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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외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 공식 발표
트럼프 관세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우려 가중
연준 인사 “금리 인하 경로에 영향 줄 수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가운데, 미국 내 신차 가격이 1만 달러(약 1,470만원)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장기 전망에 대한 소비자와 시장 간 인식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지면서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자동차가격 상승→구매수요 감소→생산 감소
27일(이하 현지시간)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는 미국 자동차 시장 전망에서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향후 자동차 소비자 가격이 약 3,000달러(약 439만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에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캐나다·멕시코산 자동차의 경우, 6,000달러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도 내다봤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무역협정(USMCA)를 맺어 대부분 무관세로 그동안 자동차 및 부품을 수출해 왔으며, 우리나라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많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이를 이용해 미국 자동차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로 활용해 왔다.
조너선 스모크 콕스오토모티브 수석 경제학자는 높은 가격이 차량 수요를 줄이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생산을 줄이도록 만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내 공장에서 하루 약 2만 대, 즉 평소보다 약 30% 적은 자동차가 생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그는 “4월 중순이면 북미 지역 거의 모든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생산감소, 공급 부족, 가격 상승이 곧 닥쳐올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콕스오토모티브는 미국의 2025년 신차 판매 대수 예측을 연초 1,630만 대에서 4.3% 줄어든 1,560만대로 줄였다. 당초 콕스오토모티브스는 자동차 구매를 위한 대출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2019년 이후 가장 차량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관세 전쟁으로 이 같은 전망이 의문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찰리 체스브로 콕스오토모티브 수석 경제학자는 현재 미국 경제를 “둔화되는 경제”로 표현하면서 “관세, 불확실성, 인플레이션이 성장 잠재력을 일부 갉아먹고 있어 경제성장률이 잠재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큰 우려는 이 같은 둔화가 엔진꺼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강조했다. 이어 그는 노동시장이 추가로 악화하지 않는 한 현재 ‘경고등’인 미국 경제 상황이 반드시 침체로 간단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관세와 본격적인 세계 무역 전쟁의 가능성이 예측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차값 1만 달러 이상 오를 수도
뉴욕타임스(NYT)도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로 인해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공급망이 혼란에 빠지고,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있으며, 소비자 비용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KPMG 이코노믹스의 켄 김 선임 경제학자는 2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동차업계가 (관세에 대비해) 지난달 자동차 및 부품 주문을 크게 늘렸다”고 밝혔다. 그는 업계 추정치를 인용하며 “관세로 인해 신차 가격이 수천 달러 상승할 수 있으며, 일부 차량의 경우 1만 달러 이상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차와 도요타, 폭스바겐 등 주요 해외 완성차 업체 대표 단체인 오토드라이브아메리카도 별도 논평을 통해 “오늘 부과된 관세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 선택지 감소, 그리고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시간대학교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가계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3.9%로 199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시장 기반 지표는 2.2%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카고 연은 총재 “인플레 우려, 적신호 될것”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급등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주요 위험 신호 영역이 될 수 있는 만큼 금리 인하 경로를 뒤바꿀 수 있는 적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상승한 것과 달리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안정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삼아 인플레이션이 곧 안정될 것이란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채권 시장의 향후 10년 중 후반 5년에 걸친 물가 상승률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나타내는 ‘5년-5년 향후 인플레이션 기대율’(T5YIFR)은 현재 2.2% 수준으로, 가계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는 “만약 국채 시장 투자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미국 가계의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수렴한다면 연준은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중요한 책무다. 만약 대중들이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이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특히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이후 큰 폭의 물가 상승을 경험했으며, 연준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2%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통제하는 일이 평소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FT는 짚었다.
굴스비 총재는 현재 연준이 2023~2024년에 보였던 이른바 ‘황금 경로(golden path)’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그 시기에는 성장 둔화나 실업률 증가 없이 인플레이션이 2%대로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준이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지난 2022년 6월 6.8%에 달했으나 지난해부터 2%대로 완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공기 중에 먼지가 가득 낀 듯한(dust in the air)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굴스비 총재는 진단했다.
그는 향후 12~18개월 내 금리 수준이 “꽤 많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다음 금리 인하 시점은 예상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금처럼 먼지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기다리며 지켜보는 전략’이 올바른 접근 방식”이라면서도 “기다리는 데도 비용이 따른다.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점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잃게 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향후 3~6주가 일련의 정책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굴스비 총재는 “미국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미시간주 경영진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4월 2일을 중요한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보고 있다”며 “그들은 적용 규모, 면제 사항 유무 등 상호관세가 어떻게 발표될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특히 자동차 부문은 캐나다와 멕시코와의 결합 정도가 크기 때문에 관세가 어떻게 적용될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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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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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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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번역’, 통번역 산업에 ‘파괴적 영향’
기계 번역 증가할수록 외국어 능력 수요는 감소
외국어 교육 정책 “고민해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인공지능(AI)은 전 세계 산업 지형을 급속히 바꾸고 있으며 통번역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기계 번역(machine translation, MT) 기술의 발전이 통번역 업무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외국어 능력 수요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기계 번역의 활용으로 통번역 산업의 고용 및 임금과, 다양한 직업 분야에서 외국어 능력 수요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사진=CEPR
인공지능 기반 ‘기계 번역’, 통번역 산업 “와해 가능”
인공지능(AI)의 통번역 분야에서의 영향력은 2010년 모바일 앱 출시로 구글 번역(Google Translate)이 보편화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 도입률이 높은 지역에서 통번역 관련 고용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AI 기반 번역의 접근성과 신뢰성이 증가하며 다른 직업 분야에서의 외국어 능력에 대한 수요도 감소했다.
AI 기반 번역은 최근에야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기계 번역이라는 개념이 나온 시기는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IBM과 조지타운 대학교가 공동 개발한 ‘IBM 701’ 컴퓨터를 최초의 기계 번역 시도로 볼 수 있다. 이후 1997년 야후!(Yahoo!)의 바벨 피쉬(Babel Fish), 2006년 구글 번역이 나오며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이후 구글 번역이 모바일 앱과 웹 브라우저로 통합되면서 이용이 보편화된 것이 통번역의 양상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다.
‘통번역사’ 검색 줄고 ‘기계 번역’ 검색 증가
인터넷 검색 기록을 봐도 인간이 하는 번역에서 자동화된 번역 도구로 관심이 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글 번역’에 대한 검색이 늘어난 반면 ‘통번역사’에 대한 검색은 줄어들었다. 과거 외국어 능력이 필수적이던 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AI 기반 통번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구글 검색에서 ‘통번역사’와 ‘구글 번역’ 검색 추이(2004~2024년) 주: 연도(X축), 통번역사(좌측 Y축), 구글 번역(우측 Y축), ‘통번역사’(청색), ‘구글 번역’(적색)/출처=CEPR
연구는 AI가 통번역사 고용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2010~2023년 기간 미국 커뮤니티 설문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데이터와 함께 미국 내 696개 고용 시장에 걸쳐 채용 공고, 임금 통계, 검색 엔진 데이터 등을 분석했다.
미국 고용 시장별 ‘구글 번역’ 검색 증가율(2010~2023년)/출처=CEPR
그 결과 구글 번역 도입률과 통번역사 고용률 간 직접적 상관관계가 발견됐다. 구체적으로 기계 번역 사용이 1% 증가하면 통번역사 고용률은 0.7% 줄어들었다. 그렇게 조사 기간 AI 번역 도구로 인해 미국에서 사라진 통번역 관련 일자리는 2만 8천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직업 분야 ‘외국어 능력’ 수요도 감소
AI 번역의 영향은 통번역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객 서비스, 국제 무역,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서 외국어 실력은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기계 번역의 정확성과 접근성이 향상되며 기업들은 외국어 능력을 갖춘 직원을 채용하기보다 점점 더 AI에 의존하고 있다.
