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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무너뜨린 엘리트 공식, 로스쿨·MBA ‘고소득 보증수표’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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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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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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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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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검색부터 재무 분석까지 번진 자동화
도제식 육성 사다리 끊기며 주니어 입지 축소
학위 간판 지고 공감·검증 역량이 새 몸값 기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경영전문대학원(MBA)은 오랫동안 고소득 전문직으로 향하는 ‘보증수표’로 통했다. 비싼 학비와 긴 교육과정을 견디면 변호사와 컨설턴트라는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따라온다는 믿음도 강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판례 검색과 계약서 검토, 시장 조사와 재무 분석 등 신입이 맡아온 업무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이런 성공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자격증과 학위가 보장하던 프리미엄은 줄고, AI의 오류를 가려내며 사람과 시장의 복잡한 맥락을 읽는 능력이 몸값을 가르는 기준으로 떠올랐다.

로스쿨 인기 '뚝'

7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로스쿨 입시의 첫 관문인 법학적성시험(LEET) 지원자는 2025학년도 1만9,400명에서 2026학년도 1만9,057명으로 감소했다. 2027학년도에는 1만7,184명으로 전년 대비 9.8% 급감했다. 지난달 실제 시험장을 찾은 응시자는 1만5,560명에 그쳤다. 로스쿨 정원 2,000명 기준 지원자는 8.6배에 이르러 경쟁 열기는 여전히 높지만, 9년간 지속된 증가세는 확연히 꺾였다. 변호사 자격이 제공하던 희소성과 소득 프리미엄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로스쿨 진입 단계부터 비용 대비 효용을 계산하는 움직임이 거세진 것으로 풀이된다.

로스쿨은 3년간 막대한 학비와 생활비를 투입해야 하는 과정이다. 재학 기간에 포기하는 임금까지 포함하면 기회비용은 더욱 커진다. 졸업 후 변호사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을 얻지만 최근 합격률은 5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자격 취득 이후에도 대형 로펌과 기업 법무팀 입성 여부에 따라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변호사 공급도 빠르게 늘었다. 국내에서는 매년 약 1,700명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는 데 반해, 법률시장의 외형은 이를 충분히 흡수할 만큼 커지지 못했다.

신입 변호사 자리 꿰찬 AI

여기에 AI의 등장은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과거 신입 변호사가 맡았던 판례 검색과 증거 분류, 계약서 검토, 서면 초안 작성은 이미 자동화되고 있다. 한 국내 대형로펌 소속 파트너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대부분 판례 검색, 증거 정리 등 업무에 자체 AI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며 “수백 쪽에 달하는 서면을 신입 변호사에게 분석하게 하고 피드백을 주던 과거 ‘도제식 교육’이 불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전문정보·리걸테크 기업 톰슨로이터(TRI)가 27개국 전문직 종사자 1,514명을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로펌 비중은 2025년 28%에서 올해 41%로 상승했다. 기업 법무팀은 23%에서 47%로 두 배 넘게 뛰었다. 법률 종사자의 AI 활용 업무는 문서 검토 77%, 법률 조사 74%, 문서 요약 74%, 준비서면·메모 초안 작성 59% 순으로 집계됐다. 과거 신입 변호사 여러 명이 장시간 수행하며 실무 감각을 익혔던 업무를 AI를 활용해 단시간에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AI가 로스쿨 교수 답보다 낫다”

AI의 답변 수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AI 성능은 법률 지식 전달 영역에서 이미 로스쿨 교수진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스탠퍼드 로스쿨 연구진이 지난 5월 공개한 작업논문에서는 미국 로스쿨 교수 16명이 계약법 질문 40개를 만들고 직접 답변한 뒤 AI 답변과 비교했다. 2,918차례의 익명 평가에서 교수들은 AI 답변을 75.3%의 확률로 선택했다. 학습에 유해할 수 있다는 판정 비율도 AI 답변은 3.5%, 교수 답변은 12.1%였다.

