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 떠받친 ‘美 국채’, 中·日 거리두기에 안전자산 지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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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큰손 이탈에 따른 미 국채 수요 변화 지속적인 시장 흡수로 급격한 충격은 제한 높아진 조달 비용, 미국 재정 압박 가속

미국 국채를 떠받쳐온 안전자산 신화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국가부채가 5경원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일본·중국 등 해외 주요 채권국들의 매수세까지 약해지면서 미국의 자금 조달 비용도 가파르게 뛰었다. 달러 패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나, 국채 조달 여건은 갈수록 무거운 부담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다.
나랏빚 39조 달러·이자 1조 달러, 지속 가능성 시험대
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미국 부채가 과거에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연방정부와 채권시장을 짓누르는 구조적 위험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과거에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를 바탕으로 대규모 재정적자를 낮은 비용에 메울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누적된 국가부채와 급증한 이자비용이 시장의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의 국가 부채는 39조 달러(약 5경9,500조원)에 달하며, 민간이 보유한 부채 규모는 미국 경제 전체 크기와 맞먹는다. 순수 이자 비용만 해도 연간 1조 달러(약 1,520조원)를 넘어서며 국방 예산을 추월했고, 전체 부채 누적액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나 볼 수 있었던 위험 수역으로 진입할 태세다.
미국 재정의 가장 큰 변화는 차입 비용의 구조적 상승이다. 연방정부의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기준금리와 장기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신규 국채 발행뿐 아니라 기존 부채를 차환하는 비용까지 동시에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연방정부의 이자지출은 국방비와 사회보장 지출에 이어 재정 운용을 제약하는 핵심 항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재정적자 확대가 다시 국채 발행 증가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가능성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시장의 시선도 달라졌다. 미 국채는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와 기업의 금고를 채우는 동시에 미 달러화의 핵심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함으로써, 미국이 전 세계 달러 유통망 어디에서나 금융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왔다. 이러한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 덕분에 미국은 방만한 재정 운용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돈을 빌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들은 재정건전성과 국채 공급 규모를 가격에 함께 반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장기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우려뿐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공급 증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일부 시장에서는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외 자금 이탈 조짐 뚜렷
이 같은 변화는 미국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0% 수준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비율이 2056년 175%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로만 놓고 보면 210% 한계선은 아직 수십 년 뒤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료비 상승 속도에 따라 시간표는 크게 앞당겨질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펜와튼 예산모형은 성장률과 의료비 증가 가정에 따라 미국이 부채 한계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19~25년 수준으로 좁혀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의료비가 과거 추세대로 빠르게 오를 경우 14년 안에 한계선에 도달할 확률도 25%로 제시했다. 미국의 부채 문제가 203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리스크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국채를 둘러싼 회의론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도 지속되는 재정적자 확대에 더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논란까지 불거지며 미 국채가 가진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기만 했다. 이에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란 주장도 어느새 하나의 흐름이 됐다.
실제 미국 국채를 떠받쳐 온 해외 수요에는 지속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 재무부 산하 TIC(Treasury International Capital) 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액은 총 9조3,526억 달러(약 1경4,270조원)로 집계됐다. 국가별로는 일본이 1조2,099억 달러(약 1,845조원)로 최대 보유국 지위를 유지했고, 영국이 9,375억 달러(약 1,430조원)로 2위에 올랐다. 중국은 6,511억 달러(약 993조원)로 3위에 머물렀다. 이어 케이맨제도가 4,716억 달러(약 719조원), 벨기에 4,599억 달러(약 701조원), 룩셈부르크 4,311억 달러, 캐나다 3,971억 달러(약 658조원), 프랑스 3,933억 달러(약 600조원), 아일랜드 3,453억 달러(약 527조원), 대만 3,009억 달러(약 459조원) 순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본은 여전히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지만, 엔화 약세와 자국 금리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 해외 채권 투자 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3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자국 통화 가치가 흔들리자 일본은 가장 먼저 달러 자산을 현금화했다. 이때 팔아치운 미 국채만 470억 달러(약 71조7,200억원)에 달한다. 일본 입장에서는 환헤지 비용과 자국 국채 수익률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미 국채 매입의 상대적 매력도 예전만큼 압도적이지 않다.
中 보유액 2008년 이후 최저
중국의 미 국채 매도 움직임도 셀 아메리카 주장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논거다. 한때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었지만,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12년 1조2,000억 달러(약 1,830조원)에서 올해 4월(6,511억 달러) 50%나 감소했다. 2008년 9월 이후 최저치다. 감소가 본격화한 건 2021년부터로, 갈수록 그 기울기가 가팔라졌다. 결국 지난해에는 일본과 영국에 밀려 미국 국채 보유 순위 3위로 내려앉았다.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 약화는 연기금 등 장기 투자기관에서도 확인된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기금(ABP)은 지난해 미 국채 보유 규모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고, 덴마크의 교원·전문직 연기금인 아카데미커펜션(AkademikerPension)도 최근 미 국채 비중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캐나다 온타리오투자관리공사(IMCO) 역시 미국 재정정책의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위험을 이유로 자산 다각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매도세는 미 국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19일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한때 7bp 오른 5.20%를 나타냈다. 미 국채 30년물 수익률이 5.20%에 도달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같은 날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도 한때 10bp 상승한 4.69%까지 치솟아 2025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에서는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의 미 국채 비중 축소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캐피털그룹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2%가 미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앞으로 약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달러 중심 체제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이 조금씩 ‘탈달러’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미 국채 비중 축소 흐름이 곧바로 시장의 급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 국채는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안전자산으로, 각국 중앙은행과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은행 등이 지속적으로 투자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 국채 입찰에서도 해외 투자자와 미국 내 기관투자가들의 응찰이 꾸준히 이어지는 등 발행 물량이 시장에서 흡수되고 있으며, 시장 기능 자체를 흔드는 수준의 수급 불균형으로 이어졌다는 징후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수요가 형성되는 만큼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은 이전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