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 경쟁] 노르웨이 가스·해저 케이블 지키는 유럽, 호위함 늘리고 수리 역량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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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가스 수입 31% 노르웨이산, 공급은 소수 거점에 집중 해저 시설 손상 대부분 사고, 보험 보상도 막혀 EU 케이블 복구 예산, 호위함 1척 값에도 못 미쳐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이 북대서양 안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해저 가스관과 통신 케이블 등 주요 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천연가스 수입에서 노르웨이산이 차지한 비중은 31%로, 2021년 24%보다 높아졌다. 노르웨이는 EU 역외 최대 천연가스 공급국으로, 지난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EU에 공급한 가스는 860억㎥에 달했다. 노르웨이 국영 가스관 운영사 가스코가 관리하는 북해 해저 가스관도 총연장 8,800㎞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안보 예산은 군함 확보에 집중되는 반면, 시설이 파손됐을 때 이를 복구하는 역량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이 배정되고 있다. 이러한 군함 중심의 예산 배분이 경제적으로 타당한지는 국방비로 줄일 수 있는 사고 손실이 투자 비용보다 큰지를 따져 봐야 판단이 가능하다. 다만 지금은 이 비교가 쉽지 않다. 북대서양 안보 투자 논의에 쓰이는 금액의 성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가 영국에 발주한 100억 파운드(약 18조원) 규모의 26형 호위함은 비용이 확정된 사업인 반면, EU가 지난달 발표한 새 북극 전략에는 예산이 정해지지 않은 사업이 많다. 해저 가스관과 통신 케이블이 파손됐을 때 발생할 경제적 피해 규모도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가스관 균열 하루 만에 유럽 가스 선물 12% 급등
유럽이 노르웨이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가운데 노르웨이 경제 역시 유럽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부와 해양자원청에 따르면 지난해 원유·천연가스·천연가스액·콘덴세이트 수출액은 1조 노르웨이 크로네(약 146조원)로, 전체 상품 수출액의 57%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스 수출이 일부 주요 시설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공급망의 취약 요인으로 꼽힌다. 노르웨이 서부 콜스네스·코르스퇴·뉘함나의 가스 처리 시설을 거친 천연가스는 북해 해저 가스관을 통해 영국과 독일로 공급된다. 북부 함메르페스트에서는 연간 약 65억㎥의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만들어 선박으로 운송한다. 노르웨이의 가스 공급망은 평상시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주요 시설 한 곳에 문제가 발생해도 전체 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실제 2024년 6월 초에는 노르웨이 해저 가스관의 배관 균열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당시 가스코는 해저 가스관과 해상 설비를 연결하는 슬레이프너 라이저 플랫폼에서 균열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뉘함나와 영국 이징턴의 가스 처리 시설 가동이 중단되면서 하루에만 5,600만㎥의 가스 공급이 끊겼다. 원자재 가격정보업체 아거스미디어에 따르면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7월물 선물 가격은 장중 메가와트시(MWh)당 34.43 유로(약 5만2,380원)에서 38.60 유로(약 5만8,720원)로 약 12% 올랐다. 외부 공격 없이 발생한 설비 고장만으로도 유럽 가스 시장이 크게 흔들린 셈이다. 설비 한 곳의 가동 중단만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만큼 주요 공급국의 수출이 장기간 중단되면 경제적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럽 가스 공급 중단 이후 각국 정부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배정한 예산은 총 6,510억 유로(약 990조원)에 달했다.

