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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 美·유럽 시총 격차 34조 달러, 주도권 잃고도 은행 규제 고수하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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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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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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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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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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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성장 막힌 유럽, 대미 격차 확대
성장 단계 투자금 절반은 유럽 밖 자금
금융 안정 지키는 선별적 규제 완화 과제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 경제가 미국에 뒤처진 배경으로 스타트업의 성장 부진이 지목된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상장사의 시가총액 격차는 2008년 3조 달러(약 4,005조원)에서 2023년 34조 달러(약 4경5,000조원)로 벌어졌다. 격차는 신생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오래된 기업 간 격차가 20% 늘어나는 동안 신생 기업 간 격차는 82% 늘었다. 그러나 신생 기업이 성장 자금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에도 유럽의 은행·기관투자자 규제는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의 엄격한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주도권을 내준 지 오래인데도 규제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CB "자본 규제 낮춰도 대출 안 늘어"

유럽중앙은행(ECB)은 은행 자본 규제가 기업 자금난의 원인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은행이 손실에 대비해 쌓아 두는 자본을 줄여 준다고 대출이 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ECB 보리스 부이치치 부총재는 이달 2일 연설에서 유로존 은행의 기본자본(Tier 1) 비율 중앙값이 2009년 약 8%에서 현재 16%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강화한 이유도 위험과 불확실성 확대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규제를 풀어도 여유 자금이 대출보다 주주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림 1. 금리가 오르자, 미국·EU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 격차는 자본 규제 변화 없이 좁혀졌다.

은행 업계의 계산은 다르다. 유럽은행연합회(EBF)는 대형 은행에 붙는 추가 자본 부담에 상한을 두면 500억 유로(약 74조원)의 자본 여력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3,000억~4,000억 유로(약 446조~595조원)의 신규 대출을 공급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는 규제 완화로 이득을 보는 쪽의 추정치다. 은행의 여력이 늘어도 매출도 담보도 없는 소프트웨어·바이오 기업에 대출을 내주기는 어렵다. 규제를 풀면 대출이 늘어나느냐는 질문만 놓고 보면 ECB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이 논쟁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간다. 지금의 규제가 유럽이 세계를 앞서가던 시절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영국 적정 자본비율 11% 제시, 유럽 은행은 16.2%

유럽은 앞서가는 위치에서 규제를 만들어 왔다.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과 AI법이 대표적이다. 4억5,000만 명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유럽의 기준을 따랐다. 은행 규제도 같은 맥락이다. 우수 기업과 연구소가 집중돼 글로벌 자본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경제라면 은행에 성장보다 안정을 먼저 요구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경쟁국은 이미 방향을 틀었다. 영국은 2023년 금융 감독 당국의 목표에 성장과 경쟁력을 추가했고, 영란은행은 지난해 12월 자국 은행의 적정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약 11%로 제시했다. 유럽 주요 은행의 비율은 지난해 말 16.2%였다.

유럽이 더는 글로벌 자본이 몰리는 경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2000년 무렵 미국의 95% 수준이던 EU의 노동생산성은 지금 미국보다 20%가량 낮다. 2024년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가 작성한 유럽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미국의 1인당 실질 가처분소득 증가폭은 EU의 두 배에 육박한다. 물론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ASML처럼 세계 1위를 지키는 곳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드와 기초 AI 모델처럼 미국을 추격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세계 표준을 주도하는 위치가 아닌데도 엄격한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면 기업의 부담만 커지고, 기준을 정하는 쪽이 누리는 이점은 얻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벤처펀드 9,300억 유로, 유럽 6배

유럽 스타트업의 성장 자금 부족은 ECB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ECB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미국 벤처캐피털(VC)이 운용하는 자금을 9,300억 유로(약 1,384조원)로 추산했다. 유럽 VC 1,500억 유로(약 223조원)의 6배 규모다. 격차는 기업이 커질수록 더 벌어진다. 유럽 투자자는 초기 투자금의 78%를 공급하지만, 필요한 금액이 커지는 레이트 스테이지(시리즈 B·C 등 후기 단계 투자)에서는 절반에 그친다. 나머지는 해외 자금이 메운다. ECB는 해외 자금 의존도가 높아지면 유럽 기업의 본사 기능과 지식재산권이 역외로 이전되고, 향후 상장도 유럽 밖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한다.

