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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인공지능과 금융 불안정, “양날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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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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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에 따른 ‘금융산업 안정성 우려’ 증폭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사 결정 속도’와 ‘자율성’
AI 관리가 금융 감독 업무 ‘핵심’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인공지능(AI)이 금융의 양상을 급속도로 바꾸는 가운데 산업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가 효율성과 의사 결정을 향상시키지만 아직 규제 당국이 대비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도 함께 가져오기 때문이다. AI의 유례 없는 의사 결정 속도와 자율성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빠르고 심각한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위험을 경감하기 위해 규제 당국은 AI 전문성을 금융 감독에 결합하고 기존 위기관리 방식을 개정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사진=CEPR

AI 금융 업무 활용, 효율성과 위험 “함께 가져와”

금융 기관들은 운영 최적화와 위험 분석, 고객 서비스 향상을 위해 빠르게 AI를 통합하고 있다. 기술 진보가 가져오는 혜택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시스템적 리스크가 동반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AI가 이제까지 근본적인 차질을 초래하지 않고 금융 서비스 개선에 기여한 다른 기술적 진화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금융 안정에 대한 부작용도 미약하기 때문에, 규제 기관 내 IT 및 통계 부서에 의한 일상적 감독으로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AI의 고유한 특질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금융 기술이 사람의 의사 결정을 보조하는 기능을 했다면 AI는 인간의 개입 없이 복잡한 금융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율성이 전통적 금융 시스템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도입은 통상적인 IT 위주 관리 감독을 금융 안정 관련 핵심 업무로 승격하는 등 규제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AI ‘오판 가능성’, 여전히 존재

AI는 방대한 자료에서 패턴을 찾고 고속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도한 데이터 학습 의존과 의사 결정의 불투명성(해당 의사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움) 때문에 오판에 대한 우려도 크다. 또한 금융 기관들이 사용하는 AI 엔진들이 시장 상황에 모두 유사하게 반응한다면 금융 위기의 진정이 아닌 증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는 AI가 ‘피터 원칙’(Peter Principle, 조직에서 직원들이 무능력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과 유사하게 작동한다는 것인데, 복잡한 업무들을 최적 용량 초과 상태까지 지속적으로 늘려간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AI가 필수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금융 기관들이 이러한 한계를 무시하고 점점 더 많은 중요 의사 결정을 AI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 결정과 달리 AI는 직관적 판단력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새로운 상황에서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AI가 규제를 피해 시장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연구를 통해 금융거래법을 준수하되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지시받은 AI 모델이 인간의 관리 감독을 피해 불법 내부자 거래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AI가 금융 안정을 위해 마련된 규칙 자체까지 악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모든 AI가 동일한 의사 결정에 이른다면?

역사적으로 금융 위기는 공황 상태에서의 자산 매각과 같은 집단행동으로 촉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AI의 초고속 의사 결정은 이 과정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 시스템이 자산 유동화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판단하면, 경쟁사 AI들도 모두 같은 결론을 내 연쇄적인 시장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AI의 제한된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도 위기 방지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인간과 다르게 의사 결정의 정당성을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해 규제 당국의 선제적 개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 환각(AI hallucinations, AI 모델이 생성하는 부정확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결과)도 위기 상황 시뮬레이션(stress-testing scenarios)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부정확한 리스크 평가가 금융 기관들을 예기치 못한 충격에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야기하는 리스크 동질화(risk monoculture)도 못지않게 심각하다. 금융 기관들이 소수의 AI 제공업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 획일적인 리스크 판단 분석 모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질성은 산업 전반에 걸친 오판을 불러 시스템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금융기관들이 모두 비슷한 AI 기반 전략을 사용한다면 경제 충격에 대한 시장 반응도 비슷해져 금융 불안정성과 위험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AI 관리는 IT 아닌 ‘금융 안정 업무’

AI가 주도하는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규제 당국은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심할 사항은 규제 기관도 AI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위험을 예측하고 이상을 감지하며 시장 변동성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또한 AI 영향에 대한 분석을 IT 부서에 맡기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금융 안정 담당 부서의 핵심 업무로 승격시켜야 한다. 규제 기관이 금융 기관과 AI로 연결돼 실시간 모니터링과 세부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AI의 속도로 판단할 때 기존의 위기 대응 방식은 지나치게 느리다. 자동화된 유동성 공급 시스템(automatically triggered liquidity facilities)을 갖춘다면 시장 혼란 확대 전 사전 완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핵심 AI 감독 기능을 외부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물론 기술적 도움을 얻기 위한 조치가 지나친 외부 의존성 및 감독 관할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규제 당국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AI로 인한 금융 위기 여부와 양상이 바뀔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존 다니엘슨(Jon Danielsson) 런던 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시스템 리스크 센터(Systemic Risk Centre) 소장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Artificial intelligence and stabilit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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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직진출 테무, 美 제재 피하기 위한 '한국 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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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직구에 한정돼 있던 사업 영역 본격 확장
현지화로 한국 시장 공략 후 미국 시장 진출 노려
한국 셀러 인프라 활용해 '택갈이' 시도
사진=테무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가 한국 직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의치 않아진 미국에서의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대체 시장으로 한국을 낙점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테무, 국내 직원 채용하고 배송계약 채비

11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테무는 국내에서 인사(HR), 총무, 홍보·마케팅 등 핵심 직군의 한국인 인력을 뽑고 있다. 일부 직군은 이미 채용을 완료하고 현업 부서에 투입했다. 또 물류망을 구축하기 위한 공개입찰 등 사전작업까지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테무의 조치는 그간 해외 직접구매에 한정돼 있던 사업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국내 이커머스 산업의 성장성과 사업성을 확인했으니 현지화로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얘기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보다 5.8% 늘어난 242조897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해외 직구 시장이 7조9,583억원이었으며, 중국은 48.0% 증가한 4조7,772억원에 달했다. 중국발 직구 규모가 전체의 60%에 육박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테무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데이터 분석 기업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테무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823만 명으로 11번가를 제치고 3위에 안착했다. 2위 알리익스프레스(912만 명)와의 격차 역시 100만 명 이하로 줄였다.

