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계 뒤흔든 쿠팡 로비력” 美 하원 ‘차별 보고서’에 한미 관계 다시 ‘쿠팡 리스크’
입력
수정
‘쿠팡 차별’ 보고서, “美 기술 기업 차별” 강력 반발 법사위 조사 전후 뿌려진 ‘쿠팡 돈’, 쿠팡 측 주장만 반영 백악관까지 문제 제기, 韓 정부 제재에 공개 우려

미국 의회가 한국 정부의 쿠팡 제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한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대응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소지가 있는 차별적 공격으로 규정하며 전체 분량의 대부분을 쿠팡 사례에 할애했다. 미 의회가 쿠팡 측 주장을 사실상 전면 수용한 데 이어, 백악관까지 공개 압박에 나서면서 쿠팡 사안이 한미 통상 현안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美 하원 “개인정보 유출 조사 과도”, 국정원 의혹까지 담겨
1일(이하 현지시간)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경쟁 차단: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Closed for Competition: South Korea's Discriminatory Attacks on American-owned Businesses)'이라는 제목의 35쪽 분량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법사위 공식 명의로 공개됐지만, 정식 하원 보고서 번호가 붙은 초당적 보고서가 아니라 공화당 소속 짐 조던 법사위원장과 스콧 피츠제럴드 행정국가·규제개혁·반독점 소위 위원장 산하 다수당 스태프가 작성한 ‘중간 조사 보고서’다.
보고서는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쿠팡 사례에 할애했다. 보고서는 지난달 10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쿠팡에 부과한 과징금이 “쿠팡의 지난해 순이익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며, 한국 경쟁사들에 비해 현저히 무거운 처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텔레콤이 약 2,700만 명 정보 유출 사건으로 9,700만 달러(약 1,490억원), 카카오가 약 4,000만 계정 유출 사건으로 1,100만 달러(약 170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사례와 비교했다. 위원회는 이러한 규제 결과 쿠팡 시가총액이 40% 이상 감소했으며 투자자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어 국가정보원 관련 대목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쿠팡 전직 직원이 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 소재 로펌에 기기와 진술서를 넘기자, 국정원이 “중국에서는 활동할 수 없다”며 쿠팡 쪽에 ‘직원을 로펌으로 보내 이를 대신 인수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작년 12월 2일 국정원법 제5조를 근거로 든 공문을 보내 협조가 법적 의무임을 밝힌 바 있었고, 이후 쿠팡이 ‘직원을 중국에 보내는 게 위험하다’고 우려하자 같은 법적 근거를 재차 언급하며 압박했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아울러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불만을 품은 전직 직원의 무단 접근'으로 규정하고, 이후 한국 정부가 '정부 차원의 전면적 공세'를 벌였다는 쿠팡 측 주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의 증언을 인용해 "한국이 쿠팡 고객을 국내 경쟁업체로 이동시키려 했다"는 주장과 중국에서 해킹 피의자의 노트북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협조했다는 쿠팡 측 설명을 관련 공문과 함께 수록했다. 이에 더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국정원과의 협조를 지시했고 해당 사실이 당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조사 전 건넨 ‘쿠팡 후원금’, 진행 중에도 ‘거액 로비’
하지만 이는 그간의 국정원 측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으로, 지난 2월 미 법사위에 출석한 로저스 임시대표의 진술이 여과 없이 보고서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보고서는 쿠팡 측 주장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서술하면서 한국 정부와 관계기관의 설명이나 반론도 담지 않았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국가안보,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맞물린 사안이라는 점이나 중국으로의 정보 유출 가능성 등 사건의 특수성 역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미 의회가 쿠팡 측 입장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청취한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쿠팡의 전방위적 로비가 한몫했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직후부터 자사의 사법리스크를 ‘통상 이슈’로 부각하기 위해 미국 내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 의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쿠팡Inc는 올해 1분기에만 복수의 로비 회사를 통해 178만5,000달러(약 27억4,000만원)를 지출했다. 로비 접촉 대상으로는 미 상·하원뿐 아니라 백악관과 부통령실, 상무부, 미국무역대표부(USTR), 재무부 등 주요 행정부 기관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피츠제럴드 위원장 역시 조사 시작을 불과 3주 앞둔 1월 쿠팡의 정치자금기구 '쿠팩(COUPAC)'으로부터 1,000달러(약 155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사위 조사가 진행되던 중에는 하원 최고위 인사에게도 후원금이 전달됐다. 쿠팩은 법사위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측에 5,000달러를 후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존슨 의장은 하원운영과 의사일정 소집권 등을 쥔 공화당 지도부의 정점이다. 아직 대가성 여부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지만 조사 주체와 의회 사령탑이 나란히 쿠팡 측 후원금의 네트워크 속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각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
백악관까지 올라간 ‘쿠팡 차별’ 공방, 한미 통상 마찰 재점화 가능성
이 보고서가 앞으로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도 간단치 않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한국 정부가 미 의회 주장을 반박하자, 백악관까지 나선 상황이다. 보고서가 발간된 1일 외교부는 "쿠팡에 대한 모든 조사와 조치는 국내법에 따라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국적에 관계 없이 공정한 기업 활동 환경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정원도 쿠팡 개인정보를 유출한 전 직원과 접촉했다는 법사위 측 주장은 쿠팡의 일방적인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백악관은 2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어떤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해봐도 쿠팡은 이재명 정부의 표적이 된 것이 맞다"며 "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표적화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 불공정 무역 관행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이 직접적으로 쿠팡 사태를 언급하며 명시적인 입장문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의회를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으며, 행정부 차원의 문제 제기는 대부분 비공개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도 한국 정부의 쿠팡 규제 비판에 가담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비서실장을 지낸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2일 미국 매체에 쓴 기고문에서 “쿠팡 규제가 한·미 동맹에 잠재적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십 가운데 하나를 떠받치는 신뢰와 우호를 훼손할 가능성을 지닌다”고 했다. 이어 “(보고서는) 미국의 경제 경쟁력이나 통상 약속을 훼손하는 행위를 워싱턴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이자, 쿠팡과 다른 미국 기업의 처우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을 압박해 온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보고서는 일단락되는 듯했던 미국의 통상 압박이 다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앞서 쿠팡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지난 1월 USTR에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요청했다. 이후 지난 3월 청원을 자진 철회하면서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지난달 개인정보위의 과징금 부과를 계기로 미 의회와 백악관까지 잇달아 관련 문제를 제기하면서 양국 간 새로운 통상 현안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 등에 광범위한 보복 관세를 매길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디지털 무역 장벽을 이유로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에 표적 관세를 부과하거나, 철강·화학 제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높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