셰틀랜드 케이블 손상 원인은 어선, 보험사는 '전쟁 면책'
해저 통신 케이블 역시 가스관 못지않게 손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사고에 따른 경제적 피해 규모는 충분히 파악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케이블 보안 행동계획에 따르면 대륙 간 인터넷 데이터 전송량의 99%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달된다. 북극 해역에서도 케이블이 손상되는 사고가 잇따랐다. 2022년 1월 7일 노르웨이 본토와 스발바르제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2개 가운데 1개가 끊어졌다. 해당 케이블은 안테나 100여 개로 위성 데이터를 수신하는 스발새트 지상국과도 연결돼 있다. 노르웨이 경찰은 사고에 사람이 개입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수사를 종결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 셰틀랜드제도를 연결하는 SHEFA-2 케이블의 양쪽 구간이 모두 손상돼 섬 주민 상당수가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했다. 케이블 운영사 페로텔레콤은 어선이 케이블을 손상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두 사고 모두 고의적인 파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공격으로 단정할 근거도 부족하다. 그러나 사고를 외부 공격으로 판단하면 정부의 대응은 시설 복구보다 군사적 억지력 강화에 집중될 수 있다.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경제적 손실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도 남는다. 2022년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폭발하자 운영사 노르트스트림은 보험사 로이즈 인슈어런스 컴퍼니와 아치 인슈어런스에 5억8,000만 유로(약 8,820억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 7월 6일 운영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스관 폭발이 보험 약관의 전쟁 관련 면책 조항에 해당하는 만큼 폭발의 배후를 특정할 필요도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보험 중개사 갤러거리는 지난해 해저 고정 시설에 대한 보험에서 사보타주(고의적 파괴 행위)가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해저 시설이 파손되면 공격 주체가 밝혀지지 않더라도 보험금 지급이 제한되고, 그에 따른 손실은 시설 운영 기업과 이용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케이블 수리선 3분의 2, 2040년까지 수명 만료
해저 케이블이 손상되면 전용 수리선을 투입해야 하지만, 앞으로 수리선 부족으로 복구가 지연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저 케이블 업계 단체인 서브옵틱협회가 지난해 의뢰한 연구는 향후 10~15년 안에 수리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 시장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도 현재 운항 중인 케이블 수리선의 3분의 2가 2040년까지 수명을 다할 것으로 분석했다. 기존 복구 기간을 유지하려면 신규 수리선 15척과 예비선 5척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며, 수리선 15척을 건조하는 데만 30억 달러(약 4조62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EU의 해저 케이블 복구 관련 투자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EU는 올해 봄 발트해 케이블 수리 장비 개발에 2,000만 유로(약 304억원)를 투입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지난 6월에는 대서양과 지중해 등에서 사용할 장비 개발을 위해 4,000만 유로(약 608억원) 규모의 사업 공모를 진행했다. 발트해와 지중해에 케이블 복구 거점 2곳을 마련하는 데에도 580만 유로(약 88억원)를 배정했다. 그러나 노르웨이해나 셰틀랜드 연안의 케이블 복구를 전담할 거점은 아직 없다. EU의 새로운 북극 전략에는 북대서양과 북극 해저 케이블의 감시·보호·수리를 담당하는 거점 설치 계획이 포함됐지만, 구체적인 예산은 제시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EU가 케이블 복구 관련 사업에 배정하거나 공모한 금액은 6,600만 유로(약 1,000억원)로, 노르웨이가 발주한 100억 파운드(약 18조원) 규모의 26형 호위함 사업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24~2027년 해저 케이블 지원 예산인 5억3,300만 유로(약 8,110억원)를 포함하더라도 호위함 1척의 건조 비용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론 호위함은 해저 기반시설을 겨냥한 군사적 공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앞서 발생한 케이블 손상과 가스관 고장 사례에서 보듯 시설 피해는 어선의 조업이나 설비 노후화 등 군사적 위협과 무관한 원인으로도 발생한다. 조업 중 사고나 노후 설비 고장은 군사력만으로 예방하기 어렵고, 피해를 줄이려면 신속한 복구 역량이 중요하다. 폴란드 동방연구센터(OSW)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2030년에야 첫 26형 호위함을 인도받을 예정이다. 그때까지 북대서양에서 해저 시설이 파손되더라도 수리선이 부족하다면 복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콩스베르그 수주잔고 사상 최대, 감시 장비 투자는 제자리
유럽 방산업계의 투자와 수주도 해저 시설의 복구 역량보다는 대형 무기 체계에 집중되고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는 지난해 12월 4일 체결한 '루나하우스 협정'에 따라 영국의 26형 호위함 8척과 노르웨이의 호위함 최소 5척을 하나의 함대처럼 공동 운용하기로 했다. 영국 국방부는 노르웨이의 호위함 발주로 자국에서 4,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르웨이도 발주 금액에 상응하는 규모로 자국 기업이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양국은 자율 기뢰탐지 장비와 수중전 장비를 탑재할 함정을 공동 개발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자율 무기 체계 개발에도 협력한다.