미국 압박에 한국 '우회수출기지'로 삼아

테무가 한국 시장에 힘을 쏟는 건 미중 통상환경의 불확실성과 무관치 않다. 그간 미국은 개인이 수입하는 800달러(약 120만원) 이하의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면세한도를 적용해 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보편관세 조치와 함께 이를 취소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중국발 소포 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만에 번복한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고조되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의 단적인 예다.

테무가 미국에서 직접 사업을 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한국을 우회수출기지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을 포기하기에는 지난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의 투자 규모가 막대한 테무로서는 한국의 셀러 인프라를 활용하면 일명 '택갈이'가 가능하고 이미지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커머스뿐 아니라 반도체업계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대전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업체인 A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하 10도에 달하는 혹한의 추위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지만 이 기업은 지난해 중국 기업이 지분 90% 이상을 인수해 주인이 바뀐 곳이다. 공장 인근 소상공인들도 “중국 기업이 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신분 세탁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그가 달려 해외로 수출된다.

작년 FDI, 중국 투자 큰폭 증가

중국 자본의 한국 침투는 외국인직접투자(FDI) 신고액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FDI는 신고 기준으로 345억7,000만 달러(약 50조2,100억원)로, 전년보다 5.7% 증가했다. 최근 연간 FDI 신고 금액은 2020년 207억5,000만 달러, 2021년 295억1,000만 달러, 2022년 304억5,000만 달러, 2023년 327억1,000만 달러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실제 집행된 투자 금액인 도착 금액은 전년보다 24.2% 감소한 147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국가별로는 중국·일본의 투자는 큰 증가세를 보인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감소했다. 일본 투자는 61억2,000만 달러(+375.6%), 중국 투자는 57억9,000만 달러(+266.1%)로 집계됐다. 산업부 역시 이 가운데 중국 투자가 늘어난 것과 관련해 미국의 대중 견제에 대응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각국과 촘촘히 맺은 한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망이 트럼프 2.0 시대에 높아진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미중 갈등 속 미국 진출이 막힌 중국 배터리소재 기업들은 한국 기업과 손잡고 조 단위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LG화학은 세계 최대 코발트 채굴 업체인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에 배터리 전구체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고, SK온도 중국 GEM(거린메이)과 함께 새만금에 전구체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반면에 미국과 EU의 투자는 각각 52억4,000만 달러(-14.6%), 51억 달러(-18.1%)로 집계됐다. 산업부는 "미국과 EU의 투자 감소는 전년 대비 역기저 효과와 함께 리더십 교체 등 정치적 변화에 따른 관망세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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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시장 훈풍에도 P2E 코인은 부진, 사행성 우려 종식 역부족

가상자산 시장 훈풍에도 P2E 코인은 부진, 사행성 우려 종식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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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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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규제 완화 기대감에 가상자산 시장 ‘맑음’
대표 게임 코인 위믹스는 전월 대비 27%↓
“확률형 아이템과 결합 시 사행성 과도”

미국의 금융 정책 변화에 따른 기대감이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업계를 뒤덮은 가운데, 유독 게임 관련 암호화폐들은 부진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암호화폐를 획득하는, 이른바 ‘P2E(Play to Earn)’를 둘러싼 사행성 우려가 끊이지 않으면서 일부 게임사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 나서고 있다.

한 달 사이 ‘반토막’ 난 게임 코인

10일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빗썸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위믹스는 1,022원에 거래되고 있다. 오전 9시(1,009원) 대비 약 1.2% 오른 가격이지만, 여전히 지난달 기록한 1,400원대와 비교하면 27%가량 하락한 수준이다. 국내 게임 제작사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한 위믹스는 대표적인 게임 관련 암호화폐로 꼽힌다.

다른 게임 관련 코인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넷마블이 발행하는 마브렉스는 지난달 말 720원대에 거래된 후 현재 40%가량 하락한 430원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컴투스가 발행하는 엑스플라 역시 지난달 고점(142원) 대비 약 35% 미끄러진 92원대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카카오게임즈와 연계된 보라 코인은 지난해 12월 기록한 288원과 비교해 절반이 빠진 140원대를 기록 중이다.

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화폐 가격은 꾸준한 강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난달 1억3,000만원대에서 출발한 비트코인 가격은 1억6,000만원대를 찍은 후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1억4,000만원대 후반에서 반등을 노리고 있다. 이더리움 또한 400만원 선을 오가고 있으며, 이더리움의 라이벌 코인으로 불리는 솔라나는 30만원대를 유지 중이다.

투자업계는 미국의 정책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금융 규제에 따라 가상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규모 또한 달라지는 만큼 미국의 규제 완화가 가상화폐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등 친(親)가상화폐 기조를 보여 왔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각)에는 대통령 취임 후 사흘 만에 암호화폐 정책 자문 실무 그룹을 신설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행보가 국내 블록체인 P2E 게임까지 영향을 미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국의 경우 금융 규제 외에도 ‘게임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명시한 사행성 조장 행위 및 게임물 금지 조항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실제 2020년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파이브스타즈’, ‘무한돌파 삼국지 리버스’ 등 몇몇 P2E 게임의 등급 분류를 취소, 거부한 바 있다. 각 게임사는 즉각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나섰으나, 서울행정법원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규제 완화 검토에 업계 ‘반색’

국내에서 P2E 게임 규제 완화를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3년 상반기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은 △NFT 활용 P2E 게임 문제점 및 선결과제 파급효과 △서버 기술, 블록체인 기술 등 게임기술 발전 관련 이슈 △인력 양성, 중소개발사 인력 수급 △게임제작 역량강화와 수출지원 △게임 이용자 보호 △청소년 보호 및 사행성과 과몰입 및 중독 등을 검토하는 ‘게임산업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P2E 게임 규제 해소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NFT와 블록체인을 접목한 웹3 게임이 글로벌 게임시장의 주축으로 주목받는 만큼 국내 게임 산업도 이에 발맞춰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게 게임 업계의 주장이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NFT, P2E 등 키워드는 이제 일부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짚으며 “정부의 현명한 판단으로 NFT와 P2E 시장에서 국내 게임산업이 주도권을 쥘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위메이드

