스, 아시아~유럽 교역로보다 러 에너지 수출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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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보험 비용 탓 수에즈 대비 비용 우위 드물어 제재 대상 LNG·원유 의존, 물동량 전망 엇갈려 한·일 조선사, 수주 기대보다 제재 손실 부담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극항로를 수에즈운하보다 운항 기간을 몇 주 단축할 수 있는 아시아~유럽 교역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 화물 운송보다 러시아의 에너지·광물 수출에 주로 활용된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에 따르면 2024년 북극항로 물동량 3,790만 톤 가운데 항로 전 구간을 통과한 화물은 약 310만 톤으로 전체의 8%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러시아 북극 지역에서 생산된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광석 등이었다. 지난해에도 전체 물동량은 3,700만 톤으로 2.3% 감소한 반면 통과 화물은 320만 톤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야말 LNG 한 곳이 물동량 절반 이상
북극항로의 화물 운송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러시아 컨설팅업체 게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물동량의 83%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었다. 특히 러시아 최대 민간 가스기업 노바테크가 야말 LNG 시설에서 수출한 LNG는 2,040만 톤으로 북극항로 전체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러시아 북극 지역에서 출발하는 에너지 수출 물량을 제외하고 항로 전 구간을 통과하는 화물만 살펴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 화물 역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국제 교역보다 러시아와 중국 간 운송에 집중돼 있다. 노르웨이 북극물류센터(CHNL)에 따르면 2024년 통과 화물 307만 톤 가운데 중국행이 290만 톤에 달했고, 이 가운데 189만 톤은 유조선 18항차가 수송한 물량이다. 전체 통과 운항 97회 가운데 러시아 이외 국가에서 출발해 다른 국가로 향한 사례는 없었고, 41회는 화물을 싣지 않은 공선 운항이었다. 지난해에도 통과 운항 103회 중 유조선이 가장 많았으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한 국제 운항은 단 1회에 그쳤다.

올해 들어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화물은 늘고 있지만, 늘어난 물량 대부분은 러시아산 원유와 벌크 화물이다. CHNL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까지 북극항로 통과 운항은 104회, 화물량은 약 370만 톤으로 집계됐으며, 운항 시즌이 끝날 때까지 약 150회, 450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화물은 주로 러시아 서부 항만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물량이다. 무르만스크와 발트해 연안의 프리모르스크·우스트루가를 출발한 유조선은 22차례 운항하며 원유 약 210만 톤을 동쪽으로 실어 갔고, 벌크선도 13차례 운항하며 110만 톤을 수송했다. 반대로 서쪽으로 향한 벌크선 운항 27차례는 대부분 화물 운송보다 선박 재배치를 위한 이동이었다. 해운 전문매체 컨테이너뉴스의 알렉산드로스 이티무디스에 따르면 원유와 벌크 화물은 전체 통과 물동량의 86%를 차지한다. 결국 통과 화물이 늘었어도 증가를 이끈 것은 아시아~유럽 교역이 아니라 러시아의 자원 수출인 셈이다.
닝보~펠릭스토 18일, 컨테이너당 비용은 더 높아
북극항로를 이용한 아시아~유럽 간 화물 운송이 아직 제한적인 것은 운항 거리 단축의 이점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닝보에서 영국 펠릭스토까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수에즈운하를 거칠 때보다 운송 기간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 중국 닝보저우산항의 리샤오빈은 중국 선사 소유 컨테이너선 이스탄불브리지호가 이 구간을 18일 만에 운항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면 40일 이상 걸리는 거리다. 이 선박은 실제로는 노르웨이 해역의 기상 악화로 이틀 지연되면서 도착까지 20일이 걸렸다. 그러나 운송 기간이 짧아졌다고 비용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선사 측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컨테이너당 운송비가 오히려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4,9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은 아시아~유럽 노선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보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려워 운항 거리 단축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제한적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북극항로의 비용 경쟁력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목포해양대 연구진은 다양한 운항 조건을 반복 적용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하이~로테르담 구간의 컨테이너선 운송비를 비교했다. 그 결과, 북극항로는 수에즈운하보다 항해 거리가 18.1% 짧았지만 쇄빙선 지원비와 보험료,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추가 비용이 절감 효과를 상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이 산정한 쇄빙선 지원비는 45만 달러(약 6억1,000만원)로 수에즈운하 통행료 30만 달러(약 4억670만원)의 1.5배 수준이다. 시뮬레이션에서 북극항로의 운송비가 더 낮게 나온 경우는 전체의 16.6%에 그쳤다. 겨울철에는 1.4%로 떨어졌으며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23.5%에 머물렀다. 북극항로가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쇄빙선 지원비와 보험료 등 여러 비용이 함께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진단이다.
비용뿐 아니라 안정적인 운항 일정 확보도 과제다. 컨테이너 화주는 정해진 날짜에 화물을 인도받을 수 있는 정기 운송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북극항로는 계절에 따라 이용이 제한된다. 이티무디스에 따르면 중국 선사 시레전드는 올해 내빙 선박 7척으로 8차례 운항하며 1만4,000TEU 이상을 수송했으나 해빙 상태가 악화되면서 운항을 조기에 종료했다. 현재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8~10월 약 3개월에 불과해 나머지 기간에는 수에즈운하나 희망봉을 경유해야 한다. 결국 북극항로는 연중 운항하는 기존 해상 교역로를 대체하기보다 운송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일부 화물을 놓고 철도·항공 운송과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아크틱 LNG 2 화물, 전량 중국행
북극항로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LNG 수출도 제재로 확대에 제약을 받고 있다. 러시아 북극 지역의 LNG 수출은 노바테크가 주도하는데, 기존 야말 LNG 사업과 달리 신규 사업인 아크틱 LNG 2는 2023년 11월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판로가 크게 좁아졌다. 지난해 8월 첫 인도 이후 중국 광시성의 국가석유천연가스관망그룹(파이프차이나) 터미널로 LNG 41척분인 260만 톤이 수송됐으며, 현재 구매국은 중국이 유일하다.