구글 번역 도입률이 높은 지역에서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채용 공고 증가율이 줄어드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해당 지역에서 스페인어에 대한 수요 증가는 기계 번역 도입률이 낮은 지역보다 1.4% 낮았다. 중국어와 독일어도 각각 1.3%, 0.8%씩 낮았다. 일본어와 프랑스어 능력을 요구하는 채용 공고도 눈에 띄게 줄었다.
추세는 그렇지만 외국어 능력 의존도가 아직 높은 분야도 있다. 중국어 실력은 정보통신, 과학, 공학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중요성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해당 분야에서의 기술 이전(technology transfer) 필요성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AI의 역할이 증가하며 외국어 능력에 대한 전반적 수요가 계속해서 줄어들 것은 확실해 보인다.
기계 번역, 언어 장벽 없애 ‘서비스 무역’ 촉진할 것
AI 번역은 고용뿐만 아니라 글로벌 무역 양상도 바꾸고 있다. 역사적으로 언어 장벽은 국제 무역의 상당한 장애 요인으로 간주됐다. 말이 통하면 양자 간 무역량이 50%까지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해당 분야에서 언어 장벽으로 인한 비용은 관세나 기타 무역 장벽만큼 심각하게 여겨져 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계 번역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서비스 무역을 견인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저소득국의 경제 성장은 제조업 수출에 주로 의존해 왔지만 자동화와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저임금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며 전통적 성장 모델이 도전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AI 번역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마케팅, 컨설팅, 디자인, 기술 등을 포함한 글로벌 서비스 산업에 참여할 기회를 높이고 있다. 기계 번역 기술이 향상될수록 서비스 수출의 기회는 늘어날 것이다.
AI가 통번역 관련 채용과 외국어 능력 수요에 미친 영향은 아직까지 크지 않지만 앞으로 확대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실시간 통역 기술의 개발은 그간 자동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동시통역사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오픈AI에서 개발한 스카이(Sky)가 이탈리아어와 영어 간 흠잡을 데 없는 동시통역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보면 해당 영역에서 AI가 파괴적(disruptive) 기술이 될 가능성은 높다.
이러한 추세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교육 정책이다. 현재 미국 내 학생의 20% 가까이가 외국어 과정에 등록돼 있는데 AI 기반 번역 도구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외국어 교육이 필요할지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로 바뀌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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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정치 불만으로 ‘국회의원 소환’ 급증
여야 정쟁 도구로 활용
민주주의 수단이냐, ‘당파적 책략’ 도구냐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대만 정치는 작년 총선 이후 입법 정체가 이어지고 이에 책임을 묻는 소환 투표(recall election) 요구가 급증하며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빗발치는 소환 요구는 해당 제도의 장점과 한계에 대한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다.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주장과 정쟁의 도구라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사진=동아시아포럼
대만 국회의원 주민 소환 “급증”
소환 투표제는 선거로 임명된 공직자에 대해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만 국회의원의 경우는 선출직만 소환 대상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지역구 내에서 전국 단위 선거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진행된다.
2016년 이후 대만의 모든 소환 요구는 국회의원의 말과 행동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족이 원인이었다. 그렇게 선출된 공직자가 유권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한편 그렇지 못할 경우 정치적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 모든 국회의원에게 소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비례직 빼고 선출직 국회의원만 소환 대상
대만 국회는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선출직 국회의원과 비례대표제 의원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선거에서 승리해 의석을 확보한 의원들은 소환 대상인 반면 비례직 의원은 그렇지 않다. 이는 국회 내에서 동등한 권한을 인정받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유권자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권한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작년 대만 총선은 집권 민진당(Democratic Progressive Party, DPP)이 여당 자리를 유지했으나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야당인 국민당(Kuomintang, KMT) 역시 무소속 의원들과의 동맹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얻지 못해 대만 국회는 소수당인 대만 국민당(Taiwan People's Party, TPP)이 캐스팅 보트를 쥔 형국이 됐다.
그런데 대만 국민당 소속 국회의원 8명이 모두 비례대표로 소환 대상이 아니다. 입법 교착 상태에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민소환제도가 정쟁 수단으로
국회에 과반수 정당이 없다는 것이 반드시 교착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은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일에 점점 더 힘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국민당과 대만 국민당은 국회에 상정된 예산안 대부분을 동결하거나 삭감함으로써 집권 민진당을 좌절시키는 한편 시민 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이에 민진당 원내 총무인 커첸밍(Ker Chien-Ming) 의원은 입법적 방해에 대항할 수단으로 국민들의 소환 투표 발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야당은 이에 대응해 대만 국민당 대표 황궈창(Huang Kuo-Chang)이 소환 반대 운동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가운데 시위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갈등은 국회를 벗어나 거리로까지 확대된다.
대만의 국민소환제도는 지난 세월 상당한 변화를 겪었는데 헌법상의 권리임에도 절차상의 한계로 최근까지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2014년에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Sunflower Movement,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 협정에 반대해 학생 및 시민 단체가 주도한 시위)이 2016년의 공직선거 및 소환법(Public Officials Election and Recall Act) 개정을 촉발해 소환 투표 발의와 의결 조건을 완화했다.
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 3명의 지역구 의원에 대한 소환 청원이 승인됐으며 이 중 한 명이 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절차는 아직도 복잡한 편이나 의결까지 문턱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현재의 소환 열풍을 불렀다.
제도 개선해 ‘민주주의 강화해야’
올해 초까지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명의 국민당 의원에 대한 소환 신청을 승인했는데 아직도 절차상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다. 특히 소환 승인 이후 주민 서명 단계에서 소환 대상 의원에게 주민들을 접촉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의원의 활동과 정책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소환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며 해당 제도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반대자들은 소환 선거가 국회 내 정당 간 의석수 차이가 박빙인 상황에서 정치적 무기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수단이 아닌 당파적 책략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주민소환제도는 민주주의의 소중한 구성 요소임이 틀림없다. 반대파의 주장대로 정치적 목적의 소환을 막기 위해 발의 조건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의 민주주의 문해력을 높여 지속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만 민주주의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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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김동관, 현금 부족에도 한화에어로 유증 강행
26일 이사회서 에어로 신주 9,800억원 규모 매입키로
현금성 자산 대부분 지분 매입에 쓰고는 "최선의 선택"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한화에어로 전략부문 대표이사)의 그룹 지배력 강화가 눈총을 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주주들에게 직·간적접 손실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어서다. 한화에어로는 유증에 대해 선제적 투자 자금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 분위기다. 양호한 현금흐름으로 자체 투자 여력이 충분함에도 기습적으로 유증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화, 한화에어로 9,800억원 규모 유증 참여
27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전날 한화에어로의 신주 162만298주를 주당 60만5,000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발행가액은 5월 29일 확정되나 현재 기준총액 규모는 9,803억원에 이른다.㈜한화의 지난해 말 별도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기타금융자산 포함)은 3,506억원으로 유증에 참여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 ㈜한화는 자체 현금과 함께 외부 차입을 통해 유증 참여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한화는 한화에어로의 유증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지배력을 공고히 가져갈 수 있다. 현재 지분율은 33.95%인데 유증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지분율 30%(30.03%)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화가 유증 참여에 나선 것은 모회사로서 자회사의 해외 지방방산 거점 투자와 방산 협력을 위한 지분 투자 등에 나설 한화에어로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승모 ㈜한화 대표이사는 "한화에어로의 과감한 투자 필요성에 공감하며 자회사의 성장으로 한화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동시에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유증에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김동관 부회장을 필두로 주요 경영진이 한화에어로 주식 매입에 나선다. ㈜한화의 유증 참여와 같은 맥락에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 주식 30억원 규모를 매수할 예정이다. 또 손재일 사업부문 대표이사와 안병철 전략부문 사장도 유증에 따른 우리사주 매입과 별도로 각각 9억원, 8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수한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25일 경기 성남시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밸류업 한다더니 뒤통수
하지만 시장 반응은 부정적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의 유증 공시 이후 3개 증권사가 투자의견을 하향했다. 삼성·DS·다올증권은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매도의견을 내지 않는 국내 리서치 문화를 감안하면 사실상 '매도'나 마찬가지란 평가다. 유증 공시 다음날 주가 역시 13% 이상 급락했다. 기발행 주식수 대비 13%에 달하는 물량을 한번에 발행하면 EPS(주당순이익) 희석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이번 자금조달이 필요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주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거세다. ㈜한화가 초대형 유증에 나선 것은 결국 주주보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한화에어로는 최근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 등 그룹사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취득했다. 당시 현금 흐름이 충분해 자본 조달이 필요없다고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대규모 유증을 발표하며 말을 바꿨다. 여기에 사상 최고가 수준에 증자를 결정한 것이 의도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유증 구조에선 오너 3형제가 손해를 볼 여지는 거의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화가 유증에 참여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오너 3형제가 지배하는 자회사(한화에너지)는 기존처럼 그룹 지배력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게 된다. 반대로 ㈜한화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실권주 일반 공모에 참여해 한화에너지가 지분을 가져올 수도 있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가 100% 참여를 결정하면서 실권주는 발생하지 않게 됐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도 피해가게 됐다.
