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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가계대출 관리에 만전
상환능력 중심 여신관리체계 확립 강조
수요 증가 따른 월세 가격 인상 불가피
주택 임대차 시장의 월세 전환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정부가 전세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낮추는 등 가계대출 관리 강화 의지를 내보이면서다. 여기에 오는 7월부터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까지 예고돼 있어 임차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옵션은 월세 또는 반전세로 좁혀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전세 물량 감소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거품 해소를 기대하면서도, 무주택자들의 주거 불안정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내놓고 있다.
이르면 1분기 내 전세대출 보증 비율 일원화
9일 금융위원회는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경제1분야 주요 현안 해법 회의’를 열고 현행 90~100% 수준인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90%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200조원에 달하는 전세대출 시장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90~100%로 제각각인 보증 비율을 90%로 일원화하는 게 골자다.
전세대출 보증은 임차인이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을 때 보증사가 해당 대출의 상환을 보증하는 절차다. 지금까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보험은 각각 100%를 보증하고, 한국주택금융공사(HF)만 유일하게 90%를 보증해 왔다. 금융위는 3대 기관의 보증 비율을 90%로 통일하고, 수도권의 경우 시장 상황을 봐가며 추가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줄이는 ‘부분 보증제’ 도입에 관계 부처 간 의견이 모아졌다”며 “빠르면 1분기 중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또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이내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권이 분기별, 월별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과정에 스스로 내부관리용 DSR을 활용하도록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갑작스러운 대출 축소 등으로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은 예정대로 7월 시행한다고 잠정 발표했다. 상환능력 심사 중심의 여신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추후 내수나 부동산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범위 등을 미세 조정할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일관되고 꾸준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DSR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꾸준히 나눠 갚는 방식의 여신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위는 금융산업 혁신을 통해 이들이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고 새로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또한 과감하게 개선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월세, 중고 거래 등 개인 간 카드거래를 허용하고 미성년자의 카드 이용 한도를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높이는 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통화정책 변경 등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시장불안에 최우선 대응하면서 실물경제 회복과 산업 도약을 견인하겠다”고 밝혔다.
전세 물량 감소로 매매 가격 하락 효과 예상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세대출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임대차 시장의 월세 전환이 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대출에 대한 보증 비율이 낮아지는 만큼 대출기관은 부실 위험을 우려해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금리 인상과 대출 한도 축소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전세 보증금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임차인들은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낮은 월세 말고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주택 가격의 조정 또한 가시권에 들어왔다. 통상 부동산 시장은 전세 수요가 급증할 때 매매 수요 또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전세 수요 급감이 매매 감소로 이어져 종국에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전세 수요와 매매 가격의 밀접한 관계는 전세가율 추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셋값의 비율을 의미하는 전세가율은 높을수록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감정원에 의하면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전세가율은 64%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63.6%에서 출발한 전세가율은 단계적으로 올라 같은 해 6월 64%에 안착했고, 이후 꾸준히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의 상·하방 압력이 비슷한 수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가율 하락과 함께 매매 가격의 동반 하락 신호가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58.5%의 전세가율을 기록한 서울이 대표적 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을 대표하는 서울에서 가격 하락의 조짐이 보인 만큼 머지않아 전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월세 말곤 대안 없는 무주택자들, 주거 불안정 우려
한편 시장에서는 무주택자들의 주거 사다리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가격 하락 국면에서도 매매 여력이 없는 이들로선 월세가 유일한 주거 선택지인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하면서 가격 인상 또한 가팔라지고 있는 탓이다.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전월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118을 기록했다.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수도권 아파트 월세 지수 역시 119.6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렇다 보니 매달 지불하는 월세가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월세 거래도 속속 포착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에서 체결된 1,000만원 이상 초고가 월세 거래 142건에 달했다. 심지어 이 가운데 15건은 2,000만원을 넘는 월세 거래였다. 극히 일부 사례지만,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단적인 사례라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다.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도 월세 수요자들의 한숨을 깊게 만드는 요소다. 전반적인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금리가 높아지면서 월세를 찾는 세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대출도 규제하면서 임차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이제 월세 또는 반전세밖에 없게 됐다”며 “중장기적으로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확대되고,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 인상 역시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