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안경까지 진화했는데 대학은 여전히 ‘쓰지 말라’, AI 금지보다 질문 설계 능력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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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기본값으로 자리잡은 생성형 AI 대학의 전면 사용 금지 지침과 충돌 “답보다 질문 가르쳐야”, AI 시대 교육 해법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수강생 절반 이상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과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무더기 처분을 받으면서 대학가의 AI 부정행위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대학이 공지와 감점으로 사용을 막는 사이 AI는 이미 과제와 온라인 시험을 거쳐 안경 형태로까지 시험장을 파고든 상태다. 학생들의 AI 활용은 일상적인 학습 행태로 굳어지고 있지만 대학의 평가 체계는 정형화된 답안과 암기력을 검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에 뚫린 과제, 감점으로 수습
5일 서울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서울대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한 전공 수업 과제에서 전체 수강생 62명 가운데 36명이 인공지능(AI)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성적 불이익을 받았다. 해당 학생들은 자진 신고 여부에 따라 자진 신고자는 과제 0점, 적발된 학생은 D- 학점을 받는 등 성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수업은 애초 ‘모든 수업 활동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학기 시작 전 게재된 강의계획서에 따르면 담당 교수는 “수강생의 독창적 문제 해결력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위해 모든 수업 활동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지 않고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논란이 커진 건 이후 컴퓨터공학부 학생회가 내놓은 입장 때문이다. 학생회는 AI 사용 판별 기준과 적발 범위의 일관성을 문제 삼았다. 학생회는 담당 교수에게 “솔직하게 답변한 학생은 불이익을 받고, 실제로 (생성형 AI를) 사용했지만 이를 부인하거나 적발되지 않은 학생은 불이익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 공정하지 않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적발의 공정성’을 들어 불이익 조처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생회 관계자는 “사람과 AI 답변이 비슷한 경우 AI를 쓰지 않은 학생도 AI를 썼다고 오인돼 감점됐을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담당 교수는 “죄지은 사람 모두가 잡히지 않았다고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적발보다 빠른 AI 침투
이는 서울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연세대 '자연어처리(NLP)와 챗GPT' 담당 교수는 비대면 중간고사에서 다수의 부정행위 정황을 포착했다. 시험에 응시한 일부 학생들이 챗GPT 등 생성형 AI를 이용해 문제를 푼 사실이 확인되자 교수는 "자수하면 0점 처리, 숨기면 정학 추진"을 공지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학내에서는 "AI를 사용한 것이 과연 커닝인가"라는 근본적인 논쟁이 확산했다. AI를 활용한 숙제 및 시험 부정행위는 이미 해외 주요 대학에서도 광범위하게 보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국은 AI 부정행위의 규모가 가장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 국가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2024년 8월까지 2023~2024학년도에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6,900건 이상 적발됐다. 이는 학생 1,000명당 5.1건이 넘는 수준으로 이전 학기(1.6건)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 통계는 AI 오남용을 별도 항목으로 집계한 일부 대학의 수치만을 반영한 것으로 교수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표1. 대학생 AI 활용 현황
| 조사기관 | 조사 대상 | AI 활용률 | 주요 이용 형태 |
|---|---|---|---|
| 디지털교육위원회(DEC) | 16개국 대학생 3,839명 | 학업 활용 86% | 매일 24%, 매주 54% 사용·1인당 평균 2.1개 도구 활용 |
|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 | 학부생 1,041명 | 전체 사용 92%·과제 및 평가 활용 88% | 생성형 AI의 과제·평가 활용 보편화 |
| 미국 코넬대 연구진 | 공립 연구중심대학 20곳 학생 약 9만5,000명 | 매일 사용 37%·컴퓨터과학 전공자 정기 사용 62% | 전공별 AI 활용 격차 확인 |
AI 보편화 속 인식 충돌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AI 활용에 대한 깊은 인식의 차이가 자리한다. 상당수 학생들이 AI 사용을 ‘기본값’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AI 활용 전면 금지라는 기준 자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대학교수는 “AI를 자연스럽게 쓰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도 전부만 아니면 ‘내가 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 비판은 그런 측면을 얘기한 걸로 보인다”며 “황당한 문제제기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쓰지 말라는 것인지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학생들의 AI 활용은 이미 보편적인 학습 행태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대학·기업 협의체인 디지털교육위원회(DEC)가 2025년 16개국 대학생 3,839명을 조사한 결과 86%가 학업에 AI를 사용했다. 24%는 매일, 54%는 매주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학생 한 명이 사용하는 AI 도구는 평균 2.1개였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2025년 학부생 1,0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AI 사용률이 92%로 집계됐다. 과제와 평가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비율도 88%에 달했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이 공립 연구중심대학 20곳의 학생 9만5,000여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37%가 매월 AI를 사용했고 9%는 부정행위에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컴퓨터과학 전공자의 정기 사용률은 62%였으며, 매일 사용하는 학생의 부정행위 경험률은 26%로 나타났다.
