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도 MRO도 빨간불" 조선업 기반 무너진 美, 동맹국 생산 기반 활용해 中 해군 팽창 견제
입력
수정
美, 韓·日 등 동맹국 조선 역량 활용해 함정 조달 추진 美 조선업계 기반 쇠퇴, 선박 건조부터 MRO까지 난항 글로벌 조선업계 휘어잡은 동아시아, 中 '쾌속 질주'

미 해군이 동맹국에서 건조한 군함을 직접 조달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자국 조선소의 건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신규 함정 인도가 대거 지연된 데다, 기존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병목까지 겹치며 실제 운용 가능한 전력이 급감한 영향이다. 중국이 상선과 군함 양쪽에서 건조 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며 미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 조선업체의 생산 역량을 활용해 단기간 내 함정 부족분을 메우고 자국 조선 산업 기반을 재건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美의 함정 확보 전략
16일(이하 현지시각)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복수의 미 해군 관계자를 인용, 미 해군이 함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일본 등 동맹국에서 건조한 호위함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미국 내 조선소에 대한 장기 투자와 기술 이전을 병행하면서 더 신속하게 함정을 인도받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는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함정 수가 부족해 어쩌면 일본 호위함을 몇 척 살 수도 있다"며 "일본 함정은 훌륭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해외 건조 함정 도입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고, 외국 조선업체가 자국 조선소에서 함정을 건조해 미국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핀란드 모델’을 미 해군 조달에 확대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적용 대상은 대잠수함전·대함전·호송 임무 수행이 가능한 수상전투함, 해상 보급용 유조선(CONSOL Tanker), 로로선(Roll-On/Roll-Off Vessel) 등 최대 3개 함종이다. 다만 해외 건조 함정을 인도하고자 하는 외국 조선업체는 미국에 신규 조선소를 건설하거나 기존 미국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해야 하며, 초기 2척 이후 후속 함정은 모두 미국 내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 여기에 △미국인 근로자 채용·훈련 △본국 조선소가 보유한 건조 기술 이전 △현지 공급망 구축 등도 조건으로 제시됐다.
韓·日·튀르키예 후보로 거론
해외 건조 후보 모델로는 한국, 일본, 튀르키예의 최신예 유도미사일 호위함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1일 미 해군 전문매체 USNI뉴스에 따르면, 훙 카오 미 해군장관 대행은 윌리엄 마한 차관보에게 오는 11월 12일까지 수상전투함, 로로선, 해상 보급용 유조선 등 3개 선급에 대한 해외 평가 조사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조사의 핵심인 수상전투함 부문에서는 한국의 '충남급(울산급 배치-Ⅲ) 유도미사일 호위함'과 일본의 '모가미급 기반 수출형 차세대 호위함(New FFM·06FFM)',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급 유도미사일 호위함'이 주요 검토 대상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해군의 최신 전투함인 충남급은 경하배수량 3,600톤(t)급 규모의 함정으로,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1번함) 건조를 맡았다. 2~4번함은 SK오션플랜트가 건조 중이며, 5~6번함은 한화오션이 수주했다. 일본의 후보 New FFM은 기존 모가미급을 기반으로 선체와 무장 능력을 확대한 차세대 호위함으로, 미쓰비시중공업(MHI)이 주계약자로 건조를 맡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New FFM을 총 12척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호주 역시 같은 함형을 차기 범용 호위함으로 선정해 지난 4월 초기 3척에 대한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급은 약 3,000톤급 유도미사일 호위함으로, 자국산 군함 구축 사업인 '밀겜(MİLGEM)'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선도함 TCG 이스탄불은 이스탄불 해군조선소에서 건조돼 2024년 튀르키예 해군에 인도됐으며, 후속함들은 국영 방산기업 STM을 중심으로 복수의 현지 조선소가 건조를 분담하고 있다.
쇠퇴하는 美 조선업
미국이 이러한 동맹국의 함정 건조 역량을 활용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자국 조선 산업 기반의 구조적인 생산 능력 저하가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지난 4월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미 해군과 해안경비대의 함정 건조 사업 규모는 지난 20여 년간 일관되게 당초 계획을 밑돌았으며,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사업들도 수십억 달러의 비용 초과와 수년 단위의 납기 지연 문제를 겪고 있다. 이는 미국 조선업계의 생산 기반이 해군의 발주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약화했기 때문이다.
