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세·보조금 공백에 투자 급감" 흔들리는 美 전기차 산업, 차세대 배터리 승부수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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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기차·배터리, 시장 수요 위축에 투자 취소 잇따라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집중, 실질적 효과는 '안갯속' 글로벌 시장 장악하는 中 전기차, 美 공급망까지 속속 침투

미국의 전기차(EV)·배터리 사업 투자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 이후 시장 수요가 급감하자, 관련 업체들의 기존 생산 시설 확충 계획이 잇달아 철회·지연되는 양상이다. 기업들은 향후 시장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 전고체·리튬망간리치(LMR)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무게를 옮기는 추세지만, 이러한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해외 점유율 및 공급망 영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미국 자동차 산업의 입지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줄이는 美 전기차 업계
15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이 자동차연구센터(CAR)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9~2024년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직전 6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증가분 대부분은 전기차 관련 사업에서 나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기차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명백했던 셈이다. 이러한 흐름이 뒤집힌 것은 지난해였다. 미 데이터 및 정책 연구 전문 기업 아틀라스 퍼블릭 폴리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취소된 청정에너지 제조 프로젝트는 200억 달러(약 27조6,200억원) 규모에 달했으며, 취소 사업 대다수가 배터리와 전기차 제조 분야에 집중됐다. 반면 신규 사업 발표액은 약 65억 달러(약 8조9,800억원)에 그쳤다. 이는 2023년 550억 달러(약 75조9,400억원) 대비 8분의 1 수준이다.
이 같은 투자 위축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지원 축소 및 이에 따른 수요 둔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9월 말 최대 7,500달러(약 1,036만원) 규모의 신차 전기차 세액공제가 종료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4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약 23만4,000대로 전 분기 대비 46%, 전년 동기 대비 36% 급감했다. 올해 들어서도 판매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 산하 켈리블루북(KBB)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1만6,399대로 전년 동기보다 27.3% 감소했고, 2분기에도 24만7,226대로 20.5% 줄었다. 전체 신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두 분기 모두 약 5.8%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3분기 기록한 10.6%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배터리 시장서도 자금 빠져
이러한 투자 축소 흐름은 배터리 분야로 범위를 좁혀도 두드러진다. 아틀라스 자료 기준 2023년 3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미국에서 취소된 배터리 제조 계획은 누적 177억 달러(약 24조4,400억원)로, 같은 기간 발표된 전체 배터리 사업의 약 11%에 달했다. 이미 착공 및 증설에 들어간 공장으로 유입되는 자금도 줄었다. 클린인베스트먼트모니터(CIM)에 따르면 미국 배터리 제조 시설의 실제 투자 집행액은 올해 1분기 50억 달러(약 6조9,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7% 급감했고, 2분기에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며 34% 위축됐다. 이에 더해 올해 2분기 새로 발표된 배터리 제조 프로젝트는 5억 달러(약 6,900억원) 규모에 불과했으며, 상반기 전체 신규 발표액도 9억1,500만 달러(약 1조2,600억원)로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미국 업체들이 전동화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은 당장 판매가 부진한 기존 전기차와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 능력을 조정하되,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이어 가며 향후 수요 회복에 대비 중이다. 일례로 포드는 지난해 전기차 3종의 출시 계획을 취소하고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종료하는 등 관련 사업을 대폭 축소했지만, 미국 전고체 배터리 업체 솔리드파워와의 공동 연구개발(R&D) 체계는 유지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9억 달러(약 1조2,400억원)를 들여 새로운 배터리 화학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며, 2028년 적용을 목표로 기존 니켈계 제품보다 원가를 낮춘 LMR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현재와 같은 수요 환경에서는 기존 배터리 생산 설비를 선제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세제 지원 없이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대규모 증설을 늦추는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표1. 미국 전기차 산업의 수요 위축 대응
| 부문 | 주요 현황 |
|---|---|
| 투자 위축 | 전기차·배터리 프로젝트 취소 급증, 신규 투자 발표 급감 |
| 정책 변화 |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에 따른 구매 유인 약화 |
| 수요 둔화 | 전기차 판매량·신차 시장 내 점유율 동반 하락 |
| 생산 조정 | 기존 전기차 출시 취소,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 연기 |
| 기술 개발 | 전고체·LMR 등 미래 수요 확보 위한 차세대 배터리 연구 지속 |
中 전기차의 시장 질주
향후 관건은 이 같은 전략이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다. 최근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도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승용차 수출은 603만8,000대로 전년 대비 21.9% 늘었고, 지난 1~8월 누적 수출 물량은 620만 대를 넘어서며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웃돌았다. 특히 지난달 해외 출하 물량은 약 89만 대로 전년 동월 대비 67.1% 급성장했다.
특히 전기차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해외 확장을 이끄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서 판매된 중국산 전기차는 약 94만 대로 전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으며, 중국산이 유럽연합(EU) 전체 전기차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했다. 미국·유럽 이외 지역에서도 성장세는 가팔랐다. 이들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 가운데 중국산 수입차 비중은 55% 수준이었으며, 지역별 중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동남아시아에서 전년 대비 130%, 중동에서 60%, 중남미에서 55% 증가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전기차 생산 기반이 오히려 약화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7%에서 지난해 5%로 하락했으며, 생산량도 약 114만 대로 전년 대비 3% 줄었다.
美 자동차 공급망, 中 의존도 상승세
이러한 중국 전기차 산업의 영향력은 미국 자동차 공급망에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고율 관세와 규제로 중국산 완성차의 직접 진입을 차단 중이지만, 전체 공급망 차원에서는 중국 업체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상태다. 대표적인 예가 핵심 광물이다. 미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중국은 리튬·니켈·코발트·흑연 등 주요 배터리 원료의 글로벌 정제·가공 시장에서 품목별로 약 35~10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흑연 가공 분야에서는 사실상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자료상 미국은 지난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33개 핵심 광물 가운데 14개 품목에서 중국을 주요 공급처로 두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가 중국 배터리 기술 및 공급망을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포드는 미시간주에 30억 달러(약 4조1,400억원)를 들여 건설한 배터리 공장에서 CATL의 리튬인산철(LFP) 기술을 라이선스해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공장 소유권과 운영권은 포드가 보유하지만, 핵심 제조 공정은 CATL의 기술에 기반하는 구조다. GM도 미국 내 LFP 생산체계가 완성되는 2027년까지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보급형 쉐보레 볼트에 들어갈 배터리를 중국 CATL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車 시장 양극화 가능성 대두
향후 중국 전기차의 대미 공세가 한층 거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에 들어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열고 싶다면 나는 괜찮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들은 미국인을 고용한다”며 “중요한 것은 미국인을 고용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생산 시설과 고용을 미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중국 업체의 진출 자체는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현지 공장 건설이 당장 판로 확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 또는 러시아의 지배·관할하에 있는 기업이 생산한 커넥티드 차량을 2027년형 모델부터 미국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진 차량에도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러한 규제 장벽이 완화되고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경우,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양극화 흐름이 한층 뚜렷해질 수 있다고 본다. 한 시장 전문가는 "가격과 생산 규모, 배터리 조달 능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는 동안, 전동화 전환이 늦은 미국 업체들은 내연기관차 및 하이브리드차 부문에서 수익성 방어에 집중해야 할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전기차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확보한 업체와 기존 파워트레인에서 이익을 유지해야 하는 업체 사이의 사업 기반 및 성장 여력 차이가 확대되는 구조"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