이와 관련해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유증 자체는 자금을 조달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인데 문제는 한 달 전 회사가 갖고 있던 현금을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회사가 보유한 주식과 맞교환하고 유증이 이뤄졌다는 점"이라며 "이건 일종의 사익 편취"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패밀리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사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사오는 데 1조원이 넘는 돈을 지출한 지 일주일 만에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양새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유증은 승계 작업용?
일각에서는 ㈜한화가 승계 구도를 탄탄히 하기 위해 실적이 좋은 한화에어로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는 매입 시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매입할 때는 주가가 하락했을 때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매입한다. 하지만 한화오션 주가의 경우 고공행진하면서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었다.
게다가 한화에어로의 현금도 김동관 부회장 등 그룹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로 흘러 들어갔다. 앞서 한화에어로는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로부터 지분을 인수했는데, 한화에너지는 오너가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50%)과 김동선·김동원 형제(각각 25%)가 지분 전부를 들고 있다. 본래 한화그룹 지배구조 상단에는 지주사인 ㈜한화가 있었지만, 최근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옥상옥 구조를 완성하는 중이다.
한화그룹 승계 작업의 마지막 퍼즐은 궁극적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22.65%, 1,697만7,949주)을 김동관 부회장(방산·에너지 부문), 김동원 부사장(금융 부문), 김동선 부사장(유통·로봇 부문)에게 상속 혹은 증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간 3형제의 합산 지분율이 100%인 한화에너지를 상장해 ㈜한화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한화는 한화에어로(33.95%), 한화생명(43.24%), 한화갤러리아(36.31%), 한화솔루션(36.31%), 한화호텔앤드리조트(49.8%) 등의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즉 3형제가 ㈜한화를 지배하게 되면 한화그룹 승계가 완성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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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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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보면서, 우리나라 3류 커뮤니티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한국 업체들에 온갖 욕을 다 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 오버랩된다.
트럼프는 관세를 강하게 때리면 해외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자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물론 다른 정치적인 목적이 있겠지만, 그 부분은 논점일탈인 것 같아 제외한다.)
트럼프 관세가 낳은 자중 손실 (Dead Weight Loss)과 미국 소비자 부담
일본 소프트뱅크나 대만의 TSMC, 한국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이 실제로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트럼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 같지만, 현실은 물가 불안이 가중되는 중이고, Fed는 금리인하를 중단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금리를 올려야 되겠다고 나올 정도다. 글로벌 시장에서 명망 있는 연구 기관들은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실제로 취임 2달 만에 기대 인플레이션이 러-우 전쟁 발발 초기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간 헐 값에 사오던 모든 제품의 가격이 뛰고, 부품 가격이 뛰면 완제품 가격도 뛰면서, 다시 그거 때문에 소매업 서비스 가격이 상승하는,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 사이클이 크게 한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인들이 높은 소비자 가격에 신음하고, 소비 감소로 기업 활동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나 TSMC 사정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현대자동차는 사실 노조 문제, 비용 문제 등으로 국내에서 어려움이 많던 중에,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으로 미국으로 도망가는 구실을 만들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회사들만 미국에 대규모로 공장을 짓고, 나머지는 그런 막대한 투자금을 쏟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미국 인건비를 감당 못해 해외 공장을 지었던 테크 업체들이 과연 미국으로 돌아갈까? 심지어 공장을 지은 아시아 기업들도 공장 건설 비용을 회수해야할텐데, 미국 정부가 도와주질 않으면 회수할 곳은 미국 소비자들이다. 아시아 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걸로 정책 성공을 자축하지만, 정작 비용을 미국 소비자들이 내도록 하고, 그게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어리석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저 관세는 미국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주려는 것 같지만, 거꾸로 미국인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고, 기업들의 경영 환경만 어렵게 할 것이다. 이미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는 자중 손실(Dead Weight Loss)라는 표현을 쓴다. 괜히 바이든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세금이나 소비재 가격 인상이나, 미국인들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라는 건 똑같겠지만, 세금 기반 지원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정부 국채를 통해 인플레이션 지연 효과가 있는 반면, 관세로 인한 소비재 가격 인상은 즉각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몇 년 안에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두 행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다른 결론을 낳았는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최저 시급 2달러인 나라의 인력, 최저 시급 1만원인 나라의 인력, 최저 시급 35유로인 나라의 인력
트럼프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학 이해도를 갖춘 분들이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많고, 관세와 비슷한 종류의 정책을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다. 미국인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며 관세라는 폭탄을 때려서 강제로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듯이, 한국인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해외 노동자 채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다.
우리나라 커뮤니티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쓰는 한국 기업주들을 욕하는 분들, 대기업 오너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욕하시는 분들이 딱 저 트럼프 행정부 수준의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시급 2달러인 나라 애들에게 1시간에 20달러를 주면 미친듯이 열심히 일하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한국의 최저 시급이 1만원이지만 시간당 10만원을 주면, 그래서 하루 8시간 일하고 80만원을 받으면 자기도 미친듯이 일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럼 난 이렇게 반문해보고 싶다. 시급 2달러인 나라 애들이 한국에 들어와야 20달러를 받을 수 있으니까, 한국어도 배우고, 건설/조선소 현장에서 쓰이는 도구도 익히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정신 상태도 갖추고 온다. 안 그러면 한국와서 짤리겠지. 당신들은 한국어 쓰는 거 말고 뭘 더 가지고 있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최저 시급 1만원인 나라의 급여가 마음에 안 들면, 이를 악물고 영어/서유럽 언어를 공부해서, 그 나라에서 쓰이는 기술을 익히고, 그 나라의 일자리를 찾아가면 시간당 급여를 70달러, 원화 기준 10만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 후진국 출신 애들은 한국에 올려고 그런 온갖 어려움을 다 뚫고 왔는데, 왜 당신들은 그런 노력을 하나도 안 하면서, 심지어 걔들보다 능력도 부족하고, 정신상태도 월급 주는 사람 열받게 하는 수준이면서 시급을 적게 준다고 욕이나 하는 걸까?
그렇게 열심히 일을 안 해주면, 급여를 내는 사람 입장에서 손해 봤다, 심하게는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을 안 하기가 쉽지 않다. 당신들도 맛있다고 하니까 제주도까지 돈까스 먹으러 가서 줄까지 서 잖아? 동네의 좀 덜 맛있는 돈까스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좀 더 심하게 맛 없으면 안 사먹고, 심한 경우에는 맛 없다고 악평이나 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왜 고용주는 그러면 안 되지?