중독 등 부정적 영향에 무게

다만 정부는 여전히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P2E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 등과 결합할 경우, 사행성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이용자들의 과몰입 및 중독 또한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역시 “P2E 게임이 지닌 사행성은 종국에는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게임사는 규제가 느슨하거나 P2E 게임을 합법으로 규정한 국가에 진출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위메이드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MMORPG) ‘미르4’를 170여 개국에 서비스 중이며, 미르4의 흥행을 확인한 카카오프렌즈, 넷마블 등이 해외 진출 행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싱가포르와 일본은 정부 승인을 받은 가상자산 위주로 P2E 게임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나 남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P2E를 합법으로 규정했다. 특히 일부 개발도상국의 경우 화폐 유동성이 큰 탓에 자국 통화보다 가상화폐가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높아 P2E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댑레이더에 따르면 글로벌 P2E 게임 시장 규모는 오는 2028년 28억4,510만 달러(약 4조1,3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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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향한 견제구 폭격, 각국 정부·기관 접속차단 이어 업계도 “설치 자제”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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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국영 통신사 데이터 전송 정황
정부·공공기관 ‘사용금지’ 줄 이어
중국 공산당, 민감 정보 접근 용이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선보인 생성형 AI를 둘러싼 각국의 견제가 갈수록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출시 초기부터 제기된 보안 우려에 주요국들은 잇따라 사용 금지를 선언했으며, 전문 보안 업체들도 사용자 정보 유출 위험을 이유로 설치 및 사용 자제를 권장하고 나섰다. 과거 틱톡의 사례처럼 사이버 보안 논란이 IT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의도적으로 숨겨진 프로그래밍 발견”

9일(현지시각) 타임, ABC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모바일 보안업체 나우시큐어(NowSecure)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딥시크의 iOS 앱은 민감한 데이터가 암호화되지 않은 채널을 통해 전송되는 것을 방지하는 iOS 플랫폼 보호 기능(ATS)을 비활성화한다”고 분석했다. 앤드루 후그 나우시큐어 설립자는 “딥시크 iOS 앱은 사용자 기기에 대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면서 “앱 설치를 자제해야 하며, 이미 설치했다면 즉시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사이버 보안업체 페루트 시큐리티(Feroot Security) 또한 딥시크 챗봇의 웹 로그인 페이지에 매우 난독화된 컴퓨터 스크립트가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반 차리니 페루트 시큐리티 최고경영자(CEO)는 “딥시크 코드 일부를 해독해 의도적으로 숨겨진 프로그래밍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며 “이 프로그래밍은 사용자 데이터를 중국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의 온라인 등록소(CMPassport)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이나모바일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 통신사다. 앞서 미국은 2019년 차이나모바일이 소비자 데이터에 대한 무단 접근으로 국가 안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자국 내 운영을 금지했다. 이후 차이나모바일은 2021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고, 2022년에는 미국의 ‘국가 안보 위협 목록’에 등재됐다.

딥시크가 차이나모바일에 전송하는 데이터의 종류와 범위는 구체적으로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차리니 CEO는 “딥시크의 웹 도구는 고유 사용자에 대한 디지털 지문을 생성하는데, 이를 통해 사용자가 딥시크 웹사이트를 사용하는 동안의 활동은 물론 이후의 모든 웹 활동 또한 추적할 수 있다”며 사용에 주의를 당부했다.

정보 수집 범위 과도하다는 반응 대부분

딥시크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AI 모델 학습을 위해 사용자 이름, 생년월일 등 가입 시 기재하는 신상정보를 비롯해 인터넷 IP 주소, 고유 장치 식별자, 키 입력 패턴 등을 수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고주와 협력사들로부터 딥시크 외부의 웹사이트와 앱, 앱 마켓에서의 활동 정보도 공유받는다”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딥시크의 이용자 정보 수집 범위가 오픈AI, 구글 등 경쟁사에 비해 과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 정부는 딥시크 사용을 금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외교부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정부 부처 대부분이 정부망에서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다. 또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주요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시중은행 등도 딥시크 사용 금지에 동참했다.

이탈리아는 아예 앱 스토어에서 딥시크 앱을 차단해 다운로드를 원천 봉쇄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은 딥시크에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는 질의서를 보내거나 내부적으로 규제 필요성 검토에 돌입했다. 일본과 대만, 호주 등도 정부 소유 기기에서 딥시크 접속 및 설치·사용을 금지하고 나섰다.

미국에서는 딥시크 사용 금지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미 연방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대런 라후드 의원과 조시 고트하이머 의원은 딥시크의 AI 챗봇 앱을 정부 기관 기기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이 통과하면 연방정부 기관은 딥시크는 물론 딥시크의 모회사 하이플라이어가 개발한 모든 앱을 정부 기기에서 제거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해군과 항공우주국(NASA) 등 일부 연방 기관이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으며, 텍사스주에서도 딥시크 접근을 막고 있다.

틱톡→딥시크, 중국발(發) 보안 이슈 현재진행형

각국 주요 빅테크들이 일제히 생성형 AI를 선보이는 가운데 유독 딥시크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해당 서비스의 기술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일례로 지난달 28일 딥시크 앱에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발생해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딥시크가 자사 데이터 관리용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의 보안을 소홀히 하고, 인증 절차 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상태로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업계는 해당 사이버 공격으로 100만 건 이상의 채팅 기록과 API 키, 서버 내부 파일 등이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 기반 사이버 보안업체 위즈(Wiz) 연구팀은 “포트 8123/9000을 통해 SQL 쿼리로 딥시크 내 민감 정보 추출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딥시크는) 급격한 성장은 이뤘을지 몰라도, 보안 인프라 투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통신보안 법체계 또한 보안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중국의 데이터보안법은 “핵심 정보 기반 시설 운영자가 수집하거나 생성한 중요 데이터는 반드시 국내(중국)에 저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해당 데이터를 요구할 경우, 기업은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구조다. 딥시크가 과거 틱톡의 사례처럼 중국의 국가 이익에 유리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의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을 위한 ‘트로이 목마’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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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 갉아먹는 '가짜노동' 만연, 한국 노동생산성 OECD 최하위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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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시간만 긴 대한민국, 근무시간 27% '딴짓'
출근 후 잡담·웹서핑·담배타임으로 시간 허비
기업 경쟁력 갈수록 뒤처져, 노동개혁 급선무