그림 2. 유럽 VC 투자액은 2021년 1,021억 유로(약 151조원)에서 2024년 472억 유로(약 70조원)로 줄었고, 2020~2024년 성장 단계 자금의 절반은 유럽 밖에서 왔다.

투자를 받지 못한 기업을 보면 문제가 더 분명해진다. ECB 분석 결과, 투자 유치에 실패한 유럽 기업은 업력과 특허 활동이 비슷한 미국 기업보다 직원이 두 배 가까이 많고 성장률도 약 15%포인트 높았다. 미국 시장이었다면 투자 유치가 가능했을 유망 기업이 유럽에서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유럽의 위험자본 공급이 부족한 배경으로는 은행·보험사·연기금의 투자를 안전자산으로 몰아넣는 규제와 국가별로 쪼개진 금융시장이 꼽힌다.

산업은행, AI 기업에 저금리 대출 3조원

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려야 하는 후발국의 자금 공급 방식은 한국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0~1970년대 산업은행은 수출 제조업체가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시장금리의 절반도 안 되는 금리로 장기 자금을 공급했다. 이런 정책은 지금도 이어진다. 금융위원회는 2024년 7월 산업은행을 통해 AI 산업에 3조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을 공급하고, AI 모델·클라우드 기업에는 금리를 최대 1.2%포인트 낮춰 준다는 방침을 내놨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2003년 국내 언론은 산업은행을 '공룡'으로 지칭하며 비판했고, 저금리 대출을 두고는 특정 기업 특혜 시비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배 논란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한국은 일부 잘못된 투자가 나오더라도 추격 속도를 높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유럽에도 독일 KfW, 프랑스 Bpifrance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있고, EU는 올해 50억 유로(약 7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유럽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당 1억 유로(약 1,480억원)씩 투자하면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은 50곳 안팎에 불과하다.

일률 완화 대신 혁신 기업 자금만 선별 완화

물론 규제를 풀면 금융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 2023년 3월에는 167년 역사의 크레디트스위스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유럽 은행의 기본자본 비율은 2009년의 두 배가 됐다. ECB의 말대로 자본이 지금 대출의 걸림돌이 아니라면, 금융위기 때처럼 취약해지지 않고도 위험을 조금 더 감수할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일률적으로 기준을 낮추자는 것은 아니다. 공공 보증이 붙은 혁신 기업 대출의 자본 부담을 줄이고, 은행·보험사가 유럽 스케일업 펀드에 투자할 때 규제상 우대하는 식으로 대상을 좁히면 검토해 볼 만하다.

법과 제도 정비도 못지않게 시급하다. ECB는 기업이 나라마다 다른 회사법에 얽매이지 않고 EU 전역에서 사업을 키울 수 있는 '28번째 회사법 체제'를 제안했고, 연기금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 수준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다. 성과의 잣대도 은행 자본비율이 아니라, 투자 조건 협상을 이끄는 '주도 투자자' 자리를 유럽 자본이 후기 단계 투자에서 얼마나 맡느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역내 저축을 기업 투자로 연결하기 위한 저축·투자연합(SIU) 구상은 드라기 보고서 발표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같은 기간 미국과 영국이 금융 규제 개편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시가총액 격차는 유럽이 역사상 가장 튼튼한 은행을 만든 15년 동안 벌어졌다. 은행 자본이 유일한 제약 요인이 아니라는 ECB의 진단은 타당하다. 다만 ECB의 논리는 글로벌 자본이 유럽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된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미국 기업보다 규모가 크고 성장세가 빠른 기업조차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현실은 그 가정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an Competitiveness: Capital Rules Built for a Lost Lead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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