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가 떠안는 연금 청구서” 인구구조 변화에 美·유럽 연금 재정 압박 심화, 스웨덴·싱가포르식 개혁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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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고령화에 세계 각국 연금 재정 부담 가중 기금 고갈·세대 갈등에 시위까지, 연금發 사회적 갈등 확산 스웨덴·싱가포르 등은 개인 납부액 연계·적립 방식 병행

세계 각국의 연금 제도가 구조적 재정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보험료를 납부하는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대수명 증가로 연금 지급 기간이 길어지면서, 급여·보험료 조정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생애 기여액과 실제 수급액을 보다 밀접하게 연계하고, 적립·운용 기능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 제도 지속 가능성 불투명
2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전 세계 연금 제도가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재정 부담을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 20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마쉬와 CFA 인스티튜트가 발표한 '2026년 글로벌 연금 지수(MCGPI)'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55개 연금 제도 가운데 43개 제도의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 여성 1명당 2.1명을 밑돌았다. 이 중 23개 제도는 합계출산율이 1.5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대여명 상승세 역시 명확했다. 선진 지역의 65세 기준 기대여명은 1950년 대비 50.9% 증가한 약 20년에 달했다. 65세에 도달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추가 생존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기금이 퇴직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기간도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바스티앙 베테르미에르 국제연금관리센터(ICPM) 전무이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연기금에는 은퇴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난 107~108세 수급자도 있다"며 "이러한 부담이 다음 세대에 전가하는 비용은 시한폭탄과 같다"고 경고했다. MCGPI 보고서 역시 근로자 대비 은퇴자 비율이 낮아질수록 연금과 노인 돌봄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더욱 중요해진다며, 현재 운영 방식만으로 장기적인 안정성을 장담할 수 있는 연금 제도는 극히 드물다고 진단했다.
부과방식도 적립방식도 '위태'
인구 구조 변화에 특히 취약한 제도로는 부과방식 연금이 꼽힌다. 부과방식 연금은 현직 근로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기존 은퇴자의 연금 급여를 충당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근로 세대가 충분하고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환경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지만,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할수록 현직 근로자 1명이 부담해야 하는 연금 지급 비용이 커지며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급 연령 상향, 급여 수준 조정, 재정 지원 확대 등의 대응책을 검토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적립방식 연금 역시 고령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적립방식 연금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한 보험료를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축적된 자산과 운용수익을 활용해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현직 근로자 수 감소가 곧바로 급여 지급 재원 부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입자 집단의 고령화가 진행되면 신규 보험료 유입보다 기존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많아지며 현금 흐름이 악화할 수 있다. 특히 확정급여형(DB) 연금은 근로자의 재직 기간과 임금 등을 기준으로 사전에 약정한 급여를 지급해야 하므로, 기대수명 증가와 투자수익률 부진이 겹칠 시 연기금의 장기적인 부담이 커진다.
연금 둘러싼 사회 갈등 사례
이미 세계 각지에서는 연금 재정을 둘러싼 문제가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지난 6월 미국 사회보장제도 수탁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퇴직자와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노령·유족보험(OASI) 신탁기금의 적립금은 2032년 4분기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지난해 전망보다 약 3개월 앞당겨진 수준이다. 신탁기금이 소진될 시 기존 보험료 수입으로 지급 가능한 급여는 예정된 금액의 78%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보고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총지출이 2021년부터 총수입을 웃돌고 있으며, 현행 제도가 유지될 경우 이러한 적자 구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에서는 정치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독일 연방하원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추진한 연금 개혁안을 찬성 318표, 반대 224표로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2031년까지 법정 연금의 급여 수준을 평균임금의 48%로 유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이에 수반되는 추가 재정 지출은 1,850억 유로(약 273조1,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해당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였다. 집권 기독교민주·기독교사회연합(CDU·CSU) 내 청년 의원들은 연금 급여 보장이 미래 세대의 세금·보험료 부담을 확대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CDU·CSU와 사회민주당(SPD)이 구성한 연립 정부의 안정성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후 메르츠 정부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을 포함한 개혁을 추진했고, 세대 간 부담 배분은 독일의 주요 정치 쟁점으로 남았다.
