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불안정성 가중" 폭염이 끌어올린 美 데이터센터 비용, AI 인프라 경쟁 병목 반도체서 전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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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열돔 현상 가시화, 전력망 부하 커지며 데이터센터 비용 증가 기상 상황 위주로 움직이던 전력망 운영 전략, AI 존재감 급격히 확대 "GPU만으로는 연산 못 늘린다" 전력 병목 해소 위한 투자 늘어

미국을 덮친 폭염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급증하는 AI발(發) 전력 수요로 이미 전력망이 불안정한 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폭염으로 인한 전력 소비 폭증·가동 효율 저하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위태로운 전력 구조가 향후 미국을 넘어 글로벌 AI 시장 전반에서 반도체에 버금가는 핵심 병목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폭염 속 데이터센터 시장 '비상'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방송 CNBC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보험사 취리히보험그룹의 국제건설 부문 사장 패트릭 맥브라이드는 "지난 3년 동안 악천후가 회사의 미국 데이터센터 건설업자 위험 보험에서 가장 큰 손실원이었다"며 "지금은 악천후가 손실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데이터센터가 땅값이 저렴한 교외나 농촌으로 이전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은 과거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땅이었던 탓에 극단적인 날씨 위험 기록도 적었던 곳"이라면서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날씨 위험에 대한 노출이 커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제 기후 리스크 분석 업체 퍼스트스트리트가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의 54%가 상시 고온이나 가뭄 스트레스 지역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위험성은 최근 미국에 닥친 폭염으로 인해 한층 부각되는 추세다. 미국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지난달 30일 "미국 인구의 60%가 넘는 2억 명 이상 거주 지역에 거대 고기압이 정체하는 열돔 현상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열돔 현상 등으로 인한 폭염은 전력 수요 전반을 치솟게 만드는 동시에, 천연가스 터빈의 발전 효율을 대폭 저하하는 대형 악재다. 이에 미국 전력망 핵심 축인 PJM유틸리티의 가동 전력량은 한계에 직면했고, PJM은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대규모 산업 고객에게 전력망 사용을 줄이고 자체 백업 전력을 활용하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이처럼 전력망이 불안정해지면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은 자연히 상승하게 된다. 통상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의 30~60%는 전력비가 차지한다. 폭염 탓에 전력효율지수(PUE, 1.0에 가까울수록 고효율)가 1.2에서 1.4로 상승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동일 연산 대비 전력비는 약 15~20% 급증하게 된다. 여기에 고밀도 AI 서버의 과열을 막기 위해 가동률까지 강제로 낮춰야 한다. 비용이 증가했음에도 가동률이 제한되는 비효율적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러한 극단 기상 현상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업계가 오는 2035년까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81억 달러(약 12조6,2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력망 운영 방식 재편 흐름
이 같은 데이터센터발 전력 불안은 단순 산업계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을 넘어 전력망 운영의 기준점까지 바꾸고 있다. PJM이 최근 비상시 대응 방침을 전면 개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동안 미국 전력망 운영의 최대 변수는 폭염, 한파 등 기상 현상이었다. 여름철 냉방기기와 겨울철 난방기기 사용이 급증하는 기간만 넘기면 연중 대부분은 비교적 안정적인 전력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활용이 보편화하며 상황이 뒤집혔다. AI 데이터센터는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막대한 전력을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기상 현상처럼 피크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시 기저 부하 자체를 가중하는 형태다.
특히 PJM의 관할 지역 중 하나인 버지니아주 북부는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다.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전력 수요는 평시에도 전력 계통 운영 자체에 부담을 가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PJM이 마련한 것이 '공급여력 주의보(Capacity Advisory)'라는 새로운 사전 대응 체계다. 공급여력 주의보의 핵심은 실제 전력 부족이 발생하기 3~5일 전부터 발전 설비 가용성을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발전소 정비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PJM은 인접 전력망 운영 기관들과도 조기에 정보를 공유해 광역 계통 전체의 전력 수급을 사전에 조율할 예정이며, 필요할 경우 미국 연방 에너지부(DOE)와 협력해 평상시 가동이 제한되는 일부 예비 발전기 및 발전 설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처럼 AI를 중심으로 한 전력 위기 대응 기조는 앞으로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가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JM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여름 피크 전력 수요가 연평균 3.6%씩 증가하고, 15년 뒤에는 24만메가와트(MW)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 현재 PJM의 발전 용량이 약 18만2,000MW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요 확대 속도가 공급을 앞지르는 셈이다. 반면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송전선로, 변압기 등 미국 전력 설비의 70% 이상은 사용 연한 25년을 넘긴 노후 시설이며, 설비 특성상 단기간 내 공급 확대도 쉽지 않다. 이에 PJM은 이르면 2026∼2027년 공급연도부터 발전 용량 부족 문제가 가시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변화하는 AI 인프라 경쟁 판도
데이터센터에서 비롯한 전력 위기는 비단 미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 전반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를 위한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까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현재 일본 전체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다. 같은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율 전망치는 연평균 약 15%로 여타 부문 대비 4배 이상 빨랐다. 특히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반도체 시장을 휩쓴 AI 과열 흐름이 전력 부문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AI 데이터센터 내부에는 수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투입되며, 최신 AI 칩이 장착된 랙 하나는 기존 데이터센터 랙 10~15개에 맞먹는 전력을 소모한다. 설령 GPU 물량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꽂을 데이터센터가 부족하거나,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전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실제 AI 연산 능력을 제고할 수 없다. 여기에 반도체는 대규모 선구매 계약이나 생산 설비 증설을 통해 수급 개선이 가능하지만, 발전소와 송전망, 변전 설비, 전력 인허가 체계 등은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세계 주요국과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AI 데이터센터용 전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국 전력 회사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20년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2019년 폐쇄됐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 재가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원전은 약 835M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며, MS는 이를 자사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구글은 미국 원자력 기업 카이로스파워와 협약을 맺고, 2030년까지 첫 상업용 소형모듈원전(SMR)을 가동한 뒤 2035년까지 총 500MW 규모의 전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마존은 워싱턴주의 공공 전력 사업자 컨소시엄인 에너지노스웨스트와 협력해 미국 원자력 기업 X-에너지의 SMR 4기를 배치할 계획이며, 버지니아주에서는 미국 전력 회사 도미니언에너지와 SMR 개발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