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인메탈 턱 밑까지 올라온 '한화', 유럽·미국 공급망 안착이 추가 도약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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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인도 물량 본격 반영, 한화 방산 매출 급증 유럽·미국 생산거점 확보로 완제품 수출 한계 돌파 제조 효율 유지와 현지화 완성, 추가 도약 핵심 조건

한화가 글로벌 방산기업 순위에서 16위로 뛰어오르며 유럽 전통 강호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의 수출 확대가 외형 성장을 이끈 데 이어, 현지 생산시설과 협력업체망, 운용국 협의체 구축 역시 장기 사업 기반을 다지는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의 승부는 이 같은 기반을 현지 산업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느냐에 달렸다. 유럽과 미국이 자국 생산과 고용, 부품 조달을 중시하는 만큼, 현지 공장과 협력업체망을 토대로 부품 조달과 인력 양성 체계를 갖춰야 장기 수주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 글로벌 방산 16위 도약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방산 전문매체 디펜스뉴스의 '2026 방산기업 톱 100(Top 100 Defense Companies 2026)'에 따르면 한화는 지난해 방산 매출 104억3,763만 달러(약 14조2,880억원)를 기록하며 전 세계 16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 발표(22위)보다 6계단 상승한 수치다. 한화의 방산 매출은 2024년 68억1,734만 달러(약 9조1,260억원)에서 1년 만에 40억 달러(약 5조3,560억원)가량 급증했으며, 전체 회사 매출에서 방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조사됐다.
이번 순위에서 한화는 독일 라인메탈(15위, 112억1,318만 달러·약 15조140억원)의 바로 뒤를 이었다. 반면 중국 국영 조선사인 CSSC(17위, 102억679만 달러·약 13조6,670억원)를 앞질렀다. 프랑스 탈레스(12위)를 비롯한 유럽 전통 방산 강호들과의 격차를 좁힌 것이다. 특히 대형 방산기업 간 순위 다툼 속에서 한화의 방산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나타냈다.
지상방산 수출과 계열사 시너지 결합
한화의 방산 매출 확대를 이끈 핵심 동력 중 하나는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의 수출 실적이다. 2022년 이후 폴란드와 체결한 K9·천무 실행계약 물량이 2024~2025년 순차적으로 인도되면서 지상방산 부문의 외형을 끌어올렸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방산 매출은 2024년 7조63억원에서 2025년 8조1,331억원으로 16.1% 늘었으며, 수출 비중도 68%에서 71%로 높아졌다. 폴란드향 K9·천무 인도가 이어진 가운데 탄약과 부속류 공급까지 더해지며 해외 매출 기반도 확대됐다.
수출 호조와 함께 계열사 간 방산 역량을 결합한 사업 재편도 한화의 주요 성장축으로 꼽힌다. 한화시스템이 레이더와 지휘통제체계를 담당하고 한화오션이 수상함·잠수함 등 해양 방산 역량을 보태면서, 한화는 지상 화력체계부터 감시·정찰과 해양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제품군을 구축했다. 각국의 무기 조달 범위가 현지 생산과 탄약 공급, 유지·보수·정비(MRO)까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계열사 협업은 대형 수주전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강점으로 평가된다.
