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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시 현대차 추월 세계 3위 안착
5년 전 합병안 제기, 시장 악화에 재점화
‘비용 절감·경영난 극복’ 이해관계 일치
일본 완성차 업체 혼다와 닛산의 경영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과거 한 차례 합병이 무산된 양사는 최근의 판매량 부진과 경영난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맞잡았다. 여기에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까지 합병에 포함될 경우,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지주사 설립 방식 유력, 각 브랜드는 독립 운영
18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혼다와 닛산이 경영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규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해당 지주회사 산하에 양사가 편입돼 각 브랜드를 독립 운영하는 방안을 유력 논의 중이라는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미쓰비시가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혼다와 닛산은 올해 3월부터 전기차와 차량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의 협업을 추진해 왔고, 미쓰비시 또한 지난 8월 합류했다.
경영통합이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기차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일본 완성차 업계의 절박감이 짙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하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리는 형국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올 상반기 자국 브랜드 판매량이 18% 증가하는 동안 일본 브랜드 판매량은 12% 감소했다.
글로벌 판매량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량 부진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공시에 의하면 혼다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4.5% 줄어든 2,579억 엔(약 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닛산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같은 기간 닛산의 영업이익은 93억 엔(약 870억원) 순손실로 집계됐다. 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된 배경이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마무리되면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자동차 시장 또한 재편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신차 판매량은 도요타그룹이 1,123만 대로 1위를 기록했고, 폭스바겐그룹(923만 대)과 현대차그룹(730만 대)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혼다와 닛산의 판매량은 각각 398만 대와 337만 대로, 합치면 약 735만 대에 달한다. 이는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세계 3위에 등극할 수 있는 수준이다.
日 정부 주도 합병 시도는 무산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2019년에도 한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당시 양사의 합병 시도는 일본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다. 일본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게 된 배경에는 프랑스 정부의 노골적인 접근이 자리했다.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 정부는 2014년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는 의결권을 두 배로 부여하는 ‘프로랑쥬법’을 제정했다.
프로랑쥬법을 통해 르노의 실질 의결권을 30%로 확대한 프랑스 정부는 이후 자국 산업의 보호·육성을 명분으로 르노의 일본 연합사인 닛산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닛산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 주주인 르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여러 차례 통합을 제안했지만, 닛산은 번번이 이를 거부했다. 지분 구조상으론 르노에 종속된 형태지만, 기술력 면에선 자사가 르노를 월등히 앞선 만큼 경영권을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르노로부터 경영 독립을 유지하려는 닛산과 자국의 기술력을 해외 자본에 넘겨줄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는 일치했다. 하지만 닛산의 경우 독자 생존이 힘든 상황이었다. 2019년 한 해에만 닛산은 6,712억 엔(약 6조2,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닛산을 지킬 방어막으로 자국 완성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지분 제휴 관계가 없는 혼다를 지목했다.
하지만 혼다 측에서 닛산과 르노의 복잡한 자본 제휴 관계를 지적하고 나섰다. 또한 혼다의 독특한 엔지니어 디자인이 닛산의 생산 플랫폼과 공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두 회사의 생산 플랫폼을 통합하지 않으면, 비용절감이라는 합병의 명분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닛산 고위 관계자 역시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닛산과 혼다의 합병은 업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발상”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결국 양사의 이사회에 합병안이 올라가기도 전에 협상이 무산됐다.
“위기 극복 위해선 경쟁보다 협력”
이처럼 한 차례 무산된 합병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는 것은 닛산의 경영난이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했기 때문이다. 닛산은 올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90% 빠지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구조조정안에는 자국 내 생산능력 20% 감축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9,000명 감원, 보유 중인 미쓰비시 지분 34% 중 10%를 매각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또 우치다 마코토 닛산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최대 50%의 보수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우치다 CEO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작금의 경영 상황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더는 기다릴 수 없는 만큼 이른 시일 내 닛산을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놓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닛산과 혼다의 전기차 및 차량 SW 협업에 미쓰비시가 합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약 400만 대의 차량을 판매했으나, 이는 토요타의 520만 대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우치다 CEO는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같은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며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더 중요하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