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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무기는 요청하고 시장은 막고, '유럽산 우선 구매'에 한·일 방산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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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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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거칠기 마련입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정리해 사회 현장을 부드럽고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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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무기 구매 대출, 역외 부품 비중 35% 제한
회원국 자국 발주 집중 속 한·일 업체 진입 난항
시장 개방 없인 아시아 우방국 협력도 한계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2025년 전 세계 무기 수입의 3분의 1이 유럽에 집중됐다. 유럽연합(EU)은 급증하는 방산 수요에 대응해 '유럽안보행동(SAFE)'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1,500억 유로(약 222조원) 규모의 대출 지원에 나섰다. 다만 EU와 유럽경제지역(EEA) 소속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 우크라이나 이외 지역에서 생산한 부품의 비용이 최종 제품 전체 부품 비용의 35%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이 같은 제한은 미국의 유럽 방위공약 축소에 대응해 역내 방위산업을 육성하려는 '유럽산 우선 구매(Buy European)' 원칙에 따른 조치다. 그러나 미국 방산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이 현대로템과 한화, 미쓰비시중공업 등 한국과 일본 기업의 유럽시장 진출까지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유럽이 방공체계와 탄약 확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하면서도 시장 진입 장벽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모순이 드러난다.

폴란드 계약 89% 자국 기업 몫, 한·일 협정은 표류

SAFE는 분절된 유럽 방산시장을 통합하고 역내 방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SAFE 규정 제16조 제11항은 방공·미사일방어체계와 해군 전력 등 주요 무기체계에 대해 유럽 방산업체가 제3국의 승인이나 기술적 제한 없이 설계를 변경하고 개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회원국 간 공동 조달을 원칙으로 하되, 올해 5월 30일까지 체결한 계약에 한해서는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무기를 구매하더라도 SAFE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이 예외 조항은 각국 정부가 자국 방산업체에 발주를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SAFE 자금 최대 배정국인 폴란드는 437억 유로(약 65조원)를 확보했으며, 전체 계약의 89%가 자국 기업에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역시 라인메탈과 딜 등 자국 방산업체에 전체 발주 물량의 절반가량을 배정할 계획이다. 반면 830억 유로(약 123조원) 규모의 조달 패키지에서 미국 기업의 수주 비중은 약 8%에 불과하다. 유럽 방산시장 통합을 목표로 도입된 SAFE가 실제로는 EU 공동 자금을 활용한 회원국별 자국 산업 육성 수단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등 역외 국가의 시장 진입은 더 어려워졌다. SAFE는 역외 생산 부품의 비용 비중을 35% 이내로 제한할 뿐 아니라 계약업체의 설립 지역과 지배구조까지 따진다. 이 때문에 제3국이 방산 조달사업에 폭넓게 참여하려면 EU와 안보·산업·재정 조건을 규정한 별도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실제 협정 체결 여부는 국가별로 엇갈렸다. 캐나다는 지난해 12월 EU와 협정을 체결했지만, 영국은 높은 참가 비용을 요구받자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한국과 일본은 2024년 11월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맺으며 협상 자격을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지난해 9월 SAFE 참여를 공식 신청했고 일본도 같은 해 12월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협정은 아직 체결 전이다. 올해 6월 10일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에서도 SAFE 참여 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당시 EU 관계자조차 회원국들이 SAFE 자금 사용처를 대부분 정해 둔 상태라고 인정했다.

그림1: 유럽 최대 무기 수입국인 폴란드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美 전투기 감축에 러시아 포탄 700만 발, 방산 자립 시급

유럽산 우선 구매 원칙이 단순한 보호무역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유럽 내 군사력을 축소하면서 독자적인 방위 역량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력모델에 배정한 F-16과 F-15E 전투기를 약 150대에서 100대로 줄이고, 폴란드와 독일에 예정됐던 병력 배치도 취소했다. 유럽 내 미군 주둔 태세에 대한 6개월간의 재검토에도 들어갔다. 이에 대비해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렸다. 에스토니아 국제국방안보센터(ICDS)에 따르면 유럽 동맹국과 캐나다의 지난해 국방비 지출은 5,700억 달러(약 757조원)를 넘어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미국이 철수한 방공 전력의 약 90%도 이미 메운 상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막대한 추가 비용이 불가피하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유럽·대서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대체하는 데 기존 계획 외에 1조 달러(약 1,327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와의 군수품 생산능력 격차 역시 방산 자립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에스토니아 대외정보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포탄과 박격포탄, 전차탄, 로켓탄 등 약 700만 발을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올해 EU 27개 회원국과 노르웨이의 포탄 생산량은 약 200만 발에 그칠 전망이다. 폴란드 국방장관이 지난 13일 바르샤바안보포럼에서 유럽 방산업계의 '전시 생산체제' 전환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 2: 한국의 지상무기 수출 수주량은 유럽 4개국의 합계를 웃돌지만, 항공무기 분야에서는 유럽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韓 무기 수출 58% 폴란드행, 우크라이나 방공 지원은 거절

