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소비세 제로’ 강행, 10조 엔 재원 공백에 일본 재정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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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이유로 식료품 소비세 인하 강행 2년간 10조 엔 재원 공백, 국채·세출 논쟁 촉발 장기 금리·엔화·사회보장 재정 동시 압박 불가피

고물가로 가계 부담이 커지자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2027년 4월부터 2년간 식료품 소비세율을 8%에서 1%로 낮추기로 했다. 중·저소득층에는 1% 상당의 현금 지원도 병행해 식료품에 붙는 세 부담을 사실상 없애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2년간 10조 엔(약 87조9,500억원)에 달하는 감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에 시장에서는 부족분을 국채로 메울 경우 장기 금리 상승과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세출 삭감이 현실화하면 연금·의료·요양 재정까지 압박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물가에 꺼낸 감세 카드
20일 일본 경제 매체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정부는 2027 회계연도(2027년 4월)부터 2년간 식료품에 적용되는 경감 소비세율을 기존 8%에서 1%로 대폭 낮추는 방안을 확정했다. 1%만큼을 중·저소득층 국민에게 급부금(현금 지원)으로 지급하는 정책이 병행될 예정으로, 사실상 식료품 소비세 부담을 없애는 구조다. 자민당은 올가을 임시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올해 초 중의원 선거 당시 “소비세 제로는 나의 숙원”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카이치 총리가 소비세 감세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최근 일본 경제를 짓누르는 물가 상승이 자리 잡고 있다. 다카이치 정부의 적극재정과 완화적 통화정책은 경기 부양과 증시 상승을 이끌었지만 엔화 약세를 부추기며 수입물가를 끌어올렸다. 이에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빠르게 약화하자 소비세 인하라는 고육지책을 꺼내 든 것이다.
재정 포퓰리즘 논란 격화
그러나 금융시장의 평가는 극도로 냉담하다. 50명의 주요 경제학자 패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88%가 식품 소비세 인하가 일본 경제에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기요타키 노부히로 교수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급증하고 사회안전망은 취약해질 것"이라며 엔화 가치 폭락과 국채 수익률 급등 위험을 경고했다. 게이오 대학교의 나카무로 마키코 교수 역시 "국민과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이 막대한 감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라고 꼬집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중진들은 “재정 포퓰리즘이 사회보장 재원을 훼손하고 국가 재정과 엔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은 “(감세안이 종료되는) 2년 뒤 큰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며 반대 표시로 당내 세제조사회 간부회의 위원에서 사임했고, 고노 다로 전 외무상도 “소비세를 낮춰도 제품 판매 가격이 그만큼 내려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일률적으로 소비세를 인하하기보다 저소득층과 육아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현금을 지급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국채·환율 불안 기폭제
소비세 인하에 대한 반발이 거센 이유는 감세 재원을 마련할 뚜렷한 방안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번 감세 조치에 필요한 재원은 2년간 총 10조 엔에 달한다. 일본의 2026 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세수 규모는 83조7,350억 엔(약 736조4,490억원)이다.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상은 정부 특별회계 잉여금과 자연 세수 증가분에서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세출 삭감 항목은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가타야마 재무상이 최근 내년도 예산 요구와 관련해 "더 이상 상한선(실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선언함에 따라, 시장에서는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결국 대규모 적자 보충 채권(특례공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국채 시장의 공급 과잉을 불러와 장기 금리를 밀어 올리고 통화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소비세율 인하로 낮춘 물가를 환율 상승이 다시 밀어 올리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거시경제 지표는 추가적인 재정 부양책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 6월과 7월 모두 전년 대비 7% 급등하며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CPI)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BOJ) 역시 고유가, 인공지능(AI) 전력 수요 증가, 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을 지목하며 2026 회계연도 하반기부터 신선식품 제외 근원 CPI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성장과 물가가 서로 다른 처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3%, 연율 1.1% 증가에 그쳤다. 민간소비는 제자리걸음을 했고 민간 설비투자는 1.2% 감소했다. 경기만 떼어놓고 보면 추가 지원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으나, 원가 상승이 소비재 가격으로 확산되는 시기에 대규모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가 겹치면 가계의 명목 구매력이 늘어나는 동시에 물가의 상방 압력도 커진다. 일본은행이 기조적 CPI의 2% 상방 이탈을 경고하며 추가 금리 인상 방침을 유지한 만큼, 재정 부양과 통화 긴축이 서로의 효과를 상쇄할 공산이 크다. 특히 소비세 인하가 내수에 보탬을 주는 시점과 기업의 가격 전가가 본격화하는 시점이 겹치면 감세의 체감 효과는 물가와 대출금리 상승에 상당 부분 잠식될 수 있다.
