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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수익성↓, 수익 모델 다각화 추세 바이든 정부 정책 기조 따라 ‘친환경 바람’ 해외 시장 겨냥한 신사업 노선 수정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목전으로 다가오며 국내 산업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현 정부와는 정반대의 정책 기조를 시사하면서 일부 기업의 향후 사업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사업에 투입되는 자금이 상대적으로 크고, 장기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는 건설 사업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주택 사업 ‘올인’ 끝났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건설사들은 수익 모델 다각화에 한창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공사비 상승까지 맞물리며 정비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진 탓이다. 주택 시장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현상 유지를 넘어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적 판단으로, 주택 시장보다 경기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에너지 사업 등에 건설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최근 리야드-쿠드미 송전선로 건설공사 수주 소식을 알린 현대건설이 대표적 예다. 해당 공사는 신재생 에너지 그리드 산업의 핵심으로 주목받는 초고압직류송전선로 사업으로, 그 규모만 1조원대에 달한다. 대우건설은 탄소 저감 조강형 콘크리트를 개발해 현장 타설에 적용한 실적을 바탕으로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탄소 저감 성과를 인정받는 ‘탄소 크레딧’ 인증을 추진 중이며, 롯데건설은 탄소 저감 기술 및 친환경 모르타르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중견 건설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분양 시장이 활성화한 지역 내 대규모 정비사업은 주로 대형 건설사들이 차지하기 때문에 중견사들은 SOC 사업 참여 비중이 큰데, 최근 SOC사업 예산이 축소되면서 수익다각화를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기존 SOC 인력을 에너지, 플랜트 등 다른 사업 분야로 분산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추세”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SOC는 정부 또는 공공단체 공급자가 제공하는 설비나 서비스 관련 시설류를 의미한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친환경 정책을 폐지하면 친환경·재생에너지를 신사업으로 추진하던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시장 진출 사업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조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폐기하는 반(反) 친환경 정책 기조를 피력한 바 있다. 친환경 에너지 설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정책 투자 축소 또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 기업의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추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보조금 등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이제 투자 초기 단계로 성과가 나오는 시기인데 미국의 정책 방향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 내에서 신재생에너지 관련 발주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시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책 방향을 지켜보고 후행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속도 붙은 친환경 체질 개선
국내 건설업계에 친환경 열풍이 분 건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2021년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탄소 중립을 수반한 100% 신재생에너지 경제를 이루기 위해 4년 동안 2조 달러(약 2,800조원)를 신재생 인프라에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친환경 체질 개선에 돌입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삼성물산은 석탄 관련 시공 및 투자를 전면 중단하는 탈석탄 방침을 전격 선언했다. 이어 주력사업인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 및 저장시설, 신재생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소형모듈원자료(SMR)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물론 플랫폼 사업,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차세대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건설은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꾸면서 친환경 사업 부문을 신설, 안재현 당시 대표가 직접 이끌었다. 안 전 대표는“ESG는 시대적 요구이자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축”이라고 정의하며 친환경 “친환경·신에너지 사업 전개로 순환경제를 실현하고 국내 사업을 기반으로 아시아 거점 국가에 밸류체인(생산·서비스 가치 창출 연결망)을 구축,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GS건설, 현대건설 등이 배터리 재활용, 태양광 발전소, 스마트팜, 자산운용 등 다양한 신사업에 적극 진출했고, 이들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채용을 진행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 노선 정해야 할 때
이처럼 대형 건설사들이 체질 개선을 서두른 배경에는 국내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있다. 주요 건설업체의 매출에서 주택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데, 이런 경우 분양 경기가 좋을 때는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시장 침체기에서는 실적에 비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건설사가 친환경 체질 개선과 동시에 해외 진출을 서두른 이유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지난 7월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 기본설계(FEED) 참여를 확정 짓고 글로벌 SMR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였다. 미국의 플루어, 뉴스케일, 사전트 앤 룬디 등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3개 사와 루마니아 SMR 사업의 FEED를 공동 진행하는 방식이다. 루마니아 SMR 사업은 세계적으로 SMR 개발에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뉴스케일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도이세슈티 지역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를 462메가와트(MW) 규모의 SMR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상업 운영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단지에 대형원전 2기를 추가로 신설하는 프로젝트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유럽 진출을 가시화했고, 대우건설은 베트남 스타레이크시티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스타레이크시티는 30억 달러(약 4조1,750억원) 규모의 장기 도시개발 프로젝트로, 2062년 완공 예정이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도 SMR 사업 확장과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적극적 행보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으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친환경산업 및 도시 재생에 적극적인 유럽과 화석연료 시대로의 회귀를 시사한 미국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최근 몇 년간 국내 건설사들이 ESG 경영, 탄소중립 등을 내걸고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해오고 있는데, 트럼프 당선인이 전면 배치되는 정책을 펼치게 되면 어느 정도 간접적인 영향은 있을 것”이라며 “결국 화석연료, 천연가스, 원전 등 전통 에너지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등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