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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불안에 美-日 금리 차 확대 전망까지” 40년 만에 최저치로 밀린 엔화, 감세 정책이 새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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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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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진 엔화 가치, 호네부토 방침·美 금리 상승 전망이 발목
엔화 하락에 미리 베팅한 시장, 日 당국 개입 효과도 일시적
다카이치 내각 감세 정책, 외환 시장 추가 불안 야기할 가능성

엔화 가치가 수십 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며 곤두박질쳤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재정 지출 확대와 일본은행에 대한 정책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시장 불안이 가중된 가운데,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까지 누적되며 엔화 매도 흐름이 거세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현재 일본 정부가 뚜렷한 재원 대책 없이 추진 중인 감세 정책 등이 엔화 가치에 추가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온다.

엔화 가치 하락 가속화

지난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날 뉴욕 외환 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치솟으며 장중 한때 163엔(약 1,466원)대를 돌파했다. 이는 이달 초 기록했던 최고점(162.84엔)을 웃도는 수치이자, 지난 1986년 12월 이후 3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러한 극단적 환율 변동을 야기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최근 다카이치 내각이 마련한 기본 경제재정운영 방침인 ‘호네부토(骨太, 굵은 뼈)’가 시장 혼란을 가중했다. 다카이치 내각은 호네부토 방침을 통해 정부 투자 확대 의지를 드러내고, 일본은행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도모하겠다며 일본은행의 금리 결정에 관여할 것이라는 인상을 줬다. 이에 채권 시장에선 일본 국채 매도 행렬이 일어났고, 이달 초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30년 만에 2.9%까지 뛰었다. 다카이치 내각은 이후 발표한 최종안에 주석으로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수단에 대해서는 일본은행에 맡긴다”는 내용을 추가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으나, 효과는 사실상 미미했다.

최근 재점화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 역시 엔화 가치 하락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 정부의 국방비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한 국채 발행 역시 확대될 확률이 높다. 국채 공급이 급증하면 투자자들은 불어난 물량과 재정 건전성 악화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로 더 높은 수익률(금리)을 요구하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정책금리 역시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 차질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 미국의 소비자물가 및 기대인플레이션이 동반 상승하며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어려워지는 탓이다.

이 같은 미국의 고금리 상황은 엔화 가치에 직접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의 수익률이 일본 자산보다 높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로 엔화를 조달해 미국의 채권과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확대할 유인을 갖게 된다. 엔화 매도와 달러 매수가 늘어나면서 달러당 엔화 환율은 상승하고, 엔화 가치는 미끄러지는 구조다. 이에 더해 국제유가 상승세 역시 에너지 수입국인 일본의 외환 부문 취약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에너지 수입을 위한 결제용 달러화 조달 부담과 무역수지 악화 흐름이 동시에 엔화 가치를 짓누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개입에도 투기 흐름 여전

시장에서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기 전부터 이미 엔화 가치 추가 하락을 예상하며 대규모 자금을 걸고 있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엔화 선물 포지션을 보면, 헤지펀드 등은 지난해 말까지 유지하던 엔화 순매수 포지션을 올해 2월 순매도로 전환한 뒤 엔화 약세 베팅을 빠르게 늘렸다. 투기적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지난 5월 말 11만 계약을 넘어선 데 이어, 6월 둘째 주에는 최근 수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인 14만5,800계약까지 확대됐다.

빗발치는 투기 수요 속 외환 시장 불안이 가시화하자, 일본 정부도 대응에 착수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엔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총 11조7,349억 엔(약 105조6,060억원) 규모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160엔(약 1,440원)대를 웃돌던 엔-달러 환율은 4월 30일 당국의 개입이 이뤄졌다는 관측이 확산하자 수 시간 만에 155엔(약 1,390원)대까지 밀렸고, 5월 초까지도 불쑥불쑥 강세를 보였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해당 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달러를 매도한 영향으로 읽힌다. 정확한 개입 날짜와 일별 매도 금액은 오는 8월 발표될 분기 자료를 통해 공식화할 전망이다.

다만 이 같은 방어 효과는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엔-달러 환율은 5월 말 159엔(약 1,430원) 선까지 밀려 당국 개입 직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지난달에도 160원대 안팎에서 유지됐다. 개입 효과가 소진되자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를 시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국의 구두 경고만으로는 투자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일본 정부가 어느 수준에서 다시 시장에 개입할지 가늠하는 일종의 테스트가 벌어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해 사전 경고 후 개입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입 시점을 노출하지 않는 기습적인 형태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전해진다. 정부의 개입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투기 세력이 이를 역이용해 엔화를 매도한 뒤, 당국의 시장 진입 직전에 포지션을 정리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감세 중심 물가 대책의 한계

일각에서는 향후 이러한 환율 불안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의 물가 대응 정책이 엔화 가치에 추가 하방 압력을 가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카이치 내각은 현재 8%인 식료품 소비세율을 2년 한시로 1%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지난 2월 중의원(하원) 선거 당시 다카이치 총리가 내놓은 공약의 이행을 위한 조치다. 애초 다카이치 총리는 식료품 소비세율의 한시 면제를 약속했지만, 시중 마트 등의 계산대 전산시스템(POS)상 한계로 인해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업계 쪽에서 식료품 세율을 0%로 하는 시스템 개조에는 최대 1년, 1%로 하면 반년 정도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전한 바 있다. 결국 다카이치 내각은 기존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보다 신속하게 소비세를 낮추는 방향을 택한 셈이다.

문제는 소비세 인하 이후 발생하는 세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일본 싱크탱크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식료품 소비세율을 8%에서 1%로 낮출 경우 일본의 연간 세수가 4조4,000억 엔(약 39조9,080억원) 급감하는 반면,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는 3,000억 엔(약 2조7,210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감세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만으로 세수 감소분을 보전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다카이치 총리는 적자국채 추가 발행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체 재원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정부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이 뚜렷한 재원 대책 없이 감세를 추진할 시, 투자자들은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 수준을 요구하게 될 확률이 높다. 통화 정책 정상화 기대가 아닌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경계심에서 기인한 금리 상승세는 정부의 이자 부담을 키우는 것은 물론, 일본 자산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시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와 엔화를 함께 매도하면서 국채금리 상승 및 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빨라질 위험이 있으며, 일본은행도 금리 인상보다 채권 매입을 우선시하라는 압력을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억제하기 위한 통화 긴축과 정부의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한 시장 안정 조치가 충돌하면서, 중앙은행의 환율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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