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홍해 이어 사우디 송유관까지" 전쟁發 리스크에 치솟는 국제유가, 美 물가·선거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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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 국제유가 천정부지 호르무즈·홍해 운송 나란히 차질, 우회에도 한계 있어 "인플레이션 치명타"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 행정부 '비상'

국제유가가 재차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우회 수출로인 동서 송유관까지 가동을 멈추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가중된 결과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에너지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내 물가 상승·통화 긴축 압력이 심화하며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사우디發 원유 공급 충격
14일(이하 현지시각)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1.02% 오른 배럴당 105.68달러(약 14만3,000원)에 마감했다. 10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역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장 대비 1.34% 상승한 배럴당 101.39달러(약 13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두 유종은 장중 한때 5%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이 신속히, 그리고 절박하게 (미국과의)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밝힌 뒤 상승 폭을 줄였다.
국제유가 오름세를 견인한 것은 사우디의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 결정이었다.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쪽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생산된 원유를 서쪽 홍해 연안의 얀부항으로 나르는 1,200㎞ 길이 지하 관로다. 사우디는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하루 평균 400만 배럴의 원유를 해당 송유관으로 운송해 왔다. 이는 전 세계 공급량의 약 4%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드론으로 이 송유관의 지상 펌프 시설을 타격하면서 11일부터 관로 전 구간 가동이 멈췄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최근 후티 반군과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가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감독 아래 공조를 강화해 왔으며, 이번 공격 역시 이들 세력이 사우디의 호르무즈 우회 수출로를 겨냥해 벌인 작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의 에너지 수출 여건
시장에서는 송유관 가동 중단 기간이 향후 국제유가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송유관이 수리되기 전까지 사우디는 저장 시설에 비축해 둔 원유만을 수출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물량은 얀부항에 5∼7일 치, 이집트의 홍해 연안 아인수크나항·지중해 연안 시디케리르항에 수일 치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야니브 샤 리스타드에너지 원유 시장 분석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가격 반응은 시장이 사우디 비축유가 단기적으로 수출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5~7일의 비축유 완충 기간을 넘어 중단이 지속되면 상황은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 복구 시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완전 정상화까지 5~6주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존재하는 반면, 한편에서는 수리 작업과 병행해 수일 내 부분적 양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동서 송유관이 국제유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배경에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사우디의 원유 수출 여건이 있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동부 라스타누라·주아이마 등 페르시아만 연안 터미널에서 원유를 선적한 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아시아 등 주요 시장으로 운송해 왔다. 그러나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기존 수출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동서 송유관 및 얀부항을 통한 우회 수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좁아지는 호르무즈 우회 통로
다만 얀부항 역시 완벽한 해법이 돼주지는 못했다. 얀부항은 홍해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는 통상 홍해 남단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내 상황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 7월 20일 사우디 항만과 연계된 선박을 겨냥한 이른바 '해상 봉쇄'를 선언했고, 이후 얀부·지잔을 비롯한 사우디 서부 석유 시설과 사우디 원유 운반선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해양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콘덴세이트 7일 이동평균은 3~6월 하루 570만 배럴 수준에서 7월 말 490만 배럴까지 감소했다. 동서 송유관 붕괴는 이나마의 물량 이동마저도 차단하는 치명타였던 셈이다.
일부 물량은 북쪽의 수에즈 운하와 이집트 수메드(SUMED) 송유관으로 운송되기도 하나, 이 경로 역시 대규모 대체 수단으로 쓰기는 어렵다. 수메드 송유관은 과거 실제 처리량이 하루 177만 배럴을 넘긴 적이 없으며, 얀부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를 수에즈 방향으로 우회하면 운항 거리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항로 불안은 실제 사우디의 원유 수출량 축소로 이어졌다. Kpler 자료를 살펴보면 사우디의 원유 수출량은 지난 7월 하루 약 510만 배럴에서 지난달 약 310만 배럴까지 급감했다. 이는 Kpler 집계 기준 2013년 이후 최저치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선박 추적 자료를 종합해 지난달 사우디 원유 수출량이 하루 약 300만 배럴로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730만 배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추산했다.
표1.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 경로
| 수출 경로 | 역할 | 현재 상황·한계 |
|---|---|---|
| 호르무즈 해협 | 동부 라스타누라주·아미나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기존 주력 경로 | 이란 전쟁 이후 사실상 봉쇄 |
| 동서 송유관·얀부항 | 동부 원유를 홍해로 옮기는 호르무즈 우회 경로 | 펌프 시설 피격으로 송유관 가동 중단 |
| 수메드 송유관 | 이집트 아인소크나항-지중해 시디케리르항을 연결하는 육상 우회로 | 제한적인 처리 능력으로 대규모 물량 대체 한계 |
| 수에즈 운하 | 홍해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북방 해상 경로 | 아시아 수출에 활용할 시 운송 거리·비용 급증 |
러-우크라 전쟁 '닮은꼴'
일각에서는 현 상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양상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를 주요 공격 목표로 삼아 왔다. 2024년 1월에는 발트해 연안 우스트루가 콘덴세이트 처리 시설과 흑해 연안 투압세 정유 공장이 공격을 받았고, 같은 해 볼고그라드와 일스키 정유 공장, 니즈니노브고로드·랴잔·슬라뱐스크·시즈란 정유 공장 등도 잇따라 피격당했다. 2024년 5월에는 러시아 최대 흑해 수출항 중 하나인 노보로시스크의 석유 제품 터미널이 드론 공격 이후 한때 선적을 중단했고, 6월에는 로스토프주의 노보샤흐틴스크 정유 공장과 원유 저장 시설 등이 연이어 영향권에 들었다.
지난해 들어서는 공격 범위가 가스 인프라와 송유망으로 넓어졌다. 지난해 2월에는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은 러시아 남부 아스트라한 가스 처리 공장이 연료 생산을 중단했고, 같은 해 8월에는 러시아 중부 탐보프주의 니콜스코예와 브랸스크주의 우네차에 위치한 드루즈바 송유관 펌프장이 잇달아 공격당했다. 이후 공격의 사거리는 한층 길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우크라이나가 영국산 스톰섀도 순항미사일과 장거리 드론을 동원해 로스토프주의 노보샤흐틴스크 정유 공장과 크라스노다르주의 석유 제품 저장 시설, 오렌부르크주의 가스 처리 공장을 동시에 공격했다. 지난 5월에는 아스트라한 가스 처리 공장이 다시 공격받아 화재가 발생했고, 7월에는 러시아 최대급 정유 공장이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2,000km 이상 떨어진 옴스크 정유 공장까지 우크라이나 드론에 피격당했다.
美 경제·정치 타격 전망
이처럼 전쟁 당사국들이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에너지 공급망 충격이 경제적 후폭풍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우디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의 경우, 이미 고유가로 인해 상방 압력을 받고 있는 미국 물가에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 특히 휘발유 가격지수는 한 달 새 3.9% 뛰며 전체 CPI 월간 상승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고, 에너지 가격은 전월 대비 2.1%, 전년 동월 대비 16.3% 급등했다.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27.4%, 난방유는 52.0% 각각 올랐다.
통화 정책 긴축 압력도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로이터는 "지난달 CPI 상승 폭이 예상을 웃돌면서 시장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에 한층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인해 심화한 인플레이션과 지속되는 고금리 상황이 공화당에 대한 반감을 키운 탓이다. 출구 전략 역시 안갯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중동 전쟁으로 급등한 국제유가가 중간선거 이전에는 충분히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