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추격에 AI 규제 푸는 트럼프, 앤스로픽 압박은 이어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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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허가제 배제·혁신 우선 기조 유지 앤스로픽 수출통제 완화 이어졌지만, 갈등 여진 주정부 입법 확산, 정책 불확실성도 상존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동시에, 국가안보와 직결된 첨단 AI 모델에는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앤스로픽을 둘러싼 일련의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AI 통제 방식의 전조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AI 규제 필요하지만 최소화"
5일(이하 현지시간) 스리람 크리슈난(Sriram Krishnan) 전 백악관 AI 정책 고문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AI를 대상으로 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같은 규제기관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첫날부터 과도한 관료주의와 규제를 반대해 왔고 승자와 패자를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은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크리슈난 전 고문은 중앙집중형 규제기관이 AI 모델 출시마다 법률 검토와 행정 절차를 요구할 경우 미국 AI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리슈난 전 고문의 발언은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우려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메타플랫폼스 등 AI 기업들은 첨단 모델 개발 경쟁에서 정부 허가제가 도입될 경우 출시 속도가 느려지고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최첨단 AI 모델을 사전에 승인받아야 하는 체제가 생기면 사실상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크리슈난 전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방식으로 기업을 고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백악관 AI·가상자산 책임자를 맡았던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 등 트럼프 주변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규제 최소화론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크리슈난 전 고문은 주정부 차원의 강한 AI 규제도 반대해 왔다. 캘리포니아 등 개별 주가 AI 안전규칙을 강화하면 미국 전체의 AI 혁신 속도가 떨어지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국 기업의 대중국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과도한 규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3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CNBC 인터뷰에서 “AI와 관련한 가이드레일은 필요하지만 가능한 한 최소한의 조치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앤스로픽은 예외 가능성
당초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은 산업 진흥을 최우선 순위에 둔 성장 전략으로 출발했다. 백악관이 지난해 공개한 ‘미국 AI 행동계획’은 AI 혁신 가속, 인프라 확충, 국제 기술 주도권 확보를 핵심 축으로 제시하며 미국의 글로벌 AI 우위를 국정 과제로 명문화했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형성된 안전성 중심 규제 논의를 대폭 후퇴시키고, 민간 기업의 개발 속도와 투자 여력을 정책 전면에 배치한 조치였다. 이 같은 방향성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 구도에서 비롯됐다. 미국 AI 기업이 모델 개발과 컴퓨팅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중국 기업이 추론 비용 절감과 개방형 모델 확산을 통해 시장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전반에 확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지점을 정치적 메시지로 적극 활용하며 규제 완화를 산업 정책과 안보 정책의 공통 분모로 삼았다.
그러나 규제 완화 기조가 무제한적 방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AI 무규제'와는 거리가 있다. 미 정부는 지난달 12일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앤스로픽의 고성능 모델 ‘미소스 5(Mythos 5)’와 페이블 5(Fable 5)의 수출을 제한했다. 최첨단 모델이 사이버 공격 능력 강화나 기반 시설 위협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배경이다. 여기엔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인사들의 요구가 크게 반영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비롯한 마가 진영 인사 60여 명은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강력한 AI 모델이 공개되기 전 정부의 검증과 승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최첨단 AI 시스템이 공개되기 전에 의무적인 검사와 평가, 검증,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생물학 무기 설계, 핵심 인프라 침투, 금융시장 조작을 도울 수 있는 강력한 AI 시스템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심각성과 주의를 갖고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AI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겨냥해 “미국은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들이 안전장치나 책임 없이 대중을 상대로 실험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이 서한을 보낸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트럼프 행정부는 앤스로픽 AI 모델의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미 정부가 내린 금지 조치는 강력했다. 미국 안팎의 사용자는 물론 앤스로픽 내부의 외국인 직원까지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앤스로픽은 전 세계 사용자의 서비스 창구를 아예 닫아버리는 방식으로 정면 대응했다. 이 규제는 제한 18일 만인 지난달 30일 전면 해제됐지만, 이는 사실상 불안정한 휴전 상태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 AI 업계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기조는 AI 산업 전반의 혁신을 지원하는 데 있지만, 정부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는 기업에는 다른 방식의 대응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미 보수 진영에서 앤스로픽을 향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정부 개입의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산업 전반에는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특정 기업에는 행정 권한을 활용한 압박이 병행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책 성패 가를 주정부 변수
이렇듯 트럼프 행정부의 AI 규제 완화 기조는 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공식 허가제나 상설 규제기관은 만들지 않겠지만, 개별 모델이 안보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행정권과 수출통제 수단을 동원해 출시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3일 "나쁜 플레이어가 있어 조금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우리는 그 플레이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대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AI 모델 접근 제한 조치를 겪었던 앤스로픽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은 앞으로도 두 갈래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주정부 규제와 중앙 허가제를 막아 미국 기업의 모델 개발 속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안보나 사이버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모델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에는 규제 부담을 줄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불확실성도 남긴다. 공식 허가제는 없더라도 정부가 특정 모델 출시를 언제든 늦출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규칙 대신 정치적·안보적 판단에 노출될 수 있다.
변수는 주정부와의 충돌 가능성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주정부 간 AI 규제 분쟁은 올해 초부터 본격화했다. 미 주정부들은 AI 규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올해 AI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수십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미 100개 이상의 주 법이 미성년자 대상 챗봇 사용을 금지하고 보안 위험에 대한 시스템 테스트를 의무화하며 저작권이 있는 자료가 AI 시스템에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광범위하게 차단하고 있다.
주별 규제 대상 중 가장 많은 것은 딥페이크(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가짜 사진·동영상)로, 아칸소주는 외설적인 딥페이크 제작과 배포를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6개 주는 AI 기술을 활용한 대화 로봇(챗봇)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주는 이용자가 자살을 언급하는 경우 사업자에게 적절한 대응을 의무화했다. 이밖에 10개 주는 의료 관련 AI 규제, 13개 주는 공적기관의 AI 이용 규제를 각각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연방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더라도 주정부가 독자적인 규제를 확대하면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 부담은 쉽게 줄어들기 어렵다. 반대로 연방정부가 예산 지원과 조달 권한을 활용해 주정부를 견제할 경우 AI 규제를 둘러싼 갈등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권한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 AI 정책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차원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도 최종적으로 기업들이 마주하는 규제 환경은 주정부가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며 "일부 주정부의 경우 AI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삼고 있어 연방정부와 다른 방향의 규제를 계속 추진할 유인이 충분한 만큼, 백악관 입장에서도 AI 산업을 지원하는 것만큼 각 주의 독자 행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