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AI 도입 전담 조직 창설, AI 주도 ‘新 군비경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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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투·전투 능력 획기적 개선 기대
오픈AI·앤스로픽·메타 일제히 방산 진출
각국 국방 예산 중 AI 배분도 급속 증가
미국 국방부가 방위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한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특화 조직을 신설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적성국의 AI 도입이 빨라짐에 따라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발맞춰 오픈AI, 메타 등 민간 AI 기업들도 여타 군수업체 또는 국방기관과 손잡고 방위산업 진출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글로벌 AI 국방 시장 규모는 2027년 약 20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AI 신속역량반 창설, 전신은 태스크포스 리마
11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생성형 AI를 비롯한 차세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AI 신속 역량반(AI Rapid Capabilities Cell·AI RCC)’을 창설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내 최고디지털·인공지능사무국(CDAO)이 관리하는 해당 조직은 주요 적국과의 충돌이 발생할 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이를 위해 프런티어(frontier) AI 모델을 비롯한 각종 최첨단 도구를 국방부 업무 전역에 적용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국방부는 AI를 활용하면 일반 관리 능력과 전쟁 수행 능력 모두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저 비전투 분야에서는 재무, 인적자원, 군수 및 공급망, 의료서비스 정보 관리, 법률 분석, 조달 절차, 소프트웨어 개발, 사이버보안 등이 AI 활용 대상이다. 또 전투 분야에서는 지휘통제(C2), 의사결정 지원, 작전 계획, 군수, 무기 개발·시험, 무인·자율체계, 정보 활동, 정보 작전, 사이버 작전 등에 AI를 활용하기로 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해 8월 캐서린 힉스 부장관의 지휘 아래 생성형 AI 기능을 개발, 평가, 권장 및 모니터링하기 위한 태스크포스 리마(Lima)를 조직한 바 있다. 리마는 16개월간 수백 개에 달하는 AI 워크플로와 작업을 수행했으며, 이번 AI RCC 창설과 함께 공식 해체됐다. 리마의 연구 결과는 향후 AI RCC에서 구현할 계획이다.
AI RCC의 신속한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국방부는 2024∼2025 회계연도에 총 1억 달러(약 1,4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가운데 약 4,000만 달러(약 570억원)는 혁신적인 생성형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민간 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으로 지급한다. 또 일부는 CDAO의 글로벌 정보 지배 실험(Global Information Dominance Experiment) 시리즈를 사용해 전투사령부의 전투원들이 최전선의 AI 모델을 테스트하고, 개발자에게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용자 중심 실험에 투자할 예정이다.
라다 플럼 국방부 디지털·인공지능 최고책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의 AI 기술력은 최첨단 수준”이라고 강조하며 “다만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적국의 AI 도입이 빨라지고 있어 중대한 국가 안보 위험이 고개를 들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AI RCC 창설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미 세계 1위인 민간 부문의 AI 기술이 계속해서 선두를 달릴 수 있게 지원하고, 국방부 전반에 최대한 신속하게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 누비는 AI 기술들
미 국방부의 적극적인 AI 도입과 맞물려 민간 기업들의 방위산업 진출도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페이팔을 설립한 피터 틸이 이끄는 팰런티어를 꼽을 수 있다. 팰런티어는 자사의 ‘메타콘스텔레이션(MetaConstell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백 개의 상업용 위성을 분석, 공격 표적을 식별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통상 6시간이 소요되던 표적 식별 작업을 2분으로 단축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활용됐다. 팰런티어는 이달 4일 디펜스 스타트업 실드AI와 AI 무인기 개발을 위한 협력 관계를 맺기도 했다.
오픈AI는 방산 업체 안두릴의 드론 방어 시스템(CUAS)에 자사의 AI 기술을 통합하는 형태로 방산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안두릴의 시스템은 적국의 드론 등 무인 항공기를 탐지해 추적하는 방어 체계로, 위협이 식별되면 전자 방해와 방어용 드론 등을 사용해 이를 격추한다. 여기에 AI를 접목하면 방어 시스템을 더 정밀하게 훈련할 수 있다는 게 오픈AI의 설명이다. 오픈 AI 관계자는 “AI가 드론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정확도와 속도를 모두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픈AI의 라이벌로 꼽히는 앤스로픽은 아마존·팰런티어와 손잡고 미군에 AI 알고리즘을 제공한다. 또 설계도가 개방된 오픈소스 AI 라마를 운영 중인 메타 역시 미군이 자사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오픈소스 라마를 중국과 러시아 등 적성국이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 데 따른 조치다.
트럼프 등판으로 가속화 전망
AI 기술 보유 여부가 방산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면서 국방 시장 구도 또한 달라지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AI 국방 시장은 2022년 66억 달러(약 9조5,000억원) 규모에서 2027년 138억 달러(약 19조8,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또 AI 기반 무기체계 시장은 2021년 127억 달러(약 18조2,000억원)에서 2026년 301억 달러(약 43조1,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BIS 리서치는 내다봤다.
각국 국방예산 배분에서도 AI의 중요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 국방부는 2024 회계연도 기준 AI와 머신러닝 분야에 17억 달러(약 2조5,000억원) 예산을 요청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 증가한 수치다. 중국은 2030년까지 AI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가 되는 것을 목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2027년까지 국방 AI 개발에 약 54억 달러(약 7조7,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같은 추세는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기점으로 가속화할 전망이다. 그간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중국을 비롯한 적성국 견제를 위한 군사력 강화를 강조해 왔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을 촉발하고, AI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군사력과 기술력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AI와 전통 무기의 융합이 방위산업의 지형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측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