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마스크 못벗는 일본인들, 루키즘과 주변 시선이 키운 ‘얼굴 노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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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려야 안심", 마스크가 속옷이 된 일본 방역 해제 뒤에도 마스크 착용 고수 외모 평가 불안·타인 시선이 주요 배경

일본에서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해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감염 예방을 위해 확산한 상시 착용이 장기화하면서 마스크는 얼굴 노출에 따른 불안과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는 심리적 방어막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외모와 또래 평가에 민감한 아동·청소년 사이에서는 맨얼굴을 보이는 데 대한 부담이 착용 습관을 고착시키고, 주변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동조 심리도 이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5명 중 1명은 ‘상시 마스크’
6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코로나19의 감염증법상 분류가 변경돼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실상 사라진 지 3년 이상 지났음에도, 외출이나 학교생활 중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는 학생이 여전히 많다. 일선 학교에서는 한 학급 32~33명 가운데 10~20%가량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체육이나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여분이 떨어지면 심한 불안을 보이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충실한 학교생활을 위해 마스크 착용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마스크 착용을 원하는 학생에게 억지로 벗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사들도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학생에게 착용 이유를 묻거나 마스크를 벗도록 적극 권하지 않는다.
일본의 ‘마스크 100년 史’
일본의 마스크 문화는 1918~1920년 스페인독감 유행기에 대중적 토대를 구축했다. 지방정부는 학교에서 마스크를 제작해 주민에게 배포했고, 1920년 후쿠이현 14개 경찰서가 파악한 가구 가운데 약 80%가 마스크를 사용했다. 당시 공중보건 당국의 계몽운동은 마스크 착용을 보이지 않는 감염병에 맞서는 국민적 방위와 근대적 위생의 표상으로 각인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정책은 봄철 마스크 수요를 상시화했다. 일본 정부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고 급증한 목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성장 속도가 빠른 스기(일본 삼나무)를 대규모로 심었다. 현재 일본 인공림 1,020만 헥타르(㏊) 가운데 스기림은 444만㏊에 달하며, 정부가 꽃가루 발생원으로 추산한 면적만 431만㏊에 이른다.
봄철 알레르기의 주된 발생원은 스기와 히노키(편백나무) 꽃가루다. 일본 정부가 인용한 학계 조사에서 전체 꽃가루 알레르기 유병률은 1998년 19.6%, 2008년 29.8%, 2019년 42.5%로 뛰었다. 2019년 스기 꽃가루 알레르기 유병률도 38.8%에 달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1963년 처음 보고됐고, 1970년대부터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마스크가 보급됐다. 독감 예방접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1980년대 후반에는 감염 예방용 마스크 수요도 되살아났다. 2000년대에는 정부와 언론이 ‘기침 예절’을 확산시키면서 마스크 착용은 자기보호와 타인 배려를 동시에 입증하는 시민적 몸가짐으로 정착했다.