방산 투자 확대 흐름은 노르웨이 기업의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방산업체 콩스베르그의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1,570억 크로네(약 22조9,0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연간 매출도 586억 크로네(약 8조5,380억원)에 이른다. 미사일과 방공 시스템이 수주 증가를 이끌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또한 노르웨이 의회가 2025~2036년 국방비로 1조6,350억 크로네(약 238조원)를 의결한 데 이어, 정부도 올해 3월 1,150억 크로네(약 16조8,000억원)를 추가로 배정했다. 그러나 막대한 국방 예산에도 해상 감시 장비에 대한 투자는 제한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높은 도입 비용과 빠른 기술 발전 속도를 이유로 장거리 해상 감시 드론 구매 계획을 접은 상태다. 이 때문에 국방비 증액의 혜택이 대형 무기 체계에 집중되고 해저 감시 장비와 센서망 확충은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NATO의 새로운 국방비 지출 기준은 해저 기반시설 보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NATO는 지난해 6월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의 국방·안보 관련 지출 목표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높이기로 했다. 이 가운데 GDP의 최대 1.5%는 핵심 기반시설과 통신망, 민방위, 방위산업 기반 등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각국이 해당 예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해저 케이블과 가스관을 복구할 수리선이나 감시 센서 확보에도 자금을 투입할 길이 열린다. 반면 기존 사업의 예산을 국방·안보 지출로 재분류하는 데 그친다면 실제 복구 역량은 개선되지 않는다.
예방 비용은 알지만 피해 규모는 몰라
유럽은 해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있지만, 실제 시설이 파손됐을 때 발생할 경제적 피해와 복구 비용은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국방비 지출 자체가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르웨이의 2025~2036년 국방비는 올해 추가 배정한 1,150억 크로네(약 16조8,000억원)를 더해도 연간 석유·가스 수출액의 약 2년 치 수준이다. 국방비로 지키려는 석유·가스 수익에 비하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라는 평가다. 문제는 국방비 총액이 아니라 그 예산이 실제 피해를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이느냐다. 현재 해저 케이블과 가스관의 복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는 부족하고, 고의적인 파괴 행위가 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 EU의 케이블 수리 지원 역시 군함 건조 예산과 비교하면 제한적인 수준이다.
복구 역량 부족을 보완하려면 군사적 억지력 강화와 함께 시설 복구 및 피해 분산에 대한 투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 당국과 가스코는 주요 가스관이 손상되더라도 공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체 수송 경로를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해저 케이블 운영사로서는 보험 보장 범위를 넓히거나 영국의 정부 지원 재보험 기구 '풀리(Pool Re)'와 유사한 제도 도입을 정부에 요청하는 방안도 있다. 각국 정부는 NATO가 국방·안보 관련 지출로 인정하는 GDP의 1.5%를 케이블 수리선과 해저 감시 센서 확보에 활용할 수 있으며, 노르웨이 역시 호위함 발주를 통해 확보한 자국 기업의 산업 참여 기회를 수리선 건조 사업으로 연결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모두 대형 호위함 도입보다 적은 비용으로 해저 기반시설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유럽의 북대서양 안보 투자는 군사적 위협 억제와 실제 사고 대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하지만 유럽의 국방비 규모가 적정한지, 기반시설 가동이 멈췄을 때 손실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유럽이 케이블 복구에 쓰는 자금이 군함 건조에 투입하는 예산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rctic Maritime Strategy] The Economics of North Atlantic Security: Energy, Infrastructure and Defense Investment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