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관세가 물가 밀어올려" 공급발 인플레에 짓눌리는 美, 연준 9월 금리 인상 기정사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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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發 리스크 속 치솟는 국제유가, 기업 생산비 상승 견인 "아직 가격 덜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 '후폭풍' 여전 9월 기준금리 인상 전망 지배적, 추가 긴축 가능성도 제기

미국 기업들이 제품 가격 책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로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부담까지 겹치며 생산비 전반에 상승 압력이 누적된 것이다. 공급발(發)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나날이 심화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시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에너지 공급망 혼란 지속
16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이 높은 에너지 비용의 지속 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가격 책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에서 기인한 에너지 공급망 충격이 물가에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본격화한 이후,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중동 산유국들의 핵심 수출 통로가 사실상 가로막힌 셈이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에서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원유를 운송하는 동서 송유관을 우회 수출로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 송유관마저 최근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여기에 리비아 일부 유전의 생산 중단, 러시아 정유 시설을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공격 등이 겹치면서 중동 이외 지역에서도 원유 공급 여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러한 리스크 속 국제유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27일 배럴당 72.48달러(약 9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던 브렌트유는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이 시작된 직후인 3월 2일 장중 82.37달러(약 11만2,500원)까지 뛰었다. 이후 중동 지역의 원유 생산·운송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상승 폭은 더욱 확대됐고, 이달 9일에는 지난 7월 24일 이후 약 7주 만에 다시 배럴당 100달러(약 13만6,600원) 선이 무너졌다. 지난 15일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 대비 2.9% 오른 108.75달러(약 14만8,600원),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4% 상승한 105.83달러(약 14만4,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관세發 인플레이션 압력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 역시 고유가와 함께 물가 부담을 가중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7월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추가 관세 전가는 아직 진행 중(More Tariff Pass-Through Is in the Pipelin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하고, 관세가 미국 내 기업의 생산비를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부담의 약 90%는 해외 생산 업체가 아닌 미국 기업 및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연은 설문에 응한 기업 중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서비스업의 3분의 2·제조업의 거의 대부분이었으며, 이 가운데 서비스업의 40%·제조업의 70%가 지난 1년 동안 관세를 직접 납부했다고 답했다. 관세를 직접 내지 않은 기업들도 공급업체가 가격을 올리면서 수입 원자재 비용 상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세를 부담한 기업 중 이미 가격 인상을 모두 마쳤다고 답한 기업은 서비스업 약 30%, 제조업 약 20%였고, 관세 비용을 흡수하기로 결정해 추가 가격 조정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서비스업 20%, 제조업 30%였다. 반면 서비스업의 47%, 제조업의 44%는 앞으로도 가격을 추가로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비스업의 약 30%, 제조업의 약 40%는 향후 6개월 안에 가격을 추가 인상할 방침이며, 서비스업의 16%, 제조업의 7%는 6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관세를 이유로 가격을 조정할 뜻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연은은 "관세가 처음 도입된 지 1년이 넘었지만 많은 기업이 여전히 가격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관세에 따른 가격 전가는 한 번에 이뤄지기보다 1년 이상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는 최근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물가 지표 오름세 뚜렷
미국 물가 지표는 이러한 상승 압력 속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3.4% 치솟았다. 특히 휘발유 가격지수는 한 달 새 3.9% 뛰며 전체 CPI 월간 상승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고, 에너지 가격은 전월 대비 2.1%, 전년 동월 대비 16.3% 급등했다.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27.4%, 난방유는 52.0% 각각 올랐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로는 2.4% 높아졌다. 같은 달 최종수요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5.4% 뛰었다. 상품 부문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1.1%, 서비스 부문은 0.1% 상승했다.
연준이 주요 물가 지표로 활용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도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7월 PCE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고,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PCE 물가지수는 같은 기간 3.3% 올랐다. 이는 연준이 장기적으로 제시한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를 각각 1.7%P, 1.3%P 웃도는 수준이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PCE 기준 2%'가 확고한 물가 목표라고 재확인한 바 있으며,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역시 지난 3일 "7월 PCE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를 의미 있게 웃돌고 있다"고 언급했다.
표1.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
| 부문 | 주요 상황 |
|---|---|
| 에너지 압박 | 중동·리비아·러시아의 공급 차질로 국제유가 급등, 미국 에너지 가격 전년 대비 16.3% 상승 |
| 관세 압박 | 관세 부담의 약 90%가 미국 기업·소비자에게 전가, 기업들의 추가 가격 인상 전망 |
| 물가 지표 | 8월 CPI 3.4%·PPI 5.4% 상승, 7월 PCE 3.7%·근원 PCE 3.3% 상승 |
美 기준금리 상승 전망
이런 가운데 시장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5일 오후 기준 금리 선물 시장은 연준이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할 가능성을 약 91.8%로 반영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60% 안팎이었던 인상 확률이 CPI 발표 및 국제 유가 상승의 여파로 대폭 뛴 것이다. 월가 주요 투자은행(IB)들도 9월 금리 인상 전망을 속속 강화하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종전 동결 전망을 철회하고 이번 FOMC에서 0.25%P 인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금리 선물 시장에서 인상 기대가 크게 높아진 이상, 연준이 이를 뒤엎고 동결을 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국제유가 급등 역시 일부 FOMC 위원들의 긴축 성향을 강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JP모건과 HSBC, 도이체방크 역시 이번 9월 FOMC에서 기준금리가 0.25%P 상향 조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기관은 공통적으로 8월 CPI와 PPI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한 데다,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며 물가 둔화 흐름이 다시 약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모건스탠리도 15일 기존 전망을 수정해 9월 0.25%P 인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종전에는 연내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봤지만, 8월 근원 CPI가 자체 전망치를 웃도는 등 예측보다 더딘 물가 둔화 속도가 확인되자 분석 방향을 전환하는 모습이다.
향후 통화 정책 경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리 인상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최근 CNBC가 월가의 이코노미스트, 펀드 매니저, 전략가 등 29명의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는 향후 1년 안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P씩 두 차례 이상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향후 1년 안에 세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점치기도 했다. 르네상스매크로리서치의 닐 두타 경제 리서치 총괄은 "데이터 어디를 보더라도 인플레이션이 '곧' 목표치로 복귀할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는 없다"고 강조했으며, 네이션와이드의 캐시 보스트잔치치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원유, 휘발유, 디젤 가격의 재상승세는 고에너지 가격이 여타 상품 및 서비스와 기대 인플레이션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설문 응답자 대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이 최소 한 달 이상 폐쇄 상태를 유지하고, 유가 역시 6개월 이상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약 4분의 3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에너지 가격을 넘어 광범위한 경제 위험이 됐다고 평가했으며, 일부 응답자는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서더라도 고유가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잡히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러셀인베스트먼트의 더글러스 고든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금리 결정 수단을 통해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반면, 물가 안정 책무에 대한 제도적 신뢰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큰 난제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