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주거비가 만든 유럽 노동 이동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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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비 부담이 노동자의 지역 간 이동을 제약 인력 부족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주거 이동성 함정 고용 거점 중심 주택 공급과 초기 정착 지원 확대 요구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핵심 가치인 '자유로운 이동'이 현실의 제약에 부딪히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출생국이 아닌 다른 EU 회원국에 거주하는 노동연령 인구는 전체의 4.4%에 그쳤다. 단일시장을 기반으로 노동 이동을 핵심 원칙으로 내세우는 EU의 성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동안 주거 문제는 과밀 주거와 주거 빈곤, 장거리 통근처럼 이주 이후 나타나는 현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높은 주거비가 노동자의 이동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임금을 제시받아도 치솟은 임대료와 정착 비용이 임금 상승분을 상쇄해 이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른바 '주거 이동성 함정(Housing Mobility Trap)'이다. 이처럼 주거 문제는 노동시장과 성장 잠재력을 좌우하는 경제 현안으로 떠올랐다.
인력 이동 가로막는 구조적 제약
주거비 상승이 가계의 삶과 복지를 악화시킨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높은 임대료가 노동자의 지역 간 이동을 제약하면서 노동시장 효율까지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때 명목임금보다 실제 손에 남는 소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임대료와 보증금, 교통비, 보육비 등 초기 정착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이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탈리아 청년이나 포르투갈 기술자가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의 높은 임금을 확인하고도 첫해 주거비 부담 때문에 이직을 접는 이유다.
이 같은 부담은 자산 기반이 취약한 청년층과 임차인에게 집중된다. 돌봄과 교육, 외식, 관광, 건설 등 필수 서비스 분야 종사자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 임차인은 과거 계약 덕분에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를 유지하고, 주택 소유자는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린다. 반면 새롭게 유입되는 노동자는 높아진 시세를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도시가 실제로는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이 구인 공고를 늘려도 직장 인근에서 거주할 주택을 구하지 못하면 일자리와 노동력을 연결하는 시장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인력난 심화시키는 주거비 부담
이 같은 현상은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EU 평균 주택가격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53% 상승했고, 임대료도 2010년부터 2025년 1분기까지 27.8% 올랐다. 그리스는 가계소득의 35.5%를 주거비로 지출해 EU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고용이 집중된 지역일수록 주거비 상승 속도가 임금 상승을 앞지르면서 노동력의 지역 간 이동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역내 노동 이동과 비EU 출생 인구를 비교하면 이러한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2024년 기준 EU 노동연령 인구 가운데 비EU 출생자는 12.6%로 역내 이동 인구의 약 세 배에 달했다. 이는 EU가 외부 노동력 유입에는 의존하면서도 단일시장 내부의 노동력을 필요한 지역으로 충분히 이동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주거 여건은 교육과 인력 양성 정책의 효과도 떨어뜨린다. 간호사와 기술인력을 꾸준히 양성해도 일자리 주변에 거주할 주택이 부족하면 지역별 인력 수급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졸업생들이 장거리 통근을 선택하거나 다른 지역 또는 해외로 이동하면 교육기관과 정부가 투입한 인적자본 투자의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잘츠부르크가 보여준 주거 공급의 중요성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높은 주거비가 도시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잘츠부르크의 민간 임대료는 전국 평균보다 약 50% 높지만, 소득 증가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2001년부터 2021년까지 도시 인구의 약 6%가 순유출됐다. 이는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한 의료와 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이 도시를 떠나거나 이주를 포기한 영향이 컸다.
이 사례는 주거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거는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다. 이에 따라 산업단지와 교통망을 일자리 중심으로 구축하듯 주택 공급도 고용이 집중된 지역에 우선 배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EU는 주택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기존 계획보다 약 50% 많은 225만 가구의 추가 공급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사회주택 비중은 2010년 전체 주택의 11%에서 2021년 8%로 낮아졌다. 이와 같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금 지원만 확대하면 주택가격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거점 중심 주택 공급 강화
노동자의 초기 정착 부담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이 직접 주거를 제공하는 방식보다 공공이나 비영리기관이 운영하는 원가 기반(Cost-Rental)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편이 지속 가능하다. 사회 초년생과 수습생, 교사, 간호사처럼 인력 부족이 심한 직종에는 초기 주거비 부담을 낮춘 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이직 이후에도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정한 입주와 퇴거 기준을 마련해 특정 계층의 장기 점유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단기 숙박 플랫폼에 대한 정책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2024년 EU 주요 온라인 단기 숙박 예약은 전년보다 18.8% 증가한 8억5,410만 박을 기록했다. 관광 수요가 늘면서 장기 임대주택이 숙박시설로 전환되는 사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청소 노동자와 식당 종업원, 간호사, 공항 직원 등 도시의 필수 인력이 거주할 주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장기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플랫폼과 지방정부 간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공급이 부족한 지역은 신규 허가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세제 지원을 통한 장기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
주거 정책이 노동력 확보의 출발점
임금 인상이나 재택근무 확대만으로는 현재의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에 한계가 있다. 병원과 학교, 요양시설, 운송업처럼 공공 재정에 의존하거나 수익성이 낮은 분야는 도심 주거비 상승 속도에 맞춰 임금을 올리기 쉽지 않다. 돌봄과 건설, 운송, 제조업처럼 현장 근무가 필수인 업종도 재택근무로 대체할 수 없어 높은 주거비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결국 노동력이 필요한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력난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취업·교육 연계형 보증금 보증과 이주 지원금, 임시 임대료 지원 확대를 통해 초기 진입 장벽을 한시적으로 낮추는 방안이 유효하다. 이는 지역별 인력 부족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보다 적은 재정으로도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고용이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노동력 이동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정책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공급한 주택 수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인력 부족 개선 정도와 신규 노동자 정착률, 통근 시간 변화 등 노동시장 지표를 함께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EU의 낮은 역내 노동 이동성은 단일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돼도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노동력은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이제 유럽은 사회주택을 복지 정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력 확보와 성장 기반을 뒷받침하는 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거 이동의 장벽을 낮추는 일이야말로 유럽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Housing Mobility Trap Is Now A Labour Market Proble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