러시아의 또 다른 대형 에너지 개발 사업도 제재 여파로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가 추진하는 보스토크 오일 사업은 가동이 지연되고 있으며, 운영사도 지난해 1월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이에 따라 올해 북극항로 물동량 전망도 엇갈린다. 미하일 그리고리예프 게콘 대표는 물동량이 정체될 것으로 예상한 반면, 알렉세이 리하체프 로사톰 최고경영자(CEO)는 14% 증가를 내다봤다. 주요 변수는 발트해 연안 항만에서 출발하는 러시아산 원유의 북극항로 운송이 지속될지 여부다. 이티무디스는 동쪽으로 향하는 원유 상당수가 발트해에서 출발하는 만큼 제재 단속과 선박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은 지난달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그림자 선단' 선박 12척을 추가 제재했으며, 북극항로를 운항하던 선령 22년의 유조선 다카르호도 명단에 포함됐다.
팬스타 아크로호 첫 운항, 부산은 급유·수리 노려
러시아 북극 에너지 개발 사업에 대한 제재는 한국과 일본 조선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러시아 국영 해운사 소브콤플로트가 제재로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아크7급 쇄빙 LNG 운반선 3척에 대한 8억7,200만 달러(약 1조1,820억원) 규모의 계약을 해지했다. 삼성중공업은 2024년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로부터 아크7급 LNG 운반선 10척과 셔틀탱커 7척의 건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즈베즈다는 선수금 8억 달러(약 1조840억원)와 이자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양측은 싱가포르에서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도 같은 해 상선미쓰이(MOL)의 내빙선 4척 발주가 취소됐다. 투자액은 1,050억 엔(약 9,310억원)에 달하지만, 선박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매각 과정에서 손실이 예상된다.
러시아 북극 에너지 사업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조선업계가 손실을 입었지만, 한국은 장기적인 북극항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 부산을 출발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한국 상선 최초로 북극항로를 운항해 영국 펠릭스토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에 기항한 뒤 50일 만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다만 당초 약 1,300TEU를 선적할 계획이었으나 실제 화물은 737TEU에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2030년 북극항로 정기 운항 서비스를 시작하고 부산을 주요 거점항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화물을 확보하려면 중국 주요 항만과 경쟁해야 한다. 이에 직접적인 화물 유치뿐 아니라 선박 연료 공급(벙커링)과 수리 등 항만 서비스를 강화하고, 베링해협 통과 선박의 첫 기항지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수에즈운하 하루 물동량, 북극항로 연간 컨테이너 웃돌아
북극항로가 비용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수에즈운하는 홍해 사태로 감소했던 물동량을 회복하고 있다. 홍해에서 선박 공격이 잇따르자, 상당수 선박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수에즈운하 통항량은 급감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통항이 다시 늘면서 운하 수입도 회복세를 보인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청장에 따르면 올해 6월 종료된 회계연도 운하 수입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46억7,000만 달러(약 6조3,30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통항 선박 수는 10%, 통과 화물량은 22% 늘었다. 두 항로의 물동량 격차도 상당하다. 수에즈운하가 2024년 하루 평균 처리한 화물은 125만 톤으로, 지난해 북극항로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을 웃도는 규모다.

북극항로의 운항 확대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교역로로 자리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러시아의 통항 통제와 중국 선사에 대한 높은 의존도, 쇄빙선 지원비와 보험료 부담, 계절에 따른 운항 제한 등이 걸림돌이다. 운송 기간 단축이라는 이점만으로 기존 항로를 대체하기는 어려운 만큼, 북극항로는 당분간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rctic Maritime Strategy] The Economics of Russia's Northern Sea Route: A New Trade Corridor or an Energy Export System?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