경제학에서는 생산성보다 더 높은 급여가 지급되면 물가가 계속 올라서 결국 기업이 부도 나듯이 국가도 부도 위기에 몰린다고 배운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 최근에는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신들이 당장은 시급 10만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지난 문재인 정권 내내 생산성을 무시하고 최저임금을 올렸다가 물가 상승으로 내수 침체가 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생산성보다 더 높은 급여는 결국 시스템 전체가 뒤늦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서유럽, 북유럽이 저렇게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건, 생산성이 훨씬 더 높았고, 그렇게 축적한 부가 국가의 창고에 쌓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초과 생산성을 세금과 연금으로 받아서 복지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에 서유럽, 북유럽 노년 층이 세계 여행이나 다니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노령 연금이 나온다. (물론 미국이 안보 비용을 대신 내준 덕분도 있고, 요즘은 초과 생산성이 사라지니 힘들어진 것이고)
인력의 국경, 언어적 장벽이 무의미해지는 시대
왜 그들은 그렇게 높은 생산성, 낮은 임금 인상, 노령 연금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2010년 당시에 런던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 연구 주제는 남유럽이 겪고 있던 재정 위기, 서유럽이 겪고 있던 금융 위기였는데, 1990년부터 20년간 생산성 대비 임금 인상율을 보니 독일과 북유럽은 기준값인 100 근처에서 거의 움직이질 않았는데, 위기를 겪고 있던 남유럽과 아일랜드 같은 곳들은 심한 경우 200도 넘은 것을 봤었다.
쉽게 말하면, 독일 애들보다 일도 못하면서 연봉은 2배나 빠르게 올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그래프를 보면서, 너네는 망하는게 당연하다 싶더라. (요즘 한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대만인 같은 연차보다 일 잘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예전부터 글로벌 채용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전반적으로 국가 별로, 혹은 언어권 별로, 혹은 문화권 별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참 다르다는 걸 꾸준히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채용 공고 안에 어디에서 뭘 해서 찾아와라고 써 놓으면, 그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답을 못 하면 지원이 안 되는 경우에는 아무 답이나 써 놓는 사람들도 보고, 5개 중에 4개를 골라 써야하는데 정작 5개를 다 써놓은 경우도 많이 본다. 생각 자체를 안 한다는 이야기다.
예전에 행시 합격하고 정부에서 지원해줘서 유학 중이라는 분이 우리 번역 알바에 지원했다가, 채용 공고의 기초 질문에 답이 틀렸어도 워낙 사람이 없다보니 봐주고 뽑았는데, 일은 지지리도 못하면서 시간은 안 지키고, 그 와중에 나가면서 우리한테 험담이나 하고 간 분이 있다. 나름 명문대를 나온 분이 행시를 거의 10수 쯤 하셨던데, 그 정도 글 하나 번역해서 기사도 못 만드는데도 행시도 합격하고, 거기다 국민 세금으로 유학을 보내준다는게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사건은 인도 및 주변 동남아, 남아시아 인재들한테서도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이메일까지 찾아 지원서를 보내는데, 정작 공고에 있는 상세 내용을 안 읽었는지 요청 사항에 대한 답변은 빠져 있다. 그러면서 'Attention to last detail'이 자기의 강점이라는 표현이 자기 소개에 담겨 있는데, 참 언행 불일치구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반면, 유럽 애들은 잘 사는 서유럽, 북유럽이건, 나라가 망한 남유럽이건, 사회주의 시스템의 허물을 벗느라 힘든 동유럽이건, 어느 곳을 가건 저런 질문을 대답 안 하고 지원하는 경우를 거의 보질 못한다. 그냥 지원했으면 실수했다면서 사과 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우리 유럽 팀 애들은 자기네 회사들에서 인도 애들을 몇 번 겪으면서 안 좋은 경험이 많았는지, 프리랜서 인력을 뽑을 때 마다 동유럽 애들, 아니면 남유럽 애들을 뽑자고 그랬었다. 시간대가 자기네들이랑 더 맞으니 일을 같이 하기도 더 편할 것이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급여 단가가 높은 서유럽 애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독일-스위스-북유럽 정도가 최상위 티어로 묶이던데, 돈을 크게 안 들여도 되는 업무는 동유럽 애들을 남유럽 애들보다 더 우선 순위로 두고, 남유럽 애들부터는 경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게으르단다. 그럼 쟤들이 피하는 아시아쪽 애들은 얼마나 심하길래 그러는 거야?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을려나 싶었다가, 당장 상세 내용을 읽고 질문에 답변하는 비율을 보면서, 뭔가 하나라도 설명하고 난 다음에 상대방이 이해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의사 소통 비용'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걸 겪으며, 인도에서 인력을 쓰려면 의사소통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야겠구나는 경험치를 얻기도 했다.
비단 우리 조직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아마 비슷한 경험들이 공유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서유럽 애들은 단가 낮은 업무에 동유럽, 남유럽에 우선권을 주고, 인도 애들은 자기가 그런 인력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언어권, 혹은 문화권이 자기들의 발목을 잡는 건데, 한편으로 보면 인도 애들이 그간 외주 발주를 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으면 이렇게 되어 버렸나 싶어서, 미안한 감정도 안 생긴다.
그리고, 똑같은 사고가 한국 인력 채용에서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곳곳에 숨겨놓은 정보를 찾아 답을 하면서 회사 업무를 파악해라고 던져 놓은, 무슨 숨은 그림 찾기 정도의 일도 안 하려는 분들을 채용하다가 수억 원의 손실을 본 사람이 여전히 같은 채용 방식을 택하고 있으면 그건 채용하는 사람이 욕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의 공지 글 아래에 넣은 Kanban board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나름대로 공장형(?) 시스템이 구촉되어 돌아간다.
고생해서 시스템이 갖춰졌는데, 심지어 쓸 내용에 대한 가이드가 과제 안에 다 있는데도, 한국에서는 채용하고 싶은 지원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유럽 애들은 제대로 시스템이 잘 돌아가나 궁금해서, 우리가 그 시스템을 좀 써 보면 어떨까 싶어서 고민하던 중에, 모 유럽 지원자 분이 우리 회사 시스템에 제출하신 아래의 내용을 봤다.
한국 팀이랑 비슷하게 과제를 공고해서 지원자의 글 쓰기 실력, ChatGPT를 썼어도 문장을 수정하고 자료를 찾아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작업 등을 심사했을 거라고 보는데, 저 위의 파일 말고 2개의 파일이 더 붙어있더라. 왜 파일이 2개가 더 있는거지?
회사 내부 시스템에 접속은 못하지만, 어떤 식으로 배치되는지를 자기가 가늠해서 배치해봤고, 이미지도 추가하고, 우리 조직의 공식 템플릿인 최상단 3줄 요약도 이런 식으로 들어간다는 예시도 보인다.
거기다 2단으로 배정하면 더 낫지 않겠냐는 제안도 넣어놨더라.
UI/UX 디자이너 뽑는 공고였나 싶어서 잠깐 찾아가봤더니, 기자 뽑는 공고를 올려놨던데, 왜 저런 자료까지 추가했는지 잠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그 분 이력서를 읽어보니, 자기는 글을 쓸 때 기자의 관점 만큼이나 독자의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어떻게 읽힐지, 어떻게 보일지를 따져본단다.
ChatGPT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저런 이미지 배치를 만드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더 걸렸을지 모르겠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나가신 건데, 저 분의 이력서와 딱 매칭이 되는 파일이 2개 더 추가되어 있던 셈이다. 급여도 한국이랑 별 다를 바 없는 수준이던데, 지원자의 이해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저쪽은 채용하기 참 편하겠다는 생각과, 채용하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국처럼 채용 공고를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조차 답변 제대로 하는 지원자가 거의 없는 건 아니니, 대부분은 기본은 갖춰져 있으니 채용 실패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이 부럽고, 반대로 다들 자기만의 강점을 내세워서 고민했던 내용을 추가하니 누굴 뽑아야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겠다 싶더라.
