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 경쟁] 러 북극 군사 거점은 핵 억지력용, 북극항로 상선 보호는 후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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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량 목표 절반 미달에도 해안 기지 선제 구축 지상군 감축 속 함정 건조에 140조원 中 항로 이용 확대에도 러시아는 통항 통제 고수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극항로의 물동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군사력 증강을 이어 가고 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 물동량은 3,702만 톤으로, 사상 최대였던 2024년 3,790만 톤보다 줄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제시한 2024년 목표인 8,000만 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러시아는 북극해 연안의 코텔니섬 비행장 활주로를 확장하고 브랑겔섬에 레이더를 배치했으며, 레나강 하구의 틱시에 방공부대를 주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이와 같이 북극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주된 목적은 핵 억지력 유지와 영토 방어에 있다. 콜라반도의 핵잠수함 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동쪽 방어망 구축과 소련 해체 이후 방치된 시베리아 연안 군사 거점의 복구가 대표적이다. 북극항로 일부 수역을 자국 내수로 간주하는 러시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도 군사력이 필요하다. 북극항로를 오가는 선박이 없더라도 해안에 미사일과 레이더를 배치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콜라반도 핵전력 집중, 동부 해안은 레이더 위주
러시아는 바렌츠해와 카라해를 연결하는 카라해협 서쪽을 핵전력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올해 연례위협평가에서 러시아가 핵 공격을 받은 뒤 보복에 나서는 '2차 타격' 전력의 약 67%와 탄도미사일 잠수함 7척이 콜라반도에 배치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동쪽으로 갈수록 군사력 배치 규모는 줄어들고 시설의 역할도 달라진다. 노보시비르스크제도 코텔니섬의 '북극 클로버' 기지는 산니코프해협 등 주요 해상 통로를 감시하는 거점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이곳에 바스티온-P 지대함 미사일과 판치르-S1 방공 체계가 배치된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브랑겔섬과 슈미트곶에 배치된 장비는 소프카-2 레이더뿐이다. 소프카-2 레이더는 민간 항공 관제와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에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데 활용된다.

동부 북극 지역의 군사시설이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랍테프해 연안의 틱시에서도 드러난다. 북방함대 사령관은 2018년 6개월 안에 틱시에 S-400 지대공미사일을 갖춘 방공부대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CSIS가 2020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S-400 미사일과 건설 예정이던 건물 11동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동부 북극에는 레이더 등 감시 거점만 있을 뿐, 해안 전역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 체계는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방공 미사일 60% 빼고 핵미사일 기지는 사수
러시아 북극 군사 전략의 우선순위는 방공 전력 재배치 과정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7월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2년 이전 배치했던 S-300·S-400 지대공미사일의 약 60%를 철수했다.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대비해 모스크바와 정유시설을 방어하는 데 재배치됐다. 같은 달 6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도 노바야제믈랴 로가체보의 미사일 기지는 대부분 비어 있었으며, 세베로드빈스크 잠수함 조선소를 오랫동안 보호해 온 방공 진지도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핵미사일 지하 발사대와 전략폭격기 기지 주변의 방공망은 그대로 남았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IFS)는 이러한 방공망 배치 변화를 근거로 러시아가 북부 지역에서 대규모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상군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노르웨이 정보국에 따르면 콜라반도의 러시아 지상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이 투입되면서 2023년 기준 전쟁 이전의 5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연안 시설 방어와 북극항로 선박 지원을 맡던 북극 여단도 전선으로 차출됐다. 반면 잠수함과 수상함, 장거리 방공·전자전 전력은 전쟁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2050년 해양 전략'을 승인하고 향후 10년간 함정 건조에 8조4,000억 루블(약 140조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해군 전력 확충에도 나섰다. 병력이 부족해지자 핵 억지력 보호와 적 함정의 연안 접근 차단을 앞세우면서 북극항로 상선 보호는 후순위로 밀린 셈이다. 군사 활동 범위도 핵심 해역으로 좁혀졌다. 미국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러시아가 노르웨이 본토와 스발바르제도 사이 '베어 갭' 주변 해역 통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동부 북극에서는 알래스카 인근 폭격기 비행과 함대 훈련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 GDP 7% 북극 의존, 군 기지는 운항 늘기 전 완공
러시아가 북극 지역에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작용한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북극 지역은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7%, 수출의 11%, 천연가스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극항로의 선박 운항도 증가하는 추세다. 노르웨이 북극물류센터(CHNL)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 횡단 운항은 103회로, 이 가운데 컨테이너선 운항은 15회였다. 올해는 9월까지 이미 104회를 기록했으며, 연간 운항 횟수는 150회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에즈운하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규모지만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로사톰도 올해 북극항로 물동량이 전년보다 14%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북극 군사시설 확충은 북극항로 물동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전부터 추진됐다. 