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이용료 받겠다" 호르무즈 '문지기' 꿈꾸는 이란, 국제 자유항행 원칙·걸프 질서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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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오만, 호르무즈 해협 서비스 이용료 부과 합의 근접 "자유항행 원칙 수호 비용 커" 유럽 등 타협 의지 내비치기도 걸프국, 우회 인프라 보유 여부 따라 희비 엇갈릴 가능성 커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을 재개하기 위한 합의에 근접했다.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대신, 안전한 항행의 대가로 '서비스 이용료'를 부과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계획이 관철될 경우, 국제법상 자유항행이 보장돼 온 핵심 에너지 수송로가 사실상 특정 국가에 종속되며 세계 통항 질서 자체가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걸프 산유국들은 우회 인프라 경쟁을 벌이며 세력 구도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 유료화 추진하는 이란-오만
5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3일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할 수 있는 항로를 담은 지도를 교환했다"며 "2~3개의 분리된 항로가 아닌 양방향 통항이 가능한 단일 항로를 오만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하는 선박은 이란 쪽 항로를, 만에서 빠져나오는 선박은 오만 쪽 항로를 이용하도록 조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란 전쟁 발발 전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적으로 약속된 통항분리제도(TSS)에 따라 운영됐다. 선박들은 해협 내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으로 나뉜 항로를 따라 한 방향으로만 통항할 수 있었고, 항로 대부분은 오만 영해 내였다.
이란 당국자들은 NYT에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는 부과되지 않겠지만, 환경 영향·보안·인력 배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이유로 서비스 이용료가 부과된다"며 "서비스 이용료는 이란과 오만이 절반씩 나눠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 전 특정 국가의 통제 없이 자유로운 통항이 가능했던 호르무즈 해협이 '유료' 항로가 되는 것이다. 이란이 지난 6월 미국과 60일 휴전을 결정했을 당시부터 주장한 내용이 사실상 관철된 셈이다. 다만 한 미국 관료는 NYT에 "이란 측 설명은 부정확하다"면서 통행료 부과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제 통행 질서 변곡점 직면
이란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기존 국제사회 질서에는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UN)해양법협약은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모든 국가의 선박에 통과통항권을 인정한다. 해협 연안국은 항로와 안전 규칙을 정할 수 있지만, 통항을 방해하거나 중단할 수는 없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국제항행 해협을 연안국이 폐쇄할 수 없으며, 통행료나 수수료, 차별적 조건을 부과할 법적 근거 역시 없다고 강조한다. IMO 이사회는 지난달 직접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국제법에 따라 모든 통행료와 부과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에 서비스 이용료를 매길 시, 이러한 규정은 사실상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선박이 이란이 지정한 항로를 이용하고, 이란 당국의 최종 지시를 받은 뒤 의무적으로 비용을 내야 한다면 서비스 이용료는 항행 서비스에 대한 대가가 아닌 이란의 허가를 얻기 위한 정치적 비용에 가까워진다. 이란은 이러한 구조하에 선사와 에너지 수입국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요금을 책정해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 서비스 이용료가 해상 운송의 경제성을 무너뜨릴 정도로 높아지면 선사들이 운항을 줄이고, 산유국들이 육상 파이프라인과 대체 수출항 투자를 확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호르무즈 유로화 수용 가능성
통행 선박들이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이란은 단순한 연안국에서 항행 질서를 관리하는 '문지기'로 변모하게 된다. 항행 안전을 명분으로 부과되던 서비스 이용료가 이후 제재 대응 수단·외교적 보복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현실적 상황에 발맞춰 이란의 제안에 타협하려 하는 움직임이 관찰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부 유럽 주요국은 호르무즈 해협 내 수수료 부과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오만에 수수료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선박의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요금 체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자유항행 원칙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정치적 비용을 고려한 변화로 풀이된다. 한 외교 전문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동맹국이 이란의 기뢰, 미사일, 무인기, 해안 방어망 등을 억제할 수 있는 지속적인 군사력을 투입해야 한다"며 "반대로 이란 측에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하면 선박 운항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유럽 등 서방국 입장에서는 당장의 전쟁과 공급 충격을 피하고,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보험료를 지급하는 셈"이라며 "여기에 핵 협상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복원까지 연결된다면 호르무즈 해협의 수수료는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기 위한 정치적 지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걸프 산유국 입지 변화 전망
호르무즈 해협 통행 부담이 장기화할 경우, 걸프 산유국들의 역내 입지 역시 급격히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선박이 아닌 파이프라인·육상 운송망을 이용해 홍해나 지중해 연안으로 먼저 옮겨야 한다. 현재 이 조건을 가장 잘 갖춘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동부 아브카이크 지역에서 서부 홍해 연안의 얀부항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 송유관의 수송 능력은 하루 약 500만 배럴이다. 이는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석유 물량(하루 약 2,000만 배럴)의 4분의 1 수준이다.
