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공적자금’으로 기업대출 지원, 전략산업 육성 이면엔 ‘지방은행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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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지방은행까지 지원 확대, 정부 자금 활용한 2단계 융자 AI와 반도체 등 17개 분야 대상, 부실 대출 손실 일부 국고 보전 지원금 연명 대출에 묶이면 투자 부진·재정 부담 가중 가능성

일본 정부가 전략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민간은행 대출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업 도산과 금리 상승으로 민간의 투자 여력이 약해지자 국가가 대출 재원과 손실 부담을 함께 떠안겠다는 구상이다. 예금 유치 비용이 늘고 지역 대출시장이 위축된 지방은행에도 자금과 수익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은행권 지원 성격도 짙다. 다만 지원금이 부실기업의 연명에 쓰이면 투자 회복은 더뎌지고, 기업이 갚지 못한 빚을 메우는 재정 부담만 불어날 우려가 있다.
민간은행 통해 공적자금 융자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략산업에 대한 기업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금융기관이 대출 재원을 공급하고 국고로 대출 손실 일부를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금 공급에는 정부가 전액 출자한 일본정책금융공고가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고, 금융기관이 이를 기업에 다시 대출하는 ‘2단계 융자’를 활용한다. 일본정책투자은행과 상공조합중앙금고를 중심으로 운영해 온 융자 체계에 대형 시중은행과 지방은행도 참여시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창구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참여 은행들은 정책금융기관에서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 등 17개 전략 분야에서 설비투자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게 된다.
대출 재원에는 정부가 장기·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재정융자’를 활용할 계획이다. 금융기관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고 장기간 운용할 재원을 공급해 기업의 설비투자와 M&A에 필요한 대출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향후 원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하면서 기업의 채무불이행에 대비한 보완책도 마련한다. 핵심은 대출금 회수에 차질이 생겼을 때 손실의 일정 비율을 국비로 메워주는 ‘손해담보’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재해 등 위기 대응에 활용해 온 손해담보를 전략산업 투자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코로나19 당시에는 해당 제도를 통해 금융기관 손실의 최대 80%를 보전한 바 있다.
제도 도입을 위한 민관 협의와 법률 정비도 추진한다. 경제산업성은 이르면 이달 중 17개 전략 분야의 투·융자를 논의하는 민관 협의 자리에서 검토안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필요한 법 개정을 거쳐 2027회계연도 중 제도 운용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원 대상 대출의 세부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경제산업성이 추가 검토를 거쳐 구체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2040회계연도까지 전략 분야에 민관 합계 370조 엔(약 3,1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이번 금융지원 방안도 해당 분야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포함돼 있다.
日 기업 도산 13년 만에 최대
일본 정부가 금융지원 확대에 나선 배경에는 기업들의 자금난이 자리한다. 기업 신용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4~9월 부채 1,000만 엔(약 8,400만원) 이상 기업의 도산은 5,373건으로, 같은 기간 기준 13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도산 기업의 60% 이상이 자본금 1,000만 엔 미만으로, 중소·영세기업에 피해가 집중된 양상이다. 여기에 일본은행이 지난달 정책금리를 1.25%로 올리면서 차입금에 의존해 사업을 유지해 온 기업들의 부담도 커졌다. 일본 신용조사업체 제국데이터뱅크가 기업 16만8,000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차입금리가 0.25%포인트 추가 상승하면 약 2,700곳이 이자비용 증가로 경상수지 적자에 빠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은행권 역시 금리 상승에 맞춰 대출의 수익성과 기업의 상환 능력을 따지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실적 회복이 더딘 업체들은 자금 조달에도 압박을 받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방안도 정부 내에서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연내 안보 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2027~2031회계연도 방위비 규모를 정할 예정인데, 정권 내부에서는 늘어날 지출을 안정적으로 충당할 재원으로 법인세 증세안이 부상했다. 증세가 현실화하면 기업이 이익 가운데 세금으로 내는 몫이 커져 설비 확충과 연구개발에 투입할 내부 자금은 줄어들게 된다. 부족한 투자금을 대출로 충당하려 해도 금리 상승으로 이자비용이 늘어난 만큼 차입 확대를 결정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수익성이 낮고 차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세금과 이자를 내고 남는 자금이 부족해 신규 투자 규모와 집행 시기를 조정해야 할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표1. 일본 기업 도산 현황 및 자금 조달 부담
| 구분 | 주요 지표·변화 | 세부 내용 |
|---|---|---|
| 기업 도산 | 올해 4~9월 5,373건 | 부채 1,000만 엔 이상 기업 기준 동기간 기준 13년 만에 최대 |
| 영세기업 피해 | 전체 도산 기업 중 60% 이상 | 자본금 1,000만 엔 미만 기업 중소·영세기업 피해 집중 |
| 정책금리 인상 | 지난달 인상 후 1.25% | 차입 의존 기업 이자 부담 확대 |
| 추가 금리 상승 영향 | 차입금리 0.25%포인트 추가 상승 가정 | 분석 대상 16만8,000곳 중 약 2,700곳 이자비용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전환 추산 |
| 은행권 대출 기조 | 수익성·상환 능력 평가 강화 | 실적 회복 지연 기업 자금조달 압박 |
기업이 못 갚은 대출금, 결국 세금으로 보전
하지만 기업의 자금 사정이 악화한 상태에서 대출을 늘리면 정부도 부실에 따른 재정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지원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손실 보전 약정에 따라 세금이 투입돼서다. 일본에서는 과거 중소기업 대출을 공적으로 보증했다가 정책금융기관에 대규모 손실이 쌓인 전례가 있다.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분석에 따르면 일본정책금융공고의 신용보험 계정은 2009회계연도 5,680억 엔(약 4조7,730억원), 2010회계연도 4,360억 엔(약 3조6,630억원)의 손실을 냈다. 기업이 갚지 못한 빚을 신용보증협회가 대신 갚으면 공고가 협회 손실의 70~80%를 보험으로 보전하는 구조에서 발생한 적자다. 대출 당시에는 보증으로 제공했던 지원이 기업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이후 공공부문의 실제 손실로 돌아온 것이다.
