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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러시아서 수급도 어려워" 이란 전쟁이 드러낸 EU 에너지 공급망 한계, 가스 재고 바닥 보이는데 대안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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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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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가는 EU 가스 저장고, 천연가스 가격 천정부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 감소·중동 리스크 겹치며 치명타
美·러시아 에너지 수입, 디젤 확대 등 대안도 한계 명확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위기가 눈에 띄게 심화하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에 차질이 생기자, 카타르 등 걸프국으로부터의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에 제동이 걸리며 가스 재고가 빠르게 줄어드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험 속 유럽에 주어진 선택지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산 LNG는 액화설비 병목으로 단기간 내 공급 확대가 쉽지 않고, 러시아산 에너지 복귀·디젤 추가 수급 등의 조치를 단행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EU 가스 재고 '비상'

16일(이하 현지시각)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유럽이 동절기를 앞두고 확보할 수 있는 가스 물량 자체가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보다도 빠듯해졌다"고 보도했다. 실제 유럽가스인프라협회(GIE) 집계 기준 EU 가스 저장고 충전율은 이달 초 기준 57%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동기의 69~70%를 대폭 밑도는 수준이자 2011년 이후 최저치다. EU가 매년 10월 1일부터 12월 1일 사이에 달성하도록 규정한 저장률 목표(90%)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재고 부족 흐름은 가격 상승세로도 이어졌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기준인 네덜란드 TTF 선물은 지난 10일 하루에만 5% 넘게 뛰어 메가와트시(MWh)당 58.80유로(약 9만5,800원) 선에 머물렀고, 11일에는 장중 62유로(약 10만1,000원)를 웃돌며 지난달 24일 기록했던 63유로(약 10만2,600원)대 고점에 다시 근접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현재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보다 약 두 배 높은 수준이며, 향후 겨울철 재고 확보 경쟁이 본격화하면 가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전쟁發 공급 리스크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단순한 ‘재고 부족’이 아닌 지정학적 병목에서 기인한 문제로 풀이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 카타르를 중심으로 LNG 수입을 빠르게 늘려 왔다. 러시아라는 단일 공급국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졌지만, 그만큼 공급망 자체가 국제 LNG 가격과 해상 운송망에 민감해진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는 올해 발발한 이란 전쟁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본격화한 후, 이란에 인접한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전 세계 해상 석유·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던 핵심 해상 요충지다. 글로벌 LNG 공급 능력의 20%를 차지하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의 LNG 수출 역시 이 해협을 거쳐 이뤄져 왔다. 유럽의 새로운 LNG 공급 축이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의 직접 영향권에 포함된 셈이다.

카타르의 불가항력 선언

중동 지역의 절대적인 가스 공급량 역시 감소했다. 일례로 세계 최대 LNG 수출 기지인 카타르 라스라판 LNG 생산 시설의 경우, 이란의 공격으로 2개의 액화 트레인이 훼손되면서 물리적인 생산 차질을 겪게 됐다. 피해를 본 액화 트레인 2개의 생산 능력은 연간 약 1,280만 톤(t)에 달한다. 이는 카타르 전체 LNG 생산 능력의 약 1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에 카타르의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는 기존 장기 계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며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 에너지 공급망에 있어 치명타였다. 대표적인 피해 사례가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2009년부터 카타르에너지와 25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고 연간 64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공급받아 왔다. 이는 이탈리아 연간 가스 소비량의 약 10% 수준이다. 당초 카타르에너지는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예정된 LNG 10개 화물의 공급이 어렵다고 통보했지만, 이후 6월 말 취소 대상은 21개 화물(약 27억㎥)까지 늘었다. 지난달 말에는 추가로 3개 화물이 빠지면서 총 24개 화물, 약 30억㎥가 불가항력 대상이 됐다. 이는 에디슨이 카타르에서 연간 공급받기로 한 계약 물량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美 LNG 수급 확대 시나리오

현시점 유럽이 에너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채택할 만한 유력 대안으로는 미국산 LNG 수입이 꼽힌다. 최근 미국에서 가스 재고가 꾸준히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최근 전망에서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 중이며, 오는 10월 말 재고가 3조9,850억 입방피트(ft³)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가격 역시 저렴한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미국 헨리허브 천연가스 가격은 3분기 평균 100만BTU당 2.87달러(약 4,000원) 수준에서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용 설비 여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연가스는 그대로 선박에 실을 수 없어 LNG 터미널에서 액화 과정을 거쳐 수출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미 액화설비 가동률이 높아 단기간에 추가 물량을 처리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현재 미국의 최대 LNG 수출 능력은 하루 약 183억ft³로 제한돼 있다. 여기에 텍사스 프리포트 LNG가 지난달부터 정비에 들어가면서 미국 전체 수출 능력의 10%가 넘는 물량이 일시적으로 묶였다. 절대적인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미국이 당장 유럽의 LNG 공급 공백을 메우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 여전

일각에서는 EU의 러시아산 가스 복귀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미 유럽은 이란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산 LNG를 상당량 끌어다 썼다. 올해 상반기 EU의 러시아 야말 LNG 수입량은 989만 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18%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는 아예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 4월 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를 완화하려면 EU가 러시아산 석유·가스 제재를 해제하고 드루즈바 송유관 공급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역설하기도 했다.

다만 EU의 러시아산 에너지 배제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EU는 지난달 21차 대러 제재 패키지를 채택해 에너지·금융 부문의 압박을 강화했고,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단계적으로 완전히 중단하는 기존 방침도 유지 중이다. 러시아산 장기계약 LNG는 2027년 1월부터, 파이프라인 가스는 2027년 하반기부터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일정이다. EU 집행위원회 측 인사들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5월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러시아 에너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대러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표1. 유럽의 에너지 위기 대응 시나리오

대응 시나리오한계
미국산 LNG 수입 확대미국의 천연가스 생산과 재고는 충분하지만, 액화·수출 설비 한계로 단기간에 공급을 크게 늘리기 어려움
러시아산 가스 수입 재개EU 차원에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의 단계적 전면 금지 방침 유지 중
디젤 등 석유제품 활용중동·러시아발 공급 차질 가시화, 미국 역시 재고 감소와 겨울철 내수 수요로 수출 확대 한계
자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외신 종합

디젤 공급망도 혼란 막심

디젤 등 석유제품으로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디젤 공급망 자체가 또 다른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디젤 시장은 이란 전쟁 및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 여파로 빠르게 경색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러시아는 지난해 전 세계 디젤 수출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 지역이다. 이런 가운데 자체 디젤 정제 능력이 부족하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재 유럽의 디젤 재고는 약 149만 톤으로 지난 5년 평균치인 189만 톤을 크게 밑돌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미국산 디젤을 수입해 물량을 충당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도 디젤 재고가 줄어드는 추세인 데다, 향후 겨울철 수요 증가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디젤·난방유 등을 포함한 중간유분 재고는 지난달 31일 기준 1억720만 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시기 기준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자재 데이터 분석 업체 케이플러의 자미르 유소프 청정석유제품 분석 총괄은 “미국 걸프 연안 정유업체들이 북서유럽에 디젤을 무기한 계속 수출할 수는 없다"며 “그들에게도 해결해야 할 자체적인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내년 1분기가 가까워지면 미국 정유업체들이 통상 겨울철 난방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 동부 지역으로 물량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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