다만 연구 범위는 계약법 수업에서 다루는 단답형 질문에 한정됐다. 법정 변론과 사실관계 확정, 의뢰인 상담, 윤리적 책임은 실험 대상에서 빠졌다. AI가 변호사의 모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근거로 해석하기에는 범위가 좁지만, 판례와 법조문을 찾고 정리하는 업무에서는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식은 AI, 판단·추론·책임은 인간

이러한 AI 확산은 법률가의 역할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에서는 공감 능력이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일례로 이혼과 상속, 형사사건, 기업 분쟁을 겪는 의뢰인은 법률적 해답만 원하는 경우가 드물다. 감정과 재정 상태, 가족 관계,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법률가의 몸값을 가를 또 하나의 기준은 법조문 사이의 행간을 읽는 추론 능력이다. 법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미리 담지 못하고, 같은 판례도 사실관계 한 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변호사는 서로 충돌하는 원칙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고, 흩어진 사실을 하나의 논리로 엮어 재판부를 설득해야 한다.

AI가 내놓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역할도 인간에게 남는다. AI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제시하거나 일부 사실을 빠뜨린 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만들 수 있다. 이른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현상이다. AI의 오류는 표면상 매끄럽게 포장돼 있어 전문성 없이는 발견하기 어렵다. AI가 산출한 결과물에서 오류와 허위를 가려내고, 미세한 방향을 거듭 수정해 가며 정확성을 끌어올리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우선되는 인간의 몫이다.

AI의 역량과 한계를 이해하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료를 수집·구성하고 패턴화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도 중요하다. AI는 좋은 입력에서만 좋은 출력을 만든다. 흩어진 정보를 의미 있게 모으고, 맥락을 부여하며,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도제식 교육의 퇴장

이에 미국 로스쿨은 이미 교육 방식을 바꾸고 있다. 스탠퍼드대 로스쿨은 학생들에게 AI가 작성한 법률 답변을 채점하게 하고 허위 인용과 누락된 논거를 찾아내도록 교육한다. 시카고대 로스쿨은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으로 변론 능력과 전략적 판단, 비판적 사고, 의뢰인과의 관계 형성을 제시했다.

이런 변화는 로펌의 오랜 인력 운용 방식까지 흔들고 있다. 대형 로펌은 여러 명의 신입 변호사가 자료 조사와 문서 검토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이 가운데 일부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유지해 왔다. 고객에게는 신입 변호사가 투입한 시간까지 수임료로 청구했다. 그러나 AI가 몇 시간 걸리던 작업을 몇 분 만에 끝내면서 이런 방식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톰슨로이터 인스티튜트는 지난 3월 ‘리걸위크 2026’ 분석에서 AI가 신입 변호사의 기초 업무를 줄이고 기업들이 법률 업무를 내부에서 직접 처리하면서 로펌 피라미드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객이 AI로 줄어든 업무 시간까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지불하려 하지 않으면서 시간당 수임료 체계에도 변화 압력이 커졌다. 이미 미국 법률 시장에서는 투입 시간 대신 사건의 난도와 결과, 고객이 얻는 가치에 맞춰 보수를 책정하는 정액제·가치 기반 수임료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표1. AI 확산에 따른 미국 MBA·컨설팅 채용시장 변화