표1. 주요국의 연금 재정 문제
| 국가 | 재정 문제 | 정부 대응·파장 |
|---|---|---|
| 미국 | OASI 신탁기금 2032년 소진 전망 | 사회보장제도 지출이 수입을 웃도는 구조 장기화, 제도 개혁 필요성 확대 |
| 독일 | 연금 급여 수준 유지에 대규모 재정 투입 필요, 청년층 세금·보험료 부담 증가 우려 | 연금 제도를 둘러싼 세대·정치권 갈등 심화 |
| 프랑스 | 보험료 납부자 대비 은퇴자 비율 악화, 연금 지출·재정 적자 확대 | 연금 인상 제한·세제 혜택 축소 등 긴축 추진, 노동계 및 시민 사회 반발 확산 |
'복지 국가' 프랑스의 이면
프랑스에서도 과중한 연금 지출이 국가 재정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프랑스 재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은퇴자 1명당 4명을 웃돌았던 프랑스의 연금 보험료 납부자는 지난해 약 2.5명으로 줄었으며, 2070년에는 1.6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상 연금 순소득대체율이 70% 안팎인 프랑스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다. 실제 지난해 프랑스의 연금 재정 적자는 51억 유로(약 7조5,290억원)에 달했으며, 연금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4.1%까지 불어났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지출 억제와 세수 확대에 나섰다. 막대한 연금 지출 부담이 정부의 재정 운용을 제약한 탓이다. 프랑스의 2027년 예산안에는 월 1,260유로(약 186만원)를 초과하는 연금 급여의 물가 연동 인상을 제한해 41억 유로(약 6조530억원)를 절감하고, 연금 수급자의 세제 혜택을 축소해 14억 유로(약 2조670억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의료비, 병가 급여 등 여타 사회 보장 지출을 줄이는 조치도 함께 추진된다. 프랑스 국민들은 최근 이러한 정부의 긴축 기조와 공공 서비스 부족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며 거리로 나왔다. 프랑스 내무부는 지난 24일 전국에서 열린 집회에 약 41만 명이 참여했다고 집계했으며, 노동조합 측은 참가 인원을 약 80만 명으로 추산했다. 파리·마르세유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스웨덴·싱가포르 개혁 선례
각국에서 연금 관련 갈등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연금 제도를 개인의 납부액과 실제 수급액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방식을 실천한 대표적인 국가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0년대 연금개혁을 통해 개인이 생애 동안 납부한 보험료, 기대수명 등을 기준으로 연금액을 산정하는 명목확정기여형(NDC)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연금 산정 기준 소득의 18.5%가 연금 재원으로 배정되며 이 중 16%포인트는 소득연금에, 2.5%포인트는 프리미엄연금에 투입된다. 소득연금은 개인별 가상계정에 납부액과 수익률을 기록해 향후 급여를 결정하며, 프리미엄연금은 가입자가 선택한 펀드 등에 자금을 투자해 운용 성과를 연금액에 반영한다.
싱가포르 역시 개인별 적립금을 중심으로 노후 소득을 마련하는 국가다. 싱가포르는 중앙적립기금(CPF)을 통해 근로자와 고용주가 납부한 기여금을 개인 계정에 축적하고, 이를 은퇴 후 생활비와 주택 구입, 의료비 등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기준 55세 이하 근로자의 CPF 의무 기여율은 월급의 37%로, 근로자가 20%, 고용주가 17%를 부담한다. 가입자가 55세가 되면 은퇴계정이 마련되며, 일정 수준의 노후자금을 확보한 뒤 남은 적립금은 조건에 따라 인출 가능하다. 65세 이후에는 적립금 규모 등에 따라 종신연금 제도인 'CPF LIFE'에 가입하거나, 기존 적립금이 소진될 때까지 매월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CPF LIFE의 연금액은 가입자의 적립금과 이자, 수령 개시 시점 등을 반영해 결정되며, 가입자 간 장수 위험을 공동 부담하는 구조로 운영된다.