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에듀] 4년제 학사학위 공식 흔드는 AI, 대학 학위 기준도 역량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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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으로 이수시간 중심 학점제 한계 부각 3년제·역량 기반 학위제도 확산 교육의 질 유지와 역량 중심 인증 전환
본 연구 기사는 글로벌 교육 전문지 The EduTimes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duTime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duTimes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학 교육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면서 학위 취득에 필요한 기간과 학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과제 작성과 자료 분석, 번역 등 학습 과정 전반에 활용되면서 수업시간을 기준으로 학점을 부여하는 기존 방식의 적절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 대학들은 학위 기간 단축에 나서는 추세다. 현재 미국에서는 90개 대학 캠퍼스가 기존 4년 대신 3년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을 운영한다. 이 가운데 약 60곳은 최근 2년 사이 3년제 과정을 새로 도입했다. 10년 전만 해도 일부 대학의 실험적인 시도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학생과 가정의 교육비 부담, AI 확산에 따른 학습 방식 변화와 맞물리면서 고등교육 제도 전반의 논의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학습 성과보다 이수시간에 머문 학점제
오늘날 대학 학점제의 기반인 ‘카네기 단위(Carnegie Unit)’는 교육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1906년 미국 카네기재단이 퇴직 교사의 연금 지급 대상을 정하기 위해 교실 수업 120시간을 하나의 단위로 설정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학생 등록과 학자금 지원, 교수 업무량 등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현재 약 120학점으로 구성된 미국 학사학위 제도의 토대가 됐다.
이수시간 중심의 학점제가 100년 넘게 이어진 배경에는 평가와 관리의 편의성이 자리한다. 학생이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문제 해결 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려면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지만, 수업시간은 상대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규제기관과 대출기관, 평가기관도 이 같은 이유로 이수시간을 주요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그 결과 학생이 실제로 습득한 역량보다 정해진 시간을 이수했는지를 중시하는 방식이 대학 교육의 주요 기준으로 굳어졌다.

국가별 학점·전문직 자격 체계의 차이
이수시간이 학습 성과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기준인지는 국가별 학위 체계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학사학위라도 국가마다 학점에 포함하는 학습 범위가 다르고 전문직 자격을 취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카네기 단위는 수업 참여시간을 중심으로 학점을 산정한다. 반면 유럽의 볼로냐 개혁을 통해 도입된 유럽학점이수제도(ECTS)는 강의와 자율학습, 평가 등을 포함한 전체 학습량을 기준으로 삼는다. ECTS 1학점은 약 25~30시간이며 한 학년은 60학점으로 구성된다. 영국은 일반적으로 3년제 우등학사 과정을 운영하며, 실제 수업 기간은 약 79주다. 최근에는 교육 내용을 유지하면서 긴 방학을 줄여 학위 과정을 2년으로 압축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칠레는 전문직 자격 취득 과정까지 대학 교육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엔지니어나 변호사가 되려는 학생은 통상 5~6년 동안 대학에서 학문 교육과 전문직 교육을 함께 받는다. 미국과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장 훈련이나 별도의 전문기관을 거쳐 자격을 갖추는 방식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같은 직업에 진입하기까지 걸리는 전체 기간은 비슷하더라도 대학에서 이수해야 하는 기간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별 학위 기간은 교육량뿐 아니라 학점 산정 방식과 전문직 자격 체계에 따라 달라진다.
AI 확산에 따른 학습시간 단축과 교육의 질
국가별로 이수시간의 의미가 다른 상황에서 AI 확산은 시간 중심 학점제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더 키우고 있다. 과거에는 글의 개요를 작성하거나 통계 분석을 수행하고 코드를 작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작업 과정 자체도 학습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러나 AI가 같은 작업을 몇 분 안에 처리하면서 과거의 작업시간을 전제로 설계된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과제 수행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식과 역량을 습득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학위 기간이나 수업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 교육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대학교수협회(AAUP)는 올해 축소된 학위 과정이 교육 속도를 높이는 대신 학생의 지적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택과목이나 교양과목처럼 전공 밖의 지식을 접하는 과정이 줄어들면 여러 분야를 연결해 사고하는 역량을 기를 기회도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AI로 절감한 시간을 단순히 교육과정 축소로 연결하기보다 학습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반복적인 과제 수행에 투입하던 시간을 비판적 사고와 탐구, 분야 간 연계 학습에 배분하고 평가 기준도 이에 맞춰 조정하는 방식이다. 학습시간 단축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실제 지식과 판단력을 검증하는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역량 중심 교육 확산과 학위제도 변화
이러한 평가 방식이 실제 대학에서 적용 가능한지는 역량 기반 교육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웨스턴거버너스대학교(WGU)는 학생이 정해진 기간을 채우는 대신 해당 과목의 내용을 숙달했음을 입증하면 학점을 인정하는 ‘역량 기반 교육(Competency-Based Education)’을 운영한다. 2024~2025학년도 재학생은 21만 명을 넘어 미국 최대 규모 대학으로 올라섰다. 2024년 해리스폴 조사에서는 최근 졸업생의 94%가 취업했으며, 조사에 참여한 고용주 300곳 모두 WGU 졸업생이 직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수기간과 학습 성과를 분리한 교육 방식이 대규모 대학에서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량 중심 교육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대학 교육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악화하는 추세다. 영국 서튼트러스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 학위가 투입하는 시간과 비용만큼 가치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지난해 14%에서 최근 33%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졸업 후 경제적 여건이 크게 나아진다고 보는 비율도 같은 기간 약 절반에서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학점제가 신뢰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학 교육의 비용과 성과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요구에 힘을 싣는 결과다.
제도 변화도 뒤따르고 있다. 미국 고등교육위원회(HLC)는 기존 학사학위 기준인 120학점보다 적은 학점으로 구성된 학위 과정의 승인을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 4월 기준 12개 주의 교육기관이 학점을 줄인 학위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위스콘신대학교 그린베이는 기존 120학점 대신 100학점으로 구성된 컴퓨터과학 학위 과정을 승인받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CSU) 시스템도 같은 해 22개 캠퍼스에서 3년제 학위 과정을 승인했다.

학습의 질 유지와 비효율적 시간 단축
그러나 학위 기간을 단축하는 과정에서는 무엇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영국 버킹엄대학교는 2019년부터 일반적으로 5~6년이 걸리는 의학 교육과정을 4년 6개월로 압축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 내용을 축소하는 대신 긴 여름방학을 줄이는 방식으로 기간을 단축했으며, 영국의학위원회(GMC)의 정식 인증도 유지했다. 졸업생 역시 일반 의대 졸업생과 비슷한 비율로 졸업 후 수련 과정에 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례는 학위 기간 단축과 학습량 축소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선택과목이나 교양교육, 지도·감독이 필요한 실습처럼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과정을 줄이는 대신 학사 일정에서 활용도가 낮은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학위제도 개편 역시 단순한 교육기간 단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대신할 수 있는 반복 업무와 비효율적인 학사 일정은 줄이되 비판적 사고와 탐구, 실습 등 핵심 학습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학생이 얼마나 오래 수업을 들었는지보다 실제로 어떤 지식과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변화한 학습 환경을 반영하면서 교육의 질을 지킬 수 있도록 대학 인증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향후 과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ime Served, Not Skill Gained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duTimes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