유럽 방산 생태계 겨냥한 현지 생산망
한화의 체급을 키운 또 하나의 축은 사업 지역의 다변화다. 수출 확대로 몸집을 키운 한화는 유럽 방산 생태계에 생산 기반을 심는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각국이 방산 지출을 늘리는 동시에 자국 내 생산과 고용, 기술 이전을 조달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완제품 공급만으로 장기 계약을 확보하기가 한층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의 1,500억 유로(약 234조510억원) 규모 방산 금융지원 제도인 ‘유럽안보행동기금(SAFE)’은 지원 대상 장비 부품 비용의 최소 65%를 EU와 우크라이나, 적격 유럽경제지역·유럽자유무역연합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규정한다. 현지 공장과 협력업체망을 갖춰야 EU의 정책 지원을 활용하고 후속 물량까지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한화가 가장 먼저 구체화한 유럽 생산 거점은 루마니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12일 루마니아 듬보비차주 페트레슈티에서 18만1,055㎡ 규모의 지상무기 생산시설 ‘H-ACE 유럽’ 건설에 착수했다. 이곳은 루마니아가 2024년 도입을 결정한 K9 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차 36대의 현지 생산을 담당하며, 조립·통합·시험과 전 주기 군수지원 역량까지 갖출 예정이다. 계약 물량 대부분을 루마니아에서 생산하고 현지화율은 최대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현재 협력 중인 30개 이상의 루마니아 기업을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하고 연구개발(R&D) 기능을 배치해 유럽 지상무기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독일 생산거점 구축에 속도
서유럽 핵심 거점으로는 독일을 겨냥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5월 베를린에서 첫 ‘한화 인더스트리 데이’를 열고 현지 생산과 공동 R&D, 장기 투자 방안을 독일 정부·기업 관계자들과 논의했다. 당시 한화는 독일 동부 지역에 생산시설을 세우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현재 거래 중인 독일 협력업체는 60여 곳이며 연간 조달액은 1억 유로(약 1,560억원)를 웃돈다. 독일이 대규모 재무장에 착수한 상황에서 현지 생산과 공급망 참여를 앞세워 장기 협력 기반을 확보하려는 행보다.
독일의 시장 규모가 커진 점도 한화의 현지화 전략에 힘을 싣는다. 독일 정부는 2027년 핵심 국방예산을 1,090억 유로(약 170조770억원)로 편성하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도 116억 유로(약 18조1,060억원)를 배정할 계획이다. 국방예산은 2030년 1,836억 유로(약 286조5,760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다만 라인메탈과 KNDS를 비롯한 현지 방산업체의 기반이 탄탄하고 자국 산업 육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한화가 독일 생산시설과 현지 고용, 부품 조달 확대에 공을 들이는 배경이다.
현지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과거 유럽 사업에서도 확인된다. 한화그룹은 2011년 태양광 사업의 유럽 확장을 추진하며 독일 프로축구 구단 함부르크SV와 후원 계약을 맺고 ‘한화솔라컵’을 열었다. 입장권과 포스터, 구단 홈페이지에 한화솔라 로고를 노출하고 팬미팅까지 마련하며 현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방산 사업은 정부의 정책 판단과 지역 산업계의 이해관계, 수십 년간 이어지는 후속 군수지원이 맞물려 움직인다. 현재 추진하는 생산시설과 현지 공급망 구축 역시 시장 정착 전략을 산업 협력의 영역으로 확장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표1.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천무 운용국 협력망 확대 현황
| 구분 | 참여국·규모 | 주요 협력 내용 | 향후 계획 |
|---|---|---|---|
| K9 유저클럽 | 한국·에스토니아·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루마니아·호주 등 7개 운용국 스페인·스웨덴 참관단 군·산업 관계자 200여 명 | 운용·정비 경험을 성능개량과 군수지원 체계에 반영 화력유도 드론과 K9을 연계한 표적 탐지·정밀타격·피해 판정 운용개념 제시 부품 견적·주문·배송 정보를 통합한 디지털 군수지원 체계 구축 | 디지털 군수지원 체계를 폴란드 부품창고와 연계 차기 K9 유저클럽을 호주에서 개최 운용국 중심의 장기 협력망 구축 |
| 천무 유저 워크숍 | 한국·폴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 관계자 40여 명 | 전력화와 운용·정비, 교육훈련, 부품 관리 경험 공유 폴란드, 현지형 천무 ‘호마르-K’ 도입 및 유도탄 현지 생산 추진 에스토니아·노르웨이·크로아티아도 천무 도입 | 내년 한국에서 첫 공식 천무 유저클럽 개최 공동 부품 조달과 교육훈련·군수지원 협력 확대 |
K9 중심 운용국 연대, 천무까지 외연 확대
여기에 K9 운용국을 하나의 협력망으로 묶는 작업이 더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4일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제5회 ‘K9 유저클럽’을 열어 한국·에스토니아·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루마니아·호주 7개 운용국과 스페인·스웨덴 참관단 등 군·산업 관계자 2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자리에서 한화는 수직이착륙 화력유도 드론이 표적을 탐지·추적해 좌표를 보내면 K9이 정밀타격하고, 드론이 피해 상황까지 판정하는 차세대 운용개념을 제시했다. 부품 견적과 주문, 배송 정보를 통합한 디지털 군수지원 체계는 폴란드 부품창고와 연계할 예정이다. 각국의 운용 경험을 성능개량과 정비체계에 반영해 장기간 이어지는 협력 고리를 만들려는 계산이 깔렸다.
