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이익에도 커지는 의구심, ‘반도체 장기 호황론’ 제동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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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난이 밀어 올린 메모리 가격, 반도체 실적 호조 가격 상한 둔 장기계약 늘며 이익 증가세 둔화 전망 수요·경쟁 여건도 불투명, 호황 지속성에 의문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호황의 지속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수출과 기업 이익이 치솟았으나, 향후 실적을 같은 속도로 끌어올릴 여력은 불투명한 상태다. 가격 상한을 둔 장기 공급계약이 늘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 폭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가능성과 중국의 기술 추격까지 겹쳐 장기 호황을 낙관하던 기대에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실적에 가려진 산업 경쟁력 약화
12일 니어재단·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경제학회가 공동 개최한 경제정책 라운드테이블에서 올해 AI 반도체 호황에 따른 수출과 기업 실적 개선을 한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반도체가 끌어올린 총량 지표에 가려진 산업 경쟁력 약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인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미루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약 1%포인트씩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지면 2029~2030년께 성장이 거의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중심의 단기 호황에 안주하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취약성과 성장 둔화를 간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수출의 반도체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603억 달러(약 80조6,390억원)로, 전체 수출액 1,209억4,000만 달러(약 161조6,730억원)의 절반을 차지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수출 실적이 특정 품목에 집중되는 흐름이다. 반면 석유화학·철강·배터리 등 기존 주력산업에서는 최근 수년간 설비 가동률이 낮아지는 등 생산 기반의 활력이 떨어졌다. 이들 업종의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는 세계 수요 둔화와 중국의 생산설비 과잉 확충이 꼽힌다. 수요가 충분히 늘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 경쟁까지 격화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반도체발 착시 경계, 10년 장담 못 한다”
한국 경제를 성장세를 이끌어온 반도체 호황의 지속성에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일 “반도체 사이클이 10년씩 간다고 하는데, 몇 년 만에 끝날 수 있는 게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에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첨단장비 도입이 제한된 영향도 반영돼 있다고 봤다. 향후 수출 규제가 완화되거나, 중국이 노광장비를 자체 개발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재정 운용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7월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 반도체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짚었다. 특히 경기 호조로 늘어난 세입을 지속적인 지출 확대에 활용해 온 관행을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반도체 경기가 정점에 달했던 2021~2022년에는 급증한 세수가 추가경정예산에 빠르게 반영됐고, 이후 2023~2024년 세입이 줄었을 때는 지출을 축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3% 목표도 지켜지지 않았다.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반도체 경기마저 꺾이면 정부의 경기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 여력도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취약업종의 경영난이 금융권 부실로 번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12일 발표한 ‘성장 양극화의 그늘, 취약업종 기업대출 리스크’에 따르면, 건설·부동산업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악성 미분양, 공사비 상승으로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 도소매업에는 온라인 중심의 유통구조 재편과 내수 부진이 겹쳤다. 특히 부동산업과 도소매업이 금융권 전체 기업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6.5%, 23.9%로, 두 업종에 대출의 60.4%가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종은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과 중소기업 대출 비중도 높아 이자 부담에 취약한 구조다. 한금연은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할 경우 차주의 상환능력 저하와 연체 증가가 일부 비은행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1. 반도체 호황 둘러싼 시장 경계 신호
| 구분 | 주요 동향 | 시장 우려 |
|---|---|---|
| 외국인 매도 | 삼성전자 사상 최대 잠정 영업이익 발표 이후에도 매도 지속 | 기록적 실적에도 매수세 회복 부진 |
| 주가·지분율 하락 | 10월 12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각각 4% 넘게 하락,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 46.35% | 반도체 대형주가 이끌던 증시 상승세 약화 |
| 실적 기대 선반영 | 메모리 가격 급등에 실적 전망 잇단 상향 | 사상 최대 이익의 추가 주가 상승 동력 약화 |
| 메모리 가격 |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 전 분기 대비 10~15% 상승 전망, 가격 상한 적용 장기계약 비중 확대 | 가격 상승 폭 제한에 따른 이익 증가세 둔화 가능성 |
| AI 투자 | AI 투자 증가세 둔화 가능성에 대한 경계 | 메모리 수요·가격이 함께 영향을 받을 우려 |
최대 실적에도 외국인은 ‘팔자’
반도체 호황에 대한 경계심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흐름에서도 감지된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 지분을 줄여온 외국인들은 지난 8일 사상 최대인 107조4,000억원의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발표된 이후에도 매도 기조를 이어갔다. 매물이 쏟아지면서 1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나란히 4% 넘게 급락해 코스피를 끌어내렸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 역시 이날 46.35%까지 떨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기록적인 실적도 매수세를 되살리지 못하면서 반도체 대형주가 이끌어온 증시 상승세에 힘이 빠지는 양상이다.
