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협 요소" 나란히 中 인버터 규제 나선 美·EU, 中-서방 통상 갈등 골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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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EU 뒤따라 사실상 中 겨냥한 인버터 규제 도입 검토 소프트웨어·원격 통신 기반 첨단 인버터, 서방 안보 우려 키워 심화하는 EU-中 무역 분쟁, 협의 공식화했지만 결과는 미지수

미국이 태양광 제품 및 배터리의 핵심 장비인 인버터에 대한 규제를 추진한다. 앞서 지난달 유럽연합(EU)이 안보 위협을 근거로 중국산 인버터에 강력한 제재를 가한 데 이어, 미국까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무역 장벽을 높이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전력 장비 규제를 넘어 전략 산업 전반에서 중국산 제품을 배제하려는 서방권의 공동 대응 흐름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중국과 첨예한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EU의 경우, 경제 안보 분야까지 본격적으로 전선을 확대하며 강경 대응 기조를 강화했다는 평가다.
美·EU의 中 인버터 배제 행보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외국산 에너지 인버터의 신규 수입 제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인버터는 재생에너지 설비와 배터리 저장 장치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핵심 부품으로, 발전 설비에서 생산된 직류(DC)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 가능한 교류(AC) 전력으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충전 시스템 등에 폭넓게 사용되며, 특히 태양광 발전 설비의 경우 설치 비용의 약 10%를 인버터가 차지한다.
로이터는 미국의 새로운 조치가 미국에서 새롭게 출시돼 신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외국산 인버터 모델에 적용되며, 이르면 올해 안에 정식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현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및 미국 의회가 중국산 인버터의 전력 공급 교란 가능성을 우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앞서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52명은 지난해 11월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산 인버터와 핵심 전력망 장비에 대한 의존 확대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이 이 같은 행보에는 EU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EU 집행위원회는 EU 재정이 투입되는 에너지 사업에서 중국산 인버터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이 압도적인 인버터 시장 점유율을 앞세워 역내 전력망을 원격으로 교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에 따르면 해당 규제 범위에 포함된 신규 태양광 발전 용량은 최소 14기가와트(GW)에 달한다. 이는 EU 전체 연간 태양광 설치량의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인버터가 품은 안보 리스크
양국이 중국산 인버터의 전력망 교란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인버터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첨단 스마트 인버터는 전력망의 전압·주파수 상태를 감지하고, 출력량, 무효전력 공급, 계통 접속·차단 여부 등을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기능이 원격 통신·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와 결합할 경우 외부 침투의 위험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대형 태양광·풍력·ESS 설비에 설치된 인버터는 운영사가 원격으로 상태를 점검하고 펌웨어를 업데이트하며, 필요시 출력 제어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흔하다. 만약 권한이 없는 제3자가 이러한 경로를 장악할 경우, 특정 발전 설비를 강제로 차단하거나 전력망 안정성에 부담을 주는 등 치명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리스크는 서방 국가들의 핵심 우려 사항이다. 로이터는 앞서 미국 에너지 당국이 중국산 인버터 일부에서 문서상 명시돼 있지 않은 통신 장치를 발견했으며, 이후 관련 보안 위험을 재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장치가 실제 공격에 사용됐는지는 불분명하나, 제조사 및 운영사가 신고하지 않은 통신 경로가 존재할 경우 제3자의 우회 접속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미 교통부 산하 연방고속도로청 역시 도로변 태양광 설비, 교통 카메라, 전기차 충전기 등에 사용되는 일부 인버터와 배터리관리시스템에서 문서화되지 않은 무선 장치가 발견됐다며 지방 당국에 장비 점검과 주파수 분석을 권고했다.
다만 중국은 이러한 서방국들의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는 중이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EU의 중국산 인버터 사용 금지 조치 발표 후 성명을 통해 “(EU의 조치는) 중국에 대한 낙인찍기이자 중국 제품에 대한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대우”라며 “중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EU의 행보는 중국과 EU의 상호 신뢰 및 양자 경제·무역 협력을 저해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상무부 측은 해당 조치가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망 단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필요시 중국 기업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EU-中, 무역 갈등 장기화
서방 진영과 중국의 통상 갈등이 나날이 깊어져 가는 가운데, 시장의 이목은 향후 EU가 채택할 대중국 무역 전략에 집중되고 있다. 양국이 수년 전부터 다수 산업 부문에서 장기간 충돌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기차다. EU는 2023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를 시작했으며, 2024년 7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역내 시장 경쟁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판단하에 중국산 전기차에 잠정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첫 대규모 무역 제재 조치였다. 이후 같은 해 10월 EU는 회원국 승인을 거쳐 중국산 전기차에 업체별로 최대 35.3%의 추가 관세를 매기기로 최종 확정했다. 현재 양국은 중국 업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최저 판매가격을 보장하면 관세를 일부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아직 실질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비관세 무역 장벽도 높아져 가는 추세다. 일례로 지난 3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산업가속화법(IAA)은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풍력, 원자력 등 전략 산업의 공공조달 및 보조금 지급 시 역내 생산·저탄소 생산 제품을 우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유럽 제조업 경쟁력 회복과 탈탄소 산업 육성이 목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EU 재정 지원 및 공공 발주를 통한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잠식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이다. 집행위는 지난 1월에도 사실상 화웨이, ZTE 등 중국 기업을 겨냥한 사이버보안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고위험 제3국 공급업체의 장비를 통신망 등 핵심 인프라에서 단계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현재 양국은 이러한 대립을 지속함과 동시에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공식 협의 체제 가동을 약속한 상태다. 지난달 29일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제1차 EU-중국 무역투자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이번 회동에서 EU·중국 무역·투자 협의체를 출범해 △무역·투자 균형 △수출 통제 △지식재산권(IP)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으며, 무역 흐름을 추적하고 시장 접근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공동 모니터링 체계도 설치하기로 했다. 다만 EU의 역내 산업 보호 의지와 중국의 수출 확대 기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실제 유의미한 협상 성과가 도출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