구분핵심 내용주요 수치·사례
MBA 지원 수요전통적인 2년제 풀타임 MBA 지원자 감소로 주요 경영대학원의 학생 유치 경쟁 격화학비 최대 50% 할인
직장 사수 현상AI발 고용 불안이 확산하면서 이직·학업을 위한 퇴직을 기피하는 ‘직장 사수(Job hugging)’ 심화고용 불확실성이 MBA 진학 수요 억제
기업 인재 육성생성형 AI가 산업 조사·기업가치 분석·보고서 작성 업무를 대체하면서 MBA 졸업생 중심의 관리자 육성 체계 약화자료 수집·재무 분석·전략 보고서 작성 자동화
채용시장 변화기업들이 AI 도입에 맞춰 신입 채용 계획을 재편하고 일부 초급 일자리를 축소기업 3곳 중 1곳이 AI로 채용 계획 재편
초급 일자리 위축대졸·MBA 졸업생이 경력을 쌓아 온 초기 직급의 일자리 감소“경력 사다리의 아래쪽 단계가 사라지고 있다”
컨설팅업계 보상맥킨지·BCG 등 주요 컨설팅 회사가 대졸·MBA 신입 초임을 3년 연속 동결대졸 13만5,000~14만 달러, MBA 27만~28만5,000달러
인력 구성 재편대규모 신입 채용을 축소하고 경력직·산업별 전문가 확보에 집중피라미드형 인력 구조 약화
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경영대학원입학위원회(GMAC), 버닝글래스연구소

MBA도 지원자 감소 직면

로스쿨과 함께 전문대학원 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MBA도 같은 충격에 직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지원자 감소로 위기를 맞은 미국의 주요 경영대학원들은 학비를 최대 50%까지 깎아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며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파격 할인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2년제 풀타임 MBA 과정에 대한 극심한 수요 감소가 자리 잡고 있다. 통상적으로 MBA 수요는 채용 시장이 호황일 때는 줄고 불황일 때 늘어나는 반비례 성향을 띤다.

하지만 현재 고용 시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AI 기술의 빠른 도입과 발전이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직이나 학업을 위해 직장을 떠나기보다 현재의 일자리를 꽉 쥐고 놓지 않는 ‘직장 사수(Job hugging)’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MBA 졸업생을 대거 채용해 자료 수집과 재무 분석, 전략 보고서 작성에 투입한 뒤 내부 승진 경쟁을 거쳐 관리자로 육성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산업 동향 조사와 기업가치 분석, 프레젠테이션 초안을 저비용으로 생산하면서 이 육성 방식의 비용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취업 전망도 예전만큼 밝지 않다. 미국 경영대학원입학위원회(GMAC)가 기업 채용 담당자 6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 3곳 중 1곳은 AI가 채용 계획을 재편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일부 초급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전문 싱크탱크 버닝글래스연구소의 개드 레바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젊은 졸업생들이 의존하던 사다리의 아래쪽 단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보상 체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맥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 주요 컨설팅 회사는 올해 대졸·MBA 신입 초임을 3년 연속 동결했다. 학부 졸업자 보상은 13만5,000∼14만 달러(약 1억9,158만~1억9,867만원), MBA 졸업자는 27만∼28만5,000달러(약 3억8,310만~4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주니어 컨설턴트가 수행해 온 자료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서 AI 생산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대규모 신입 채용을 축소하고 경력직과 산업별 전문가 확보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다수의 주니어가 소수의 파트너를 지탱하던 컨설팅업계의 피라미드형 인력 구성도 흔들리고 있다.

MBA식 지식의 한계, 박사형 사고가 몸값 가른다

AI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빠르게 정리하는 능력의 희소성이 떨어진다. 생성형 AI는 시장 자료를 요약하고 경쟁사를 비교하며, 재무모델과 사업전략 초안도 만든다. 여러 산업에 통용되는 경영지식을 두루 습득하는 MBA식 교육이 압박받는 배경이다. 반대로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운 뒤 자료로 검증하는 능력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박사형 사고’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사과정의 훈련은 기존 연구의 허점을 찾고, 오랜 시간 한 분야를 파고들며, 결론의 타당성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둔다. AI가 내놓은 답의 오류와 편향, 인과관계의 비약을 판별하려면 이런 연구자형 사고가 필요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도 AI가 데이터 분석과 글쓰기 작업을 맡는 환경에 맞춰 박사 교육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역시 AI 시대의 MBA가 현상 묘사와 해법 제시에서 한 단계 깊은 원인 규명과 판단 훈련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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