코텔니섬과 브랑겔섬, 틱시를 비롯해 옛 군사기지 약 50곳을 재가동하는 사업 대부분이 2020년 이전에 계획되거나 건설된 것이다. 당시 북극항로의 상업 운송 규모는 미미했지만, 러시아는 군사 거점 확보와 함께 북극항로에 대한 통제도 강화해 왔다. 2022년 12월 제정된 법에 따라 외국 군함은 북극항로의 해당 수역을 통과하려면 90일 전에 허가를 신청해야 하며, 한 번에 1척만 통항할 수 있다. 2024년에는 푸틴 대통령이 해양·북극 관련 정책을 니콜라이 파트루셰프가 이끄는 해양위원회 산하로 통합하면서 연방보안국(FSB) 해안경비대와 국가근위대의 항만·수로 통제 권한도 확대됐다. 법 제정과 기구 개편은 러시아가 북극항로 개발을 경제 사업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군사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쇄빙선과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석유 시추 시설 등 북극 지역의 경제 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가 올해 핵미사일 기지 주변의 방공망은 유지하면서 북극항로 인근의 방공 전력을 철수시킨 점은 경제시설 보호 주장과 배치되는 행보다. 따라서 러시아의 군사력 배치에는 경제시설 보호보다 북극항로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中 원자력 쇄빙선 설계 승인, FSB는 '중국은 적' 경계
러시아가 북극항로에 대한 군사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항로 이용도 확대되고 있다. 로사톰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월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 전체 물동량 3,702만 톤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 간 운송 화물은 540만 톤에 달했다. 중국 선사들은 지난해 23항차였던 컨테이너선 운항을 올해 30항차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은 쇄빙선 개발에도 나서 지난해 12월 두께 2.5m의 얼음을 깰 수 있는 원자력 추진 화물·여객 겸용 쇄빙선 설계를 공개했다. 약 3만 톤급인 이 선박의 설계는 이탈리아 선급협회 RINA의 기본 승인을 받았다. 현재 원자력 쇄빙선을 운용하는 국가는 러시아뿐이어서 중국이 자체 쇄빙선을 확보하면 북극항로의 쇄빙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독점적 지위도 약화될 수 있다.
경제 협력에 이어 양국은 북극 지역에서 군사 활동 범위도 넓혔다. 2024년 7월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는 베링해와 축치해 상공에서 합동 비행을 실시했다. 중국 폭격기가 알래스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같은 해 중국 해경도 처음으로 북극 지역에 진출해 러시아와 합동 순찰을 벌였으며, 지난해 8월에는 쇄빙선 쉐룽 2호를 비롯한 중국 연구선 5척이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 포착됐다. CEPA는 러시아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태평양 방면 북극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국이 알래스카와 알류샨열도에 군사력을 분산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극항로에 대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러시아 FSB 문서는 중국을 '적'으로 지칭하며 중국이 광산과 대학 등을 통해 러시아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항행의 자유에 대한 입장도 엇갈린다. 중국은 2018년 북극정책에서 자국을 '근북극 국가'로 규정하고 모든 국가의 북극항로 항행의 자유를 지지했다. 반면 러시아는 2022년 제정한 법을 통해 외국 군함의 북극항로 일부 해협 통항을 제한할 근거를 갖췄다. 양국이 공개적으로 실시한 합동 순찰이 러시아가 통제권을 주장하는 북극항로 해협이 아닌 베링해에서 이뤄진 것도 양국의 입장 차이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美 북극 경비함 6척 발주, 첫 인도는 2028년
러시아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극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미국도 이에 대응해 북극 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북극해 연안의 지리적 여건과 기존 군사 인프라에서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 단기간에 격차를 좁히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러시아는 북극해 전체 해안선의 53%에 해당하는 2만 4,00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쇄빙선 42척 가운데 8척은 원자력으로 움직인다. 미국은 쇄빙선 전력 확충으로 이러한 격차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미 해안경비대는 지난 7월 볼린저 조선소와 22억 달러(약 2조9,850억원) 규모의 북극 안보 경비함 4척 건조 계약을 확정했다. 핀란드 조선사 라우마 마린 컨스트럭션스(RMC)에도 같은 함정 2척 건조를 11억 달러(약 1조4,920억원)에 맡겼다. 하지만 첫 경비함은 2028년, 대형 극지 안보 경비함은 2030년에야 인도된다.
신규 경비함이 인도되기 전까지 미국이 택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은 많지 않다. 우선 베링해와 축치해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활동을 계속 감시하는 방안이 꼽힌다. 러시아의 통항 제한에 정면으로 맞서자는 주장도 있다. 앞서 러시아는 2022년 법으로 외국 군함이 북극항로 해협을 지나려면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미국 함정이 허가 없이 빌키츠키해협이나 산니코프해협을 통과하면 이 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셈이다. 그러나 CEPA는 해협 통과가 얻는 실익보다 군사적 긴장을 더 키울 수 있다며 정면 대응에 부정적이다. 대신 2022년 법의 규제 대상이 아닌 러시아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는 미국 함정의 항행을 이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북극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북극항로의 상선 운항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러시아가 항로 방어에 군사력을 더 투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러시아 북극 전력의 무게중심이 상선 보호가 아닌 핵 억지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극 방공망의 공백이 길어질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러시아는 북부 지상군 확대 계획을 발표했고, 로가체보의 방공 포대도 단기간에 되돌릴 수 있다. 반면 미국은 2028년에야 첫 북극 안보 경비함을 인도받는다. 러시아가 방어망을 다시 채우기 전에 미국이 대응 전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셈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rctic Maritime Strategy] Russia's Arctic Military Strategy: Defending the Northern Sea Route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