GAO가 미 해군 전투함을 건조하는 7개 주요 조선업체를 조사한 결과, 현재 해군이 제시한 함정 인도 목표를 충족 가능한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시설과 장비 전반이 노후화하며 생산성이 대폭 저하한 영향이다. 여기에 일부 조선소는 작업 공간이 부족해 선체 블록 등 기존에 자체 처리하던 공정을 외부 업체로 돌리고 있으며, 용접·배관·전기 등 숙련공 확보 난도 역시 높다. 숙련 기간이 5년 미만인 근로자 비중이 57%에 육박하는 조선소가 존재할 정도다. 이 같은 문제는 미 해군 함대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월 "2026~2030년 (미 해군의) 실제 보유 함정 수는 과거의 건조 속도를 유지했을 경우보다 연평균 약 20척 적을 것"이라며 "이 부족분의 상당수가 향후 중국 등 강대국과의 충돌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구축함과 잠수함"이라고 지적했다.
표1. 미국 조선업계의 구조적 한계
| 분야 | 문제 상황 |
|---|---|
| 함정 건조 | 비용 초과·납기 지연 장기화 |
| 생산 기반 | 조선소 시설·장비 노후화, 작업 공간 부족 |
| 인력 | 용접·배관·전기 분야 숙련공 부족, 경험 축적 한계 |
| 유지·보수 | 계약·점검·부품 조달 지연으로 정비 기간 장기화 |
| 전력 운용 | 수상함·잠수함 작전 이탈 증가, 가용 전력 감소 |
MRO 허점도 나날이 커져
MRO 생태계의 병목 역시 심각하다. CBO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재래식 해군 함정의 정비 지연'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 주력 전투함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계획수명 35~40년 가운데 평균 9년 이상을 대규모 정비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로 보낼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미 해군이 2012년 함급 정비 계획에서 예상했던 기간(약 4년)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함정 노후화로 인한 정비 장기화 △정비 전 점검 지연 △늦은 계약 체결 △현대화 공사 △부품·자재 조달 지연 △정비 일정 간 조율 실패 등 각종 잡음이 누적되며 MRO 체계 전반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정비 적체는 미 해군의 실제 전력 가용성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 CBO 보고서 발표 당시 작전 투입이 가능한 수상함 비중은 전체의 약 3분의 1에 그쳤다. 미 해군이 전체 수상함의 절반가량을 상시 작전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유 함정 수와 실제 운용 가능한 전력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력 공백은 잠수함 부문에서도 두드러진다. GAO에 따르면 미 해군 공격형 원자력잠수함은 2016~2025년 정비 지연과 정비 착수 대기로 총 1만5,000일 이상의 작전 가능 일수를 잃었다. 이 기간 미 해군이 임무에 투입하지 못하는 잠수함과 승조원을 유지하는 데 쓴 비용만 34억 달러(약 4조6,490억원)에 달했다.
동아시아 조선업 경쟁력
쇠퇴한 미국 조선업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건조가 완료된 선박 중 91%(총톤수(GT) 기준)는 한중일 3개국 조선소에서 나왔다. 이 중 한국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대규모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함 부문에서도 구축함과 호위함의 동시 생산이 가능한 수준의 설계·건조 역량을 갖췄다. 일본 역시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일정한 속도로 군함 생산을 이어가는 중이다. MHI와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는 총 12척으로 계획된 모가미급 호위함을 건조해 왔으며, 올해 5월 9번함 나토리, 6월에는 10번함 나가라가 잇달아 취역했다. 일본 방위성은 New FFM 12척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며, 타이게이급 잠수함과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ASEV) 건조도 병행되고 있다.
중국은 3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 기반을 확대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선박 건조량은 5,369만 재화중량톤수(DWT)에 육박했다. 이는 전년 대비 11.4% 증가한 수치이자, 세계 전체 건조량의 56.1% 수준이다. 같은 기간 신규 수주는 1억782만DWT로 세계 시장의 69.0%, 연말 수주 잔고는 2억7,442만DWT로 66.8%에 달했다. 대형 군함 생산능력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군 전문 매체 나발뉴스가 중국 해군 건조 실적을 추적한 결과, 다롄·장난조선소는 지난해 052D 계열 구축함을 최대 13척 건조했으며 이 가운데 7~8척이 연내 취역한 것으로 파악됐다. 1만 톤급 055형 대형 구축함 역시 2023년부터 이어진 2차 생산분 6척의 건조가 지난해 마무리돼 누적 건조량이 14척으로 늘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장난조선소에서 건조한 중국의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함도 정식 취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