시간 때우기 관행이 직장 문화로 뿌리내리면서 대한민국이 가짜노동 천국으로 전락했다. 직장인들 스스로 '나는 월급 루팡(일은 안 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근로시간이 길건 짧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30%가량이 가짜노동 시간으로 집계됐지만 나머지 70%도 진짜노동 시간이라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근태 관리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리에 밀렸고 근속 연수만 채우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낙오하지 않으려면 그 어떤 개혁보다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직장인들의 가짜노동 현실

10일 HR(인사관리)업계에 따르면 20~50대 직장인들이 업무와 관련 없는 잡담, 개인 용무, 웹 서핑, 취미 활동 등에 쓰는 시간은 근무시간 중 평균 2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이 1,872시간인 점을 고려하면 무려 505시간이 가짜노동인 셈이다. 총 근로시간에서 가짜노동을 뺀 1,367시간으로 보면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의 만 19~6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가짜노동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비슷하다. 조사 결과 70%가 넘는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가짜노동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매우 체감한다’는 27.9%, ‘어느 정도 체감하는 편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43.8%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 내 익명 게시판에는 업무시간 중에도 수시로 업무와 무관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목격한 가짜노동의 사례로는 ‘근무 시간에 빈둥거린다(41.6%)’가 가장 많이 꼽혔다.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을 오래 한다(41.0%)’ ‘실무보다는 보고나 검수만 한다(38.6%)’ ‘중요하지 않은 일을 꾸며내서 일한다(35.9%)’ 등의 응답도 있었다. 이어 ‘솔직히 들키지만 않는다면 가짜노동을 하고 싶다’란 질문에 20대는 48.5%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30대는 48.0%, 40대는 35.0% 50대는 29.0%, 60대는 19.0%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공무원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해 논란이 된 게시물/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출장 신청 내고 카페 돌아다닌 공무원

가짜노동은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ørmark)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이 제시한 개념으로,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과 유사하지만 노동이 아닌 활동, 무의미한 업무’ 등을 포괄한다.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노한동 작가는 자신의 저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공직사회에서 가짜노동은 만연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뿌리 깊게 퍼져 있다”고 짚었다. 가짜노동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짜 해야 할 일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가짜노동은 공기업·사기업을 가리지 않으며 국적도, 남녀 차이도 없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스탠포드 연구원 예고르 데니소프-블랜치(Yegor Denisov-Blanch)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5만 명 이상의 직원의 작업을 평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미국 직장 내 개발자를 분석한 결과 9.5%가 '유령 개발자', 즉 가짜노동 직원으로 분류됐다. 데니소프-블랜치는 이들이 팀에 부담을 주고 회사 자원을 낭비하며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막는 행위를 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초 양주시의 한 9급 공무원 A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출장 신청서 사진을 올리며 식당, 카페 등을 돌아다녔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A씨는 사진과 함께 “월급 루팡 중”, “출장 신청 내고 주사님들이랑 밥 먹고 카페 갔다가 동네 돌아다님”이라며 허위 출장을 간 것처럼 썼다.

A씨는 또 개발제한구역 내 건축 사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공문도 촬영해 올렸다. A씨는 ‘보내는 이’가 양주시청으로 돼 있는 문서들과 함께 “짓지 말라면 좀 짓지 마라”며 “왜 말을 안 듣는 것인가. 공들여 지어놓은 것들 어차피 다시 부숴야 하는데”라고 했다. 이어 그는 “아니 무슨 맨날 회식을 하느냐”며 팀 회식 안내문을 찍은 사진도 올렸다. 이 안내문에는 ‘받는 사람’의 소속과 실명이 그대로 노출됐다. 허위 출장에 따른 근무지 이탈과 출장비 부당 수령 등은 사실일 경우 징계가 가능한 사안이다.

‘월급 루팡’ 양산 임금체계 바꿔야

더 큰 문제는 이런 가짜노동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2023년 기준 OECD 국가별 시간당 노동생산성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시간당 44.4달러로 38개국 가운데 33위다. 지속적 혁신은 있었지만, 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은 부족했다는 의미다.

한국이 가짜노동 천국이 된 데는 합법적인 근태 관리를 프라이버시 침해로 보는 시각도 한몫하고 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시간을 체크하는 선진국 기업들과 대조적이다. 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 관계자는 "독일 직원들은 근무시간 중에 허투루 쓰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했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343시간으로 OECD 34개국 중 가장 짧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68.1달러로, 미국(77.9달러) 다음으로 높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은 가짜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업무에 세부적인 제한을 두기도 한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15~30분 내로 끝나는 스탠드업 미팅을 도입하는가 하면 주간·월간 보고를 비대면 문서나 슬랙(slack) 등의 협업 도구로 대체했다. 아마존은 파워포인트 보고를 금지하고, 6쪽 이내 서면 문서만 사용한다.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노동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간 많은 기업이 호봉제를 바꾸거나 근태 관리 강화를 시도했으나 기존 관행 유지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특히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호봉제는 노사 갈등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내 기업의 80% 이상이 이를 유지하고 있다. 호봉제는 성과나 능력, 직무, 역할과 상관없이 해가 바뀌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른다. 근로자들 사이에 '근속연수만 채우면 된다는'식의 시간 때우기 인식이 팽배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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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대상→판매 상품, 테슬라 주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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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휴머노이드 제조 분야 인재 채용
“10조 달러 이상 수익 창출” 자신감
독주 체제 막아설 경쟁자 등장할까

인공지능(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전환점에 들어섰다.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던 데서 본격적인 양산 시대가 열리면서 상용화 또한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나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가 10조 달러(약 1경4,50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TSMC 등 반도체 업체와도 긴밀 협력

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투자전문 매체 모틀리풀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지난달 24일 진행한 테슬라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우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노동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며 “(옵티머스는) 10조 달러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능력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간 테슬라는 순수 전기차 제조에 주력해 왔지만, 앞으로는 AI 기술에 기반한 로봇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머스크 CEO는 오래전부터 테슬라의 미래가 휴머노이드 로봇에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 회장과 만나 AI 칩 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당시 머스크 CEO는 웨이저자 TSMC 회장과 회동해 테슬라 자체 개발 칩 도조(DOJO)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조는 테슬라 자율주행 자동차가 수집하는 데이터와 영상자료를 활용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훈련하는 AI 슈퍼컴퓨터다.