서양은 개인주의, 아시아는 집단주의인데, 아시아에서 서양의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로 이해해서,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부분은 삭제하고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만 베껴왔다던 문화 해석이 딱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저 분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회사 시스템에 반영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지원을 하신 것이다. 한국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 구하기도 힘든 나라인데...
사과할 줄 모르는 한국인, 글로벌 경쟁이 무서운 한국인
위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현대자동차가 계열사인 현대제철까지 끌고가서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고 결정을 내렸다. 국내에서 현대자동차가 얼마나 많은 인력을 직·간접적으로 채용하고 있는지 알고 나면 저 결정이 앞으로 5년, 10년 후에 한국 남동쪽 해안가 산업단지에 어떤 영향을 줄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기업 모두 한국에서 노조가 경영진을 괴롭히는 걸로 악명이 높았던 곳들이고,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해외 진출을 차근차근 진행했던 곳들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인도 주식시장에 IPO를 했고, 미국, 인도를 비롯한 해외 생산 차량이 국내 생산량에 뒤지지 않을만큼 해외 확장에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다.
난 10년 안에 현대차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1등 기업, 일본의 도요타 같은 기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저 분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도 못 했던 거대한 도전, 미국에 뿌리를 내리는 저 도전에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나도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도전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공감이 되고, 불안감, 두려움과 도전 의지 같은 것들이 느껴지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
속칭 해외 물(?)을 몇 년 남짓 먹고 한국에 돌아와보니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라온 게 기적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굉장히 편협하고, 지식은 얕은데 정작 자랑하고 싶은 욕심은 크고, 땀 흘려 노력하는 것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노리고, 자기 일을 해서 성장하는데 시간을 쓰는 대신 남을 헐 뜯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난 한국에서 인력이건 고객사건 나한테 사과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그러는 일이 은근히 많은데, 왜들 이렇게 사과할 줄을 모르는 걸까는 의구심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인도 개발자들하고 일 하다가 황당한 사건을 겪고 지적하면, 얘들은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끝까지, 곧 죽어도 자기가 잘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증거가 다 밝혀져도 날 욕하기 바쁘다. 절대로 자기가 책임을 질려고 하질 않는다.
한국 애들이랑 똑같더라.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하다가, 인도 애들을 보면서 드디어 이해가 됐다.
그 업무가 내 책임이라는, '책임 의식'이 없기 때문이더라.
그냥 저 인간에게 돈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 방식, '알빠냐?'라는 사고 방식을 가지면 저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됐다.
좀 더 나아가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 의식이 없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유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K대 학생들 커뮤니티에서 봤다던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소리겠지. 그딴거 필요없고,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
는 표현 속에도 진정한 실력을 기를 필요는 없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 적당히 갖춰서, 시간만 때우고, 돈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 방식이 깊숙한 곳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저런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모든 사과가 오염된다. 이게 현재 한국인들 평균의 사고 방식이라는게 보이니, 나도 한국에 미련이 사라지더라.
그런 개인의 책임의식을 길러주는 가정교육, 사회문화 시스템이 한국, 중국, 인도 같은 나라들에서 실종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반대로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동유럽에서는 매우 잘 갖춰져 있는 사고 방식인걸 보면, 경제적 발전 수준과 1:1 연동되는 변수가 아니라 수천 년간 쌓인 사회·문화적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한국어와 UTC+9 이라는 시간대라는 제약 조건을 벗어나서 인력 채용을 생각해보면, 한국, 인도는 피해야 하는 인력 시장, 동유럽, 남유럽을 우선으로 봐야되는 시장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나마 인도는 인건비라도 저렴하지, 한국은 뭐지?
그나저나, 왠지 인도에서도 더 똑똑한 애들, 더 책임감이 넘치는 애들, 더 사고 체계가 성숙한 애들은 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라 최저시급 35유로인 나라, 더 많은 연봉을 주는 나라들로 갔을 것 같은데....
흥선대원군처럼 쇄국 정책을 하면 어떨까?
만약 트럼프 대통령처럼 관세 장벽을 쌓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아예 일을 못하도록 하면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력이 부족해지니 한국인의 인건비는 더 올라가고, 그래서 모든 한국인이 윤택하게 살게 될까? 스위스처럼 전세계 최대 부국이 될까?
아마 서유럽에서 대도시 밖으로 가보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건비가 비싸져도 관리 할 사람이 없으니 결국 인프라 관리를 포기하고, 버려진 지역이 되어 버린다.
일본은 그런 곳들이 매우 많다.
이미 국내에서도 건설 단가가 너무 올라서 새 건물을 못 짓고, 재건축도 단가 문제로 유찰되는 중이다. 더 늦기 전에 외국인 인력을 대규모로 들여오고 그들이라도 훈련시켜 놓지 않으면 지방부터 대도시까지 순차적으로 인프라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무능력한 당신에게 급여를 몇 배씩이나 주면서라도 쓰면 상황이 나아질까? 당신들이 인프라 관리를 하는 능력이 없잖아? 가르쳐주는 기회도 박차고 도망갔고, 일이 조금만 힘들면 욕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시간만 버렸잖아? 그리고 생산성보다 더 높은 급여를 주면 물가가 엄청 오를텐데? 그건 누가 감당하지? 이미 최저임금을 2배로 급하게 올리면서 겪어봤듯이, 우리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가 2010년까지 딱 이런 문제를 겪었다. 그러다 재정 위기, 이어서 금융 위기가 터지고, 지난 15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 15년 정도 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아니 GDP 성장률 그래프를 보면, 2010년 직전까지 만들어진 거품이 아직 정리가 덜 된 것 같고, 그래서 더 긴 세월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도 선진국 대접 받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왜? 기술력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 조상들이 물려준 파르테논 신전이 없었으면 진작에 굶어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30년간 경제 성장이 정체했는데도 여전히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 기술력이 있으니까.)
서유럽 국가들이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기술적으로 고도의 혁신을 끊임없이 거듭하며 세계의 질서를 써 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생산성 대비 노동 단가를 낮게 유지해왔던 덕분에 복지 국가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복지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전을 완성한 국가들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정치적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정치인 몇몇이 여론의 총을 맞았으면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대학들이 고급 교육을 포기했고, 결국 기술 고도화와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됐다.
고급 인재를 못 구해 기술 기업들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노조에 시달리고 단가 싸움에 압박 받다가 저렇게 기업들이 다 떠나고 나면, 한국은 조상들이 물려준 음식,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 미국이 생존을 보장해주는 방산, 조선 관련 산업 일부만 남은 나라가 될 것이다. 미국마저 호주, 일본 쪽이 더 방산, 조선에서 이득을 본다고 빠져나가면? 그리스가 딱 그런 상황이다. 최고의 저출산 정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최고급 인재 양성이라던 내 주장을 언젠가는 그 분들도 이해하겠지.
한국이야 언어적 제약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는게 늦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 캐나다는 라틴 아메리카에, 서유럽은 동유럽과 남유럽에 저가 노동력을 아웃소싱하는 글로벌 노동 시스템이 완전히 고착화될텐데, 과연 한국이 인도와 동남아의 저가 인력을 써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인력을 일본과 호주에게 뺏기는 나라가 될지 분수령을 맞을 것이다. 그 분수령을 어떻게 넘느냐는 우리가 기술력을 갖고 있어서 저임금 노동자들을 쓰고도 수익성을 남길 수 있는 '기술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대로 그만큼 국내의 저가 인력들은 해외 저가 인력들에게 밀려 더더욱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겠지.
