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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원유 수입 1위 등극 '에너지 의존도' 높아, 에너지 수입 비중 GDP 24% 트럼프 2기 집권 대비 에너지 정책 변화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글로벌 에너지 주도권 확보를 선언한 가운데, 세계 최대 석유 수요 증가국으로 부상한 인도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비해 새로운 에너지 안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가격을 내린 러시아산 원유를 대거 수입 중인 인도는 원유 수입처를 중남미 신흥 산유국으로 확대하는 한편, LNG(액화천연가스)·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해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적극적인 석유·가스 개발 정책 예고
25일(현지 시각)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정책으로 인한 미국의 에너지 증산과 러시아 제재 강화 가능성은 인도의 에너지 수급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드릴, 베이비, 드릴'은 2008년 처음 등장한 구호로 미국 영토에 내장된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시추해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을 말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기간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미국 내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만큼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일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유럽연합(EU)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보상해 주기 위해 미국산 석유·가스를 대규모로 수입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끝장을 볼 때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적으로 동맹국을 향해 에너지 수입을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에너지 증산과 동맹국에 대한 수출 확대, 러시아·이란 등을 상대로 한 제재 강화를 통해 '에너지 패권'을 확보한다는 트럼프 2기 에너지 정책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의 에너지 수출 물량을 줄임으로써 시장의 수급을 맞추려 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이란 등'신(新) 악의 축'으로 불리는 산유국에 대해서는 이미 강화된 제재가 적용되고 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EU는 러시아산 원유를 외국에 수출하는 '그림자 함대' 선박 45척을 제재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고, 이란과 후티 반군 관련 유조선 등을 대상으로도 추가 제재에 나섰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이후 유럽에 대한 에너지 장악력을 확대해 온 러시아는 인도, 중국 등으로 협력선을 바꾸고 있다.
인도, 러·우크라 전쟁 이후 러시아 원유 수입 급증
이러한 변화는 세계 3위 에너지 소비국인 인도의 에너지 전략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 시 에너지 수급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의 에너지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수입 비중이 24%에 달하며, 2023~2024 회계연도 순 석유 수입 비용은 961억 달러(약 141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2024~2025 회계연도에는 이 비용이 1,040억 달러(약 153조3,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 45%를 인도가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격을 낮춘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적극 확보해 왔다. 이에 따라 2024년 회계연도 들어 러시아는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원유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고객이 됐다. 원유시장 분석업체 보텍사에 따르면 지난 5월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수입량 중 인도로 가는 물량은 860만 톤(t)으로 전체 물량의 50%에 육박한다.
인도는 최근에도 러시아와 대규모 석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2일 인도의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러시아의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 130억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10년 장기계약을 체결하며 공급 안정성을 확보했다. 10년 동안 일평균 5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하는 계약으로 거래량은 전 세계 원유 사용량의 0.5% 수준이다. 이번에 수입하는 러시아산 원유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잠나가르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릴라이언스 원유 정제 단지로 공급될 예정이다.
더욱이 인도는 러시아가 제재 때문에 저가에 팔 수밖에 없는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여 이익을 내고 있다. 러시아 원유를 인도 현지에서 정제해 에너지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 되파는 방식으로, 고객 중에는 러시아산 석유를 직접 사지 못하는 EU 국가도 포함됐다. 실제로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의 수입 물량이 급증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많은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다만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출액 자체는 감소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인도로서는 이 상황을 이용해 이익을 볼 방법을 찾아냈다"고 지적했다.
LNG·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자립도 제고
하지만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집권을 앞둔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이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자 인도는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일례로 지난해 인도는 3년 만에 베네수엘라에서 원유를 다시 수입하기 시작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대형 탱커선 3대를 배치해 지난해 말부터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이웃 국가인 가이아나는 중남미의 신흥 산유국으로 석유 매장량이 110억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도는 정유공장이 없는 가이아나의 원유를 사들여 정제하는 방식으로 수입을 추진 중이다.
LNG 수입량도 확대하고 있다. 3월 기준 수입량은 27억㎡로, 전월 대비 66%나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인도 아다니 그룹과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스 간 합작사 아다니 토탈이 인도 동부 오디샤주의 항구 도시 담라에 연간 500만M/T(메트릭톤)의 가스를 재기화할 수 있는 LNG 터미널을 개장했다. 이와 함께 미국 에너지 기업 인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 지분 투자 등을 통해 LNG 분야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수입처 다변화와 함께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이중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과 관련해 '태양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일 인도 정부는 2070년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500GW(기가와트)로 확대하고, 그중 300GW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의 태양광 발전 확대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으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태양 혁명"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