그러나 역외 공급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의 움직임은 그간 유럽 방위력 강화에 기여해 온 한국 방산업계의 역할과 부딪힌다. 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21~2025년 세계 무기 수출의 3%를 차지했으며, 그중 58%가 폴란드 몫이다. 폴란드는 지난해 8월 현대로템과 65억 달러(약 9조원) 규모의 K2 전차 2차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K2 전차 180대와 지원차량 81대가 포함됐으며, 이 중 전차 61대는 폴란드 현지 공장에서 조립된다. 폴란드가 한국산 기술을 도입하면서 자국 생산기반도 확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방산 자립 목표에도 부합하는 협력 모델이다.

유럽이 아시아 국가의 방산 역량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전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공급받은 대공미사일 물량이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자, 한국과 일본에 방공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전략고문은 한국을 방문해 PAC-3 요격미사일 제공을 요청했으며, 한국 정부는 국산 방공체계인 천궁-II 지원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지난 8월 10일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역시 우크라이나의 패트리엇 계열 요격미사일 지원 요청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러 밀착에 사할린 LNG까지, 한·일 지원 발목

양국이 지원을 거부한 배경에는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따른 안보·경제적 위험이 깔려 있다. 한국은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 강화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는 2024년 6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경우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로켓탄 약 650만 발을 제공하는 대가로 방공·우주·핵 기술을 이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월에는 북한군 3만~5만 명의 추가 러시아 파병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러시아의 대북 군사 지원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에너지 안보가 주요 변수다. S&P글로벌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올해 초부터 러시아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약 48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했다. 이는 양국 전체 LNG 수입량의 5.9%에 해당한다. 특히 올해 호르무즈해협 폐쇄로 에너지 공급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본의 러시아산 LNG 대체에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도 사할린-2 프로젝트 지분을 보유 중이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유럽의 무기 지원 요청에 응하는 순간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따른 안보·경제적 위험을 떠안게 된다. 반면 유럽은 양국에 긴급 무기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방산시장 접근을 제한해, 장기적인 협력에 따른 실익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다. 유럽의 안보 수요에 대응하는 데 따르는 부담과 경제적 보상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셈이다.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유럽으로서도 한국과 일본의 지속적인 방산 협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요격미사일 간접 지원, SAFE 참여 협상 지렛대로

이러한 협력의 제약을 해소하려면 유럽산 우선 구매 원칙을 전면 폐지하기보다는 역외 우방국과의 산업 협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현행 규정에서도 아시아 기업의 기술을 이전받아 EU 역내에서 실제 생산한 부품은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면 유럽산으로 인정받는다. 향후 SAFE 개정 과정에서는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결합한 협력사업의 참여 요건을 명확히 하는 일이 과제로 꼽힌다. 외국 기업이 지배하는 유럽 현지 법인의 참여 자격과, 방공·미사일방어체계 등 제2 범주 제품의 독자적인 설계 권한에 관한 기준도 함께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유럽 안보 기여를 시장 접근 확대와 연계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표적인 예가 간접 지원 방식이다. 양국이 유럽 국가에 요격미사일을 판매하면, 해당 국가가 기존 보유 물량을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구조다. 한국 방산업계는 이미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에 참여했다. 간접 지원이 확대되면 유럽은 방공 전력을 확충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갈 수 있고, 한국과 일본은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2024년 체결된 EU와 양국의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SAFE 제17조에 따른 실질적인 시장 참여 협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결국 관건은 EU 회원국들이 자국 방산업체 보호에 치중해 온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한국과 일본 등 역외 우방국에 시장을 개방할 의지가 있느냐다. 엄격한 유럽산 우선 구매 원칙은 역내 생산시설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보 협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럽이 한국과 일본을 긴급 상황에서만 지원을 요청하는 공급국으로 대한다면, 양국이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유럽 안보에 기여할 유인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방산시장 개방을 통해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아시아 우방국을 포함한 유럽의 안보 협력망 확대에도 한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How ‘Buy European’ Arms Rules Shut Out South Korea and Japan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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