외국인 이탈의 배경으로는 높아진 실적 기대와 이익 증가세 둔화에 대한 우려가 지목된다.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실적 전망이 잇따라 상향되면서 사상 최대 이익도 주가를 끌어올릴 새로운 재료로서 힘이 약해졌다는 해석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10~1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에이브릴 우 트렌드포스 수석부사장은 가격 상한이 적용되는 장기 공급계약의 비중이 커지면서 가격 상승 폭이 제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AI 투자 증가세가 둔화할 경우 메모리 수요와 가격이 함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투자심리를 누르고 있다.
자금 이탈에 저평가 기대 퇴색
낮아진 주가수익비율(PER)에도 이런 불확실성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삼성전자의 PER 4배는 내년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다. 이익 전망의 실현 가능성에 따라 현재 주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반도체처럼 업황에 따른 실적 변동이 큰 산업에서는 이익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PER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누는 지표인 만큼, 호황기에 급증한 이익이 주가의 저평가 정도를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이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면 주가가 그대로여도 PER은 높아진다. 현재의 낮은 배수에는 높은 이익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그 지속성을 둘러싼 시장의 의구심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저평가 기대를 실제 매수로 연결할 수급 여건도 약해지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1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예산을 사실상 소진했고, SK하이닉스도 예정 물량의 상당 부분을 사들여 추가 매수 여력이 축소됐다. 두 회사가 자사주 매입에 투입한 자금만 50조원을 웃돈다. 대규모 매수 자금이 소진되는 동안 외국인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고, 9월 순매도액은 21조5,910억원에 달했다. 개인도 같은 달 14조1,97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외국인 매물을 소화하던 국내 수급에 공백이 생겼다. 영국계 금융그룹 HSBC는 외국인의 자금 회수에 차익실현과 글로벌 자산배분 조정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실적 개선과 함께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던 자금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거치며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D램·HBM에 치우친 반도체 경쟁력
메모리 호황에 가려진 비메모리 사업의 경쟁력 약화도 부담으로 남아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장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은 5.9%로 내려앉았고, 점유율 72.5%를 기록한 TSMC와의 격차도 66.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후발 업체의 추격까지 거세지면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는 같은 기간 매출을 20% 늘려 점유율을 5.4%로 끌어올렸다. 삼성전자와의 차이는 불과 0.5%포인트로, 이제 2위 자리도 안심하기 어려워졌다.
AI 투자 확대가 첨단 공정의 수주와 수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격차가 쌓이고 있다. TSMC는 AI 서버용 반도체 주문이 몰리면서 2분기 3나노미터(㎚·10억분의 1m)와 5·4나노 생산능력이 사실상 꽉 찼고, 2나노 공정에서도 처음 매출을 냈다. 첨단 제품의 출하 증가에 평균판매가격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영업이익률은 60.3%에 달했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낮은 가동률과 고정비 부담으로 3분기에도 적자를 이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공정 수요 확대로 향후 가동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당장은 확보한 생산 물량으로 고정비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면서 수익성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