K9을 중심으로 구축한 운용국 협의체는 천무로도 외연을 넓혔다. 한화는 K9 유저클럽 기간 중 ‘천무 유저 워크숍’을 마련했다. 한국·폴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 관계자 40여 명이 전력화와 운용·정비, 교육훈련, 부품 관리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폴란드는 현지형 천무 ‘호마르-K’ 도입에 이어 유도탄 현지 생산을 추진 중이며, 에스토니아와 노르웨이·크로아티아도 천무 도입국 대열에 합류했다. 한화는 이를 토대로 내년 한국에서 첫 공식 천무 유저클럽을 열고, K9 유저클럽은 호주에서 이어갈 계획이다. K9과 천무를 함께 채택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늘어날수록 공동 부품 조달과 교육훈련, 군수지원 협력의 폭도 확대된다.
이 같은 운용국 네트워크는 진입 장벽이 높은 서유럽 시장을 겨냥한 사전 포석이기도 하다. 한화는 조달 여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동유럽·남유럽 시장에서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먼저 판로를 넓혔다. 이용국 협의체에 쌓이는 운용·정비 기록은 독일과 영국이 성능과 나토 상호운용성, 장기 군수지원 능력을 검증할 때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현재 양국과 진행 중인 협의에도 무기체계 조달과 함께 생산시설 배치, 현지 인력 활용 방안이 포함됐다. 운용국의 성과와 요구를 정례적으로 공유하며 ‘검증된 나토 화력체계’라는 인식을 서유럽 시장에 확산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美 육군 뚫은 한화, 고속납기·제조효율 유지 관건
한화는 유럽에서 축적한 현지 생산 경험을 앞세워 미국 방산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달 18일 미 육군의 기동전술포(MTC·Mobile Tactical Cannon) 시제품 개발 사업자로 선정됐다. 계약에는 K9 기반 차륜형 자주포 K9MH 6문과 추가 12문에 대한 옵션이 담겨 최대 누적 금액은 2억6,290만 달러(약 3,6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미 육군은 약 4년에 걸친 운용시험을 거쳐 일부 부대의 M777 견인포를 MTC로 교체할지 판단한다. 블룸버그 오피니언은 후속 양산사업 규모가 최대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계약 액면보다 미 육군의 장기 조달체계에 진입할 발판을 확보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한화는 이 경쟁에 뛰어들기 전부터 미국 내 생산 기반을 먼저 확보했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4월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의 사업장을 3년간 임차하고, 200만 달러(약 27억원) 이상을 투입해 K9 계열 통합·시험시설을 조성하는 데 나섰다. 이번 계약에 따른 K9MH 시제품 6문도 이곳에서 조립·통합한 뒤 미 육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인력은 인근 오번대학교의 공학 인재와 포트베닝 연계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활용해 약 40명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방산 조달을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 확대로 연결하는 상황에서, 오펠라이카 투자는 K9MH 사업을 현지 고용과 지역경제의 이해관계에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현지 거점을 실제 미국형 공급망으로 안착시키는 작업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현지 생산능력과 공급망, 군의 성능 검증, MRO 체계,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등이 수주 경쟁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오피니언 역시 현재 K9 부품 공급망의 미국산 비중을 약 40%로 추산하며, 미 국방부의 주요 공급업체로 자리 잡으려면 이를 최소 50%까지 끌어올려 '바이 아메리칸' 기조와 관세 위험을 낮춰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지 부품업체와 숙련 인력을 확보하면서 한국 생산체계가 지닌 납기와 제조 효율도 유지해야 해, 공급망 전환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줄리아나 리우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한화는 한국 방산기업의 강점인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미국 공급망과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며 “미국 내 산업 역량이 성숙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