'탈출할 수 있으면 탈출해라'는 수동형이 아니라, 시급 2달러인 나라 애들이 최저임금 1만원인 우리나라에 오는 것처럼, 그들 중 더 노력한 애들은 최저시급 35유로인 나라로, 더 많은 급여를 주는 나라로 '진출'하는 것처럼, '늦기전에, 지금이라도 탈출하기 위해서 노력해라'는 능동형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데 탈출하시려면 위에 보여드린 사고의 전환은 꼭 장착하셔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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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으로 갈수록 대출 의존도↑ 동일 생활권 랜드마크에 수요 집중 자산 양극화에 소비재 시장도 촉각
대출한도를 옥죄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등 부동산 규제가 서울 외곽 지역 아파트 거래량 및 가격 하락세를 부채질한 모습이다. 심지어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는 아파트 사이에서도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시장 양극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모든 시장에서 발생한 공통적 현상으로, 경기 불황에 접어들며 그 강도와 속도를 높이는 양상이다.
광진구 등 서울 외곽 아파트 거래량 급감
27일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총 5만5,613건으로 집계되며 전년(3만5,619건) 대비 56.1% 증가했다. 이 같은 거래량은 주로 상반기에 집중됐다. 아파트 공급 부족 우려와 금리 인하 기대감,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 매매·전세 가격 상승,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 등이 맞물리면서 매수 심리에 불이 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작년 9월 1일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으로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할 때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제도다. 현재 수도권은 1.25%, 지방은 0.75%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여기에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까지 제한되면서 대출 문턱은 한층 높아졌다.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만8,933건이다. 특히 7월에는 9,216건이 거래되며 4년 만에 월간 최대 거래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9월부터 12월까지 거래량은 1만2,205건으로 직전 넉 달과 비교해 58% 쪼그라들었다. 광진구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 기간 광진구 소재 아파트 매매는 772건에서 246건으로 68.1% 줄었다. 서울 강북권 외곽인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역시 50% 안팎의 거래량 감소를 맞았다. 노원구와 강북구는 각각 52.6%, 50.7% 줄었으며, 도봉구는 47% 감소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울 외곽 지역의 거래 절벽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 등 인기 지역으로 갈아타려는 주택 수요는 대출 규제에도 일정 규모가 유지되지만, 소위 ‘영끌족’ 유입이 많은 비인기 지역의 경우 규제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된다는 설명이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초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은 자산이 풍부한 수요자가 대부분이라 규제 영향이 적다”며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규제 여파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강남 신고가 행진할 때 노·도·강은 ‘한파’
이러한 양극화는 직접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 시계열에 의하면 지난 1월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값 5분위 배율은 5.6배를 기록했다. 5분위 배율은 주택 가격 상위 20%(5분위) 평균을 하위 20%(1분위) 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상위 주택과 하위 주택 간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다. 다시 말해 상위 주택 1채로 하위 주택 5.6채를 구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등 서울 상급지 아파트와 금천·노원 등 외곽 지역 아파트 간 가격을 비교하면, 이 같은 격차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151㎡)는 지난해 11월 52억4,000만원에 거래되며 전고가를 뛰어넘었고, 비슷한 시기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133㎡)는 106억원에 새 주인을 만나며 신고가를 새로 썼다. 반면 외곽 지역은 갈수록 하방 압력이 강해지는 분위기다. 노원구 월계동 현대아파트(84㎡)는 지난 1월 6억원에 거래되면서 지난해 9월 동일 면적 주택(8억1,700만원)보다 2억원 이상 하락했다.
심지어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는 인근 단지에서도 가격 양극화는 심심찮게 포착된다. 일례로 성동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숲트리마제(84㎡)는 지난해 11월 45억원(35층)에 새 주인을 만났다. 그러나 인근에 위치한 강변동양(84㎡)은 불과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29억원(12층)에 거래됐다. 두 아파트 사이 거리가 150m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6억원의 가격 차이는 더 크게 와닿는다.
이처럼 인접한 단지의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선도 아파트(랜드마크)에 수요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상위 10%보다 상위 1%의 소득과 자산이 더 빠르게 늘면서 해당 지역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로 몰리는 것이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은 “소위 ‘대장 아파트’로 수요가 집중되면,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도 여타 아파트들은 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기 어렵다”며 “주택 수요자들의 올바른 판단이 더 많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VIP 마케팅에 힘주는 기업들
재화가 거래되는 모든 시장에서 ‘고급화’가 주요 전략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부동산 양극화로 대변되는 자산 양극화는 소비 패턴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비자 대다수가 불황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특정 기업의 매출에서 VIP 고객이나 부유층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가장 먼저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쿠팡은 최근 식료품 분야에 ‘프리미엄 프레시’ 카테고리를 새로 열었으며, 이에 앞선 지난해 12월에는 세계 최대 명품 패션 플랫폼 파페치(FARFETCH)를 5억 달러(약 6,500억원)에 인수하며 명품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향후 뷰티, 공산품, 가전 등 전 분야에 걸쳐 프리미엄 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게 쿠팡의 구상이다.
여행업계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다. 모두투어는 새로운 패키지여행 브랜드 하이클래스(High Class)를 론칭했다. 단순 고가 여행을 넘어 특별하고 희소성 있는 경험을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인다는 취지다. 럭셔리 여행 상품의 경우, 참여자가 소수여도 1인당 상품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해 불황에도 이익을 내는 ‘무풍지대’로 불린다.
그러나 대부분 소비자는 초저가 소비와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 열풍에 탑승하는 분위기다.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의 요노는 과감한 지출에 거리낌이 없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시대가 가고 새롭게 부상한 트렌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올해 시장 화두로 ‘생존’을 꼽으며 “경기침체와 불확실성 고조에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만큼 기업들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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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개미 주시하는 한은, '분산투자' 권장
"한국인 투자자, 오징어게임 참가자 같다" 비판
국내 증시서도 '한탕주의' 흐름 두드러져
한국은행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의 투자가 미국 일부 기술주 및 손실 위험이 큰 레버리지 ETF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서학개미, M7·레버리지 ETF에 '올인'
26일 한은이 홈페이지 블로그에 게재한 ‘서학개미, 이제는 분산투자가 필요할 때’라는 제목의 글에 따르면, 국내 거주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투자 잔액에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구글 등 미국 대표 혁신 기술 기업 7곳(매그니피센트7, M7)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학개미들의 투자가 대형 기술주에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가시화하며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 서학개미들은 미국 기술주 매수를 멈추지 않고 있다. M7 주가가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평균 13.9% 하락하는 동안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M7 주식 8억 달러(약 1조1,7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019년 말 19억 달러(약 2조7,800억원) 수준이었던 개인투자자들의 M7 주식 투자 잔액은 이달 18일 기준 371억 달러(약 54조3,600억원)로 급증했다.
서학개미들은 레버리지 투자 같은 고수익·고위험 투자에도 거침이 없었다.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주식 상위 50위 종목에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및 인버스 ETF 7개 종목이 포함돼 있다. 레버리지 ETF는 추종지수의 수익률을 2배 이상으로 추종하고, 인버스 ETF는 역의 수익률을 추종한다. 이와 관련해 이재민 한은 해외투자분석팀 과장은 “미국 기업 실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M7 종목과 레버리지 ETF 등에 대한 과도한 비중을 줄이고, 국내외 종목들로 분산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학개미가 美 증시 망쳤다?
해외 전문가들 역시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 행태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자산운용사 아카디안(Acadian)의 오웬 라몬트 수석 부사장은 ‘오징어게임 주식시장(The Squid Game stock market)’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 주식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유입을 꼽았다.