업계는 머스크 CEO가 옵티머스 AI 훈련에도 도조를 활용할 것으로 관측했다. 웨이 회장 역시 머스크 CEO와의 만남 직후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기업가가 나에게 ‘자동차가 아닌 다기능 로봇에 노력하고 있다’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웨이 회장은 “칩을 공급해 줄 기업이 없는 데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비용 문제만 해결된다면 TSMC는 얼마든지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슬라 또한 공식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옵티머스의 작업 수행 영상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기술 고도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진과 영상에서는 옵티머스가 기본적인 물체 이동과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다만 상용화 일정이나 생산 비용 등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줄곧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테슬라 공장에 우선 투입 계획

그러나 올해부터는 대규모 채용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변화가 포착됐다. 테슬라는 이달 초부터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의 옵티머스 대량생산을 위해 12가지 직무에 대한 제조 부문 채용을 진행 중이다. 제조 엔지니어링 기술자, 제조 품질 기술자, 제조 공정 기술자, 생산관리자 등이 채용돼 옵티머스 생산에 투입된다. 테슬라가 딥러닝 등 연구개발 부문 이외에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 분야의 인재를 채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테슬라는 올해 최대 1만 대의 옵티머스 로봇을 제작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초기에 생산된 로봇은 테슬라 공장에 우선 투입, 차체 프레임을 운반하는 등 단순 반복 노동에 사용된다. 기업 등 외부 판매는 내년께로 예상된다. 현재 테슬라는 옵티머스 대량생산을 위해 관련 부품사에 부품 점검 지침을 내린 상태이며, 매년 10배씩 생산량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판매 가격도 윤곽이 드러났다. 머스크 CEO는 최근 한 행사장에 “옵티머스가 연간 100만 대 이상 생산되는 시점에 원가는 2만 달러(약 2,900만원) 아래로 내려올 전망”이라면서 “가격이 다소 높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며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슬라 차세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2세대'/사진=테슬라 유튜브

단순 기술 시연에서 양산·공급 단계로 전환

20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회의적 시각이 주를 이뤘다. 수십 명에 달하는 엔지니어가 길게는 몇 달을 매달려야 겨우 한 번의 시연을 성공할 정도로 기술적 난제가 많았던 탓이다. 테슬라의 적극적 움직임이 있기 전까지 대부분 기업과 연구소가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렀던 이유기도 하다.

테슬라는 남다른 전략을 세웠다. 전기차 생산에서 구축한 자율주행 기술(FSD)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개발 속도를 높인 것이다. 그 결과 2022년 첫 로봇 시연 때 쏟아졌던 혹평은 하나씩 지워졌고, 지난해에는 “실전 투입도 가능하겠다”는 평가에 도달했다. 테슬라는 “단순히 뛰어난 로봇을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고 품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로봇을 공급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최첨단 기술을 구현해 내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 진짜 ‘시장’이 열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재권 에이로봇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테슬라는 로봇을 단순한 연구 개발 대상이 아닌 실제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으로 본다”고 진단하며 “AI와 배터리, 데이터 등 모든 전략을 총동원해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테슬라의 발걸음이 매우 빠른 만큼 향후에도 지금과 같은 독주 체제가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대항마가 출현할 것인지가 로봇 산업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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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부진' LG CNS, 고평가된 공모가가 하방 압력 더해

'주가 부진' LG CNS, 고평가된 공모가가 하방 압력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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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첫날부터 주가 미끄러진 LG CNS, 하락세 지속
IB 업계 "대형 증권사들 압박에 공모가 고평가돼"
높기만 한 코스피200 진입 장벽, M&A로 승부수 띄워야

올해 기업공개(IPO) 공모주 시장의 대어로 꼽히던 LG CNS의 주가가 상장 이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모가 고평가로 인해 상장 직후 물량이 대거 쏟아져 나오며 주가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모가 밑도는 LG CNS 주가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LG CNS의 주가는 상장 첫날이었던 지난 5일부터 계속해서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상장 첫날이었던 5일 LG CNS는 공모가(6만1,900원) 대비 9.85%(6,100원) 하락한 5만5,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2.26% 낮은 6만500원에 형성됐다. 장 초반 한때는 주가가 6만1,900원을 터치하기도 했지만, 이내 수십만 주에 달하는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며 하방 압력이 심화했다.

