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청산 공포 확산, 10만 명 일자리 불안 속 ‘유통 생태계 붕괴’ 경고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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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는 청산” 비관론 확산
책임 주체 부재 속 정상화 지연
GM 철수 데자뷔, 지역사회 우려

홈플러스 사태가 단순한 매각 난항을 넘어 유통업 전반의 역량 손실 가능성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해결되지 않은 재무 관계와 고용 승계 문제, 점포 폐점 유예 등으로 부담을 떠안을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 필요성까지 대두되는 분위기다. 다만 폐점이 현실화할 경우 1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 상권이 이어진 공급망 생태계가 한순간에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면서 향후 선택지 자체가 줄어드는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단 평가가 나온다.
계속기업가치 거듭 하락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는 홈플러스 매각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직 해결 못 한 재무 관계부터 근로자 고용 승계 문제 등 여러 불확실성이 산적한 상황에 모든 부담을 떠안을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만큼 강도 높은 슬림화(자산 축소)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청산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며 정리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까지 제기된다. 홈플러스의 생존력 자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기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리 방향이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이득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달 31일 마감된 홈플러스 매각 공개입찰에는 인공지능(AI) 핀테크 기업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임대·개발 업체 스노마드 두 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두 업체 모두 실제 인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상황이다. 하렉스인포텍은 자산 10억원에 부채 29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탓에 인수 여력이 부족하고, 스노마드 역시 자본총계 222억원, 부채 1,374억원으로 여력이 없다. 여기에 두 기업 모두 유통업 경험이 전무해 점포 단위 인력 운용과 물류, 규제 대응 등 국내 대형마트 운영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점도 홈플러스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 6월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로 2조5,000억원을, 청산가치로 3조7,000억원을 제시했다. 당시 제시된 계속기업가치 2조5,000억원에는 일부 점포 폐점에 따른 연간 1,882억원 규모의 고정비 절감 효과가 전제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노조의 거센 반대로 해당 계획이 무산됐다. 비용 절감 조건이 이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가치는 장부상 평가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가치 하락 속도는 더 빨라졌다. 홈플러스의 지난해 매출은 6조9,919억원으로 전년 대비 0.9% 증가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3,141억원으로 57.5% 늘었다.
이처럼 회생을 전제로 한 계속기업가치가 현실과 괴리를 보이면서 청산가치는 오히려 더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점포 유지에 따른 비용 부담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구도에서 매각 절차가 장기화되면, 기업가치는 자연감가처럼 떨어지게 되고 채권단 역시 변제율을 기준으로 판단을 조정할 가능성이 커진다. 강도 높은 자산 축소와 점포 조정이 매각 성사를 위한 기본 조건이지만, 고용 승계 문제 등 논쟁이 이어지며 실행 가능성을 낮추는 형국이다. 시장이 매각 시나리오보다 청산 시나리오에 더 무게를 두게 된 배경이다.

청산 및 일자리 리스크 증폭 흐름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마트산업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홈플러스 사태 해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달 8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제2차 홈플러스 살리기 국민대회’를 열고 “홈플러스 매각 성사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공적 해법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적 기관이 중심이 되어 부실 채권을 정리하고, 지역경제 회복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를 위해 공대위는 “3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실에 제출할 계획”이라면서 “대통령실이 서명 수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돌입 258일을 맞은 이달 17일에도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소속 노동자들은 정부 개입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258배’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안수용 홈플러스 노조위원장은 “정부는 지역 상권과 10만여 명 이상의 생계가 달린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단체 행동은 정부가 사태를 외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동자들의 불안이 생존 문제로 비화했음을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는 농협 참여 가능성이 거론됐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말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농협과 홈플러스 간 1년 거래액만 4,072억원에 달한다”며 “(농협의) 홈플러스 인수는 농민 판로 확대는 물론 도시 소비자에게 신선 농산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농협이 “(홈플러스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지만, 농협 내부의 사정도 있다”며 선을 그으면서 이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홈플러스가 운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지역경제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강조하고 나섰다. 홈플러스는 전국 120여 개 매장과 물류센터를 거점으로 지역 상권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 사업 중단 시 지역경제 전반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이달 초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장 인수합병(M&A)이 성사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버틸 여력이 없다”며 정부 개입을 재차 촉구했다. 책임 주체가 부재한 상항에서 현실적인 인수 희망자까지 나타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경제 붕괴·역량 상실 사례 재조명
일각에선 지난 2018년 제너럴모터스(GM) 공장 철수로 지역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군산의 사례를 이번 사태에 빗대기도 한다. 한국GM 군산공장은 1997년 완공된 뒤 누비라·라세티·크루즈 등 준중형차 생산 거점으로 군산산업단지를 떠받치는 핵심 공장이었다. 그러나 2018년 2월 폐쇄가 전격 발표됐고, 같은 해 6월 최종 폐쇄되면서 해당 공장 노동자 1,800여 명과 협력업체 직원 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때문에 군산시 전체 인구의 25%가 경제적 충격을 경험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누구도 폐쇄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급작스러운 결정은 생산계획과 인력운용을 수년 단위로 맞춰 움직이는 제조업 구조상 충격이 더욱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산시가 제공한 데이터에 의하면 제조업 생산액은 GM공장 폐쇄 당시인 2018년 3조1,246억원에서 2020년 2조7,085억원까지 줄었고, 2021년에는 3조532억원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공장 폐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중견 자동차 부품사 명신이 폐쇄된 공장을 인수해 전기차 위탁생산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지난해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 종사자들은 생계를 위해 지역을 떠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야 했고, 지역 상업지구 역시 대규모 인구 이탈과 소비 감소로 빈 상가가 속출했다.
이처럼 대규모 공장 하나가 사라지면서 지역경제의 기반 자체가 약해진 사례는 홈플러스 매장·물류센터가 전국적으로 연결된 구조에서 대형 점포 폐쇄가 어떤 파급을 만들지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운다. 홈플러스는 전국 120여 개 점포와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와 협력업체, 납품업체가 연결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점포 단위 고용이 사라질 경우, 단순 실직을 넘어 공급망과 지역 소비까지 연쇄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홈플러스가 20년 넘게 구축해 온 유통 역량이 GM 군산공장 사례와 같은 방식으로 공중에 흩어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대형마트는 지역별 소비 패턴 분석과 신선식품 수급 관리, 협력업체와의 거래 조정, 점포별 매출 전략 등 오랜 기간 현장에서 축적된 운영 경험을 토대로 돌아간다. 이러한 역량은 단기간에 다른 업체로 이전되거나 대체되기 어렵다. 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며 제조·연구·협력업체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붕괴된 것처럼 홈플러스의 위기 또한 개별 점포 폐쇄로 끝나지 않고 수십 년간 축적된 대형마트 운영 역량 자체가 증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