라몬트 부사장은 “미국 주식시장이 한국화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2024년 기준 1,121억 달러(약 163조2,180억원)로 미국 주식시장 총 시가총액(62조 달러‧약 9경원)의 0.2%에 불과하지만, 일부 틈새시장에서는 한국인 투자자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 증시에서 이른바 '테마주 유행' 현상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 양자컴퓨팅 관련 주식 폭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이 규칙을 잘 모르고 게임에 참가한 것처럼, 한국인들도 빠르게 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한다”며 “(오징어게임처럼) 대부분 참가자들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다”고 꼬집었다.
정리매매 종목의 과열 양상
국내 투자자들의 '한탕주의'를 앞세운 위험천만한 행보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에서도 두드러진다. 정리매매 종목을 둘러싸고 투자 수요가 과열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리매매는 상장폐지가 결정된 종목의 주주에게 주식을 처분할 기회를 주기 위해 7거래일간 매매를 허용하는 제도다.
정리매매 종목들의 주가는 일반적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일례로 최근 상장폐지 수순을 밟으며 정리매매에 들어간 MIT의 경우, 27일 오후 2시 30분 기준 전일 대비 57.73% 급락(93원)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간 다른 정리매매 종목인 한울BnC 역시 전일 대비 66.48% 미끄러진 60원에 거래 중이다.
정리매매 종목의 주가가 널뛰는 것은 이들 종목이 하루 주가 변동폭(30%)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투자자에게 있어 기회보다는 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에 정리매매만 노려 투기하는 이른바 ‘정매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가가 높은 수준에 형성되도록 호가를 낸 뒤, 시차를 두고 매도 주문을 한다. 가파른 주가 상승에 혹한 개인 투자자가 추격 매수에 나서면 주식을 팔고 매수 주문을 취소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무작정 한탕을 노리고 정리매매 투자에 뛰어들면 정매꾼을 중심으로 한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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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유엑스글로벌·티몬 인수 동시 추진
브랜드 인지도 제고 및 덩치 불리기 나서
2023년 중단한 IPO 재추진 가능성 대두
오아시스가 최근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닭가슴살 브랜드 '아임닭'을 보유한 와이즈유엑스글로벌을 조건부로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티몬 인수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기업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체급을 효율적으로 키운 뒤, 상장에 재도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아임닭’ 경영권 50억에 조건부 인수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오아시스는 지난 1월 와이즈유엑스글로벌에 5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와이즈유엑스글로벌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9.42% 수준인 약 20만8,000주를 인수하는 조건이다. 특히 이번 계약에는 조건부 전환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즈유엑스글로벌이 올해와 내년 평균 영업이익 10억원을 달성하면 우선주 1주당 보통주 10주로 전환돼 오아시스의 지분율은 50.98%로 확대된다.
2003년 설립된 와이즈유엑스글로벌은 닭가슴살 브랜드 아임닭과 건강 간편식 브랜드 아임웰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앞선 2017년 한국투자파트너스-크레디언파트너스-그래비티프라이빗에쿼티의 공동투자 펀드가 종류주 92만 주(전체 주식의 41.66%)를 보유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 회사는 지난 2023년 매출 410억원과 영업손실 1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오아시스가 와이즈유엑스글로벌을 인수하면 유통업의 한계를 벗어나 육가공업까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아임닭처럼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통해 매출을 확보하는 한편 오아시스마켓 단독 상품을 개발하는 등의 시너지도 가능할 전망이다. 오아시스 관계자는 "사업 시너지를 고려해 와이즈유엑스글로벌에 대한 조건부 투자를 결정했다"며 "협업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회생절차 밟는‘티몬’도 눈독, 우협 선정
오아시스는 현재 기업회생 절차를 발고 있는 티몬 인수전에도 뛰어든 상태다. 오아시스는 지난 6일 이사회를 가진 후 티몬 매각 주간사인 EY한영과 조건부 투자 계약을 체결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티몬은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하면서 지난해 9월부터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티몬 매각은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공개입찰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공개입찰에 응찰자가 아예 없거나 우선협상대상자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 인수자로 확정된다.
티몬 인수의향서 제출은 지난 21일 마감됐으며 공식 인수 제안서 제출은 다음 달 9일이 마감이다. IB업계에서는 추가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오아시스가 티몬을 인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입찰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원매자가 있다 하더라도 오아시스가 해당 조건에 맞추고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오아시스 관계자는 티몬 인수 이유에 대해 "실리적인 부분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미국, 중국 등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 이커머스 생태계를 위해 투자하기로 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인수가 단순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위해 대승적으로 내린 결단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오아시스가 티몬을 인수한 후에도 영업 정상화를 위해 대규모 자금 지원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본사 전경/사진=오아시스
IPO까진 여전히 요원
시장에서는 오아시스가 잇따라 기업 인수에 나선 것이 IPO(기업공개)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M&A를 통해 체급을 더 키워나간 뒤, 코스닥 시장 상장을 재추진하려는 복안이란 설명이다. 앞서 오아시스는 지난 2023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오아시스의 3대 주주인 UCK파트너스(지분율 11.78%)가 오아시스의 상장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의 IPO를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장애물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UCK파트너스가 갖고 있는 상장 비토권(거부권)이다. UCK파트너스는 2021년 프리IPO 성격으로 오아시스에 500억원을 투자했는데 당시 오아시스의 기업가치를 7,500억~8,000억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UCK는 상장 시 기업가치가 이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오아시스 역시 2022년 이랜드리테일(지분율 3%)로부터 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기 때문에 이 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수요예측 과정에서 시장은 오아시스의 기업가치를 6,000억~7,000억원으로 판단했다. 다른 이커머스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고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오아시스는 상장 절차를 중단했고 2년 가까이 지나도록 재추진 하지 못하고 있다. 오아시스의 상장이 지연되면서 오아시스의 2대 주주인 한국투자파트너스는 최근 지분 매각을 통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오아시스가 IPO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는 몸집을 불려야 한다. 지난해 11번가 인수에 도전했던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다만 IB업계에서는 오아시스가 9,000억원 이상의 몸값을 인정받는 게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아시스가 국내 기업인 만큼, 기본적으로 쿠팡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쿠팡의 기업가치 대비 매출액(EV/SALES)이 1배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를 오아시스에 적용한다면 매출액 6,000억~7000억원은 내야 몸값 9,000억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IB업계 관계자들이 매출액뿐 아니라 이익까지 중요하게 본다는 점 역시 오아시스의 상장을 늦추는 장애 요인이다. 한 PEF 관계자는 “요즘 미국에서는 매출액뿐 아니라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까지 함께 보는 추세가 강해졌다”면서 “오아시스는 흑자 기업이긴 하지만, 9,000억원의 몸값을 인정받을 정도로 의미 있는 이익을 내고 있는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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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매출 1,000억 달러 돌파 기대
막대한 비용 지출에 적자 탈출 요원
경영진 일방적 가격 책정, 재편 불가피
전 세계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몰고 온 챗GPT의 개발사 오픈AI가 올해 20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는 지난해 매출의 3배를 넘는 수준으로, 유료 구독 모델의 가입자 확대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적자 탈출은 여전히 요원한 실정으로, 시장은 오픈AI의 가격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챗GPT 유료 사용자 100만 명 ‘훌쩍’
26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오픈AI가 지난해 37억 달러(약 5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16억 달러) 대비 두 배가 넘는 실적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올해 매출은 작년 대비 3배 이상 많은 127억 달러(18조6,000억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뛴 294억 달러(43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앞서 뉴욕타임스(NYT)가 지난해 9월 제시한 전망치인 116억 달러보다 10%가량 증가한 수치로, 유료 구독자의 증가세에 힘입은 결과다. 오픈AI는 챗GPT를 도입한 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비자와 기업을 위한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선보여 왔다. 챗GPT 유료 사용자는 지난해 9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아울러 오픈AI는 지난 25일 자사 이미지 생성 AI 모델 ‘달리(DALL-E)3’를 ‘챗GPT 4o 이미지 제너레이션’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모델은 기존 생성형 AI GPT-4의 텍스트 이해 능력과 고급 이미지 생성 기능이 모두 탑재된다. 기존 달리3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용자가 원하는 정확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신모델의 출시로 오는 2029에는 오픈AI 매출이 1,250억 달러(약 183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팅 비용 지속적으로 증가
다만 이 같은 매출 증대가 현금 흐름 플러스(+)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오픈AI는 AI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칩과 데이터 센터, 인재 등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오픈AI는 주식 보상 비용을 제외하고 2020년대 말까지 누적 2,000억 달러(약 270조원) 이상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경영진은 매년 지출의 60~80%를 AI 모델 훈련 및 운영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컴퓨팅 비용은 단계적으로 증가해 2026년에는 최대 95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에 달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2023~2028년 동안 주식 보상을 제외한 총 손실 예상액은 440억 달러(약 60조원)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오픈AI는 사업 10주년이 되는 2029년에는 현재의 엔비디아 급으로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꾸준한 투자와 새로운 제품 출시로 성장세를 이어 나가겠다는 포부다. 이 같은 낙관론에 힘입어 오픈AI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코슬라 벤처스,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66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소프트뱅크 등에서 4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받기도 했다.
