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조작’ 의심 부른 美 바이백, 정책 신뢰 흔들리자 장기채 매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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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 장기화에 유가·물가 불안 재점화 전쟁비용·연방부채 부담 겹치며 장기채 매도 확산 정책 신뢰 약화로 미 국채시장 불안 증폭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벤치마크 노릇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돌파하면서 시장이 다시 고금리 충격권에 들어섰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유가와 물가가 들썩이는 데다 전쟁비용 확대와 누적된 연방부채가 맞물리자, 투자자들은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 재무부는 바이백(재매입) 규모를 늘려 금리 진정에 나섰지만, 오히려 정부가 금리 수준을 직접 관리하려 한다는 경계심을 키우며 정책 신뢰에 부담을 더했다. 여기에 미국의 중립금리마저 높아지는 추세여서 전쟁과 물가 충격이 완화되더라도 장기금리가 과거 수준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美 10년물 국채 금리 ‘마의 5%’ 돌파
14일(이하 현지시간)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 오전 10시 21분 기준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5.012%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 거래일보다 0.02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므로 금리 상승은 국채 가격의 하락을 뜻한다. 10년물 국채 금리 5%는 금융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시장이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년물 금리가 5%를 넘긴 것은 2023년 10월 23일(장중 5.02%)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도 5%를 상회했다.
이번 금리 상승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 재확대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공습을 재개한 데 이어 예멘의 친(親)이란 무장 단체인 후티 반군이 홍해 길목까지 위협하면서 유가 불안이 확대됐다. 다우존스는 “높은 에너지 가격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물가 둔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은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가 키운 연방정부의 재정 부담도 금리 상승을 이끌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지난 7월 의회에 밝힌 누적 전쟁비용은 375억 달러(약 50조6,060억원)였고, 미 국방부 감찰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첨단 탄약 재고 부족과 보충 생산의 병목까지 지적했다. 이미 40조 달러(약 5경3,980조원)를 돌파한 연방부채와 국내총생산(GDP)의 6%를 웃도는 재정적자에 전쟁 지출이 얹힌 데다, 9월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도 사상 최대인 2,150억 달러(약 290조1,430억원)로 예상돼 장기채 보유자가 요구하는 기간 프리미엄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장기채 매수 막아선 추가 금리 상승 우려
시장 참가자들은 이런 조건들이 단기간 내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다면, 현재의 시장 상황은 위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정상화' 혹은 '고금리 시대'로의 복귀를 의미할 수 있다고 시장 참가자들은 진단한다. 금리가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장기 채권 매수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면서,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해의 금리 상승 이전에도 국채 이자 비용은 연방 예산에서 점차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현재 미 정부의 세수 5달러(약 6,750원) 중 거의 1달러(약 1,350원)인 20%가 국채 이자로 나가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연방 이자 비용은 GDP의 평균 2.1% 수준이었다. 미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이 수치는 올해 3.3%를 기록한 뒤 2036년에는 4.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예측은 10년물 국채 금리를 4.1%로 가정해 나온 것인데 현재는 그 금리가 4.7% 수준으로 높아졌다. 금리가 전망치보다 단 0.1%포인트만 상승해도 순 이자 비용이 3,790억 달러(약 511조4,610억원)나 추가된다.

