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AI 패권 시대, 글로벌 사우스의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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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AI 경쟁 장기화, 단일 글로벌 표준 가능성 약화 글로벌 사우스, 기술 도입 넘어 협상력 확보 과제 인프라 확충·지역 협력·공급망 다변화 필요성 확대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격차는 흔히 대규모 투자와 AI 인프라 확대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력 차원을 넘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기술 생태계가 형성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2024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는 1,091억달러(약 168조원)로 중국의 93억달러(약 14조원)보다 약 12배 많았다. 하지만 중국은 주요 AI 모델의 성능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개방형 AI 시스템을 확산하는 추세다. 이와 같이 AI 경쟁이 기술 패권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정책 접근도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
AI 경쟁 구도와 기술 선택권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적 경쟁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AI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와 이를 활용하는 국가 사이의 격차는 정책과 투자에 따라 충분히 완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글로벌 사우스의 과제도 강대국 경쟁 자체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술 체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선택권을 넓히는 데 있다. 클라우드와 반도체, AI 모델 등 기술 스택별로 공급망을 다변화할수록 기술 종속 위험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과 중국의 AI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중국은 자체 반도체와 국가 데이터 인프라, 자국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대응에 나섰다. 양국 모두 AI 주도권을 군사·경제·정치적 영향력을 좌우할 핵심 경쟁력으로 판단하고,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로 2024년 미국은 주요 AI 모델 40개를 개발했고, 중국은 15개를 선보였다. 양국은 전 세계 AI 특허의 60%를 보유하고 AI 연구 논문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는 등 글로벌 AI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 주도권 경쟁이 장기화하면서, 단일한 글로벌 표준보다 서로 다른 기술 체계가 병존하는 구도가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스택의 유연성과 인프라 격차
AI는 반도체와 클라우드, AI 모델, 응용 서비스 등 여러 계층으로 구성된 기술 스택이다. 국가들은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중국의 네트워크 장비를 도입하거나 오픈소스 모델에 자국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등 기술 분야별로 다른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의료 정보처럼 높은 수준의 데이터 보호가 필요한 분야는 자체 인프라를 활용하고, 농업이나 기후 대응처럼 비용 효율성이 중요한 분야는 해외 AI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국가 단위의 선택보다 기술 영역별로 최적의 조합을 설계하는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이유다.
그러나 기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서 AI 도입 부담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GPT-3.5 수준 모델의 이용 비용은 2022년 100만 토큰당 20달러(약 3만800원)에서 2024년 10월 0.07달러(약 100원)로 99% 이상 감소했다. 딥시크(DeepSeek)-V3 역시 대규모 학습 비용을 약 560만 달러(약 86억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비용 절감만으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AI는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클라우드, 데이터,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결합된 서비스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공급업체 변경 비용과 데이터 이전 부담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자국 산업 육성과 기술 자립에도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한계는 AI 인프라 격차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6월 기준 고소득 국가는 전 세계 코로케이션 데이터센터 용량의 77%와 세계 500대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의 97%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은 여전히 인터넷에 연결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같이 안정적인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 데이터센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AI 이용 비용이 낮아지더라도 국가 간 AI 역량 격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술 종속을 줄이는 정책 전환
AI 인프라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사우스는 강대국 간 경쟁 속에서도 특정 기술 체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컴퓨팅 자원 도입이 공공 데이터 통제권 이전으로 이어지거나 특정 AI 모델 도입이 다른 공급업체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주요 신흥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도는 1만 개 이상의 GPU를 공공에 제공하는 인디아AI(IndiaAI) 미션을 추진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국가 언어모델 개발과 AI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230억헤알(약 6조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연합(AU)도 대륙 차원의 AI 프레임워크를 마련해 데이터 거버넌스와 인재 양성, 역내 협력 기반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들 정책은 자국의 기술 기반 확충과 협상력 제고를 공통 목표로 한다.
정책의 실질적인 과제는 AI 활용 역량을 높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기존 AI 모델을 지역 환경에 맞게 적용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업체를 교체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지역 언어와 법체계, 의료·농업 데이터를 반영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과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AI 플랫폼의 학습 데이터가 영어에 집중된 상황에서는 지역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AI의 활용에도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가 간 협력 역시 중요한 정책 과제로 꼽힌다. 개별 국가보다 지역 협력체를 통해 수요를 공동으로 확보하면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과 AI 서비스 제공업체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데이터 이동성과 개방형 API, 투명한 계약 기준 등을 공동으로 마련하면 특정 기업에 대한 종속 가능성도 줄어든다. 모든 국가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필요는 없는 만큼 역내 인프라를 분담하고 공통 기술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AI 경쟁을 활용한 정책 대응
이 같은 환경은 글로벌 사우스에 새로운 정책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저렴한 AI 모델과 인프라를 공급하는 것은 시장 확대와 기술 표준 확산, 생태계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과거 디지털 산업에서도 나타났다. 운영체제(OS)와 통신망,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플랫폼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전개됐던 것처럼 AI 역시 생태계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정부의 과제는 이러한 경쟁 구도를 자국의 기술 역량과 협상력 강화로 연결하는 일이다. 공공 부문의 AI 도입 계약에는 공급업체 변경이 가능한 종료 조항과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반영하고, 공공 데이터가 동의 없이 범용 AI 학습에 활용되지 않도록 관리 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분야와 일반 서비스 분야를 구분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과도한 현지화 의무나 규제는 도입 비용을 높일 수 있는 만큼, 기술 주권 확보와 시장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글로벌 AI 격차는 미·중 경쟁의 승패나 양국 간 대타협만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 이후에도 자국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느냐다. 숙련된 인재와 데이터 주권, 다변화된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기술 접근성이 높아지더라도 구조적 격차는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는 경쟁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도 선택권을 확보하고 자국의 기술 역량과 협상력을 높이는 데 있다. 글로벌 사우스가 단순한 기술 소비자를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의 협상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Global AI Divide and the Global South’s Choi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