상장 다음 날인 6일에도 주가는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6일 LG CNS는 직전 거래일 대비 3.4% 상승한 주당 5만7,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준수한 지난해 실적이 발표되며 주가가 소폭 상승했지만, 공모가 수준으로 주가를 회복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호실적으로 인해 발생했던 미약한 상승세마저도 금세 힘을 잃었다. 지난 7일 LG CNS는 전 거래일 대비 0.87% 하락한 5만7,200원에 거래를 마감했으며, 10일 오후 2시 47분 기준 5만6,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공모가 고평가'가 화근

이를 두고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청약에서 이미 LG CNS 주가 하락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짙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LG CNS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2,059곳 중 6개월 의무보유를 확약한 기관은 단 52곳에 그쳤다. 의무보유 확약은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정으로, 확약 기관이 적을수록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수록 장기 보유 확약을 걸고 물량을 추가로 배정받는 기관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LG CNS의 공모가 산정 과정이 '인위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들이 줄줄이 LG CNS의 상장 주관사로 이름을 올린 가운데, 수요예측 참여 기관들이 주관사들로부터 압박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것이다. LG CNS의 상장 대표 주관사는 KB증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등 3개사며, 공동 주관사는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JP모건 4개사다.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시장에 물량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 IB업계 관계자는 "공모 가격 자체가 과도하게 높은 수준에 형성되면 주가 상승 기대가 사라지며 상장 초기부터 물량이 과도하게 풀리고, 결국 주가가 미끄러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LG CNS는 재무적 투자자인 맥쿼리PE의 엑시트(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높은 가격을 고집해 상장을 강행했다”며 “현재의 주가 하락세는 '거품'이 빠지며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주가 상승 동력은 어디에

시장에서는 향후 LG CNS가 주가 상승을 위해서라도 매년 6개월마다 리밸런싱되는 코스피200 지수 진입을 노릴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흥행에 실패한 LG CNS에 있어 코스피200 지수의 진입 장벽은 상당히 높다. 최근 강화된 특례 편입 요건에 따르면, 코스피200 지수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유동시가총액이 코스피200 지수 종목 50위의 시가총액 50%를 15거래일간 웃돌아야 한다. 현재 50위 종목인 대한항공의 시가총액은 8조6,900억원 수준이다. 유동시가총액이 1조5,797억원에 달하는 LG CNS는 지금보다 2.75배 상승한 주가를 장기간 유지해야 코스피200 지수에 진입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LG CNS가 M&A 움직임을 본격화하며 사업 재투자에 나설 경우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LG CNS는 지난해 12월 증권신고서를 통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절반이 넘는 약 3,300억원을 DX(디지털 전환) 기업 인수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현신균 LG CNS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달 IPO 기자간담회에서 “(M&A) 영역과 지역에 대해서는 보고 있는 부분이 있으나 이 자리에서 자세히 언급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며 “다만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 깜짝 뉴스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업계에서는 LG CNS의 M&A 행보에 대한 추측이 쏟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LG CNS가 DX 전문 회사나 AI 소프트웨어 분야의 회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며 "이 밖에도 매출 비중이 높은 스마트 엔지니어링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물류 해외 공장·물류 자동화 기업 인수에 나설 수도 있고,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인공지능(AI)이나 물류 로봇 관련 분야에서 M&A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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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스타게이트도 잡음투성이인데" 韓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 순항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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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 공모 중
美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유사하게 'AI 인프라 확충'에 초점
재원 조달, 수자원·전력 공급 등 난관 산적
송상훈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 AI컴퓨팅 센터' 구축 사업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가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 개시를 위한 밑 작업을 본격화했다. 향후 민관 합작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등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협력, 거대 AI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해당 사업에 대한 의구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취지가 유사한 미국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가 발표 직후부터 잡음을 빚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 역시 유사한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 '시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국가 AI컴퓨팅 센터 구축 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23일부터 본격적인 사업 공모가 시작된 가운데, 국내외 기업의 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상세한 안내를 제공하기 위한 자리였다. 설명회에는 과기정통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한국전력공사 등 정부 기관 관계자가 자리했으며, 이 밖에도 네이버와 카카오, SK텔레콤, 삼성SDS 등 300여 명의 국내외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국가 AI컴퓨팅 센터는 국가 차원에서 거대 AI 모델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마련해 기술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사업으로, 민간의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고 기술·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이 49%, 정부가 51% 지분을 갖는 합작 SPC를 설립해 올해 중에 서비스를 조기 개시하고, 2027년까지 센터 개소를 완료할 예정이다. SPC의 경영은 전문성을 추구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이뤄진다.

사업 공모에 참여하고자 하는 민간 기업은 이달 28일까지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 참여 계획서 작성 지침과 평가 기준 등 세부 사항을 담은 공모 지침서는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에만 제공된다. 이후 정부는 6월부터 기술 및 정책평가를 진행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금융 심사를 통과한 기업과 함께 이르면 9월 내로 SPC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美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닮은꼴'

시장에서는 정부의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이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유사하다는 평이 나온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발표한 5,000억 달러(약 725조원) 규모의 AI 투자 프로젝트로, 챗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AI와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그룹,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주도로 AI 합작 회사 스타게이트를 설립해 데이터센터 등 미국 내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오픈AI는 미국 내 16개 주에 데이터센터 건설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크리스 리한 오픈AI 글로벌 정책 부사장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공개 후 일주일도 안 돼 각 주에서 제안 요청서를 보내왔다”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국가의 일부를 재산업화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지능 시대에 ‘아메리칸드림’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AI에 따르면 현재 데이터센터 건설을 고려하고 있는 주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메릴랜드, 네바다, 뉴욕 등 16곳이다. 오픈AI는 이미 텍사스주의 작은 도시 애빌린에 첫 번째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며, 향후 몇 달 동안 순차적으로 추가 건설 부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CNBC 보도에 의하면 오픈AI는 총 5~10개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각 데이터센터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한계

문제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재원 조달 방법이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은 프로젝트에 즉시 1,000억 달러(약 145조2,700억원)를 투입하고, 향후 4년간 최소 5,000억 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금을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등 업계의 유력 관계자들은 스타게이트 주주사들이 약속한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해 수자원 사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오픈AI가 새로 설립할 데이터센터가 하루에 100만~400만 갤런에 달하는 물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건설되면 해당 지역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는 점 역시 문제다. 일반적으로 데이터센터 시설은 일반 상업용 사무실 건물보다 제곱피트당 최대 5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출발 지점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 가운데, 국내 업계에서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유사한 취지를 띠는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에 대한 우려 역시 확대되는 추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픈AI 등 압도적인 시장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참여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도 순항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이 소규모로 유사한 사업을 만든다고 해서 시장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 결국 국가 AI컴퓨팅 센터 사업도 언젠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직면한 난관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국내 AI 시장은 '보이는 것'에 치중한 지원 사업이 아닌 내실 다지기가 필요한 때"라며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인프라 확충 사업이 아니라, 인력 양성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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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석연료 시대, 원전 18년 만에 최대 발전원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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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국내 총 전력 거래량 54만9,387GWh
원전 발전 비중, 2009년 이후 가장 높아
2038년, 원전 비중 35.1%까지 상향 전망
한국형 원자로인 신한울 1·2호기/사진=한국수력원자력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전력 거래량에서 가장 비중이 높았던 발전원이 ‘원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을 제치고 원전이 1위 발전원으로 등극한 것은 18년 만에 처음이다. 원전 생산 전기가 차지한 비중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원자력, 18년 만에 전기 일등 공신으로

