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협상력 높여라" 中 메모리 칩 구매 검토 나선 애플, 단기 전환 어렵지만 판도 변화 가능성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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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中 CXMT 메모리 칩 채택 위해 로비 단행 메모리 슈퍼사이클 속 힘 잃은 애플식 단가 전략 中 반도체의 맹추격, 기술력·물량에 정부 지원까지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 열풍에서 기인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지속되며 공급자 우위의 시장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의 협력을 거론하며 협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애플이 단기간 내 CXMT 칩을 채택할 확률은 낮으나, 향후 중국 반도체 업계의 성장 속도에 따라 상황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애플의 CXMT 칩 구매 가능성
26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이 미국 상무부를 비롯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중국산 메모리 칩 구매를 승인해 달라는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관심을 가진 중국 업체는 미국의 ‘중국 군사 기업 블랙리스트(1260H)’에 포함된 CXMT로 전해졌다. 1260H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블랙리스트지만, 미국 기업이 목록 내 중국 기업과 거래할 경우 평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애플의 로비는 미국 정부의 공식 승인 및 수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인 셈이다.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제품에 주목하는 배경으로는 장기간 지속되는 메모리 수급난이 지목된다. 애플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급망 관리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꼽히지만, 최근의 가파른 메모리 가격 상승세 및 공급 절벽은 피해 가지 못했다. 지난 25일에는 맥북 가격을 100∼300달러(약 15만~45만원), 아이패드 가격을 100∼200달러(약 15만~30만원) 올리면서 “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메모리와 저장 장치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해 부품 가격이 급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역시 앞서 메모리 등 부품 가격 폭등을 “100년 만의 홍수”라고 표현하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예고했었다.
다만 FT는 애플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애플의 로비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향후 의회 차원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미 하원 중국특별위원회의 존 물레나(공화·미시간) 위원장은 “애플이 중국 군사 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이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도록 돕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상원의원 시절인 지난 2022년 애플이 중국의 YMTC 메모리 칩 채택을 검토했을 당시 “불장난을 하는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AI 열풍에 원가 경쟁력 약화
시장에서는 애플의 CXMT 칩 도입 검토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존 메모리 3사와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AI발(發) 메모리 수요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중국산 대체재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려 기존 공급사들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는 평가다. 현재 메모리 시장의 협상력은 공급사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고수익 제품에 생산 능력을 우선 배정 중이며, 이 여파로 PC·스마트폰용 범용 D램 공급은 빠듯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애플의 원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악재다. 애플은 그동안 막대한 구매력을 앞세워 부품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확보해 왔다.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등 단일 제품군에서 확보한 세계 최대 수준의 판매량을 앞세워 공급업체의 핵심 매출 기반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애플은 이 같은 지위를 활용해 메모리를 비롯한 핵심 부품 공급사들에 강한 가격 인하 압박을 가해 왔고, 이를 통해 완제품 가격 상승분을 내부적으로 흡수하거나 높은 마진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CXMT라는 카드가 애플에 오히려 '역풍'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현재 시장 국면에서 메모리 3사와의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치명적인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최근 메모리 3사의 공급량은 시장 수요의 60~70%가량만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이마저도 엔비디아를 비롯한 일부 빅테크가 장기공급계약(LTA)에 나서는 등 수급이 불균형하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도입 전략을 현실화할 경우, 공급의 주도권을 쥔 메모리 3사도 전략적 대응에 나설 확률이 높다. 애플을 대체할 글로벌 고객사가 사실상 줄을 서 있는 만큼, 고대역폭메모리(HBM)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의 공급 우선순위를 얼마든지 재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中 반도체 성장세 가팔라
그러나 중국 반도체 업계의 추격 속도에 따라 시장 판도가 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례로 CXMT는 한때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중심의 후발 업체로 평가됐지만, 최근에는 DDR5, LPDDR5X 등 차세대 범용 D램 제품군을 앞세우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회사가 공개한 제품 사양에 따르면 DDR5 제품은 최대 8,000초당 전송 메가비트(Mbps), 모바일용 LPDDR5X 제품은 최대 1만667Mbps 속도를 구현한다. 이는 중국 D램 업체가 더 이상 저사양·저가 제품에만 머물지 않고, PC·스마트폰·일반 서버용 메모리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대체재로 거론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생산 능력 확대 속도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CXMT의 올해 D램 생산 능력이 전년 대비 68%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일부 기관에서는 월 웨이퍼 투입량이 최대 28만~30만 장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생산 능력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CXMT가 지난해 DDR5 수율을 약 80%까지 끌어올렸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최신 범용 제품 부문에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갖췄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중국 정부의 지원도 변수로 꼽힌다. CXMT는 국가 차원의 반도체 자립 전략에 따른 전폭적 지원을 받는 기업으로, 미국의 연이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자금 지원 및 정책적 후원을 확보해 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들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꾸준히 강화되자, 역으로 유력 D램 기업인 CXMT 육성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CXMT의 첨단 메모리 개발에 투입되는 자원은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며, 그 존재감은 범용 서버와 PC용 DDR5 시장에서부터 점진적으로 확대돼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