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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침묵과 중국의 질주, OLED 전선 ‘LCD의 악몽’ 재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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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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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업고 민간 기업 공격적 증설
“기술 격차 축소” 시장 체감온도 급변
일본 ‘혁신 없는 생산성 경쟁’의 교훈
BOE의 디스플레이 생산 라인/사진=BOE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이 IT 기기 중심으로 급성장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 또한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며 숨 고르기에 돌입한 사이 중국은 과거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한국을 무너뜨렸던 공세를 OLED 분야에서 재현하고 나섰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LCD 독점 수익을 기반으로 차세대 라인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OLED 시장의 주도권은 기술이 아니라 결단의 속도에 달려 있다”며 “지금과 같은 투자 공백이 이어질 경우, 과거 몰락의 길을 걸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공급 과잉 전망 속 추격 속도↑

22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과거 LCD 시장에서 한국을 무너뜨린 방식을 OLE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옴디아는 전날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 디스플레이 컨퍼런스’에서 “중국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LCD 시장의 독점적 수익을 바탕으로 IT용 OLED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는 만큼 과거와 같은 시장 잠식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용 OLED가 성숙기에 접어들고 TV용 OLED 성장세가 더딘 사이, 노트북·태블릿 등 IT용 OLED가 차세대 격전지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이러한 수요를 8.6세대(Gen 8.6)로 정조준했다. 8.6세대는 2,250×2,600㎜ 유리 원장(원판)을 쓰는 차세대 IT용 공정으로, 기존 6세대 대비 면적 효율이 크게 높다. 현재 국내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만이 내년 초 양산(월 1만5,000장) 목표로 투자에 들어갔지만, 중국은 징둥팡(BOE)·차이나스타(CSOT)·비전옥스·티안마 등 4개 업체가 일제히 8.6세대 라인을 발표한 상황이다. 옴디아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오는 2028년에는 8.6세대 IT용 OLED 생산능력의 64%를 중국이 차지하고, 2030년에는 70%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곧 생산능력에서 밀리면 시장 주도권을 지키기 어렵다는 경고로 읽힌다.

투자 여력의 차이는 LCD에서 형성된 현금창출력과 정책 지원이 결합한 구조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이미 LCD 분야에서 TV 패널 70%, 모니터 패널 68% 점유율로 사실상 독과점을 굳힌 상태다. 이 같은 LCD 수익이 OLED 투자로 재투입되는 선순환이 구축된 가운데 정부 보조금까지 더해지면서 ‘저가+물량’ 공세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가격지배력은 초기 적자에도 기업의 라인 증설을 지속하게 만들고, 일정 가동률을 유지하면 추가 보조금이 지급되는 메커니즘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기술·품질 격차가 남아 있더라도 원가·규모 우위가 빠르게 격차를 잠식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앞으로의 수급 전망도 중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옴디아는 2026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이 매출 기준 약 4% 성장하고, OLED 분야의 성장률은 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BOE·비전옥스·CSOT의 8.6세대 투자가 앞서 가면서 시장 개화 4년 만인 2029년에는 공급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공급 사이클상 과잉 구간에서 가격 하방 압력이 커지면, 중국은 보조금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점유율을 더 끌어올릴 유인이 생긴다. BOE는 이미 8.5세대에서 TV를 생산한 경험이 있고, CSOT 역시 잉크젯 방식 65인치 샘플을 제작한 전례가 있다. 한국 업체들로선 IT와 TV 양면에서 압박이 커지는 셈이다. 

‘투자 공백’이 만든 한국의 취약지대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 추격에도 속도가 붙었다. 박진한 옴디아 이사는 “IT용 8.6세대 OLED에서 2028년 중국 역전이 유력하다”고 못 박았다. 전체 OLED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올해 69%로 여전히 우위지만, 성장축인 8.6G 구간만 떼어놓고 보면 판도가 다르다는 경고다. 지난달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도 지금의 투자 공백이 2~3년 뒤 기술 격차 체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 같은 예측의 요지는 단순한 ‘기술 우위’ 선언을 넘어 양산 타이밍과 생산능력,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수요 포트폴리오가 승부라는 점이다.

라인·공정별 숫자는 더 선명하다. 현재 한국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유일하게 충남 아산 공장에서 8.6G 라인을 가동 중이다. 해당 라인의 생산량은 월 1만5,000장 수준으로, 연내 양산을 시작해 애플 OLED 맥북 프로에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중국에선 BOE가 쓰촨성 청두에 8.6G OLED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BOE는 수요처 발주가 일부 지연되는 가운데서도 양산 시점을 내년 1분기로 앞당기는 시나리오를 강력 추진 중이다. 이는 초기 수율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양산 경험을 앞세워 기술 격차를 좁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경우 한국의 선행 효과는 빠르게 희석되고, 중국 캐파(생산능력) 우위 전환 시점 또한 한층 당겨질 수 있다.

산업 현장의 체감은 이미 수치로 나타난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집계에서 중국의 OLED 시장 점유율은 오는 2027년 49% 수준으로 치솟으며 한국(51%)을 바짝 추격할 전망이다. 2023년 상반기만 해도 50%p 가까이 벌어졌던 격차가 순식간에 좁혀지는 것이다. 또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한국산 OLED 채택률은 2021년 78%에서 2024년 16%로 급감했다. 시장에서 한국의 OLED 산업이 LCD 때와 같은 구조적 열세에 접어들었단 진단이 주를 이루는 배경이다. 

日 디스플레이 몰락이 보여준 경고

전문가들은 산업 주도권은 기술보다 ‘결단의 속도’에서 갈린다고 입을 모은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과거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일본은 월등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생산 효율과 투자 타이밍에서 뒤처지며 한국에 주도권을 내줬다. 샤프가 일찌감치 10세대 LCD 라인을 세웠지만, 소니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삼성전자와 손잡고 한국에서 패널을 조달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냉음극형광등(CCFL) 대신 LED 백라이트를 도입해 ‘LED TV’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고, 이는 전 세계적인 고유가·저전력 트렌드와 맞물리며 단숨에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이후 LCD 수요가 한국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부품·소재 업체들의 공급망도 붕괴했다. 재팬디스플레이(JDI) 등 일부 기업이 OLED 전환을 시도하고 나섰지만, 이들 기업 대부분 양산 기반 확보에 실패하며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OLED를 차세대 산업으로 인식했음에도 일본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엇박자를 낸 가운데 한국과 중국, 대만 등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며 시장 규모를 확장했고, 그 결과 산업의 중심 또한 완전히 이동했다. 

현재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처한 환경도 이와 유사하다. 중국은 정부 보조금과 인건비 차이를 활용해 생산 단가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전략을 구사하고, 국내 기업은 수익성 악화로 신규 투자를 미루고 있다. 일본이 10세대 LCD 투자에 집중하던 시기에 기술력보다 ‘시장 대응 속도’에서 밀렸던 구조적 패턴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기술의 고도화만으로는 산업 기반 붕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드러난 만큼 투자와 생산, 수요망을 동시에 고려한 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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