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정부는 물가 안정 평가, 국민은 왜 체감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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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둔화에도 이어지는 생활비 부담 공식 통계와 국민 체감물가의 괴리 확대 생활물가를 반영한 정책지표 마련 시급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둔화됐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비 부담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캐나다의 최근 경제 지표는 공식 물가지표와 국민이 느끼는 생활물가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연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1%로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물가 수준은 5년 전보다 여전히 높은 상태다. 물가 오름세는 둔화됐지만 이미 오른 가격이 유지되면서 생활비 부담은 여전히 지속되는 양상이다. 가계가 먼저 체감하는 것은 CPI 상승률이 아니다. 임대료와 식료품, 휘발유, 의약품처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 변화다. 이들 품목의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정부가 물가 안정세를 설명하더라도 국민이 느끼는 현실과는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식 물가지표와 생활물가의 차이가 커질수록 물가정책에 대한 신뢰도 함께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평균의 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
이 같은 차이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산출 방식에서 출발한다. CPI는 평균적인 가계의 소비지출 구조를 기준으로 작성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일관된 기준 아래 운용하려면 대표성을 갖춘 물가지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을 기준으로 작성되는 만큼 모든 가계가 실제 부담하는 생활비를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은퇴한 자가주택 보유자와 출퇴근이 잦은 직장인, 자녀를 둔 임차가구, 대도시에 거주하는 대학생은 소비지출 구조가 서로 다르다. 이러한 한계는 통계 작성 방식을 일부 보완한다고 해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식비가 10% 오르면 식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 가계가 느끼는 부담은 고소득 가계보다 훨씬 크다. 반대로 고가 전자제품 가격이 내려도 구매 계획이 없는 가계에는 물가 하락의 효과가 거의 미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가 느끼는 생활물가는 공식 통계보다 자신이 실제로 지출하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체감물가를 키우는 주거비와 심리
소비자가 가격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CPI의 산출 체계 역시 공식 물가지표와 생활물가의 간극을 키우는 요인이다. 주거비가 대표적이다. 캐나다의 CPI는 약 700개의 상품과 서비스를 반영하지만, 가계가 실제로 느끼는 생활비 부담까지 그대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가계는 임대료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가장 큰 생활비 부담으로 인식하지만, CPI는 이러한 비용을 소비자가 체감하는 방식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가격 인식 방식도 생활물가를 끌어올린다. 사람은 가격이 내린 것보다 오른 것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식료품과 휘발유처럼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주거비는 지출 비중이 큰 데다 생활 안정과 직결되는 만큼 심리적 부담도 크게 느낀다. 이로 인해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실제 지출뿐 아니라 가격에 대한 기억과 손실 회피 성향까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취약계층에 더 크게 나타나는 물가 부담
이 같은 차이는 계층별 비교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유로존 하위 10% 소득계층의 생활물가상승률은 상위 10%보다 약 0.9%포인트 높았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18~34세 청년층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물가 부담을 느꼈다. 격차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의 부담이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은 정책적으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생활물가는 실제 물가보다 뒤늦게 반응하는 경향도 보였다. 유로존에서는 생활물가가 실제 물가 변동을 평균 4개월 정도 뒤따랐다. 인플레이션이 둔화된 이후에도 소비자는 최근 경험한 가격 상승을 오래 기억하는 만큼 높은 물가를 계속 체감하는 경향이 이어졌다. 이러한 시차는 임금과 정책 신뢰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로존에서는 명목임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약 1~2분기 뒤따랐고 인플레이션 초기에 크게 감소했던 실질임금도 물가가 안정된 이후에야 회복됐다. 생활비 부담이 완화되기 전에 정부가 물가 안정을 강조하면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정책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비슷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가계는 실제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물가를 지속적으로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소비자는 기업이나 금융시장 참가자와 달리 물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보다 식료품 가격과 임대료,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물가를 인식한다. 이 때문에 공식 통계와 국민이 느끼는 생활물가 사이에는 일정한 시간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체감물가를 반영한 정책지표
공식 물가지표만으로는 국민이 느끼는 생활비 부담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책 접근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CPI는 거시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기준으로 유지하되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를 보여주는 보완 지표를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다. 공식 통계와 생활물가를 함께 제시하면 정부와 국민 사이의 인식 차이도 줄일 수 있다.
보완 지표에는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률과 임대료, 주택담보대출 비용 등 실제 생활비 부담을 비롯해 소득 수준과 연령, 자가·임차 여부에 따른 생활물가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 관련 기초자료는 이미 통계청 등 공공기관이 상당 부분 확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가공해 꾸준히 제공하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지표가 늘어나면 정책 혼선이나 정치적 논란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의 혼란은 하나의 물가지표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CPI를 공식 기준으로 유지하면서 생활물가 지표를 함께 활용하면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과의 소통도 한층 원활해질 수 있다.
통계와 현실을 잇는 물가정책
국민이 느끼는 생활물가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정책 판단의 기준이다. 이는 가계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생활비 부담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정부가 공식 물가지표만으로 물가 상황을 설명하면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정책 사이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반대로 생활물가를 정책 판단과 대국민 소통에 함께 반영하면 정책의 설득력과 신뢰도 함께 높일 수 있다.
앞으로의 물가정책은 평균적인 물가 흐름을 관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계층과 연령, 소비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생활비 부담까지 함께 살펴야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에 가까운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통계와 체감의 간극을 좁히는 일은 정책 신뢰를 높이는 출발점이자 앞으로의 물가정책이 풀어야 할 과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erceived Inflation Is the New Test of Price Poli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