표1. 일본 마스크 문화의 형성과 확산
| 시기 | 주요 배경 | 핵심 내용 | 마스크 문화에 미친 영향 |
|---|---|---|---|
| 1918~1920년 | 스페인독감 대유행 | 지방정부가 학교에서 마스크를 제작·배포. 1920년 후쿠이현 조사 가구의 약 80%가 마스크 사용 | 마스크가 감염병에 맞서는 국민적 방위 수단이자 근대 위생의 표상으로 정착 |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스기 중심의 산림 복구 정책 | 일본 인공림 1,020만ha 가운데 스기림 444만ha. 꽃가루 발생원인 수산 면적은 431만ha | 대규모 스기림이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를 확산시키며 마스크 수요 장시화 |
| 1963년~1970년대 | 꽃가루 알레르기 확산 | 1963년 꽃가루 알레르기 최초 보고. 1970년대부터 알레르기 환자용 마스크 보급 | 감염 예방 중심이던 마스크의 용도가 알레르기 차단으로 확대 |
| 1980년대 후반 | 독감 예방접종 신뢰 약화 | 감염 예방을 위한 개인 방역 수요 재부상 | 마스크가 일상적인 독감 예방 수단으로 재정착 |
| 2000년대 | ‘기침 예절’ 확산 | 정부와 언론이 감염 확산 방지와 타인 배려 강조 | 마스크 착용이 자기보호와 공동체 배려를 입증하는 시민적 규범으로 고착 |
| 코로나19 시기 | 팬데믹 장기화 | 일상 공간 전반에서 마스크 착용 보편화 | 기존의 위생·알레르기·배려 문화가 결합하며 생활 습관으로 굳어짐 |
방역 규제 사라져도 마스크 착용은 그대로
코로나19는 이 습관이 일상 생활에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엔데믹 이후인 2023년 3월 13일부터 마스크 착용 여부를 개인의 주체적 선택에 맡겼다. 같은 해 5월 8일에는 코로나19를 계절성 독감과 같은 ‘5류 감염증’으로 낮췄다. 의료기관과 고령자 시설 방문,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한 전철·버스에서만 착용 권고를 유지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일률적 요청을 거둬들이면서도 고위험 공간의 규범을 남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 바뀐 이후에도 거리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P통신은 지침 전환 이후 도쿄 도심과 주요 역에서 대부분의 통근자가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보도했다. 사업장과 상점이 관련 안내문을 철거한 뒤에도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과 이용객 상당수는 기존 습관을 유지했다. 오사카대 연구진이 20∼69세 일본인 291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평소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응답은 2023년 4월 67%에서 같은 해 6월 59%로 8%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얼굴 가려야 안심", 외모지상주의가 키운 마스크 고착
감염 우려가 낮아진 뒤에도 착용 비율이 높게 유지된 배경으로는 심리적 안도감과 사회적 규범이 지목된다. 마스크를 쓰면 불안이 줄어든다는 인식과 주변 사람이 착용하므로 자신도 따라야 한다는 판단이 실제 행동을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실제 2023년 6월 일본 서부 한 대학의 학생 471명을 조사해 2025년 발표한 연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의 불안감’은 착용 빈도와 습관을 예측하는 가장 강한 변수였다. 외모 평가에 대한 불안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루키즘(Lookism)’과 연관이 깊다. 맨얼굴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워 마스크를 심리적 방어막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속옷을 벗는 것만큼 부끄럽다는 뜻의 ‘가오판쓰(顔パンツ·얼굴 팬티)’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감염과 무관한 착용을 뜻하는 ‘다테 마스크(伊達マスク·겉멋 마스크)’도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외모와 또래 평가에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사이에서 이 같은 반응이 두드러진다. 팩데믹 시기에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낸 어린이들은 얼굴을 가린 상태를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낯설거나 불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특유의 동조 압력도 영향
실제로 얼굴 노출 부담은 일본 아동·청소년 조사에서 최다 사유로 집계됐다. 2023년 3월 초·중학생 1,3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니프티키즈 온라인 조사에서 68%는 새 학기에도 마스크를 계속 쓰겠다고 답했고, 27%는 주변 친구들의 행동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착용 지속 사유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가 35%로 가장 많았고 코로나19 우려 20%, 꽃가루 알레르기 18%가 뒤를 이었다.
라인리서치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서도 10대의 48.8%가 얼굴을 보이는 일이 부끄럽다고 답했다. 주변의 평가가 신경 쓰인다는 응답은 39.5%, 모두가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6.3%였다. 같은 조사에서 전 연령대가 꼽은 최다 사유는 감염 회피였지만, 10대에서는 외모 노출과 주변 시선이 강한 보조 동기로 자리했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피하려는 일본 특유의 '동조 압력'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으면 먼저 벗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거나, 얼굴을 드러냈을 때 주변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집단 압박의 여파는 표정 훈련 시장에서도 포착됐다. 로이터통신은 2023년 도쿄의 예술학교 학생들이 거울을 들고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 교육’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수강생들은 장기간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표정 근육을 사용할 기회가 줄었고 취업 면접과 고객 응대에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기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쓰는 현상은 단순한 감염 공포와 습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외모 평가에 대한 불안,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겹치면서 마스크가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로 자리 잡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