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광풍에 쌓이는 레버리지, 대규모 청산 공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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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에 몰린 천문학적 자금 레버리지 ETF·사모대출 동반 팽창 “2008 금융위기 재현될 수도” 변동성 확대 우려

빚을 내 투자하거나 수익률을 2~3배로 키우는 레버리지 투자에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몰리고 있고,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뒷받침하는 사모대출 시장도 전례 없는 속도로 팽창하는 추세다. 주식시장과 신용시장에 동시에 레버리지가 쌓이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레버리지 자금 폭증, SEC 규제 검토 착수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미국 ETF 시장에는 1조 달러(약 1,500조원)가 넘는 자금이 순유입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흐름이 이어질 경우 연간 순유입 규모가 2조 달러(약 3,000조원)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금은 AI와 반도체, 로봇, 스마트 인프라 등 첨단 기술 테마에 집중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레버리지 ETF 출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220개가 넘는 레버리지 ETF가 새롭게 상장됐다.
한국 자본시장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ETN 18종이 국내 최초로 동시에 상장된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거래가 크게 늘었다. AI 메모리 업황 개선 기대와 반도체주 강세가 맞물리면서 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가 레버리지 상품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투자 열기가 커질수록 시장의 불안 요인도 함께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ETF 괴리율 초과 공시는 총 1,29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종전 월간 최고치였던 지난 3월 688건보다 88.8%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기록이다. ETN까지 포함한 전체 괴리율 공시는 1,859건에 달했다. 상품 유형별로는 레버리지 ETF 관련 공시가 224건으로 가장 많았고 AI 관련 ETF 207건, 액티브 ETF 188건, 반도체 ETF 164건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역시 상장 후 한 달 동안 각각 31건과 34건의 괴리율 초과 공시가 발생하며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는 5월 말 출시 당시 30억 달러 수준이던 순자산이 불과 한 달 만에 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불어났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개인 투자자 자금으로, 코스피는 최근 고점 대비 최대 10%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트레이더들이 '숏 감마'라고 부르는 레버리지 ETF 구조상 가격이 오를 때는 기계적으로 매수를, 내릴 때는 기계적으로 매도를 확대해야 해 하락 구간에서 추가 매도 압력이 중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한국 금융당국도 뒤늦게 위험성을 인정했다. 지난달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두고 "당시 급하게 준비했던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어 "극심한 회전율로 증권사 배만 불리고 있다. 드러누워서라도 증권신고서 수리를 막았어야 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있고, 후회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레버리지 ETF가 AI 서사를 등에 업은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베팅의 핵심 통로가 되면서 시스템 리스크 논쟁이 재점화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촉발된 칩 쇼크는 곧바로 뉴욕으로 번졌다. 블룸버그 마켓랩에 따르면 나스닥100 지수는 한때 3% 안팎 하락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ARM 등 대표 AI 칩 종목들이 낙폭을 주도했다.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5,000억 달러(약 750조원) 규모 ETF까지 동반 조정을 겪으면서, 한국발 레버리지 청산이 글로벌 AI 칩 밸류에이션 조정으로 확산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에 미국 감독당국은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30일 레버리지와 옵션, 가상자산, 이벤트 계약 등을 활용한 이른바 '노벨(Novel) ETF'를 대상으로 60일간 의견수렴 절차를 시작했다. 상품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만큼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상장도 전에 레버리지 베팅, 시장 선점 경쟁 치열
SEC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ETF 시장의 상품 개발 경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SEC 공시 등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아직 상장하지 않은 비상장 AI 기업까지 레버리지 ETF 경쟁 대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영국의 레버리지 전문 운용사인 레버리지셰어즈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인버스 ETF 출시를 위해 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상장이 점쳐지는 오픈AI의 기업가치는 5,000억 달러(약 660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물 ETF 자산운용사 프로셰어즈 역시 오픈AI를 비롯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앤스로픽, 바이트댄스 등 비상장 AI·플랫폼 기업들을 겨냥한 2배 레버리지 ETF 등 총 26종의 상품을 무더기로 신청한 바 있다. 상장 일정과 공모가가 확정되지 않아도 신고서를 먼저 제출할 수 있는 SEC의 제도를 활용해, 기업공개(IPO) 직후 쏟아질 투자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스페이스X 상장 전인 지난달 관련 레버리지 ETF에는 단기간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고 옵션 거래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레버리지 상품은 높은 변동성을 감안해야 한다. 주가가 오를 경우 수익이 배가되지만 반대로 하락할 경우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특히 이들 상품은 하루 단위 수익률을 기준으로 설계돼 여러 날 보유하면 실제 수익률이 기초자산의 2배 또는 3배와 달라질 수 있다.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서 등락을 반복할 경우에는 방향을 맞췄더라도 수익이 줄거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커질 경우 원금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사모대출 시장에서 오는 위기 신호
더 큰 우려는 AI 투자 확대와 함께 기업 신용시장에 축적되는 위험이다. AI 관련 시설 투자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사모대출(private credit)을 받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0년 수백억 달러에 불과하던 글로벌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은 현재 2조~3조 달러(약 3,000조~4,500조원)로 수십 배 이상 성장했다.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최근 5년간 5,000억 달러에서 1조3,000억 달러(약 1,960조원)로 무려 2.6배 불어났다.
북미 직접대출(direct lending) 운용자산은 2015년 930억 달러(약 140조원)에서 2025년 말 6,440억 달러(약 970조원)로 7배 증가했으며, 무디스는 2030년까지 4조 달러(약 6,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들의 AI 설비 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과정에서 기존 금융 시장의 대출·회사채로는 충당되지 못한 거대한 구멍을 사모대출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이 흔들리는 배경엔 AI 거품론이 자리한다. BIS는 분기 보고서에서 "사모대출은 사실상 대출이지만 장부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림자 대출'"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AI 산업이 흔들릴 경우, 사모대출의 부실이 금융권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시장에서는 사모대출이 잇따른 환매 요청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사모펀드 블루아울 캐피털은 최근 환매 및 부채 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운영 중인 3개 펀드에서 총 14억 달러(약 2조1,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3개 펀드 중 하나인 '블루아울 캐피털코프Ⅱ'의 환매를 영구 중단한다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블랙스톤도 환매 제한 장치를 사용했으며, 앞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블랙록,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아레스 매니지먼트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지금의 사모대출 위기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재현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대출 심사기준이 무너졌듯이, 사모대출도 자금이 밀려들면서 차주 친화적 조건이 확산했다. 불투명성(opacity)이라는 취약점도 공통된다. 당시 부채담보부증권(CDO)의 기초자산 구성을 투자자가 알 수 없었듯, 사모대출도 신용등급이 부여되지 않으며 유통시장이 없어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비공개 계약 특성상 공시 의무가 없어 손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환매 제한 셔터를 올린 대형 운용사들의 움직임 자체가 이미 자산 가치 하락과 조달 비용 상승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빅테크들의 투자 속도 조절이 본격화할 경우, 장부상 가치와 실제 시장 가치의 괴리가 폭발하면서 사모대출 시장의 레버리지 청산이 강제로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