은행의 대출 심사가 느슨해질 위험도 뒤따른다. 정부가 손실을 대신 부담하는 몫이 커질수록 은행으로서는 부실 대출을 억제해야 할 압박이 줄어드는 탓이다. 일본은 과거에도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이 이어지는 부작용을 겪었다. 정부는 일본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3월 1조8,000억 엔(약 15조1,220억원), 이듬해 3월에는 7조5,000억 엔(약 63조80억원)을 은행 자본 확충에 투입했다. 은행들이 쌓인 부실을 털어내고 기업대출을 재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은행들은 부실기업에 새로 돈을 빌려줘 기존 빚을 갚게 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며 손실 처리를 미뤘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충한 자본이 다시 줄어들 것을 우려해 ‘에버그리닝(Evergreening·부실기업 연명 대출)’으로 버틴 것이다.
개별 은행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자본 잠식과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한 생존책이었지만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을 줄이면서 시스템 전체의 신용공급이 위축되고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일본 은행과 제조업체의 재무자료를 분석한 가사하라 히로유키·사와다 야스유키·스즈키 미치오의 공동연구에서는 자본 투입 이후 생산성이 낮은 좀비기업에도 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에서 투자 확대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연구진은 빌린 돈이 기존 채무를 갚거나 손실을 메우는 데 쓰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별도의 카바예로·호시·카시압 연구에서도 좀비기업이 늘어난 업종에서 정상 기업의 투자와 고용 증가가 억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은행 지원으로 버틴 좀비기업들이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면서 정상 기업의 이익까지 깎아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방은행 구제 효과
과거의 부실 지원이 반복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 정부가 민간은행을 지원 대상에 넣은 데는 은행권의 자금 조달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대출 재원을 공급하고 부실 위험까지 나눠 지는 구조여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도 직접적인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일본 지방은행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지역 고객이 줄어드는 데다 대형은행·인터넷은행과 예금 유치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에 따르면 일본 61개 지방은행의 예금 잔액 증가율은 2024년 3월 말 2.2%에서 2025년 3월 말 0.9%로 둔화했다. 예금을 붙잡으려면 금리를 높여야 하는데, 거래 기업의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아 늘어난 비용을 대출금리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이번 장기·저리 자금은 지방은행이 예금 확보 경쟁에서 떠안는 비용을 덜고 대출 영업을 유지하도록 돕는 셈이다.
자금 조달 부담을 덜더라도 지방은행에는 줄어드는 대출시장에서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인구 감소와 성장 둔화로 일본 18개 도도부현의 대출 규모가 2022년부터 2030년까지 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 내 기업에 의존해 온 은행들로서는 새로운 대출처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실제 이달 통합 논의가 알려진 아오모리미치노쿠은행·이와테은행·아키타은행도 인구 감소가 심한 도호쿠 지역에 영업 기반을 두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이들 은행이 경쟁 심화와 자금 조달 압박에 대응해 규모 확대를 모색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가 전략산업 융자에 지방은행의 참여를 유도하면 지역은행에도 신규 사업에 자금을 공급할 기회가 열린다. 정부에서 빌린 자금으로 이자 수익을 얻으면서 대출이 부실해지면 약정된 손실 일부를 국고로 보전받는 구조다.
대출 늘려도 이익 확보 난제
다만 정책자금으로 신규 대출을 늘리는 동안에도 기존 대출에서 충분한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방은행의 경영 부담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행이 지난 23일 발표한 금융시스템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은행의 고정금리 기업대출은 금리 조정을 거친 비중이 작아 실제 적용 금리가 대체로 기존 수준을 유지했다. 예금 유치에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도 기존 고정금리 대출에서 들어오는 이자 수입은 당장 늘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단기 차환 대출을 제외한 고정금리 대출의 만기는 2030~2031년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대출의 금리가 조정되기까지 예금 이자 증가분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신규 대출에서 얻은 수익 일부도 기존 거래의 수익성 악화를 메우는 데 쓰일 가능성이 있다.
만기 이후에는 높아진 대출금리를 거래 기업이 감당할지가 관건이다. 일본은행은 해당 고정금리 대출 상당수가 코로나19 당시 취급된 소액 대출이며, 재무 상태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잔존 만기가 길다는 점에 주목했다. 낮은 고정금리가 이들 기업의 이자 부담을 억제하며 금리 상승의 충격을 뒤로 미뤄온 것인데, 만기 후 높아진 금리로 차환하면 그동안 피했던 비용 증가가 현실화할 수 있다. 영업이익을 회복하지 못한 기업이라면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기도 버거워 연체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은행 역시 금리를 높여 얻을 추가 이익 가운데 일부를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으로 쌓아야 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수익 개선을 기대하면서도 기업의 상환 능력 때문에 인상 폭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