10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전력 거래량 54만9,387기가와트시(GWh) 중 원전이 생산한 전기 비중은 32.5%로 가장 높았다. 액화천연가스(LNG)가 29.8%, 석탄이 29.4%, 신재생이 6.9%로 뒤를 이었다. 특히 지난해 원전 발전 비중은 2009년(34.8%)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았다. 원전이 최대 발전원이 된 것도 2006년 이후 18년 만이다. 지난 2007~2023년 비중 한국의 최대 발전원은 줄곧 석탄이었다.

원전 발전 비중은 2000년대 중반까지 40%대를 유지했다가 LNG와 신재생 발전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30%대로 내려왔다. 이후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높이는 방향의 에너지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23.7%까지 내려갔다가, ‘탈원전 폐기’를 내건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그 비중이 30%대로 높아지는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원전 발전 비중이 커진 것은 새 원전 1기가 추가로 투입됐고, 전체 원전의 가동률도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4월 신한울 2호기가 새로 상업 운전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전체 가동 원전이 총 26기로 늘어난 것이다. 또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조사 결과 작년 원전 이용률 역시 83.8%로 2015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원전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했다는 뜻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원전, LNG,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각각 1.0%포인트(p), 1.6%p, 0.7%p 증가했다. 반면 탄소중립 전환 차원에서 사용을 억제하려는 석탄 비중은 3.5%[ 줄어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같은 화력발전에 해당하지만 석탄보다는 탄소 배출이 적어 청정에너지로 구분되기도 하는 LNG 발전 비중은 작년 29.8%로 사상 처음으로 석탄 발전 비중을 추월하기도 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의 원전 발전 비중은 순차적인 신규 원전 투입에 따라 더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반영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정안에서 원전 2기 추가 건설을 전제로 2038년 발전량 중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각각 35.1%, 29.2%로 제시했다.

글로벌 원자력 발전, 올해 사상 최대 생산 전망

원자력 발전량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40개국 이상이 에너지 시스템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파티 비롤(Fatih Birol) IEA 사무총장은 "현재 70GW 이상의 새로운 원자력 발전 용량이 건설 중이며, 이는 지난 30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IEA는 세계 원자력 발전이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3년 말 기준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설비용량은 364GW 를 기록했으며, 2023년 발전량은 2,602테라와트시(TWh)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2020년 9.2%였던 세계 전력 생산 중 원자력 발전 비중도 2024년 10%로 확대됐다. 이어 IEA는 원자력 산업 투자가 2030년까지 연간 750억 달러(약 109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63기의 원자로가 건설 중이며, 완공 시 70GW의 추가 발전 용량이 확보된다.

IEA는 프랑스와 일본의 원전 재가동, 중국과 인도의 신규 원전 가동이 이러한 증가세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체 세마포(Semafor)는 "데이터센터의 24시간 전력 수요 증가로 민간 기업의 원자력 발전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의 에너지 수요 급증과 인공지능(AI) 시대의 탈탄소화 요구가 원자력 확대를 이끌고 있다"고 짚었다.

가동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1~4호기/사진=한국수력원자력

K-원전 르네상스 기대

이 같은 원자력 발전 확대 추세는 우리 기업들에 있어 호재로 인식된다.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원전을 수출한 나라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에 우리나라까지 단 6개국뿐인데, 러시아와 중국이 서방 원전 시장에서 퇴출당한 현실에서 남은 국가는 4개국이고,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를 제외한 국가로 따지면 핵무기가 없는 나라 중 원전을 수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캐나다가 유일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 및 운영 능력은 전 세계적으로 입증받고 있다. 1978년 원전을 도입한 후 50여 년간 국내외에서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며 기술력을 축적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서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정해진 시간에 짓는다는 뜻)’ 능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체코 원전 사업 입찰에 참여한 주요국 원전 기업 중에서도 한국수력원자력은 발주사가 정한 일정을 준수한 유일한 입찰 참여사였다. 경쟁사들이 입찰서 제출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한수원만 유일하게 일정대로 입찰서를 제출했다. 한국과 1만㎞ 떨어진 체코와의 지리적인 거리로 인한 변수를 대비해 입찰 마감 사흘 전 담당 직원이 입찰서 원본을, 이틀 전에는 황주호 사장이 복사본을 갖고 따로 체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상치 못한 만약의 가능성을 대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체코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개적으로 “한국 친구들은 입찰서 제출도 ‘온 타임 온 버짓’의 능력을 보여줬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동안 멈췄던 국내 기업들의 원전 건설 공사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초 미국 업체와 함께 불가리아 신규 원전 건설 공사를 따냈다. 한국형 원전 수출은 아니지만, 글로벌 원전 시장이 다시 열리면서 끊겼던 일감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원전 건설 사업은 주기기(원자로·스팀발생기·터빈) 부문과 건설 부문으로 나뉘는데, 건설 부문이 통상 50~60% 정도를 차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정부는 원전 생태계 복원을 넘어 원전 최강국 도약을 위해 수출 포트폴리오를 대형 원전, 원전 설비, 서비스로 다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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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공사비에 정비업계 비상, 서초 메이플자이도 ‘4,900억원 증액’ 소송전 돌입

치솟는 공사비에 정비업계 비상, 서초 메이플자이도 ‘4,900억원 증액’ 소송전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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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9,300억원→1조4,000억원 요구
조합 “증액분 지급 근거 부족” 거부
줄 잇는 소송, 시공사 지위 박탈 사례도

입주를 불과 넉 달 앞둔 서울 서초구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가 재건축 공사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공사인 GS건설이 4,900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용승인 등 향후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는 탓이다. 총 3,307가구 규모의 메이플자이 입주가 지연될 경우, 인근 임대차 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조합과 GS건설은 서울시에 중재를 요청하고, 한국부동산원에 추가 공사비 검증을 요청한 상태다.

