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AP 비용에 갇힌 삼성전자, 엑시노스 복귀·파운드리 부활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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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비용 지속 증가, 내부 수익성 잠식
실적 개선 효과도 퀄컴 실적으로 전이
갈수록 커지는 파운드리 역량 중요성

삼성전자가 최신 스마트폰의 판매 호조에도 불구하고 퀄컴 의존 구조에 갇히면서 수익성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 모습이다. 전체 원재료 매입 가운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차지하는 금액 비중이 늘면서 제품 판매 증가에 따른 이익이 고스란히 퀄컴으로 흘러가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한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복귀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통해 원가 절감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글로벌 도약 여부가 ‘자체 AP+파운드리’ 시너지 확보에 달려 있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퀄컴 칩 가격 인상에 MX사업부 비용 부담↑
26일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모바일 AP 구매에 총 7조7,899억원의 비용을 투자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29.2%(1조7,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DX부문 전체 원재료 매입액에서 모바일 AP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17.1%에서 19.9%로 2.8%포인트 상승하며 비용 부담이 심화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AP 매입 비용이 급증한 것은 올해 초 출시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 시리즈 전량에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8 엘리트’ AP가 탑재됐기 때문이다. 애초 삼성전자는 전작인 갤럭시S24 시리즈와 같이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개발한 ‘엑시노스 2500’과 퀄컴 제품을 병용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수율 문제로 무산됐다. 이는 성능과 시장성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 삼성전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인 모바일 AP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를 단일 칩에 집적한 구조로 설계된다.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다 보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매년 경쟁적으로 신규 AP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다시 개발 및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져 AP 단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시장 내 치열한 경쟁 구도와 첨단 공정 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삼성전자와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퀄컴 AP의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 중이라는 점이다. 퀄컴은 주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를 통해 모바일 AP를 생산하는데, TSMC가 최근 공정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상하고 있는 탓이다. 특히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에 활용되는 TSMC의 2세대 3나노(N3E) 공정 가격은 웨이퍼당 1만8,500달러(약 2,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전 공정인 4나노(1만5,000달러)와 비교해 23%가량 비싼 수준이다. 심지어 TSMC는 최근 3나노 등 주력 공정 가격을 최대 8%까지 추가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력 제품 잘 팔려도 ‘남 좋은 장사’
삼성전자가 갤럭시 S25 시리즈의 판매 호조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갤럭시 S25 시리즈는 인공지능(AI) 기능의 완성도를 높여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고, 전작 대비 두 달 이상 빠른 시점에 300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판매 호조는 고스란히 퀄컴의 수익으로 직결됐다. 갤럭시 S25의 소비자 판매가가 전작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제조사의 영업이익률은 역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자사 칩을 사용하는 경쟁사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30% 수준인 데 반해 삼성전자 MX사업부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0.1%에 그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원가 절감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 자체 AP인 엑시노스의 탑재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를 통해 엑시노스를 직접 설계·생산하고 있음에도 그간 성능 및 안정성 문제로 외부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치솟는 AP 매입 비용과 TSMC의 파운드리 가격 인상 압박 속에서 엑시노스의 필요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는 모습이다.
업계는 삼성전자의 차기 플래그십 모델인 ‘엑시노스 2600’의 개발 현황에 집중했다. 첨단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해 개발 중인 해당 모델이 테슬라와의 대규모 수주 계약을 통해 수율과 안정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단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발판 삼아 내년 출시될 갤럭시 S26 시리즈에 엑시노스 2600 탑재를 유력하게 검토 중이며, 기본 모델에 전량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단 전언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2600의 성공적인 안착이 여러 긍정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최원준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엑시노스 2600에 대한 테스트가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며 소비자에게 최고의 성능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자사의 노력을 강조했다. 김경빈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엑시노스 2600의 플래그십 탑재와 파운드리 턴어라운드는 올해보다 내년에 더 이익 기대감을 높인다”고 분석하며 엑시노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삼성 ‘뉴 노멀’의 핵심 열쇠, 파운드리 경쟁력
삼성전자가 자체 AP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탑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특정 사업부의 원가 절감 문제를 넘어 기업 전반의 사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는 기술적 독립성과 시장 내 지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현재 첨단 파운드리 시장은 TSMC의 독과점 구조로, 이로 인해 퀄컴과 같은 팹리스 기업은 물론 이를 구매하는 삼성전자 역시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력이 충분히 확보된 다음에야 경쟁 체제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파운드리 역량이 확고해지면, 스마트폰 AP 외에도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LSI 등 주요 제품군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이는 다시 최종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 점유율 확대와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게 된다. 아울러 주요 부품에 대한 외부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공급망 불안정성이라는 대외적 리스크에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전사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부품 수급과 비용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다만 현재 삼성 파운드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당장은 수익성이 낮은 저가 수주가 불가피하단 평이 지배적이다. 라인 가동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만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버티기’ 전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단 공정 역량을 끌어올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객 기반을 다변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단 관측이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와 엑시노스 복귀가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인식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