송유관을 활용하면 동부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홍해로 보내 유럽과 아시아에 수출할 수 있다. 호르무즈 통행료가 상시화하면 해당 송유관은 단순한 비상 설비를 넘어 사우디의 핵심 수출 인프라로 자리매김하는 셈이다. 이 경우 사우디는 이란이 통제하는 걸프 해역과 수에즈 운하를 연결하는 중간 국가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자국산 원유는 물론, 이라크를 비롯한 여타 걸프국의 원유까지 사우디 영토를 거쳐 홍해로 이송되는 구도다.
표1. 호르무즈 해협 유료화에 따른 걸프 국가의 이해득실
| 국가 | 우회 능력·지리적 조건 | 기대 효과 | 한계·위험 |
|---|---|---|---|
| 사우디아라비아 | 통합 유전과 홍해 인프라를 잇는 동서 송유관 보유 | 원유 수출국에서 걸프와 홍해를 연결하는 에너지 환승국으로 부상 가능 | 아시아 수출 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야 해 후티 위협에 노출 |
| 이집트 |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보유 | 기존 통항료 수입 회복과 호르무즈 우회 물량 유치 가능 | 홍해의 안보와 선박 운항 정상화가 전제 |
| 예멘 | 홍해 남쪽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위치 | 정세가 안정되면 항만·선박 서비스와 해협 안전 관리의 거점으로 성장 가능 | 후티의 선박 통과 위협이 홍해 물류 확대를 저해 |
| 카타르 | LNG 수출의 약 93%가 호르무즈를 통과 | 제한적 | 핵심 수출 산업이 이란의 결정에 종속될 위험 |
| 쿠웨이트 | 주요 수출항이 걸프 안쪽에 위치 | 제한적 | 우회 인프라 부족 |
| 바레인 | 주요 수출항이 걸프 안쪽에 위치 | 제한적 | 우회 인프라 부족 |
| UAE | 하루 180만 배럴 규모의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 운영 | 송유관·푸자이라항 활용도 제고 | LNG, 비원유 교역 호르무즈 의존도 높음 |
카타르·쿠웨이트 등은 '비상'
이집트 역시 홍해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국가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는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 이후 물동량이 급감한 상태다.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선박 톤(t)수는 2023년 대비 70% 줄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장벽이 높아지고, 선박들이 홍해로 돌아오면 이집트는 명백한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예멘의 경우,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남쪽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인접해 있어 전략적 가치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 안정, 해안 경비 체계 구축 등 조건을 갖춘다면 선박 서비스·항만 개발 등을 통해 홍해 경제권의 핵심 국가로 성장할 수도 있다. 다만 후티 반군의 통항 위협은 여전히 변수로 남는다.
카타르는 꼼짝없이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카타르의 핵심 수출품은 원유가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다. 송유관을 통해 원활히 수송할 수 있는 원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대규모 가스관, 액화시설, 전용 터미널이 함께 필요하다. 기존 LNG 생산 시설과 선적항이 걸프 안쪽에 집중돼 있는 만큼 단기간에 홍해 연안으로 거점을 옮기기도 어렵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카타르 LNG 수출의 약 93%가 통상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며, 현재 이 물량을 세계 시장으로 내보낼 의미 있는 대체 항로가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수출항이 걸프 안쪽에 있고, 독자적인 대규모 우회 송유관이 없는 쿠웨이트와 바레인 역시 비슷한 리스크를 짊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랍에미리트(UAE)는 LNG와 비원유 교역 부문에서는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에 크게 의존하지만, 하루 180만 배럴 규모의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을 운영하는 데다 푸자이라항을 통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우회 수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