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심상찮다" '워시 연준' 기준금리 인하 기대 소멸, 채권 시장은 이미 긴축 반영
"인플레이션 심상찮다" '워시 연준' 기준금리 인하 기대 소멸, 채권 시장은 이미 긴축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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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안정이 최우선" 연준 내부서 매파적 공감대 형성 '워시 연준' 출범 따른 통화 정책 완화 기대도 사그라들어 정책금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채권 시장, 주요국 장기금리 '상승곡선'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인사들이 연이어 매파적 발언을 내놨다.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의 취임을 계기로 제기됐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 속에 빠르게 힘을 잃는 양상이다. 투자자들은 이미 통화 정책 완화 가능성을 배제해 나가고 있으며, 채권 시장 역시 정책금리 조정에 앞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선반영하며 장기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추세다.
매파적 메시지 내놓은 연준 인사들
28일(이하 현지시각)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은행-IMES 컨퍼런스에서 최근 미국 경제가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경제 성장 동력을 창출 중인 만큼, 연준은 에너지 가격 자체보다 인플레이션 기대 및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2차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제퍼슨 부의장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충격의 규모와 지속 기간이 불확실해 금리 경로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연준이 탄력적인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해 2% 물가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닐 카시카리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사한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5년 넘게 연준 목표인 2%를 웃돌고 있지만, 노동시장은 여전히 견조하다"며 "물가 안정이 여전히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가계와 기업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며 물가 압력이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간 대표적인 비둘기파 인사로 분류됐던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강연에서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진정되지 않는다면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리사 쿡 연준 이사 역시 전날 스탠포드 경제정책연구소에서 열린 AI 정책 포럼에서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여전히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디스인플레이션이 적시에 나타나지 않을 경우 금리를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는 1조5,000억 달러(약 2,257조원)에 육박하는 AI 투자액이 꼽혔다. AI 투자 열풍이 반도체, 첨단 장비 등의 가격을 끌어올릴 경우 물가 상승세가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쿡 이사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물가 상승률이 둔화할 것이기에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는 게 적절하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수준을 5년간 지속할 경우 물가 상승이 가격과 임금에 반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간 내 금리 인하 가능성 낮아
연준 내부의 매파적 기조가 눈에 띄게 강화된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워시 의장이 처음으로 주재하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쏠리고 있다. 워시 의장은 지속적으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워시 의장 본인 역시 취임 전부터 제롬 파월 체제의 통화 정책을 비판하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한 전례가 있다. 워시 의장의 취임을 계기로 연준이 보다 완화적인 정책 기조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돼 온 이유다.
다만 최근 들어 물가 지표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이러한 기대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지난달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약 3년 만에 최고치(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를 기록하자, 조만간 추가 긴축이 단행될 수 있다는 의견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6월 FOMC에서 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을 98.9%로 반영하고 있다. 연말 기준으로 범위를 넓혀도 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로(0) 수준이며, 동결(47.4%) 또는 추가 인상(52.1%)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워시 의장이 시장이 기대하는 '금리 인하론자'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의 목표는 통화 정책 완화가 아닌 연준의 역할 자체를 줄이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을 위해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했다고 비판하며, 금융 시장 지원보다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인플레이션 위기가 고조된 현 상황에 워시 연준이 완화적 성격을 띤 통화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실제 워시 의장은 최근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로 장기금리를 높이면 단기 정책금리 인하 여지가 생긴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는 사실상 금리 인하라기보다는 긴축의 형태 전환으로 읽힌다.

채권 시장의 뚜렷한 '긴축 신호'
채권 시장에서도 뚜렷한 장기금리 상승세가 관찰되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4.5% 안팎까지 뛰며 약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30년물 금리는 한때 5%를 돌파했다. 연준의 정책금리가 금융 시장 전반의 방향을 결정하던 과거와 달리, 채권 시장이 선제적으로 위험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현 상황과 관련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연준이 금리를 움직이면 시장이 따라갔지만, 지금은 시장이 먼저 장기금리를 움직이며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정책금리보다 시장금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초장기 국채 매도세가 이어지며 30년·40년물 국채금리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영국의 장기 국채금리도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은행(BOJ)의 국채 매입 축소 가능성이, 영국에서는 재정 적자 확대 우려가 각각 장기금리 상승을 부추겼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시장 리스크 요인이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보다 먼저 가격에 반영되는 양상이다.
시장금리 상승 압력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BOJ는 지속적으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 중이며, 영란은행은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벗어나 매파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흥국 역시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달러 강세와 자금 유출 압력 속 통화 정책 조정에 나섰다.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는 지난 20일 정책금리를 연 5.25%로 0.5%P 인상하며 2년 만에 정책 기조 전환에 착수했고, 필리핀은 지난달 정책금리를 0.25%P 올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