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동맹국 부담 확대하려면 일방적 압박보다 장기 합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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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체계적 합의로 국방비 20% 확대 한미연합훈련 축소로 동맹 불확실성 부각 방위비 분담은 압박보다 일관된 전략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에 방위비 부담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이행 일정을 앞세운 방식이 실제 국방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 캐나다의 실질 국방비는 전년보다 약 20% 증가해 195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나토 32개 회원국 모두 기존 ‘국내총생산(GDP) 대비 2%’ 기준을 넘어섰으며 ‘헤이그 합의’를 통해 2035년까지 국방 및 관련 분야 지출을 GDP의 5%로 확대하기로 했다. 동맹국의 부담 확대를 장기적인 목표와 일정에 따라 추진하는 방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한미동맹에서는 사전 협의 없이 대통령의 지시로 군사훈련 일정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나토가 사전에 합의한 목표와 일정에 따라 동맹국의 역할을 확대해 온 것과 달리, 한미동맹에서는 예고되지 않은 결정으로 훈련 일정이 변경되면서 미국의 동맹 관리 방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흔들리는 한미동맹의 제도적 신뢰
올해 연례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은 한국군 약 1만8,000명과 주한미군이 참가해 8월2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훈련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기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일정이 변경됐다. 그는 연합훈련이 북한에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라고 주장하며 집권 2기 들어 이어온 대북 유화 기조를 재확인했다. 훈련 축소에는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평가가 함께 작용했다. 결국 훈련은 당초 계획보다 엿새 빠른 8월21일 종료됐다. 외교·안보 당국의 사전 조율보다 대통령의 판단이 훈련 일정에 직접 반영되면서 한미 간 군사 공조를 둘러싼 우려도 커졌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합방위태세 약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실사격을 포함한 한미연합훈련을 줄이면 다른 방식의 훈련만으로 같은 수준의 군사 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레이프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는 훈련 단축으로 양국의 군사 공조가 약화되고 그 책임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마크 켈리 미국 상원의원도 이번 결정이 근시안적인 조치라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이번 결정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평가하며 양국 협력의 ‘역사적인 새 시대’를 강조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나왔다. 미국 정부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직후 대통령의 지시로 군사협력 방향이 바뀌면서 미국의 제도적 약속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대미 의존도 낮추는 동맹국
이처럼 미국의 동맹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한국의 외교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 집중됐던 협력 관계를 다른 지역으로 넓혀 외교·경제적 위험을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8월 초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긴 해외 순방에 나섰지만 워싱턴은 방문하지 않았다. 대신 샌프란시스코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등이 참석한 인공지능(AI) 정상회의를 주재한 뒤, 브라질과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독일을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찾고도 미 대통령과 회담하지 않은 것은 20년 만이다.
이번 순방은 방문 지역뿐 아니라 주요 의제에서도 한국 외교의 변화가 드러났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한국 외교의 무게중심이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안보 현안에서 첨단기술과 공급망을 아우르는 경제 협력으로 확대되는 흐름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은 중남미에서 핵심 원자재 확보에 나서는 동시에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 협력을 강화하며 협력망을 넓혔다. 미국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질수록 동맹국이 외교·경제 관계를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려는 유인도 커질 수 있다.
나토 방위비 확대와 회복탄력성
이와 달리 나토는 사전에 정한 목표와 이행 일정에 따라 방위비 분담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6월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나토 32개 회원국은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 및 관련 분야에 투입하기로 합의했으며, 2029년에는 이행 상황을 중간 점검하기로 했다. 회원국이 공동 목표와 점검 방식을 사전에 확정하면서 방위비 확대를 장기간 추진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늘어난 국방비를 실제 군사 역량으로 연결하려면 병력과 물자를 뒷받침하는 기반시설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알렉산더 노이스와 제시 험팔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원활하게 이동하려면 철도와 항만, 연료 공급망, 통신망 등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들 시설이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될 경우 병력 투입이 수일간 지연돼 작전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동맹국의 공동 투자를 전제로 미국이 핵심 기반시설 강화에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러한 접근은 방위비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작전 수행에 필요한 기반까지 공동으로 구축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관된 동맹 전략의 필요성
나토와 한미동맹의 사례는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헤이그 합의를 기반으로 철도와 항만, 에너지 등 기반시설 투자를 확대해 늘어난 국방비를 실제 군사 역량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인도·태평양에서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과 같은 장기 협상 방식을 기반시설 분야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안보 환경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전에 목표와 역할을 정하고 공동 투자를 추진한다는 원칙은 동일하다.
반대로 연합훈련 축소와 같은 일방적인 압박이 동맹국의 양보를 빠르게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 외교·경제 협력 대상을 넓혀 위험을 분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나토 회원국이 공동 목표와 중간 점검을 토대로 국방비를 확대해 온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이는 계획 없는 압박이 동맹국의 협조를 끌어내기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결국 동맹국에 더 많은 부담과 역할을 요구하려면 압박의 강도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사전에 합의한 목표와 일정이 유지돼야 동맹국도 장기적인 국방 투자와 군사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반대로 정책 방향이 단기간에 바뀌면 동맹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기보다 위험을 분산할 다른 선택지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진다. 방위비 분담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일시적인 압박보다 정권과 상황 변화에도 유지될 수 있는 제도적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Defense Burden Sharing Works Best With Strategy, Not Pressur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