표1. 일본의 주요 거시경제 지표와 재정 부양 제약
| 구분 | 지표 | 수치·전망 | 정책적 시사점 |
|---|---|---|---|
| 물가 | 생산자물가지수(PPI) | 6월·7월 모두 전년 대비 7% 상승 | 기업의 원가 부담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가능성 확대 |
| 물가 |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 2026 회계연도 하반기부터 2%를 크게 웃돌 전망 | 고유가·AI 전력 수요·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압력 |
| 성장 |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 전기 대비 0.3%, 연율 1.1% 증가 | 경기 회복세 둔화로 추가 재정 지원 요구 확대 |
| 내수 | 민간소비 | 전기 대비 보합 | 가계 구매력 약화와 소비 회복 지연 |
| 투자 | 민간 설비투자 | 전기 대비 1.2% 감소 | 기업 투자 위축으로 성장 동력 약화 |
| 정책 | 재정·통화정책 방향 | 재정 부양 검토·추가 금리 인상 기조 병존 | 재정 부양 효과가 물가와 대출금리 상승으로 상쇄될 가능성 |
이시바 전 총리는 감세 요구 일축
전임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야당의 소비세 감면 요구를 일축한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지난해 5월 야당이 식료품 소비세율 인하를 압박하자, 이시바 내각은 소비세가 연금과 의료를 지탱하는 상시 재원이라며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수가 늘어도 고령화로 사회보장비가 함께 불어나고, 부족분을 국채로 메우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는 논리였다. 이시바 전 총리는 같은 달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금리가 되살아난 상황의 위험을 거론한 뒤 일본 재정이 “그리스보다도 좋지 않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연이은 선거 패배와 당내 퇴진 압박 속에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재원 감세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시바 전 총리가 끝까지 감세를 거부한 데는 소비가 기대만큼 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식료품 소비세율 인하와 중·저소득층 급부를 함께 시행해도 실질 개인소비는 기준 전망 대비 0.4%, 실질 GDP는 0.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절세로 확보한 자금 일부가 저축과 부채 상환으로 이동하는 데다 식료품은 가격 하락에 따른 구매량 증가 폭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시 감세가 끝나는 2년 뒤에는 소비 위축도 예상된다. 식료품 소비세율이 1%에서 8%로 복원되면 가계는 이를 7%포인트 증세로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일본은 2014년 소비세 인상 당시 시행 전 사재기 수요가 급증한 뒤 소비가 빠르게 위축된 경험도 있다. 이번에도 감세 종료를 앞두고 일부 식품의 선구매가 늘어난 뒤 실질 구매력 감소와 반동 소비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가 밀어 올린 소비세율
그렇다고 감세 기간을 연장하기도 어렵다. 소비세는 일본의 사회보장 재정을 지탱하는 핵심 재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10월 시행된 소비세율 인상도 이런 재정 압박에서 출발했다. 일본 정부는 표준세율을 8%에서 10%로 올려 고령화로 불어나는 연금·의료·요양 비용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국채 의존에 따른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 했다. 다만 생필품 가격 상승이 저소득층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식료품에는 8%의 경감세율을 남겼다. 증세로 확보한 재원은 유아교육·보육 무상화와 저소득 고령자 지원, 요양 인력 처우 개선 등 전 세대형 사회보장 정책에 투입됐다. 현행 식료품 세율 8%에는 가계 부담을 덜어주면서 복지 재원도 지키려 했던 당시의 정책적 절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증세 이후에도 복지 지출과 재원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26 회계연도 연금·의료·요양·아동·육아 지원 등 4대 사회보장 경비는 중앙·지방정부 합계 48조9,000억 엔(약 430조800억원)에 달한다. 이를 충당하는 소비세수는 30조6,000억 엔(약 269조1,300억원)에 그쳐 이미 18조3,000억 엔(약 160조9,500억원)의 재원 공백이 남는다. 중앙정부 일반회계 기준으로도 사회보장 지출은 전년보다 7,621억 엔 늘어난 39조559억 엔으로 편성됐다. 이 가운데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제·물가 대응분은 5,200억 엔(약 4조5,760억원)을 차지한다. 이렇듯 복지 지출 증가 속도가 세수 확충 속도를 앞지르는 상황에서 연간 5조 엔 규모의 감세가 시행되면 재정 부담은 더욱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다카이치 정부가 내놓은 재원 대책은 이 같은 공백을 메우기에 취약하다. 다카이치 내각이 지목한 특별회계와 기금의 여유 재원은 한 번 꺼내 쓰면 잔액이 줄어드는 일회성 자금이다. 자연 세수 증가분도 물가와 명목 성장률, 기업 실적이 뒷받침돼야 확보할 수 있다. 경기 둔화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감소할 경우 재원 계획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연간 감세액 5조 엔은 2026 회계연도 세수 83조7,350억 엔의 약 6%에 해당한다. 매년 반복되는 세수 감소를 변동성이 큰 재원에 맡기는 셈이다.
복지 지출 삭감으로 세수 결손 메우나
결국 감세안을 유지하려면 정부는 기존 지출에서 연간 5조 엔의 세수 결손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특례공채 발행을 배제한 만큼 일반회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회보장 분야에도 조정 압력이 불가피하다. 일본 정부가 2026 회계연도 예산에서 제도 개혁과 효율화를 통해 줄이기로 한 사회보장 지출은 1,500억 엔으로, 연간 감세액은 이보다 33배 이상 많다. 이 격차를 해소하려면 기존 사업을 일부 정비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해 연금과 의료·요양의 급여 범위, 가입자 부담 체계까지 손질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최근 일반의약품과 효능이 유사한 처방약 77개 성분·약 1,100개 품목에 약제비의 25%를 추가 부담시키고, 고액의료비 상한과 고령자 진료비·요양서비스 부담 기준도 개편 대상에 올렸다. 현재 이들 조치는 사회보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별도 개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감세로 세입이 줄고 세출 삭감까지 본격화하면 의료·요양비 절감 압력도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식료품 소비세 인하로 줄어든 가계 부담이 병원비와 약값, 요양비 증가로 상당 부분 상쇄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