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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 결집" 이란 밀어내는 사우디 중심 안보 연대, 역내 질서 재편 흐름에 미·중·러 셈법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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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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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 사우디 메카서 공동방위협정 체결
사우디, 외교 영향력·협정국 군사력 등에 업고 '중동 맹주' 등극할까
美·中·러시아 등 여타 주요국 중동 권력 지형도 재편 전망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이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사우디의 자금력·외교력에 튀르키예의 군사 역량, 파키스탄의 핵 억지력을 결합해 미국·이란 중심이었던 기존 중동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집트 등 역내 국가들이 추가로 협정에 참여할 경우, 해당 협정이 단순한 3국 군사 협력을 넘어 미국·중국·러시아의 경쟁 무대였던 역내 외교 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중동서 새 방위 협력 체계 등장

11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각)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 메카에 모여 '메카 공동방위협정'에 서명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이번 협정은 어떤 침략 행위에도 맞서는 집단 억지력을 강화한다"며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은 세 나라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겠다"고 밝혔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8일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 인터뷰에서 해당 조항을 두고 "기술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5조와 같다"고 설명했다. NATO 5조는 32개 회원국 중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 방위 조항이다.

세 나라는 NATO와 같은 통합 군사지휘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외교·국방장관과 군 수뇌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리고, 사우디에 상설 사무국도 두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피단 장관은 "NATO는 32개국이 모인 거대한 군사 동맹이고, 우리는 세 나라로 시작했다"며 "매우 겸손하면서, 구체적인 걸음을 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메카 공동방위협정은 '회원국 공격 시 자동 참전'을 보장하진 않았다. 피단 장관 설명에 따르면 무력 공격을 받은 나라는 필요시 다른 국가에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해야 하며, 나머지 두 나라는 위협과 피해 수준에 맞춰 군사 정보 공유, 군수 지원, 병력 투입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된다.

협정국들이 누릴 이점

협정국들은 이번 협정을 통해 각기 다른 방향성의 이익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에 있어 메카 공동방위협정은 역내 협상력과 전략적 지렛대를 강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장의 군사 협력 효과보다도 향후 사우디가 역내에서 누리게 될 외교적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앞서 사우디는 이란 전쟁 초기부터 혼란스러운 정세를 활용해 역내 지도력을 과시해 온 바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지정학적 불안을 초래하는 '위험 세력'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역내 안정의 대표 주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입지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중동 안보 질서에 보다 깊이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이미 지난해 사우디와 새로운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집트, 요르단 등 여타 중동 우방국들과도 잇달아 국방 협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이번 협정이 이전부터 카타르, 시리아, 리비아 등 우방국들에 제공해 오던 안보 우산을 확대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제 대국인 사우디와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을 같은 진영으로 끌어들여 이슬람권 집단 방위 체계를 공고히 하는 전략이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억지력을 크게 높이는 효과를 낸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최근 튀르키예를 상대로 잠재적인 충돌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압박 수위를 눈에 띄게 높이고 있다.

표1. 메카 공동방위협정 참여국별 전략적 이해

국가주요 기대 이익전략적 방향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견제와 역내 협상력 강화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하고 ‘역내 안정의 대표 주자’로 지도력 부각
파키스탄중동 안보 질서 영향력 확대걸프 국가들과 국방 협력을 강화하며 중동 안보 체계에 깊이 편입
튀르키예기존 안보 우산 강화, 이스라엘 억지력 확대사우디의 경제력과 파키스탄의 핵전력을 결합해 이슬람권 집단 방위 체계 구축
자료: 애틀랜틱 카운슬

