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값 낮추려 러시아 손잡았지만" 트럼프 대러 제재 완화에 반발 확산, 인플레·긴축 압력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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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러 에너지 제재 완화·수입 확대 추진 우크라이나·유럽 이어 美 공화당 내부서도 반발 지속 가격 안정 효과 의문, 연준 추가 긴축 가능성 배제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산 경유 수입 확대 방침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며 가격 안정에 주력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유럽은 물론 미국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이다. 전문가들 역시 러시아산 경유 공급 확대만으로 에너지 가격을 끌어내리기는 어렵다고 보며, 일각에서는 향후 고유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세가 꺾이지 않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긴축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美, 러시아에 경유 공급 허가
11일(이하 현지시각)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서 “방금 푸틴 대통령과 매우 성공적인 협의를 마쳤다"며 "러시아가 미국 및 세계 시장에 즉시 30만 톤(t) 이상의 경유 연료를 공급하고 11월 중 추가 50만t을, 그 직후엔 100만t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러시아는 이후 자국 경유 정제 시설 상태를 고려해 단기간 내에 300만t의 경유 연료를 추가로 공급할 것”이라고 부연하고,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으로 전 세계 경유 가격이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역시 러시아산 경유의 세계 시장 공급을 허용하는 임시 일반 면허를 발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해 오던 미국이 한시적으로 거래 통로를 열어 준 것이다. 재무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산 경유의 판매와 인도, 하역, 미국으로의 수입을 포함한 수입 거래는 내년 4월 6일까지 허용된다.
우크라·유럽 줄줄이 '반기'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미국의 결정을 “전쟁을 연장하는 데 투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러 정상의 합의 직후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에 “러시아와 명확하고 지속적인 긴장 완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재를 완화하는 건 명백한 나약함이고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이는 러시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더 오래 지속하며, 미국을 더욱 가볍게 여기고, 세계에 더 큰 손실과 피해를 주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유세를 위해 테네시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그는 수많은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었음에도 어째서인지 결코 그러지 않았다"며 "협상을 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울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새 대통령을 맞을 때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거취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반발은 비단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이어졌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산 경유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는 것은 러시아가 전쟁을 치를 수입을 더 얻게 해주는 행위”라며 “지금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완화할 때가 아니며, 유럽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뒤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강조했으며, 독일 정부 대변인도 AFP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자력 방위를 위한 분투에 독일의 지원은 흔들림 없다”고 전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역시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싸움에서 누구도 우크라이나와 그 대통령을 꺾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美 내부적으로도 잡음 이어져
미국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시간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단 한 치의 양보도 해선 안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알래스카주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 역시 "고유가 문제의 해답은 미국의 에너지 주도권 확보에 있다"며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대신 알래스카의 에너지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소속의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펜실베이니아 하원의원은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차단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고 하원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산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혼란이 가중돼 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돌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에너지 휴전이 이뤄졌다”며 “즉각적으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에너지 휴전에 대해) 양측이 모두 동의했으며 이를 위반하지 말라”고 촉구하면서도, 휴전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이나 기간 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지지하며 러시아도 이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미국 측의 구체적인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 공식 입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표1. 러시아산 경유 제재 완화에 대한 각국 반발
| 구분 | 주요 입장 |
|---|---|
| 우크라이나 | 제재 완화가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늘리고 전쟁을 장기화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 |
| 유럽 | EU 차원에서 대러 압박 유지 방침 재확인, 영국·독일·폴란드도 우크라이나 연대와 지원 지속 강조 |
| 미국 공화당 |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대신 미국 내 생산 확대 주장, 러시아산 석유 구매 차단 법안 추진 |
인플레 압박 짓눌리는 美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에너지 공급망에 주목하는 것은 자국 인플레이션 압박을 해소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경유 가격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가 최근 집계한 미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갤런당 6.28달러(약 8,380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71% 높았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발 에너지 공급에 제약이 생긴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정유 시설 가동 차질까지 겹치며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 영향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경유 수출이 본격화하더라도 미국의 경유 가격이 유의미한 하락세를 기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미 에너지정책연구재단의 마이클 린치 석좌연구원은 “(미국 등이) 러시아에서 경유를 공급받는다면, 러시아의 기존 고객들은 그 물량을 받지 못하게 되고 다른 곳에서 경유를 구해야 한다"며 "그러면 결국 가격은 사실상 지금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대니얼 스터노프 선임연구원도 “경유 같은 정제 석유 제품의 공급량은 여전히 전쟁 전 수준의 절반을 겨우 넘는 정도”라며 “러시아가 세계 시장에 경유를 조금 더 공급할 시 가격 상승 압력을 다소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가격을 크게 낮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 긴축 가속화 가능성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연준의 긴축 시계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9월 소비자기대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향후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 중간값은 이미 3.9%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는 전월 대비 0.3%P 상승한 수치이자, 2023년 5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이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처럼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가운데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시, 소비자들의 물가 상승 전망이 실제 임금과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 역시 함께 커지는 추세다. 향후 5년간의 시장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미국의 5년 만기 손익분기점 인플레이션율(BEI)은 2.35%로 올해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BEI는 일반 국채와 물가연동국채(TIPS)의 금리 차이로 산출된다.
여기에 최근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인 미 국채금리도 연준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올해 하반기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미국 재정 부담 등의 영향으로 70bp(1bp=0.01%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고유가 상황 및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기대인플레이션까지 상승한 만큼, 연준으로서는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에 주력하는 상황인 만큼, 연준의 긴축 강화 행보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충돌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