고가 모델, 팔수록 적자 가속?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오픈AI의 가격 정책이 바뀔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최근 오픈AI는 월 200달러(약 28만원)로 책정된 챗GPT ‘프로’ 요금제의 사용자가 급증해 예상보다 많은 컴퓨팅 자원이 소모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해당 요금제가 고급 추론 기능을 보유한 AI 기술에 대한 높은 수요를 반영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운영 비용 부담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챗GPT 프로는 하위 요금제(월 20달러)에서 주당 50회로 제한된 ‘o1’ 기능의 사용량 제한을 없앤 게 특징이다. 초고성능 추론 모델 o1은 주어진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며 여러 추론 경로를 시도해 기존 모델보다 10배 이상의 토큰을 생성한다. 그 결과 운용 비용이 급증했고, 예상보다 많은 사용자가 이를 활용하면서 컴퓨팅 자원의 소모 또한 막대한 실정이다.
일각에서 연간 2,400달러(약 330만원)에 달하는 챗GPT 프로 요금제가 도리어 오픈AI의 수익 창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한 AI업계 관계자는 “오픈AI 측의 주장에 의하면 ‘프로’ 요금제는 막대한 적자만 떠안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모델 학습과 인프라 비용이 어마어마한 점이 주요 원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가격 설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오픈AI는 프로 모델 출시 전 별도의 시장 조사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가 직접 가격을 책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200달러 정도면 충분한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이는 과거 챗GPT 유료 서비스가 처음 출시됐을 때와 유사한 패턴이다. 당시 회사는 경영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대신 20달러와 42달러 두 가지 모델을 두고 선호도를 테스트했으며, 이용자들의 선택에 따라 구독료를 결정했다. AI 시장이 일정 수준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오픈AI의 가격 정책도 대대적인 재편에 들어갈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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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품 가격 상승은 ‘1차 효과’
서비스업 등 영향 확산 ‘2차 효과’
2차 효과의 물가영향 더 크다 분석
알베르토 무살렘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사진=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알베르토 무살렘(Alberto Musalem)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일회적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지금보다 '더 제한적인' 통화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살렘 총재의 관측대로라면 연준의 금리 동결 기간은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관세, 더 꾸준한 인플레 촉발 가능"
26일(현지시간) 무살렘 총재는 켄터키주 패듀카에서 열린 지역 상공회의소 행사에서 “관세의 직접적 영향은 본질적으로 일회성 가격 상승”이라며 “이는 인플레이션에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간접적으로 관세의 2차 효과(second-round effects)는 수입품 외에 제품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내재된 인플레이션에 더욱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가 수입품의 가격을 일회적으로 올리는 것 외에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닌 서비스 물가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 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관세의 효과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일시적인 가격 상승일 것이라는 게 기본 전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장은 이를 완화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무살렘 총재는 파월 의장보다 관세의 물가 효과가 지속적일 가능성을 보다 높게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무살렘 총재는 구체적으로 세인트루이스 내부 분석을 기반으로 미국 관세율이 10% 인상될 경우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1.2%포인트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직접적이고 일회적인 물가 수준의 효과는 0.5%포인트, 비수입품과 서비스에 대한 2차 효과를 0.7%포인트로 제시했다.
이에 무살렘 총재는 앞으로 통화 정책의 요인으로 관세의 2차 물가 효과를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관세 인상이 일시적이라고 가정하거나 전면적인 전방위 대응이 적절하다고 가정하는 것을 경계한다”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간접적, 2차적 영향에 특히 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시장이 탄력성 △관세로 인한 2차 효과 △중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의 지속적 상승 △실제 인플레이션의 상승 등의 요인이 현실화할 경우 “완만한 수준의 제한 정책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더 제한적인 정책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언급했다. 무살렘 총재는 “노동 시장이 약화되고 목표치 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포함된 시나리오는 통화 정책에 어려운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며 “높은 관세와 이민 감소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끌어올리고 총수요와 고용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제한적 통화정책 장기화 또는 추가 긴축 필요할 수도
앞서 무살렘 총재는 지난주 연준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동결 결정을 지지했는데, 노동시장이 건강하고 관세의 2차 효과가 나타난다는 전제하에서 금리를 더 오랫동안 '완만하게 제한적'으로 유지하거나 더 제한적인 정책 입장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심지어 더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노동시장이 약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거나 완화된다면, 금리를 더 낮출 수도 있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전체적인 취지는 관세 정책이 생각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오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쪽에 기울어 있는 모습이다.
닐 카시카리(Neel Kashkari)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 총재도 비슷한 발언을 내놨다.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 가능성과 경제성장 둔화 우려가 서로 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만큼 연준이 당분간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올 연말까지 금리 인하가 두세 차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카시카리 총재는 관세로 인한 효과가 실제로 영향을 주는 것도 있지만 가계와 기업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부분을 지적했다. 경제 주체들이 돈 쓰기를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무역 불확실성으로 인한 신뢰도 하락이 오래 지속될수록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는데, 이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신뢰도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무살렘 총재와 마찬가지로 관세가 일회성 이벤트는 아닐 것이라는 쪽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이 소비자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이지만 이미 물가는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CPI)는 전년 대비 3.0% 상승하며, 2023년 8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미 미시간대학이 발표한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64.7로 전월 대비 10% 가까이 하락했다. 미시간대학은 “소비자들이 잠재적 관세 영향을 고려해 물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며 “12개월 후 물가가 현재 대비 4.3%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에게 찍힌 국가들, 금리 인하로 선제 대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떨어트린 관세 폭탄은 전 세계 통화 정책도 뒤흔들고 있다. 캐나다은행은 지난 12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3%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캐나다는 지난해 6월 금리 인하를 시작한 이후 이날까지 7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티프 맥클렘 캐나다은행 총재는 “새로운 미국 관세의 범위와 지속기간에 따라 경제 영향이 심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해 그는 “이미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6일 예금금리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5차례 연속 금리 인하를 이어갔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유럽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독일 등이 재정적자를 확대하면서도 국방‧인프라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재정 확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멕시코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에 나서면서 미국발 관세 정책 대응에 나섰다.
가파른 통화정책 완화에 나선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25%의 관세 부과를 밝힌 국가다. 유럽 역시 미국과의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다. 캐나다는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에 대응해 298억 캐나다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 시행 계획을 내놨다. EU도 다음 달부터 단계적으로 260억 유로(약 41조원) 규모의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관세 전쟁에 따른 경기 위축을 대비해 금리 인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관세 영향권에 있는 중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재정 적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적자가 대폭 늘더라도 재정을 풀어 경기 둔화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첨단기술 투자를 위한 약 1조 위안(2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 조성 계획까지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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