역내 기존 질서 재편 조짐

중동의 외교·안보 질서가 변곡점에 선 가운데, 위기를 감지한 이란은 범이슬람권의 결속을 강조하고 나섰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3국이 메카에서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한 직후 소셜미디어(SNS) 엑스(X, 구 트위터)에 "이란의 강력한 군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예산을 자랑하는 군대(미군)에 맞서 만반의 준비 태세와 역량, 그리고 위용을 증명해 보였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무슬림이 하나로 뭉칠 때, 우리는 악의적인 외부 세력의 그 어떤 도전에도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면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만 의지하며 진정한 형제애를 포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협정국들을 향해 함께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력을 배척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후 튀르키예 측은 메카 공동방위협정이 이란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며, 파키스탄도 협정이 “순수하게 방어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협정의 구조와 체결 시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3국이 이란을 주요 변수로 삼아 새로운 역내 집단안보 체제를 수립한 것이라는 진단에 힘이 실린다. 사우디가 과거 추진해 온 ‘이슬람권 안보 연대’ 구상이 이번 협정을 통해 한 단계 진화했다는 평가다. 앞서 사우디는 2015년 이슬람군사대테러연합(IMCTC) 출범을 주도하고, 2017년에는 41개국이 참여한 첫 국방장관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연합은 대테러 협력을 명분으로 한 느슨한 협의체에 가까웠고, 이란과 이라크가 발을 빼면서 수니파 국가들의 반이란 연대로 성격이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

사우디 영향력 확대 가능성 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메카 공동방위협정은 회원국 간 상호 방위를 명문화하면서, 사우디 중심 이슬람권 안보 연대에 처음으로 실질적인 군사적 구속력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사우디는 오랫동안 보유해 온 경제력과 종교적 상징성을 실제 안보 영향력으로 전환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역내 질서를 주도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동안 사우디는 중동 최대 자금력을 가진 국가이자 이슬람 성지의 수호국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었지만, 역내 군사·안보 질서 방면에서는 이란의 영향력을 압도하지 못했다. 이란은 자체 군사력뿐 아니라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에 걸친 동맹·무장 세력 네트워크를 통해 국경 밖까지 영향력을 투사해 왔다. 반면 사우디는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막대한 경제력을 독자적인 역내 안보 주도권으로 연결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향후 실질적인 관건은 이러한 체제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다. 피단 장관은 이미 다른 국가들이 협정 가입 의사를 보이고 있다며 이집트를 '자연스러운 파트너'로 지목했고, 파키스탄 역시 협정이 다른 역내 국가들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비롯해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면서도 미국 안보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중동 국가들이 협력 체계에 가세한다면, 메카 공동방위협정은 수니파 주요국들을 연결하는 핵심 집단 안보 틀로 발전할 수 있다.

역외 주요국의 입지 변화

국제사회는 메카 공동방위협정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역외 주요국의 중동 내 입지에 미칠 영향에도 주목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걸프 지역에 대한 군사·전략적 개입을 대폭 확대했고, 최근까지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의 핵심 안보 보증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 외교 전문가는 "미국은 메카 공동방위협정 체결을 계기로 직접적인 병력·재정 투입을 줄이고, 사우디 등 핵심 파트너의 군사력을 강화해 역내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 등 동맹국의 군사 역량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해 온 것처럼, 중동에서도 사우디를 중심으로 지역 세력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이란을 억제하는 일종의 ‘역내 분담’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의 경우 이번 협정이 상당한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이란과 장기 전략 협력 및 에너지 거래를 지속하며, 이란을 사실상 미국 견제의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만약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계기로 중동의 안보 중심축이 미국과 오랜 안보 관계를 유지해 온 사우디 쪽으로 이동할 시, 이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하며 중국의 설 자리 역시 자연히 좁아지게 된다. 다만 중국은 향후 중동 내 세력 다툼에서 곧바로 밀려나기보다는, 이란에 대한 전략적 의존도를 낮추고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부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충격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역시 막심한 외교적 충격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러시아는 서방국의 압박에 맞서 이란을 중동의 핵심 전략 파트너로 삼아 왔지만, 이란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러한 구도를 유지하는 데 차질을 겪고 있다. 영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이란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압박과 지도부 변화가 러시아가 중동에서 구축해 온 전략적 입지를 약화했으며, 앞으로도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이 꾸준히 위축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러시아의 기존 중동 외교 전략을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사우디가 이란을 밀어내고 중동 안보 체제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경우, 러시아는 중동 내 외교 전략 자체를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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