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부터 홍해 항만까지" 호르무즈 우회로 넓히는 걸프국, 이란 전후 재건 ‘돈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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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국, 호르무즈 해협 우회 원유 수송로 확보에 박차 송유관 건설·홍해 항만 연결 등으로 운송 경로 다변화 호르무즈 '수입원' 삼으려던 이란, 전후 경제 재건 비상

걸프국들이 자체 원유 수송로 확보에 나섰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불확실성이 커지자,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을 중심으로 우회 인프라 확보에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이 같은 흐름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서비스 이용료를 부과하고자 하는 이란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 제재 △고물가 △통화가치 하락 △전쟁 복구 비용 등 경제적 압박이 나날이 가중되는 가운데, 걸프국 우회 수송망이 확대될수록 이용료 수입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외면하는 걸프국들
12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는 "걸프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송유관과 기타 인프라를 건설하거나 확장하고 있다"며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완공까지 수년이 걸리겠지만, 기업과 정부들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역내 상황에서 이를 필수적인 위험 회피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의 에너지 분석가 벤 케이힐은 NYT에 "많은 사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 비중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다시는 이 운송 요충지에 그 정도로 크게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걸프국들이 비용 효율성보다 인프라의 안정성·안보 확보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아부다비 국영 에너지 기업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최근 가스 사업 확장에 82억 달러(약 12조원)를 투입하는 한편, 동부 해안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을 신설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만만에 접한 UAE의 항구도시 푸자이라에서도 아부다비 내륙 유전에서 원유를 운송하는 기존 송유관과 나란히 신규 원유 송유관이 건설되는 중이다. UAE는 이 송유관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우회 수송 능력을 하루 360만 배럴로 현재 대비 두 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아부다비 내륙에서 생산되는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수출될 수 있다.
송유관 사업 추진 속도 빨라져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역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 확장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건설된 동서 송유관은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얀부까지 이어지며, 길이는 1,201㎞(746마일)에 달한다. 사우디는 최근 이란 전쟁 국면에서도 이 송유관을 통해 하루 약 700만 배럴의 원유를 우회 수송했으며, 현재는 하루 100만~200만 배럴의 추가 수송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걸프국 간 협력 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쿠웨이트는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과 홍해로 연결되는 신규 송유관 건설을 논의 중이며, 이라크와 요르단도 하루 최대 100만 배럴의 원유를 홍해에 접한 아카바항까지 운송하는 송유관 건설 계획을 재추진하고 있다. 장기간 지연돼 오던 인프라 확충 계획이 이란 전쟁을 계기로 속도가 붙은 것이다. 아울러 이라크는 키르쿠크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까지 수송하기 위해 파손된 송유관을 재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홍해 항만도 물류 거점으로
사우디의 홍해 연안 항만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한 핵심 관문으로 활용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선사들은 얀부·킹압둘라 등 사우디 홍해 항만으로 화물을 먼저 들여온 뒤, 이를 동부 담맘, 이라크 바스라, UAE 제벨알리 등 걸프 지역까지 트럭으로 운송하는 육상 연계 운송을 확대 중이다. 사우디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홍해 항만의 연결망을 넓히고 있다. 앞서 사우디 항만청은 지난 5월 제다 이슬라믹항과 얀부 킹파드 산업항, 이집트 아인소크나항, 요르단 아카바항을 연결하는 '레드 시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출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최대 1,100TEU급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노선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홍해 항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력 통로라기보다는, 해협 봉쇄 시 물류 이동 수요를 일부 흡수해 공급망 충격을 분산하는 보완 수단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해 자체가 안정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항로라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최근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선박 운항 위험이 다시 커지면서, 사우디 홍해 항만을 거친 화물들이 또 다른 해상 병목에 노출될 확률도 높아졌다"며 "사우디의 홍해 항만 전략은 호르무즈 리스크를 완전 상쇄하는 해법이라기보다, 하나의 해협에 집중돼 있던 위험을 항만·육로·다른 해상 경로로 분산시키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짚었다.
표1. 중동 국가들의 호르무즈 해협 우회 인프라 확충 계획
| 국가 | 주요 사업 | 핵심 내용 |
|---|---|---|
| UAE | 푸자이라 송유관·LNG 시설 | 동부 해안의 원유·LNG 수출 기반을 확대해 호우회 능력 강화 |
| 사우디아라비아 | 동서 송유관·홍해 항만 | 얀부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수송 능력 확대, 홍해 항만과 걸프 지역 간 육상 운송망 구축 |
| 쿠웨이트 | 홍해 연결 송유관 |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홍해로 이어지는 신규 송유관 건설 논의 |
| 이라크 | 아카바·지중해 연결 송유관 | 요르단 아카바항까지 신규 송유관 건설, 시리아 지중해 연안으로 이어지는 기존 송유관 재건 검토 |
이란의 서비스 이용료 구상
이러한 흐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이란 입장에서는 치명적 악재다. NYT 보도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3일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할 수 있는 항로를 담은 지도를 교환했다"며 "2~3개의 분리된 항로가 아닌 양방향 통항이 가능한 단일 항로를 오만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란 당국자들은 NYT에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는 부과되지 않겠지만, 환경 영향·보안·인력 배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이유로 서비스 이용료가 부과된다"며 "서비스 이용료는 이란과 오만이 절반씩 나눠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바가이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앞서 밝혔듯 (오만과) 교통 지도에 관한 합의는 이미 진행했고, 공동 성명과 관련한 몇 가지 기술적 사항을 논의 중"이라며 "협상이 매우 순조롭고 건설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명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안전한 선박 교통 감시 외에도 환경, 해상 서비스 제공을 위한 협력, 범죄 방지 등을 포함하는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라며 "일반적으로 해상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란 경제 사실상 '벼랑 끝'
이 같은 이란의 구상은 전후 재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서비스 이용료를 통해 연간 400억 달러(약 56조5,480억원)의 수입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며, 최근에는 화물 가치의 5~7%를 서비스 비용으로 받는 구상까지 거론된다. 이런 가운데 걸프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송유관과 홍해·오만만 방향의 대체 수송망을 확대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 내 통항량 자체가 줄어들며 이란의 서비스 수입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란 경제가 신규 수입원이 절실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4% 감소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수지도 GDP 대비 5.2% 적자가 예상된다. 세계은행 역시 이란의 2025~2026 회계연도 GDP가 이미 2.7%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점차 가중되고 있는 군사력 복구 부담까지 고려하면 향후 상황은 한층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AP가 위성 사진과 이란군 발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란은 전쟁으로 인해 미사일 저장고, 생산 시설, 혁명수비대 기지, 방공망 등 광범위한 군사 인프라에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군사 자산의 재건을 위한 재정 지출은 민간 인프라 및 산업 재건을 늦추는 요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