기술은 질주, 평가 방식은 제자리
게다가 AI의 시험장 침투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거쳐 안경 형태로까지 진화했다. 지난 5월 전기산업기사와 소방설비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 AI 글라스를 착용한 응시자 3명이 적발됐다. 광주 시험장에서 붙잡힌 40대 응시자는 렌즈에 비친 수상한 불빛 때문에 감독관에게 덜미를 잡혔다. 조사 결과 자신이 개발한 AI 애플리케이션을 안경과 연결해 정답이 표시되는지 시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지난 6월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이 남성을 약식 기소했다. AI 글라스를 이용한 시험 부정행위가 사법 처리된 국내 첫 사례다.
AI 글라스를 이용한 부정행위는 작년부터 포착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는 중국인 응시자 3명이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고 시험을 치르다 적발됐다.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로 문제를 비추면 렌즈에 답이 표시되는 방식이었다. 지난 5월 두 차례 치러진 토익 시험에서도 응시자 2명이 AI 글라스를 쓰고 입실하려다 적발돼 성적 무효와 4년간 응시 제한 처분을 받았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AI 글라스를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으로 명시하고 응시자가 안경다리를 반복해 만지는지 살피라는 공문을 보냈다. 중앙대 의대도 지난해 학생평가 지침에 두꺼운 안경테와 반복적인 조작 행동을 확인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현장 대책은 이미 기술 발전에 뒤처졌다. AI 글라스는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로 문제를 인식하고 생성형 AI가 만든 답을 렌즈 화면이나 소형 스피커로 전달한다. 최신 제품은 무게가 50g 안팎까지 줄었고 안경다리도 일반 뿔테 수준으로 얇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단순히 AI를 사용하지 말라는 공지만 반복하는 방식은 부정행위 수단만 음성화할 가능성이 크다.
수명 다한 정답형 평가
결국 현시점 필요한 것은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에 맞춘 새로운 학습 평가 연구다. 정해진 답을 찾아 제출하는 과제와 암기 내용을 재현하는 시험은 생성형 AI가 가장 능숙하게 처리하는 영역이다. 교수가 이미 알려진 문제를 내고 최종 답안만 채점하면 성적은 지식의 깊이보다 AI 접근성과 사용 흔적을 감추는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고난도 평가는 낯선 조건에서 가설을 세우고, AI 답안의 오류를 찾아내며, 선택한 해법을 논리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을 묻는 방식이다.
실제로 AI의 교육 효과는 수업 설계에 따라 갈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범용 AI에 과제를 맡긴 학생들이 제출물의 완성도는 높였지만, AI 사용이 제한된 시험에서는 학습 효과가 사라지거나 성적이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가 물리학 수강생 1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는 교육학 원칙에 맞춰 설계한 AI 튜터를 사용한 집단의 학습 향상 폭이 능동학습 수업 집단의 2배 이상이었다. 반면 AI 사용을 전면 차단하는 접근과 아무런 통제 없이 답을 맡기는 방식 모두 교육 효과를 담보하지 못했다.
정답 찾기에서 질문 설계로
이에 해외 대학에서는 학생이 AI로 자료를 분석하고 결과의 오류를 직접 검증하도록 하는 수업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올해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어스 앤드 엔바이런먼트’에 소개된 독일 예나대학교의 지구과학 석사과정 수업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여러 1차 자료를 AI에 입력한 뒤 문헌 간 모순과 근거가 취약한 대목, 저자별 해석이 엇갈리는 지점을 찾아내야 했다. AI가 제시한 내용은 다시 원문과 대조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어떤 근거로 답변을 수용하거나 폐기했는지도 기록했다. 교수진은 이 검증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프롬프트와 참고 자료, 폐기한 답변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채점 기준도 정답의 일치 여부에서 질문의 정교함과 출처의 신뢰도, AI 결과를 검증하는 능력까지 확대됐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은 AI 음성 에이전트가 학생에게 프로젝트 관련 질문을 연속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AI 에이전트 시험관은 프로젝트의 목표와 데이터 선택, 모델 설계, 실패 원인을 차례로 묻고 수업 사례 하나를 무작위로 제시해 학생이 자신의 판단을 즉석에서 방어하도록 했다. 학생 36명이 9일 동안 평균 25분씩 시험을 치렀으며, 대화 기록은 복수의 AI 모델이 교차 채점했다. 시드니대학교도 AI 활용을 허용한 공개형 과제와 감독 환경에서 개인 역량을 확인하는 보안형 평가를 병행하고 있다. 완성된 답안으로 학생의 실력을 판정하던 평가 관행이 무너지고, 자신의 판단을 실시간으로 설명하고 방어하는 능력이 성적을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