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사익에 막힌 美 ‘클래리티법’, 코인 제도화 당위성도 도마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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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일가 코인 수익, 공직 윤리 논란 촉발 공화당 수정안에도 본회의서 클로저 좌초 코인 제도권 편입 자체에 의문 제기도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미 상원에서 본격적인 심의로 넘어가기 위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화당이 민주당의 요구를 반영해 공직자 윤리 규정 등을 담은 수정안까지 내놨지만, 끝내 초당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법안의 연내 처리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 표면적인 쟁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을 둘러싼 이해충돌 논란이다. 다만 발행 주체의 책임과 기초자산조차 불분명한 투기성 코인에 국가가 제도권 자산의 지위를 부여하는 발상부터 금융 질서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49대 50으로 좌초, 60표에 한참 못미쳐
15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 상원은 클래리티법에 대한 클로처(토론종결) 표결을 진행했으나 법안 상정에 필요한 60표에 크게 못 미친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처리가 무산됐다. 지난 5월 상원 은행위원회를 초당적으로 통과했던 법안이 본회의에서는 부결된 것이다. 이번 표결은 클래리티법 자체에 대한 최종 부결이나 폐기를 뜻하지는 않지만, 11월 중간선거를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연내 입법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클래리티법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디지털자산 업계에 대한 1차적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계약과 토큰화 증권에 대한 감독권을 유지하되, CFTC가 디지털 상품 현물시장에 대한 전면적 규제 권한을 새로 갖게 되는 구조다. 그간 미국 가상자산 업계는 수년 동안 수억 달러 규모의 입법 로비전을 펼치면서 클래리티법 입법을 지지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법안을 끌고 가려했다. 그는 지난달 백악관으로 가상자산 업계 경영진들을 불러 지지를 결집하기도 했다.
공직자 윤리조항 이견에 발목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가상자산 사업을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스테이블코인 보상 규제가 막판까지 클래리티법 입법의 걸림돌이 됐다. 특히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상자산 사업 이해관계와 관련된 윤리적 규정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주요 반대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가상자산 시장에서 거둔 대규모 수익이 결국 주요 정치적 쟁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트럼프 일가는 가상자산 업체 월드리버티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의 지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관련 사업에서 신고한 수입만 14억 달러(약 1조9,000억원)에 달한다. 가상자산 정책을 주도하는 행정부 수반이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 올라선 구도다. 지난해 제정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연방의원과 가족의 수익 활동만 제한하고 대통령과 가족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리 규제의 비대칭성이 남아 있다. 재집권 사흘 전인 지난해 1월 17일 발행한 ‘$TRUMP’ 밈코인의 고액 보유자를 대통령 참석 비공개 행사에 초청한 전례도 공직과 사업의 경계를 흐렸다.
표1. 미 클래리티법 수정안 핵심 내용 및 쟁점
| 수정안 핵심 내용 | 쟁점 |
|---|---|
| 윤리 규정 트럼프 대통령과 연방 공직자·배우자의 신규 디지털자산 발행 2029년 1월 20일까지 금지 | 대상 한정 트럼프 대통령 자녀 등 다른 가족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 |
| 윤리 규정 집행 미 법무부(DOJ)가 규정 집행, 위반 시 50만 달러 또는 자산가치의 10%를 벌금으로 부과 | 집행권 논란 민주당은 주(州) 법무장관에게도 집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 |
| 기존 가상자산 사업 기존 밈코인·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에 맡기는 방식으로 허용 | 실효성 논란 이해충돌 방지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 |
| 스테이블코인 이자 고객 예치금에 대한 이자(yield) 지급 금지 | 은행권 요구 반영 은행 예금 이탈 우려를 고려한 조치 |
가상자산 패권 노린 트럼프의 청사진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표결을 앞둔 지난 13일 민주당이 요구한 수정사항을 반영한 630여 쪽 분량의 최종 수정안을 공개하며 통과를 시도했으나, 민주당은 대통령의 보유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처분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더 엄격한 이행 장치를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도 클래리티법에 반대하는 이탈표가 나왔다. 재선을 앞둔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 메인주 의원과 평소 가상자산에 회의적인 조시 하울리(Josh Hawley) 미주리주 의원 등이 반대 진영에 섰다. 평소 친(親) 가상자산 성향을 띠었던 커스틴 질리브랜드(Kirsten Gillibrand) 민주당 뉴욕주 상원의원마저 최종적으로 법안 추진에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클래리티 법안을 발의한 이유는 이전까지 SEC가 명확한 규정 없이 소송과 제재 중심으로 가상자산 업계를 규제해 온 방식이 시장 불안을 키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을 통해 SEC와 CFTC의 관할권을 법으로 명확히 구분해 규제 기준을 확립하자는 취지다. 또 규제 프레임워크가 없어 미국 내 블록체인 기업과 개발자, 기관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법적 안전지대를 마련해 미국을 세계 가상자산 산업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특히 미 공화당은 해당 법안을 통해 대형 은행,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제도권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적극 유입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은돈·예금 이탈·감독 공백 우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클래리티법이 자금세탁 방지망에 빈틈을 낼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탈중앙화금융(DeFi)과 개인 지갑 프로토콜에 은행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폭넓게 면제하거나 적용 범위를 좁힐 경우, 범죄 조직과 제재 대상국이 자금 흐름을 감추는 통로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거래 기록을 뒤섞어 추적을 피하는 탈중앙화 믹서까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이면 수사와 제재의 법적 근거가 약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스테이블코인 리워드 문제도 있다. 금융권은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이자 성격의 리워드를 허용할 경우 중소·지역 은행의 예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금 감소가 은행의 대출 여력과 유동성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어서다. SEC가 맡아온 영역의 상당 부분을 CFTC가 담당하는 감독 체계도 문제다. CFTC의 인력과 예산이 SEC에 비해 부족한 데다 파생상품 시장 관리에 주력해 온 만큼 소액 투자자를 위한 공시와 불공정거래 감시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인 제도화의 함정
이 같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상자산 시장에 제도권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클래리티법이 시행되면 거래소와 중개업자에 대한 감독 권한이 정비되고, 사기·시세조종을 처벌할 법적 근거도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 대가로 코인 업계는 정부가 관리하는 제도권 시장이라는 지위까지 확보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 금융개혁단체 베터마켓츠(Better Markets)는 클래리티법이 업계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이고 이해충돌이 얽힌 사업 모델에 법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행 주체의 상환 의무도, 가치를 떠받칠 기초자산도 없는 투기성 코인마저 공인된 투자자산으로 오인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투기성 코인의 존폐는 시장의 선택에 맡기고, 제도권 규율은 지급과 송금 기능이 분명한 스테이블코인에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결제망과 직접 연결되는 만큼 준비자산과 상환 능력에 대한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충분한 준비자산과 상환 능력을 갖춘 스테이블코인이 24시간 결제와 국경 간 송금 비용 절감에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니어스법에 따라 발행사에는 1대 1 준비자산과 월별 공시, 상환 의무를 적용하는 관리 기반도 이미 갖춰졌다. 투기성 코인은 시장의 자정 기능에 맡기고, 실수요가 확인된 스테이블코인부터 촘촘한 규율망 안에 두는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