美 재무부, 장기금리 잡으려다 정책 불확실성 키워
장기금리 상승으로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자 미 재무부는 최근 국채 바이백을 확대했지만, 정부가 가격 형성 과정에 개입했다는 경계심이 번지면서 국채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커졌다. 재무부는 지난달 19일 30년물 금리가 5.34%까지 치솟자 장기채 회당 재매입 규모를 20억 달러(약 2조6,990억원)에서 최소 40억 달러(약 5조3,980억원)로 두 배 확대했고, 이달 9일 공개된 수정 일정에서는 10~20년물의 회당 재매입 한도를 60억 달러(약 8조970억원)로 제시했다. 첫 발표 직후 30년물 금리는 5.18%대로 하락했으나 진정 효과는 짧게 끝났으며, 두 번째 조치에도 시장 반응은 미미했다. 재정 여건과 국채 발행 수요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매수 주문만으로 금리를 억누르기 어렵다는 판단이 확산된 결과다.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지점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 훼손이다. 미 재무부는 그동안 국채 발행과 재매입 계획을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운용해 왔지만, 지난달에는 예정된 바이백 일정을 발표한 지 2주 만에 매입 규모를 전격 수정했다. 32조 달러(약 4경3,180조원)에 이르는 미 국채시장에서 수십억 달러(수조원대)의 재매입은 수급 판도를 바꾸기 어려운 반면, 정부가 금리 수준에 따라 거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선례는 남았다. 수급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운 조치가 시세를 관리하려는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정책당국 자체가 국채 가격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로 편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책 신뢰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미국의 중립금리 상승도 장기채 매수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5월 미국의 명목 중립금리 추정 범위를 기존 2.25∼3.25%에서 2.50∼3.50%로 올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도 지난달 미국의 실질 중립금리를 약 1.5%로 추산했으며, 연준의 물가 목표치 2%를 반영한 명목 중립금리는 3.5% 수준으로 환산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미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금리 수준도 함께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중립금리 상승은 연준의 금리 인하 여력을 제약하고 장기채 가격의 회복도 더디게 만든다. 전쟁과 물가 충격이 진정되더라도 장기금리가 과거의 저금리 수준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 유동성 안정과 장기금리 급등 간 괴리
이처럼 장기금리의 하락 여지가 좁아졌지만 단기자금시장에서는 유동성 부족의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 이에 연준은 은행권 지급준비금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지급준비금 관리 목적의 단기 국채 매입을 두 달 연속 중단했다. 뉴욕 연은은 이달 15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지급준비금 관리 매입(RMP)을 실시하지 않고, 만기 도래 자산의 원금 재투자를 위한 단기 국채만 156억 달러(약 21조520억원)어치 사들일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월 400억 달러(약 53조9,800억원)로 시작된 RMP는 지난 4월 250억 달러(약 33조7,380억원), 5~7월 100억 달러(약 13조4,950억원)로 축소됐으며, 추가 매입액은 지난달부터 제로로 설정됐다. 여기엔 단기자금시장이 추가 유동성 공급 없이도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9일 기준 은행권 지급준비금은 3조400억 달러(약 4,102조4,800억원)로 지난해 말 2조8,500억 달러(약 3,846조750억원)와 올해 평균 3조100억 달러(약 4,061조9,950억원)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다. 담보부 익일물 조달금리(SOFR)도 최근 한 달간 지급준비금 이자율(IORB)과 같거나 낮은 수준을 유지해 단기자금시장에 별도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지 않다는 연준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은행권에 충분한 유동성이 쌓였는데도 장기채 매도세가 이어지는 모습은 통상적인 채권시장과 상반된 흐름이다. 일반적으로 시중 자금이 풍부하면 금융기관의 채권 매수 여력이 확대되고 국채 금리는 하락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정된 단기자금시장과 장기채 매도세가 동시에 나타났다. 재정 규율과 물가 통제, 국채시장 운용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장기채에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전쟁비용 조정 빠진 장기금리 대책
이 때문에 재무부가 장기채 바이백 규모를 서둘러 키운 선택도 도마에 올랐다. 시장에서는 바이백이 금융시장의 충격이 극심할 때 효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안정 수단인 만큼, 재정 불안이 채권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한 단계에서 매입 한도부터 늘린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향후 시장 충격이 거세질 경우 재무부가 제시해야 할 매입 규모와 정책 강도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미 재무부는 이번 증액의 공식 목적을 장기물 유동성 지원이라고 설명했으나, 투자자들은 정부의 매수 의지만으로 재정 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바이백 규모를 키우기 전에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부터 다시 짰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쟁비용을 신규 차입으로 충당하면서 바이백으로 장기금리를 누르면, 국채 공급을 늘리는 재정정책과 가격을 받치는 채무관리가 정면으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국방 지출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다른 예산을 줄여 발행 부담을 낮췄다면 재정 규율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CBO가 순이자비용 증가를 향후 재정적자 확대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한 가운데, 재무부의 다음 분기 차입 계획과 장기물 입찰 수요가 정책 신뢰를 가늠할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