‘만일의 경우’ 대비한 조합, 현금 마련 돌입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지난해 12월 총 4,86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메이플자이 재건축 조합 측에 요청했다. 공사비 추가 명목은 설계변경·특화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288억원, 사업계획·기간 변경 및 건설환경 변화(금융비용 등)에 따른 공사비 2,571억원 등이다. 착공 전 물가상승분 310억원과 건설환경 변화에 따른 공사비 반영분 967억원, 사업기간 증가에 따른 금융비용분 185억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GS건설은 이 가운데 금융비용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571억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에 공사대금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증액분에 대해 조합이 ‘공동사업시행 협약서’에 반하거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GS건설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설계변경 및 특화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2,288억원에 대해서는 조합 측이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요청했다. GS건설은 지난해 10월 같은 명목으로 1,234억원을 요청했지만, 불과 두 달 후 세부내역을 제출하면서 이를 2,288억원으로 증액했다.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 측에서 요청한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조합은 상가 통매각을 추진하고 나섰다. 향후 공사비 추가 부담 의무에 따라 자칫 입주 일정이 변동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현금을 확보해 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합은 지난달 6일 근린생활시설(상가) 일반분양분 일괄매각 공고를 냈다. 상가 총 213호 가운데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 59호를 한꺼번에 매각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들 점포는 보름가량 진행된 1차 매각에서 유찰돼 현재 2차 입찰을 추진 중이다.

빛바랜 속도전, 입주 일정 준수도 불투명

잠원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올림픽대로, 반포대교 등 주요 인프라를 품은 메이플자이 재건축은 지하 4층~지상 35층 총 29개동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사업 초기 빠른 속도전으로 눈길을 끌었다. 통상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부터 착공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게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해당 단지는 2016년 조합 설립부터 사업시행계획인가까지 불과 1년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7년 유예를 마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등 굵직한 과제도 존재했으나, 2,9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은 이 같은 주요 사안에서 매번 큰 의견 충돌 없이 뜻을 모으면서 “재건축 사업의 가장 큰 적인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21년 10월에는 기존 단지를 철거하며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2023년 GS건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빠른 사업 진행에 제동이 걸렸다. 2017년 사업시행계획인가 직후 시공사로 선정된 GS건설은 공사비 9,300억원으로 조합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원자잿값과 인건비 폭등, 설계 변경 등으로 약 5,0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조합 측에 공사비를 1조4,00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은 계약 당시 도급 계약 체결부터 착공 전까지의 물가 상승률만 공사비 증액분에 반영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GS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공사 중단 우려에 따른 조합원들의 불안이 커지자, 종전 계약 금액에서 1,980억원(21%) 오른 1조1,332억원의 공사비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남은 공사비 증액분 3,180억원에 대해서는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통해 확정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사비 검증이란 시공사가 부당하게 공사비 인상을 못하도록 공공기관인 부동산원이 적정성을 검토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 부동산원은 설계 변경으로 인한 추가 공사비 3,180억원 중 2,186억원이 적당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 부분과 금융비용 등 1,800억원에 대해서는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은 상태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초구 일대 임대차 시장에도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잠원동 한 공인중개사는 “통상 한 집이 이사를 하면, 서너 가구가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3천 가구가 넘는 메이플자이의 입주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이 근처 1만 가구가 영향권에 놓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건설공사비지수 7년 만에 42% 급등

공사비를 둘러싼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은 비단 메이플자이만의 일이 아니다. 철근과 콘크리트 등 핵심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인건비마저 급등하면서 건설사들의 부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강남권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디에이치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해당 단지는 시공사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를 1조4,000억원가량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기존 546만원 수준이던 3.3㎡당​ 공사비를 829만원으로 높여 줄 것을 조합 측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기록적인 물가 상승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연평균 건설공사비지수는 151.94로 2017년(107.05) 대비 약 42% 뛰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재료, 장비, 노무 등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다. 연평균 건설공사비지수 상승률은 2017년 5%를 기록한 뒤 안정세를 보였지만, 2021년과 2022년 각각 11% 수준으로 급등했다.

각각 협상단을 구성한 현대건설과 조합은 이른 시일 내 공사비 협의에 돌입할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비 변동의 가장 큰 원인은 물가 인상과 설계변경”이라고 짚으며 “근래 인플레이션이 일시에 터지면서 물가가 통상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상승했고, 착공 전 도면 역시 인허가를 진행 중 변경됐다”고 공사비 증액 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주요 정비사업지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시공사를 변경하는 단지까지 등장했다. 래미안트리니원(반포주공1단지 3주구)이 대표적 사례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당 단지 시공사 지위를 일방적으로 박탈했다며 조합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18년 7월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은 이후 1년 넘게 특화설계와 공사비 등에서 조합과 뜻을 모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조합 내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우협 지위 박탈 추진 움직임이 일었고, 결국 2019년 12월 시공사 선정 취소 건을 가결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해당 재건축 사업을 시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행이익) 411억원을 배상해 달라고 소를 제기했다. 이후 1심 재판부가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조합이 164억4,062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양측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소송은 장기전에 들어섰다. 조합 측은 “시공사 선정 후 본계약 협상 전 계약이 파기된 경우”라고 짚으며 “우협 선정을 법률관계 성립으로 볼 수 있는지, 성립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정비업계는 이번 소송전의 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빈번해진 만큼 법원의 판단이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기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변선보 법무법인 지음 변호사는 “최근 시공사와 재건축 조합 간 소송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건설사 입장에선 시공사 선정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만큼 계약 해지를 둘러싼 책임 소재와 손해배상 범위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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